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94화 (194/441)

# 194

힐통령 194화

70장. 설산(4)

“오오오오오오!”

카이가 비명과도 같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코를 통해 들어와 가슴을 물론 배까지 가득 채우는 청량한 공기.

실시간으로 얼굴을 세차게 때리는 설산의 차가운 바람!

오직 창공을 가르는 와이번의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쾌감들이었다.

‘시간은 제법 지체되었지만…….’

포박한 와이번을 미믹이 흉내내기까지는 꼬박 한나절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레벨이 낮아서 계속해서 스킬이 실패했기 때문에 생긴 일!

물론 카이는 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았다.

‘덕분에 시네라스의 둥지까지 일직선으로 갈 수 있게 되었어.’

말 그대로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단축한 셈이었다.

“미믹, 고도를 낮춰줘. 저쪽 산맥을 훑으면서 올라가자.”

카이가 와이번으로 변한 미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자 날개를 접은 미믹이 순식간에 급강하하며 산맥의 위로 이동했다.

‘음. 이 정도 속도면 못해도 두 시간이면 둥지에 도착하겠는데?’

마음을 느긋하게 먹은 카이는 미믹의 널찍한 등에 앉은 채 조금씩 가까워지는 둥지를 바라보았다.

‘드래곤이라…… 과연 어느 정도나 강력할지 기대되는데.’

강적과의 싸움은 늘 위험을 동반한다.

패배하면 잃는 것이 있지만, 승리하면 얻는 것도 크다.

카이는 거듭된 위험들을 헤쳐나오며 그 영원불변의 진리를 깨우쳤다.

‘우선 스페셜 칭호 하나 정도는 무조건 나오겠지.’

운이 좋으면 두 개, 세 개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

그뿐만이 아니다.

‘못해도 레이드 보스 몬스터일 테니까…….’

드랍되는 재료 아이템들의 값어치도 천문학적일 터.

말도 안 되는 확률의 온갖 복권들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은 것이 레이드다.

순전히 운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실력을 통해서 당첨을 쟁취해야 하니까.

이후로 두 시간을 더 비행해 둥지의 가까이 도착한 미믹이 돌연 괴성을 질렀다.

“끼룩! 끼루룩!”

“……울음소리까지 똑같은 거냐.”

낮은 한숨을 내쉰 카이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고 있는 미믹과 눈을 맞추었다.

“갑자기 왜 그래?”

“끼루룩!”

미믹이 한 곳을 쳐다보며 열심히 끼룩거렸다.

‘미믹이 이유 없이 이러지는 않을 텐데. 어디 보자.’

그곳으로 시선을 옮긴 카이가 눈을 반짝였다.

‘사람!’

마치 에스키모족처럼 두꺼운 털 옷을 몇 겹이나 껴입어 부해 보이는 사내.

안타깝게도 세 마리의 예티에게 둘러싸인 그는 치열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루나의 동생인가?’

카이는 미믹에게 부탁해 서둘러 그곳으로 접근했다.

“허억, 허억!”

남자를 포위한 예티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순서대로 공격을 하며 그의 체력을 천천히 빼놓았다.

‘아주 말려 죽일 생각이야.’

간만에 찾은 먹잇감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예티들의 행동에서 엿볼 수 있었다.

“미믹, 내려오지 말고 있어.”

와이번의 모습을 흉내 내었다고는 하나, 레벨이 낮아 스킬은 단 하나도 배우지 못한 상태.

괜히 내려왔다가는 예티의 공격 몇 번에 역소환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카이는 미믹의 등을 박차고 그대로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크륵?”

허공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에 예티들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그들의 가슴을 연속적으로 강타하는 세 줄기의 강렬한 빛!

“홀리 익스플로젼!”

눈덩이에 처박혀 몇 바퀴나 몸을 굴린 예티들은 머리를 흔들며 벌떡 일어났다.

눈을 부릅뜬 녀석들은 분노한 표정으로 눈 위에 착지한 카이에게 다가왔다.

‘어그로는 제대로 확보했고.’

예티들을 무시한 카이는 걸음을 옮겨 남자에게 다가갔다.

갑작스러운 인물의 등장에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지나가던 모험가입니다. 혹시 코르도 마을 출신이십니까?”

“예. 맞습니다만.”

“아하. 혹시 성함이 소라?”

“엇.”

청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떻게…….”

“그쪽 누나가 보내서 왔습니다. 집 나간 동생을 좀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하더군요.”

“누나가…….”

아랫입술을 꽉 깨문 남자, 루나의 동생 소라가 고개를 흔들었다.

“누나의 부탁을 받았다면 모험가님도 모두 알고 계시겠지요.”

“시네라스의 저주 말입니까?”

“예. 전 그 저주를 풀기 전까지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후우.”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기특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칭찬을 해주고 싶을 정도.

‘하지만…….’

세상에는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훨씬 더 많다.

예티 세 마리에 고전하는 그가 사룡에게 맞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저도 누나가 하나 있거든요. 매일 틱틱거리며 싸우지만, 정말 좋은 누나예요. 나이 차이가 제법 나서 그런지 몰라도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배려도 많이 해줬고요. 그래서 저도 의지를 참 많이 해요. 만약 누나가 끔찍한 병에 걸린다면…… 저도 당신처럼 이성을 잃을지도 모르죠.”

“……?”

카이의 뜬금없는 이야기에 소라가 눈만 깜빡거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은 확실히 구분해야 합니다. 당신의 힘으로 사룡을 죽이는 건 무리예요. 마음만으로 소중한 이를 구할 수 있다면, 세상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안 했습니다?”

예티들을 쳐다보던 카이는 돌연 몸을 돌려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와 동시에 소라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어어, 뒤! 뒤에 예티들이 기습을……!”

“사랑하는 사람의 옆에 있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분명한 힘이 됩니다. 그러니까…….”

소라에게 씨익 웃어 보인 카이가 사슬을 옆으로 집어 던지며 검을 뽑았다.

“요리는 요리사에게 맡기듯, 몬스터는 모험가에게 맡기세요.”

서걱!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두른 카이의 검이 예티의 팔 한 짝을 그대로 절단했다.

“꾸워어어어어어!”

“굽긴 뭘 구워. 여긴 불도 안 지펴질걸?”

지나가는 아저씨도 웃지 않을 개그를 지껄인 카이는 곧장 몸을 돌리며 튀어나갔다.

동시에 다시 한번 휘둘러지는 검격!

그의 검은 한쪽 팔을 잃고 미쳐 날뛰는 예티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음…… 하지만 얕아.’

카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거리 계산을 실수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지금까지 카이가 검을 휘두른 시간만 족히 몇 달.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를 단계는 절대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외부적인 변수가 문제인데…… 아, 눈 때문인가.’

카이가 자신의 두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걸을 때마다 쉽게 미끄러지는 눈밭은 전투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변수 중 하나였다.

‘뭐, 이제라도 알았다면 됐어.’

자신에게 부족한 점, 고칠 점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은 랭커의 기본 소양 중 하나였다.

물론, 제 고집을 밀고 나가면서 잘나가는 재능충 랭커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카이는 이런 부분에서는 절대 자신의 습관을 고집하지 않았다.

외형은 동양인이지만 머리만큼은 서구적인 오픈 마인드!

‘보폭을 조금 더 짧게 가져가면 될 것 같은데?’

순식간에 온몸에 버프를 휘감은 카이의 움직임이 이전과는 180도로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는 다리가 긴 어른이 멀리뛰기를 하는 것처럼 전력을 다해 달렸다면,

지금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리를 움직인 것이다.

그 단순한 변화만으로도 카이의 자세는 순식간에 안정되었다.

“그어어어어!”

예티의 주요한 공격 패턴은 거대한 덩치에서 비롯된 육탄전과 주변의 눈덩이를 한데 뭉쳐 던지는 것뿐이다.

‘예티들의 발바닥은 눈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모양이야.’

절대 미끄러지지 않는 그들의 다리를 확인한 카이의 면상으로 거대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반보.”

정확히 반보.

머리를 딱 그 정도 뒤로 물린 카이의 코앞에서, 예티의 주먹은 정확히 멈춰섰다.

예티 녀석의 다리 위치와 팔의 길이를 계산해서 내린 결론이었으니 틀릴 일은 없었다.

“끄, 끄어?”

당연히 맞을 줄 알았던 주먹이 상대방의 코앞에서 멈추자, 예티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쉽겠어. 네가 긴 팔 원숭이었으면 이거 맞았을 텐데.”

서걱, 서걱, 서걱!

예티의 팔 한짝을 회오리 감자처럼 썰어버린 카이는 그대로 몸을 숙여 녀석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어어어어!”

고통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 예티는 반대쪽 손으로 바닥의 눈을 빨아들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볼링공 크기로 압축되는 눈!

녀석은 그것을 카이에게 집어 던졌다.

쇄애애애액!

‘예티의 스킬인가? 소리만 들어봐도 단순한 눈 따위는 아니야.’

아이들의 눈싸움이라면 눈 속에 돌멩이를 넣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반칙!

하물며 지금 날아드는 예티의 눈덩이는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다.

물론 그것이 놀랍기는 하지만, 무서울 정도는 아니었다.

“바위처럼 단단해 보인다는 건, 아무리 단단해도 바위 정도라는 소리잖아.”

스겅!

카이가 가볍게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리자 절반으로 갈라진 눈덩이가 바닥에 파묻혔다.

“그, 그어어어…….”

대적 불가의 강적!

카이가 포식자임을 깨달은 녀석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물론, 카이는 다 잡은 사냥감을 놓아줄 정도로 무심한 사람이 아니었다.

“추적하는 빛의 화살.”

수백 다발의 화살은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눈밭 위를 가르며 예티들을 확실하게 처리했다.

깔끔한 승리!

카이는 획득한 스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새로운 전투 스타일을 완성시킨 상태였다.

‘지금이라면 골리앗 같은 녀석이 두 명 정도 달려들어도 할 만하겠어.’

내심 뿌듯함을 느낀 카이는 벙찐 표정의 소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때요. 역시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낫겠죠?”

소라는 미친 듯이 고개만 끄덕였다.

***

“끄응.”

소라를 미믹의 등에 태워 마을로 돌려보낸 뒤, 카이는 얼마 안 남은 둥지를 향해 열심히 걸어가는 중이었다.

“아까 들은 소리가 마음에 조금 걸리네.”

소라는 마을로 떠나기 전, 카이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마치 군인들처럼 정렬된 수백의 몬스터들이 둥지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그의 말만 들으면 침공 이벤트 때 도시들을 공격하던 몬스터 무리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벤트 기간도 아닌 상황.

‘그런 놈들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야 몬스터들인걸.’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몬스터 수백 마리를 그렇게 조종하는 것이 가능할까?

“끄응. 둥지 안에 몬스터만 수백 마리가 있으면 혼자서는 공략이 어려울 텐데.”

복잡한 머리를 벅벅 긁은 카이는 둥지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뒤바뀐 것을 느꼈다.

“……와. 감 좋네.”

자신은 태양의 신체로 인해 날카로운 오감을 형성했다.

때문에 둥지 안에서 숨 쉬고 있는 시네라스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뿐만이 아닌 모양.

‘내 존재감이 저 둥지 안에서도 느껴진다고?’

둥지 안에서 자신을 향한 이유 없는 적대심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드래곤은 자신의 영역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했어. 레어 근처에 모험가가 얼쩡거리니 당연한 건가.’

카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렴풋이 느껴지는 감각만 보면…… 레벨은 500 정도인가. 어렵기는 하지만, 못 이길 정도도 아니야.’

살짝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낀 카이는 시네라스의 둥지를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우선 던전 최초 발견 버프부터…….’

챙기려는 순간.

둥지 안쪽에서 거대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카이를 밖으로 밀어냈다.

“크윽……!?”

두 다리를 바닥에 꽂아 넣고 몸을 엎드린 후에야 날아가지 않을 정도의 거센 광풍(狂風)!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양의 신체로 발달된 오감이 연신 머릿속에서 경종을 울렸다.

“자, 잠깐만…… 이 녀석…… 설마?!”

어렴풋이 느껴지던 시네라스의 기운이 점점 더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 말인즉, 놈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리.

“……드래곤이라고 너무 특별 취급해주는 거 아니야?”

아무리 강력하다고는 하나, 일개 몬스터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날 정도로 자유롭다니!

콰아아아아앙!

둥지의 천장을 깨부수며 창공으로 솟아오른 거대한 백룡이 샛노란 파충류의 눈을 빛내며 카이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마치 철천지원수를 바라보는 것 같은 짙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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