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05화 (205/441)

# 205

힐통령 205화

73장 검은 남자(1)

카밀라의 스탯 창은 카이의 상상보다 훨씬 괜찮았다.

‘역시 히든 클래스라 그런지, 나보다는 아니지만 스탯들 자체가 일반 유저에 비해 높아.’

그녀 또한 제작 계열에 관해선 온갖 종류의 스페셜 칭호를 획득했을 터.

그 때문인지 스탯만 놓고 본다면 350레벨을 가볍게 웃돌 정도의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 말이 있지만, 높은 스탯이 있으면 장인의 능력은 더욱 상승된다.

물론 높은 스탯만 있다고 좋은 장비가 만들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장비 제작은 높은 스탯보다는 경험과 스킬에 의해 좌우되지.’

그리고 카이는 카밀라의 스킬과, 그 밑으로 떠오른 보유 칭호 목록에서 경험을 엿볼 수 있었다.

<보유 스킬 목록>

도전의 미(美)-도전하는 대장장이가 제작한 장비에는 3개의 옵션이 추가적으로 붙습니다.

무한도전-도전하는 대장장이는 장비 제작에 실패할 경우, 몇 번이고 재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직업 전용 스킬로 보이는 저 두 가지만 봐도 느껴지는 도전하는 대장장이의 짙은 사기성!

‘게다가 옵션이 1개도, 2개도 아니고 3개나 추가적으로 붙는다고?’

추가 능력치란 말 그대로 장비에 붙는 부가적인 옵션을 의미했다.

예를 들자면 어릿광대의 신발에는 민첩 스탯과 체력 스탯, 그리고 교란 스킬이 달려있다.

하지만 도전의 대장장이는 여기에 3개의 옵션을 추가적으로 붙일 수 있다는 뜻.

‘그 말은…… 장비의 완성도가 조금 떨어진다고 해도?’

드워프들이 만드는 장비보다 더 높은 성능을 낼 수도 있다는 소리다.

살짝 고민되는 카이의 마음이 기운 것은, 그녀가 공개한 칭호 몇 개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보유 칭호 목록>

드워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드워프의 인정을 받은.

드워프의 제자.

…….

‘이런 칭호들을 얻었다는 건, 어중이떠중이 드워프들보다는 카밀라의 실력이 낫다는 뜻이겠지.’

물론 NPC인 드워프 중에서는 제작 스킬 레벨이 마스터가 되는 이도 있을 터.

하지만 카이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나는 어차피 재료가 많아.’

사룡 시네라스는 몸집이 크다.

그 때문인지 죽으면서 뱉어낸 재료의 양은 어마무시했다.

장비의 주재료가 되는 비늘은 350개나 되었으며, 뼈 같은 경우는 500개나 되었다.

한 번쯤은 카밀라에게 시험삼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소리.

‘물론 밀당은 좀 해야겠지.’

자신이 부탁한다는 티는 내지 않아야 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현재 아이템이 빵빵한 자신은 굳이 새로운 장비를 만들 필요가 없었으니까.

“흐음. 나쁘지는 않네.”

카이의 입에서 태연한 말이 흘러나오자, 카밀라가 눈을 깜빡거렸다.

“나…… 쁘지는 않다고? 이상하네. 혹시 내 정보가 정확히 가지 않았나?”

“아니. 정확히 와서 잘 봤어. 네 스탯은 확실히 나쁘지 않아.”

“……내 상태창을 보고 나쁘지 않다는 소리 밖에 안 나온다고?”

살짝 충격을 받은 카밀라는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카이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카이의 눈동자는 동정호보다도 맑았으며, 태산에 매인 구름처럼 여유로웠다.

‘그야 내가 저걸 극찬을 할 이유는 없지.’

왜냐하면 자신의 스탯이 훨씬 더 대단하니까.

실제로 카이는 그녀의 상태창을 보고 제법 괜찮다는 감정 정도밖에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난 지금 당장 장비를 만들 필요가 없어.”

“무슨…… 너 근접 클래스 유저잖아? 내가 그런 사제복 말고 근사한 갑옷 세트 만들어줄테니…….”

“레전더리 뽑을 수 있어?”

“무, 뭐라고?”

“레전더리 등급 뽑을 수 있냐고.”

“갑자기 다짜고짜 그게 무…… 설마?”

말을 멈춘 카밀라는 카이의 사제복인 니케를 쳐다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저, 정보 공개 한 번만…….”

“절대 안 되지.”

카이의 단호한 거절에 카밀라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 하지만 진짜 좋은 장비를 만들어줄 자신 있어. 물론 대장장이 마스터에게 가면 아이템 등급 자체는 훨씬 잘 나오겠지만…… 지금 내 실력으로도 그와 유사하거나, 운이 좋으면 더 좋은 장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흐으음. 그렇게 이 녀석들을 두드리고 싶다 이거지.”

슬쩍 인벤토리에서 시네라스의 재료들을 꺼내며 운을 띄우는 카이.

카밀라는 고개를 맹렬히 끄덕이며 이에 맞장구를 쳤다.

“응, 응! 진짜 최고의 장비로 만들어줄게. 나한테 맡겨.”

“뭐, 그렇게까지 소원이라면 맡겨주는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넌 뭘 줄 건데?”

“……응? 주다니? 내가 장비 만들어주잖아.”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굳이 원하지 않는 장비지. 반면에 드래곤의 재료들은 세계에서 나만이 구할 수 있는 최상급 아이템이야. 이득도 없이 그걸 너한테 맡기는 건데 당연히 네가 나한테 뭘 줘야 하지 않겠어?”

“드,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제법 그럴 듯한 논리에 설득한 카밀라가 울상을 지으며 제 가슴을 두드렸다.

“아우! 난 이렇게 답답한거 싫으니까 빨리 말해. 뭘 원하는데?”

“나중에 네 제작 스킬이 마스터에 올랐을 때. 누구보다 먼저 나를 위한 장비를 만들어줘.”

“…….”

당장이라도 드래곤의 재료를 두드리고 싶어하던 카밀라의 눈동자에 갈등의 빛이 서렸다.

카이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그렇게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안심했다.

‘진심으로 고민해 주고 있는 건가?’

미드 온라인이 세상에 공개된 지 1년.

이제까지 스킬을 마스터 레벨까지 올린 유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때문에 그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카밀라의 제작 스킬이라면 히든 클래스를 제외하고서라도, 대장장이들 사이에서는 독보적일 터.

‘내 예상이 맞다면 마스터 레벨의 제작 스킬은 카밀라가 가장 먼저 찍게 될 거야.’

만약 카이의 예상이 현실이 된다면, 그녀의 몸값은 말도 안 되게 상승한다.

‘유저들은 마스터 레벨의 대장장이를 대체 어디서 구하겠어.’

이 세상의 시장에 절대적인 법칙이 있다면, 그건 바로 애덤 스미스 시장이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다.

물품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는 아주 간단한 이론.

‘그렇다면 마스터 레벨의 대장장이가 만드는 장비라면?’

한 번 망치를 들 때마다 최소 억대다.

지금도 최상급의 유니크 등급 아이템은 억대로 거래되는 중이었으니까.

‘나야 지금 카밀라에게 맡겨도 손해볼 건 없어. 하지만 훗날을 생각한다면…….’

막대한 이득이다.

지금 당장을 봐도 손해보다는 이익에 가깝고, 미래까지 가시권에 넣는다면 엄청난 투자가 되는 거래!

“으으음…….”

한참이나 고민을 하던 카밀라는 갈등어린 표정으로 힘겹게 물었다.

“재료는 몇 개까지 지원해줄건데?”

“전신 세트 하나 만들 정도는 지원해 줄게.”

“……콜.”

물론 그녀로써도 큰 손해는 아닐 터.

‘레드 드래곤의 재료를 이용해 장비를 제작하는 건 모험가 중에서 그녀가 최초야.’

무조건 스페셜 칭호를 하나 이상 얻을 수 있는 찬스다.

만약 그녀의 실력이 좋아서 결과물이 좋게 나온다면, 추가적으로 칭호를 얻을 수도 있겠지.

카이는 그녀에게 비늘과 뼈, 혈액 등을 적당히 나눠주며 말했다.

“혹시 우리 블리자드가 입고 있는 장비 알아?”

“……블리자드? 그게 누군데?”

“아, 내가 데리고 다니는 리자드맨.”

“아아! 아오사 영상에서 잠깐 나왔던 녀석? 음. 기억하지. 아니, 기억을 한다기보다는…… 그거 예전에 네가 입던 거 아니야?”

“맞아. 칠흑의 원한 세트라고 하는 건데. 그것들은 재료가 뼈였거든. 그리고 아오사 전투 때 내가 입었던 세트의 이름은 바다의 폭군.”

카이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간단했다.

그 세트들은 각각 뼈와 비늘을 이용하여 만든 세트들.

“아항.”

척하면 척!

카이의 말 뜻을 알아들은 카밀라가 베시시 미소를 지었다.

“약간 그런 식으로 유려하게 떨어지는 디자인을 선호하는구나?”

“무식해보이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오케이. 알았어. 나도 드래곤의 재료들을 다뤄보는 건 처음이라 어떤 옵션이 붙을지는 몰라.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나, 도전하는 대장장이야. 정신력이 버티는 한 몇 번이고, 몇 십 번이고 장비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 수 있어.”

“그럼 부탁한다.”

그녀와 가볍게 악수를 나눈 카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시드니는?”

“저 앞에 건물 보이지? 그게 대지의 신 호른을 모시는 신전이야. 거기 있을걸.”

“고맙다. 그럼 이만.”

“어이, 카이!”

카이가 고개를 돌리자, 카밀라가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나쁜 놈들. 꼭 처치하고 드워프들을 구해줘. 그들이 NPC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나랑은 몇 달이나 함께 생활을 한 이웃들이야. 네 장비는 정말 최선을 다할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들을 꼭…….”

“알아.”

카밀라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진심은 카이의 가슴으로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때문에 카이는 그녀가 부끄러운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너는 너의 전장에서 최선을 다해. 그렇다면 나는 나의 전장에서 최고의 결과를 가져올게.”

카이는 주변이 환해지는 듯한 착각이 드는, 환한 미소를 피우며 그녀의 머리를 토닥였다.

이에 카밀라는 뜨악한 표정을 짓더니 카이의 가슴팍을 밀쳤다.

“……어, 미, 미안. 아무튼 그럼 부탁 좀 할게! 어서 가!”

카밀라에게 등을 떠밀린 카이는 곧장 시드니가 위치한다는 신전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거닐자 초가 피워져있는 예배당으로부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항상 일족을 굽어살펴 주시는 저희의 신이시여. 부디 일족의 미래가 어둡지 않도록, 잡혀간 어른들이 힘든 일을 겪지 않고 무탈하기를 비나이다…….”

그녀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린 카이는 굵은 수염이 인상적인 호른의 신상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시드니.”

“……대마법사 아저씨, 가요.”

“뭐?”

“절 데리러 오신 것 아닌가요. 일족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

그 녀석 참 용하다.

카이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조금 힘든 길이 될 수도 있어. 어린 소녀의 보폭을 맞춰주기에는 상황이 상황이니깐.”

“그런 배려는 어른들이 모두 돌아온 뒤, 부모님에게 받겠어요.”

당차게 말을 내뱉은 시드니는 곧장 고사리처럼 작은 손을 카이의 손바닥 위로 올려놨다.

“그럼, 어린 나이에 미안하지만 같이 좀 굴러보자고.”

씨익 미소를 지은 카이는 그녀와 함께 신출귀몰을 이용해 성혈단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드워프들은 현재 어디에 있어?”

레이더, 시드니에게 묻자 그녀는 눈을 꼭 감으며 천천히 단어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북동쪽의 바람이 강하게 부는 사막이 보여요, 멀리에는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봉우리도 보이고…… 아아! 너무나도 짙은 죽음의 향기가 느껴지는 불길한 장소예요.”

“벌써 사막이라고? 설산을 통해 단숨에 하비에르 왕국 쪽으로 빠진 건가…….”

카이가 지도를 펼치려는 찰나, 성혈단원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어? 단장님! 제가 하비에르 왕국 출신이라 그곳 지리를 조금 아는데, 소녀가 말한 장소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 어딘데?”

반가운 마음에 물었지만, 성혈단원은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토해냈다.

“대륙 4대 마경 중 한 곳이라고 불리는 죽음의 대지…… 투하라 사막입니다.”

“…….”

장소의 이름을 듣는 순간, 카이를 비롯한 성혈단원 모두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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