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99화 (199/441)

# 199

힐통령 199화

71장 몰락한 금속의 왕국(4)

탁.

“과연.”

카룬달의 일지를 모두 읽은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깨 너머에서 함께 일지를 읽던 시미즈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잉가르트의 드워프들은 우선 사룡의 둥지로 모두 끌려왔었군요.

“그런 것 같네요. 그리고 드워프 왕국의 왕인 카룬달이…….”

툭툭.

카이는 비밀의 방 입구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시네라스의 둥지를 개조하면서 용케 이런 방을 몰래 만들어냈네요.”

드래곤의 눈에 걸리지 않으려면 우선 한 줌의 마나도 품고 있지 않아야 한다.

‘마나를 이용한 기관이라면 뛰어난 마법사인 드래곤에게 걸릴 수 밖에 없었을 테니.’

절망스러웠던 카룬달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일지를 이곳에 넣어두었다.

훗날 사룡 시네라스를 해치운 강력한 모험가가 자신의 안배를 발견해주기를 바라면서.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모든 드워프 족이 잡혀간 건 아닌 모양이에요.

“예…… 일지에 따르면 상당수의 드워프들을 도망시키는 데 성공했어요.”

물론 300여 명이 넘는 드워프들은 모조리 잡혀 시네라스의 노예가 되었다.

‘소라가 둥지의 근처에서 봤다는 몬스터들의 군대. 녀석들에 대한 의문도 풀렸어.’

그들은 드워프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는 일종의 경비병이었다.

동시에 안타까움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정말 아쉽네요.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드워프들도 구할 수 있었을텐데…….”

현재 드워프들과 그들을 감시하던 몬스터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떠난 이후였다.

일지에 따르면 목적지는 뮬딘 교의 거점 중 한 곳인 모양.

‘게다가 마지막으로 일지가 작성된 건 고작 일주일 전이야. 아직 멀리가지는 못했을 텐데…….’

딱 일주일.

만약 그때 시네라스를 잡을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뭐, 그 때는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도 처리해야 했으니 내가 당했을 수도 있겠지.’

애초에 인어와 엘프, 드워프들은 메인 시나리오 상 멸망을 맞이해야 할 운명이었다.

그걸 자신이 억지로 되살리려고 하니 이런 식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애초에 현 시점에서 레벨 550인 시네라스를 잡을 수 있는 세력이 있을 리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내쉰 카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로 움직이실 건가요?

“그래야죠. 일지에는 탈출시킨 드워프들이 향하고 있는 대피소 위치가 적혀 있어요. 그곳으로가서 우선 생존한 드워프들부터 규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낸 카이는 곧장 시네라스의 레어를 빠져나왔다.

‘예전에 하녹스의 시련에서 패트릭이 했던 말에 의하면, 드워프 일족은 자신들의 거주지인 잉가르트를 수백 년 단위로 한 번씩 옮겨.’

때문에 버려진 드워프들의 왕국이 발견되면 왕국들은 눈에 불을 켜게 된다.

아직 인간의 기술로는 범접할 수 없는 드워프들의 건축물은 역사적, 기술적으로 가치가 어마어마하니까.

‘그리고 이번에 이번에 침공당한 잉가르트는…….’

툭툭.

카이가 제 발로 산바닥을 쿵쿵 찍었다.

“이곳, 설산.”

불과 200년 전에 새롭게 지어진 잉가르트는 바로 이곳, 설산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네라스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뮬딘 교가 수작을 부렸겠지.’

인어와 엘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드워프들에게도 마수를 뻗었을 터.

‘드워프 왕국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납치된 상태.’

아마 그들은 뮬딘 교의 건물을 짓는 노예들로 사역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흔적을 찾는 건 혼자서는 무리야. 하지만…….’

촤아아아악!

카룬달에 일지 사이에 끼워져 있던 지도를 펼친 카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설산을 내려다보았다.

“일족의 존망이 걸린 위기시 뿔뿔히 흩어진 모든 드워프들은…… 이곳으로 모이게 되어있지.”

뿔뿔히 흩어진 드워프들이 먼 길을 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자고로 등잔 밑이 어두운 법.

드워프들의 대피소는 마찬가지로 설산에 위치하고 있었다.

***

[블리자드의 사냥으로 10,752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블리자드의 사냥으로 11,039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흐음. 블리자드는 생각보다 훨씬 잘해주고 있네.”

물론 시네라스를 잡고 뻥튀기가 되어버린 자신의 경험치를 빠르게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기특한 녀석. 나중에 맛있는거나 잔뜩 사줘야겠어.’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어보인 카이는 와이번 형태의 미믹 머리를 두드렸다.

“여기서 아래 쪽으로 내려가자.”

“끼룩! 끼루룩!”

미믹과 카이의 신형은 곧장 거대한 얼음 벽 사이로 빨리듯 들어갔다.

빙하가 갈라져서 생기는, 흔히 크레바스라고 불리우는 거대한 틈.

“후우, 추워라.”

방한복을 입고 있음에도 으실으실 떨려오는 몸은 그 장소가 보통 인간이 올 장소는 아님을 증명하는 듯 했다.

‘이런 곳에 드워프들의 대피소가 있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이였지만 지도를 몇 번이나 확인해 봐도 이 장소가 맞았다.

“미믹. 수고했어. 푹 쉬어.”

“끼루루룩!”

미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녀석을 역소환한 카이는 얼음으로 이루어진 바닥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머리 맡에서 반짝이는 신성한 빛 하나에 의지하여 걸어가기를 잠시.

코너를 돌려는 순간 제법 익숙한 소리가 카이의 청각에 잡혔다.

또옥!

동굴 던전이나 습기찬 곳에서라면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하지만 카이는 그 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낯빛을 굳히며 검을 뽑아들었다.

‘기온이 이 모양인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물방울이 떨어질 리가 없지.’

거대한 코너의 빙벽을 사이에 둔 채, 카이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이 코너 뒤에 누군가가 있다.’

평범한 인물이라면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다.

‘이곳은 드워프들의 대피소. 만약 이 뒤에 있는 인물이 드워프라면 다행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침입자.’

카이의 눈빛이 주변의 빙벽만큼이나 차가워졌다.

다음 순간, 단숨에 코너를 돌아나간 카이의 정수리로 거검이 떨어졌다.

‘물?’

검신에 맺혀 있는 것은 분명 물이었다.

이런 기온에서 어떻게 물이 얼지 않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카이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흐읍!”

순식간에 롱소드를 기울여 거검의 궤적을 엉뚱한 곳으로 흘린 카이는, 바람처럼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켜 자신의 롱소드로 상대방의 가슴을 크게 그었다.

“꺄악!”

단 한 번의 일격에 체력이 훅 빠져버린 상대는 그대로 쓰러지며 매끈한 빙판길을 쭈욱 미끄러졌다.

카이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신음을 흘리는 상대를 신성 사슬로 포박하며 장비부터 확인했다.

‘경매장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이템들.’

하지만 유려한 디자인과 고급 아이템들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렇다는 말은 드워프들의 무구를 훔친 뮬딘 교의 사제…… 는 아니네?’

상대의 머리 위를 쳐다보던 카이가 두 눈을 깜빡였다.

만약 몬스터나 NPC였다면 적대 상태가 되는 순간 머리 위로 붉은색 이름이 떠올랐을 터.

하지만 상대방의 머리 위에는 그 어떤 글자도 떠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카이의 경험상, 그리고 미드 온라인의 시스템상 그런 경우는 단 하나뿐!

“너…… 유저냐?”

그 질문에는 상대 또한 놀란 듯, 끙끙거리던 몸을 일으켜 빙판에 주저앉으며 입을 달짝였다.

“……넌 또 뭐야.”

“내가 먼저 물었어. 아, 우선 투구부터 벗어. 로그아웃 당하기 싫으면.”

“후우. 투구 해제.”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상대가 명령어로 인터페이스를 조작하자 투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두꺼운 투구 밑에 감춰져 있던 것은 선이 제법 굵은 여자의 얼굴이었다.

이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적색의 머리칼은 남자처럼 짧게 쳐져 있었고, 커다란 눈동자에는 짙은 속쌍커풀 달려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고집이 무척이나 강해 보였다.

‘여자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랴.

매정한 카이(22세, 모태솔로)는 롱소드를 들어 그녀에게 겨누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유저냐고 물었던 것 같은데.”

“칫, 알았다고! 말해줄테니까 이 빌어먹을 검은 좀 치우…… 어?”

자신의 목덜미에 드리워진 침묵하는 냉기의 롱소드가 서릿발처럼 차가운 기운을 내뿜자, 짜증을내던 그녀가 돌연 눈을 깜빡이며 검신을 쳐다보았다.

“응? 잠깐, 잠깐만.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냉기는…… 빙결 속성의 검이잖아? 거기다가 침묵 옵션까지 달려 있다고!?”

순식간에 눈을 반짝인 그녀는 자신이 포박당한 포로라는 것도 잊었는지 무릎을 꿇고 앉아 경건한 표정으로 카이의 롱소드를 빤히 쳐다보았다.

“오와아아아…… 아름다워.”

“갑자기 뭐야.”

카이가 인상을 찡그리며 검을 빼내려고 하자, 그녀가 다급히 소리쳤다.

“자, 잠깐! 아주 잠깐이면 되니까 구경만 좀 할게. 응? 나중에 꼭 사례는 할 테니까…….”

“구경이고 자시고, 질문에 대답부터.”

“어우, 깐깐하기는. 좋아. 뭐가 문젠데?”

다리를 움직여 양반다리를 한 여자는 입술을 툭 내밀며 물었다.

“우선 이름.”

“카밀라.”

“좋아, 그럼 이곳에 있는 이유는?”

“흐응, 혹시 초등학교 바른 생활 시간에 말이야. 상대방이 이름을 말해주면 너의 이름도 말해주라고 배우지 않았…… 응……?”

여태 카이의 롱소드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카밀라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카이의 얼굴을 스윽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더듬었다.

“자, 잠깐. 너…… 서, 설마 언노운이야?”

으쓱.

카이가 그걸 이제야 봤냐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리자, 카밀라가 10년지기 친구라도 만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우와아아아! 진짜 언노운이야! 카이라고! 진짜진짜 만나고 싶었는데!”

“……아무리 내 팬인척 해도, 이 상황을 넘어가주지는 않아.”

싸구려 연기라고 생각한 카이가 냉정하게 말을 끝맺었지만, 카밀라는 오히려 이를 비웃었다.

“하? 팬 같은 소리하네. 연예인 병이야 뭐야? 웃기지도 않아.”

“…….”

그녀의 묵직한 일침에 부끄러워진 카이가 쥐고 있던 사슬을 흔들었다.

“화제 전환하려고 하지 마. 이곳에 있는 이유를 물었는데?”

“흐응.”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린 카밀라가 턱을 까딱였다.

“지금 쓰고 있는 검의 수준을 보아하니……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는 이제 더 이상 안 쓸 건가봐?”

“……그걸 네가 어떻게?”

카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는 글렌데일의 대장장이인 솔리드가 자신에게 선물해준 검.

물론 그 검을 만든 장본인은 솔리드가 아니라 모험가, 즉 플레이어라고 했다.

한 마디로 그 검에 대해 알고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딱 셋.

‘솔리드와 나. 그리고…… 히든 클래스로 추정되는 모험가 대장장이.’

그런데 조금 전, 카밀라는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를 입에 담았다.

“그렇다는 말은……?”

카이가 카밀라를 설마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녀가 웃음을 터트리며 시원하게 인정했다.

“이제 감이 와? 그래. 내가 바로 그 검을 만든 장본인. 카밀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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