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98화 (198/441)

# 198

힐통령 198화

71장 몰락한 금속의 왕국(3)

카이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본래라면 이곳이 시네라스가 있어야 할 공간.’

때문에 현재 그가 위치한 장소는 거대한 돔 모양을 띄고 있었다.

시네라스가 날뛰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의 쾌적한 공간.

‘하지만 보물 사냥꾼은 20미터 이내에 보물이 있다고 했어.’

카이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보스룸의 중앙 부분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떠오르는 알림창.

[보물과의 거리 : 30미터]

“이런 것도 알려주는 건가?”

그야말로 보물 사냥꾼이라는 위명에 어울리는 능력.

카이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자신이 걸어온 방향으로 쭈욱 걸어가기 시작했다.

[보물과의 거리 : 15미터]

[보물과의 거리 : 10미터]

[보물과의 거리 : 5미터]

…….

“흐음?”

보물까지 남은 거리는 불과 5미터.

하지만 코앞은 단단한 돌벽으로 가로막힌 상태였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동해도 거리만 늘어날 뿐이야. 보물과의 최단 거리는 내가 서있는 이곳이 맞아. 그렇다면…… 혹시 이 벽을 강제로 부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야만적인 방법은 조금 나중에.

카이는 눈앞의 신성한 빛 스킬을 허공에 띄워놓은 채 눈앞의 벽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달칵.

잠시 후, 기분 좋은 기계음과 함께 돌멩이 하나가 벽 안쪽으로 들어갔다.

띠링!

[숨겨진 방을 찾아내셨습니다.]

[안목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셨습니다.]

[안목 스킬의 레벨이 초급 8레벨이 되셨습니다.]

“그럼 그렇지.”

카이가 기분 좋게 흥얼거리는 순간 눈앞의 돌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구르르르.

“와…….”

좌우로 단순하게 갈라지는 것도 아니고, 마치 공간이 회전하는 것처럼 수십 개의 조각으로 갈라지며 모습을 드러내는 비밀의 방!

‘기술력 한 번 끝내주는데? 시네라스가 직접 설계한 장치인가?’

하지만 녀석이 직접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그 어떤 마법적 장치도 숨겨져 있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린 카이가 안쪽을 들여다보자, 정확히 5미터 앞에 보물 상자 하나가 보였다.

“뭐, 이 장치를 누가 만들었든, 추가 보상을 획득할 시간인가?”

부푼 마음을 껴안은 채 곧장 상자를 오픈한 카이의 입꼬리는 순식간에 축 내려왔다.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

“……이게 뭐야?”

눈을 씻고 쳐다봐도 상자의 안쪽에 들어있는 것은 조그마한 수첩 하나가 전부.

‘아니, 하다못해 스킬 북이었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심지어는 스킬 북조차도 아닌 말 그대로의 수첩.

혹자는 드래곤의 레어에 위치한 숨겨진 보상이 고작 수첩이라고 투덜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카이는 실망을 한 것이 아니라 역으로 더 긴장을 했다.

“대체 어떤 내용이 적혀 있길래?”

레벨 550의 시네라스.

그조차도 패트릭에게 치명상을 입고 모두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놈을 죽이는 것도 일인데, 보스 룸에서도 이 비밀의 방을 따로 찾아내야 해.’

하나같이 쉽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 보상으로 내려온 것은 달랑 수첩 하나.

“고놈 참 비범한 수첩일세.”

카이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곧장 수첩을 집어 들었다.

[카룬달의 수첩을 획득하셨습니다.]

“음?”

수첩을 읽기 시작한 카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휘갈겨 쓴 글씨…….’

대륙 공용어로 적혀진 글은 몹시 다급하게 쓰인 것처럼 글자 크기가 엉망이었다.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카이는 이 글을 쓸 당시 저자의 심리 상태가 어땠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부디 대지의 신 호른이 일족을 버리지 않으셨기를 바라며, 이 일지를 읽는 이가 부디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이기를…….]

“대지의 신 호른?”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와 봐요, 시미즈.”

스으으윽.

처음부터 카이의 등 뒤에 있었다는 듯, 시미즈의 반투명한 모습이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그녀는 냉랭한 표정으로 카이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표정이 왜 그래요?”

쭈그려 앉아 수첩을 읽고 있던 카이가 눈을 깜빡이며 묻자, 시미즈가 뾰로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강림을 사용하셨더군요.

“예? 아, 네. 그때 상황이 제법 불리해서요.”

-그리고 조금 전에도 강림을 사용하셨네요.

“네. 드래곤 해츨링 한 마리한테 말 그대로 죽을 뻔했어요.”

-아아, 그렇다면 카이님은 두 번, 모두, 체란티아, 그 꼬맹이를 불러낸 거네요.

“하하. 체란티아 님이 꼬맹이라고 불릴 덩치는…….”

덩치만 보면 체란티아가 시미즈의 세 배 정도는 되어 보인다.

하지만 카이는 입을 꾹 다물고 뒷말을 뱉어내지 않았다.

‘삐졌네, 삐졌어.’

지금 자신을 안 불러줬다고 토라진 것이 분명하다.

그에 대한 시위라도 하듯, 그렇게 수다스럽던 시미즈가 입을 꼬옥 다물고 있었다.

“자비롭다고 소문나신 시미즈 님께서 이해해 주세요. 아군을 수호하기보다는 적을 때려눕혀야 해서…….”

-지금 제가 여자라고 무시하시는 거예요? 저도 잘 싸워요.

“그, 그렇지만 시미즈 님은 수호라고 불리는 만큼 방어에 특화되었을 거라 생각되어서…….”

-하! 그렇게 따지면 안식은요? 맨날 사람이나 재우는 한 변태 꼬맹이가 저보다 낫다, 이 말이잖아요 지금.

“죄송해요. 하지만 덩치만 봐도 체란티아 님이 훨씬 잘 싸울 것 같…….”

-보셨어요?

“예?”

-카이님이 내가 싸우는 모습 보셨냐구요.

“모, 못 봤죠.”

-그런데 왜 멋대로 판단하세요? 저도 도움 된다구요! 저 초대 교황이고, 초대 태양의 사제였다구요. 능력 있는 사람…… 아니, 유령이라구요!!

시미즈가 두 눈을 부릅뜨며 빼액 소리를 질렀다.

물론, 영체인만큼 카이에게 행해지는 물리적 압박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아, 왜 갑자기 엄마가 생각나지.’

입을 한 번이라도 더 뻥긋거리면 그대로 등짝을 맞을 것 같은 기분!

친절하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던 시미즈는 그 자리에 없었다.

‘삐지니깐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구나.’

지금 당장 헬릭이랑 손잡고 놀아도 될 정도의 유치한 사고력!

카이는 변명하지 않겠다는 듯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대신 다음번에는 시미즈 님을 꼭 불러드릴게요.”

물론 카이는 그 다음이 언제가 될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두 시간 후가 될 수도, 내일이 될 수도, 어쩌면 몇 달 후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말하시니, 자비롭다고 소문난 제가 넘어가드리겠어요.

카이의 확답을 받아낸 시미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전 왜 부르셨나요?

“아, 혹시 이 대지의 신 호른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해서요.”

-흐음. 사도 된 몸으로 다른 신을 모시고 싶은 건 아니실테고……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하신 거죠?

‘알고 있구나.’

시미즈의 말에서 단서를 잡아챈 카이는 수첩을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이 수첩에 대지의 신이 거론되서요. 전 한 번도 못 들어본 신이거든요.”

플레이어들은 모험가로 전직할 때 다양한 교와 신들의 위명을 듣게 된다.

물론 대다수의 모험가들은 태양신을 모시는 태양교의 사제로 전직하지만, 적어도 어떤 신들이 있는지 정도는 알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 기억에 따르면 대지를 관장하는 신은…… 응, 확실해. 없었어.’

그러나 일지에는 대지의 신이 확실하게 언급되었다.

그것이 카이가 시미즈를 부른 이유.

-그야 한 번도 못 들어봤겠지요. 애초에 인간들이 모시는 신이 아닌걸요?

“……그 말씀은?”

-예로부터 대지의 신 호른은 땅 속 깊은 곳에 숨어사는 이들이 모시던 신이에요.

“땅 속 깊은 곳에 숨어사는 이들…… 설마?”

카이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짓자, 시미즈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금속의 주인들이라 불리는 종족들. 바로 드워프들이 모시는 신이예요. 호른은.

“잠깐, 드워프들이라면…….”

명쾌한 해답을 얻었지만 카이의 표정은 더욱 애매해졌다.

‘그런데 드워프의 일지가 왜 여기서 나와?’

이곳은 사룡 시네라스의 레어였던 장소.

심지어 수첩이 발견된 곳은 그 레어의 보스룸에 위치하던 비밀의 방이었다.

“뭐, 읽어보면 알겠지.”

카이가 일지를 읽어내리기 시작하자, 그 뒤로 슬쩍 다가온 시미즈가 어깨 너머로 함께 읽기 시작했다.

[사룡 시네라스. 놈이 우리들의 왕국인 잉가르트를 침공한 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다.]

첫 줄을 읽기가 무섭게, 시미즈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드래곤이 잉가르트를 발견했나 봐요! 아아, 이것 참 큰일인데요…….

“혹시 시네라스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놈은 이미 제 손에 죽었으니까요.”

-시네라스? 아아, 그 핏덩이 해츨링이요? 그런 녀석은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걱정하는건…… 아, 혹시 모르고 계시는 건가요?

시미즈가 제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로부터 대다수의 드래곤들은 저희 교단의 인사들과 사이가 무척 안 좋답니다.

“왜요?”

-음……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이 세계의 중심을 맡고 있는 전지적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신이 있잖아요.”

-네. 전설이나 설화에 따르면, 드래곤들은 먼 옛날 신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패배하여 물질계로 추방된 하위 신들이에요. 짧게는 수천 년, 길게는 만 년이 넘게 물질계에서 죽지도 못하고 살아가야하는 벌을 받은 거죠.

“신일 때의 기억은 없는 겁니까?”

-그런 기억들이 남아있으면 벌이 아니라 유희 아닐까요? 복수를 준비할 수도 있구요. 당연히 없어요.

“흠.”

카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디로 드래곤들은 자신들보다 잘난 신들을 눈꼴 시려워 한다, 이 말이죠?”

-정답이에요.

“그런데 그게 왜 큰일이죠?”

-어…… 아까 말씀드린 대다수의 드래곤들은, 뮬딘 교와 친밀하니까요.

“음? 말의 앞뒤가 안 맞잖아요? 드래곤들은 신을 싫어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런 말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적의 적은 친구라고.

“아…….”

그 한 마디로 카이는 단번에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뭐, 뮬딘 교 쪽에서는 드래곤 일족 장려 대책이라도 해주나 봐요?”

우스갯소리로 던진 말이었지만, 시미즈는 어색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조신하게 끄덕였다.

-네에에.

“……정말로요?”

-애초에 뮬딘은 악신이라 불릴 정도로 파괴적인 성향이 강한 신이에요. 드래곤 족들이 헬릭님을 비롯한 다른 신들을 싫어하는 이유도, 속된 말로 자신들이 인간들의 세상에 깽판 치는 것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금지시키니까 싫어하는 거죠.

“하지만 뮬딘은 그 부분에 관해서는 노터치다?”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으니까요. 뮬딘은 세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낙인 변태예요.

“흐음. 말씀하신 대로 대다수의 드래곤들이 뮬딘 교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침공당한 잉가르트는 현재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카이는 옆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지만 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자신에게는 드워프, 카룬달의 일지가 있으니까.

‘이건 카룬달이 외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남겨놓은 최후의 보루야.’

그렇다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일족을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도 수록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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