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힐통령 206화
73장 검은 남자(2)
모험가(Adventurer).
미드 온라인의 주민들이 플레이어들을 부르는 칭호다.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천둥 벼락을 일으키는 마법사가 될 수 있으며, 일검에 적들을 베어내는 멋진 검사가 될 수도 있다.
다친 자를 치료하는 성자도, 던전과 보물들을 찾아내는 트레져 헌터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다한들, 기본적으로 그들의 신분은 이방인 모험가다.
미드 온라인의 세계를 탐험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타칭 모험가라 불리는 플레이어들조차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 크게 네 군데 있다.
이른바 4대 마경이라 불리는, 강력한 몬스터들과 함께 자연과도 싸워야 하는 곳.
체스카 설산.
칠흑의 해역.
이타카 밀림.
투하라 사막.
카이가 여태까지 방문한 곳은, 얼마 전 극한의 추위와 싸우며 사룡을 처치했던 설산뿐.
‘그래도 설산은 루나가 선물해준 방한복과 내 높은 마법저항력, 그리고 태양의 사제가 지닌 강력한 신체 덕분에 공략이 생각보다 할 만했지만…….’
지금부터 가야하는 투하라 사막은 위험도부터가 다르다.
카이는 언젠가 대륙 전역을 돌아다닌 트레져 헌터가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4대 마경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설산? 거긴 생각보다 갈 만하지. 내가 현실에서도 에베레스트 산맥을 가본 적이 있는데, 딱 그 정도야. 따뜻한 옷을 구한 다음에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하라고. 이타카 밀림부터는 조금 귀찮아지는데…… 안내해 줄 원주민을 섭외한 뒤 기도해. 뭐? 칠흑의 해역? 허, 정말 거길 가고 싶어서 묻는 거야? 그렇다면 최고의 배와 선장, 선원들을 구하고 용왕에게 기도나 해. 젠장, 난 그 빌어먹을 소금물에서 세 번이나 죽었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투하라 사막으로 가는 것이라면…… 굳이 기도를 할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죽을 테니까.”
이후로 그의 말에 반박하고자 용기 있는 트레져 헌터들이 몇 번이고 4대 마경에 도전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마경을 돌아다니는 난폭한 몬스터와 자연에 패배하여 죽음을 맞이했다.
‘후우. 하필이면 투하라 사막인가.’
투하라 사막의 난이도는 다른 마경들보다도 한 단계 위쪽으로 평가된다.
지난번에 카이가 방문했던 지그문트 사막조차도 돌아다니면 주기적으로 디버프가 걸렸다.
‘하지만 투하라는 궤를 달리하지. 햇빛이 나를 공격하면 어떤 기분일지 알고 싶다면 투하라 사막으로 가라고 했으니까.’
실제로 마법 저항력이 낮은 저 레벨 유저들이 멋모르고 투하라 사막에 잘못 발을 들였다가 햇빛에 녹아내린 사건이 있을 정도.
하지만 투하라 사막의 가장 무서운 점은 따로 있었다.
‘마왕이 태동한 곳.’
과거 대륙의 전복을 꿈꾸던 마왕이 소환된 곳이 바로 투하라 사막이었다.
그 때문에 마족들의 기운이 사막 전체를 뒤덮고 있었으며, 이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했다.
‘마기에 오염된 몬스터들은 강력하고, 마기에 오래 노출되면 상태 이상에 걸려.’
특히 NPC의 경우에는 이성을 잃고 동료를 공격할 수도 있다.
때문에 카이는 복잡한 눈빛으로 시드니를 쳐다봤다.
‘성혈단원들은 다들 한가락 하는 엘리트 NPC니까 그 정도 마기나 햇빛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이 어리디 어린 소녀는 달랐다.
투하라 사막에 발을 들여놓는 즉시 각종 상태 이상이 그녀를 괴롭힐 터.
그녀 또한 드워프들이 투하라 사막에 위치하고 있는 건 몰랐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 정말이에요? 제가 말한 곳이 정말 투하라 사막인가요?”
“끄응. 내가 알기로 북동쪽의 바람의 강하게 부는, 멀리에 쌍둥이 협곡이 보이는 특징이 있는 사막은 투하라 밖에 없다.”
스스로를 하비에르 출신이라고 소개한 성혈단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드니가 울상을 지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저는…….”
“함께 갈 수 없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카이는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시드니를 데려가면 드워프들을 찾는 일은 수월해지겠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그녀는 목숨을 잃는다.
자신도 뮬딘 교의 정예와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그녀를 지키는 건 확신할 수 없으니까.
“하, 하지만 제가 없으면 드워프들의 위치는…….”
“……우선 투하라 사막에 있다는 건 알았으니, 거기 가서 찾아야지. 별수 있나.”
마경에서 누군가를 찾는 건 단순히 광장에서 NPC를 찾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영악한 강력한 몬스터들은 24시간 자신들을 노리며, 자연은 그들이 편히 쉬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게다가 투하라는 기본적으로 사막이야.’
낮과 밤의 일교차가 매우 크다는 뜻.
12시간을 간격으로 전혀 다른 맵에 떨어진 듯한 기분이 느껴질 터.
카이는 성혈단원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들었다시피…… 우리가 지금부터 가야할 곳은 대륙 4대 마경 중 한 곳이라 불리는 투하라 사막인 것 같다. 목적이 그냥 나들이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부활한 뮬딘 교에게 사로잡힌 드워프 족을 구출해야 해. 힘든 작전이 되겠지. 빠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라. 불이익은 없을 거라고 약속할 테니까.”
“…….”
하지만 그 말이 끝나도 손을 드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카이를 쳐다볼 뿐.
“단장님. 정말 저희가 마경에 발을 들이는 것이 두려워 손을 들 것이라 생각했습니까?”
“생각보다 훨씬 얕보였군요.”
“실력을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기회와 무대가 없어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변방의 신전에서 허비했습니다.”
“가겠습니다.”
카이는 굳은 결의를 보여주는 성혈단원들의 기세에 살짝 감동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마경으로 스스로 걸어가겠다고 선언했으니까.
‘의외인건…… 프레이 길드인가?’
플레이어라면 마경을 끔찍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성혈단원과 마찬가지로 손을 들지 않았다.
“죽으면 랭킹 떨어질 텐데, 괜찮겠어?”
“당신, 무서운 사람이잖아요. 무서운 사람을 옆에서 감시하면서 점수를 따야하지 않겠어요?”
미네르바가 아리송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자 카이는 할 말이 없어 어깨만 으쓱거렸다.
“편한 대로. 하지만 같은 유저라고 편의를 봐주지는 않을 거야.”
“바라지도 않아요.”
“그럼 바로 출발하자고.”
알버트 교황은 성혈단의 첫 출정을 매우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
“이곳을 넘으면 투하라 사막입니다.”
이 게임에는 텔레포트 게이트라는 아주 편리한 이동수단이 있다.
유저들이 꼽은, 현실에도 있었으면 하는 시스템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문물!
라시온 왕국에서 하비에르 왕국으로 건너가는 텔레포트 심사는 제법 까다롭다.
하지만 태양교의 인장.
그것도 성혈단이라는 신설 단의 단장이라는 직함 앞에서는 그 또한 프리패스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는 투하라 사막이 아닌데, 저기서부터는 투하라 사막이라고?”
카이가 눈앞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검붉은 색의 장막을 가리키며 묻자, 하비에르 왕국 출신의 성혈단원 자파가 자신 있게 대꾸했다.
“예. 조금 신기하죠? 모두 패트릭 님께서 쳐놓은 결계 때문이지요.”
“칫, 결계인가.”
“예? 죄송합니다. 소리가 작아서 못 들었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결계라니, 패트릭님이 결계를 만들었다면 그게 벌써 수백 년도 전의 일일 텐데?”
“아, 그게 패트릭 님이 전설이라 불리시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수백 년이 지나도 멀쩡한 결계. 정말 경악스럽지 않습니까? 흉폭한 마기를 돌아가신 패트릭님이 수백 년이나 억제하고 있는 거예요.”
“흐음.”
원리는 모른다.
하지만 카이는 확실히 눈앞의 대지에서 제법 친근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패트릭이 시미즈나 체란티아보다 더 강력한건가?’
시미즈나 체란티아도 교단의 역사적인 인물로 추앙받기는 한다.
하지만 카이가 겪어본 바로는, 패트릭의 추종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사념을 한 번 만나봤을 뿐이지만 그냥 고지식한 아저씨던데 말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카이는 자신의 몸에 버프를 두르며 뒤를 돌아봤다.
“투하라 사막으로 진입할거야. 혹시 신성 계열 축복의 경지가 낮은 사람은 말해. 내가 대신 걸어줄 테니.”
“…….”
아무도 손을 드는 이가 없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든든해 보이는지!
“그럼 들어간다.”
푹푹.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사장을 밟으며 검붉은 장막을 통과한 순간, 카이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띠링!
[투하라 사막에 입장하셨습니다.]
[막대한 마기(魔氣)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 하향되며 정신 계열 디버프에 걸릴 확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신성 스탯이 매우 높습니다. 마기로 인한 페널티를 완벽하게 차단하셨습니다.]
[투하라 사막의 강렬한 햇빛에 노출되었습니다. 스테미너 소모 속도가 평소보다 2배 빨라지며, 주기적으로 열사병, 화상 디버프에 걸릴 수 있습니다.]
[마법 저항력이 제법 높습니다. 스테미너 소모 속도가 1.3배 빨라지며, 열사병, 화상 디버프에 저항합니다.]
“흐음.”
카이는 생각보다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마경에 입장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렇게 멀쩡할 수 있는 건 카이를 비롯해 몇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크으윽……! 이토록 강렬한 마기가…….”
“수백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의 힘이라니…… 마왕, 그는 대체…….”
“생각보다 햇빛이 너무나도 뜨겁군. 주기적으로 스테미너 회복 주문을 외워야겠어.”
대부분의 성혈단원들도 약간씩은 불편을 호소하였고, 그건 프레이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들 태양교의 신도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마기의 효과가 치명적이지는 않아.’
일행들이 생각보다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한 카이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
죽음의 대지, 투하라 사막.
그곳은 다른 사막들과는 비쥬얼에서부터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이건 순 사막이 아니라, 지옥의 불구덩이에 온 것 같네.’
조금 전까지 파랗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건만 어둑어둑해보였고, 사막의 모래는 황갈색이 아닌 붉은색이었다.
‘이곳이 투하라 사막.’
모래사장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알 수 없는 뼈다귀들은 이곳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알려주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어디로 가야…… 흐음. 괜한 걱정이었네.”
덜덜덜덜.
카이는 조금씩 흔들리는 바닥의 진동을 느끼며 검을 빼들었다.
“모두 전투 준비.”
아무래도, 이 마경의 괴물들은 간만에 찾아온 먹잇감을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촤아아아아악!
붉은 색의 모래 언덕들에서 튀어나온 각종 몬스터들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성혈단을 노려보았다.
[마기에 오염된 사막 여우 LV.370]
[마기에 오염된 데저트 이글 LV.382]
[마기에 오염된…….]
…….
일개 필드 몬스터라고 보기에는 굉장히 불만이 많아지는 놈들의 레벨!
하지만 동시에 카이가 장비한 성의와 성환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띠링!
[악마/언데드 계열의 몬스터와 조우하였습니다.]
[악마/언데드 계열의 몬스터에게 주는 피해가 50% 증가합니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와 조우하여 용맹한 전사 효과가 발동됩니다.]
지금 이 순간, 카이는 악마 사냥꾼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