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07화 (207/441)

# 207

힐통령 207화

73장 검은 남자(3)

“제법이군요.”

투하라 사막에 위치한 쌍둥이 협곡.

그곳의 오른쪽 봉우리에 서 있던 남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치 온몸을 칠흑으로 휘감은 것처럼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는 사내.

그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꿰뚫어, 몇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전투 중인 성혈단을 보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안력.

“흠. 사용하는 신성력을 보니 태양교의 떨거지들로 추정되는군.”

말을 받은 것은 왼쪽 봉우리에 서 있던 사제였다.

그는 오른쪽 봉우리에 서 있는 검은 남자를 상대하기 꺼려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대체 교에서는 왜 이런 통제불능의 쓰레기를 도우라고 하는 것인지…….’

사제의 정체는 뮬딘교 소속의 일급 사제.

어려서부터 철저히 세뇌 교육을 받은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교의 선택에 고개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뮬딘 님을 믿지도 않는 불한당. 거기다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교에서는 그를 전적으로 지원하라고 하였다.

젊은 나이에 일급 사제가 된 만큼 출세는 보장되어 있지만, 지금 당장은 까라면 깔 수밖에.

사제가 애써 짜증을 감추며 신음을 흘릴 때, 검은 남자가 재차 질문했다.

“그런데 저 성기사들의 실력이 하나같이 쓸 만하군요. 태양교에 저런 세력도 있었나요?”

“모른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양교 본단은 뮬딘교에서 손을 넣었다고 했잖아요?”

“끄응.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조만간 다시 차지할 예정이니 거기에 관해선 신경을 끄도록.”

“뭐, 그거야 그쪽 사정이니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애초에 교단에서도 마왕의 부활은 제법 기대하는 눈치니까.”

“……흐음.”

검은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사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사제는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뭘 보나.”

“아니요. 별건 아니고…….”

검은 남자가 왼팔을 들어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사제가 서 있던 봉우리에서는 검은색의 손이 툭 튀어나오더니 사제의 몸을 움켜잡았다.

이에 깜짝 놀란 사제는 몸을 버둥거리며 분노를 토해냈다.

“지,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지! 뮬딘교와 마왕 추종자들은 상호 협정 관계에 놓여 있…….”

“말씀하신대로 저희는 동맹 관계일 뿐, 딱히 뮬딘교에 소속된 건 아닙니다만?”

“……내 말투가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하지.”

사제가 애써 짜증을 감추는 표정으로 사과를 하자, 검은 남자가 씨익 웃었다.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시고, 처음이니까 가볍게 용서해드릴게요.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딱!

검은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색 손은 쭈욱 늘어지며 사제의 몸을 그의 앞까지 대령했다.

“무, 무슨…….”

“예? 처음이니까 손가락 하나만 받아가려구요.”

검은 남자의 태연한 대꾸에 사제가 침을 튀기며 발작했다.

“미친 소리하지 마라! 만약 이 일이 교단의 윗분들 귀에 들어가면…….”

“아, 그게 문제가 되나요? 이런…… 그럼 어쩔 수 없네요.”

표정에서 진한 아쉬움을 드러낸 검은 남자는 천천히 오른손을 흔들었다.

“잘 가세요.”

“갑자기 그게 무슨…… 크아아아악!”

와그작! 와그작!

순식간에 이빨 모양으로 변한 손아귀는 뮬딘교의 사제를 흔적도 없이 먹어치웠다.

왼쪽 봉우리에는 떨어진 피 한 방울, 살점 하나 없이 깨끗했다.

사제를 먹어치운 검은 손도 입맛을 다시더니 천천히 모습을 감추었다.

“으음. 이제 조용하네요.”

검은 남자는 뮬딘교의 사제를 죽였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상쾌하다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교단에 연락하세요. 새로운 녀석을 보내달라고. 아! 이번에는 조금 더 예의바른 녀석이 오면 좋겠어요.”

그의 혼잣말에 허공을 부유하던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며 사라졌다.

“자, 그럼…….”

검은 남자의 시선이 다시 성혈단에게 돌아갔다.

한 시간, 두 시간…… 마침내 네 시간

제법 긴 시간 동안 성혈단을 지켜보던 검은 남자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음. 지닌 바 실력들을 알겠군요. 대충 그 정도인가요.”

마치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검은 남자는 양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게 전부라면, 이번 공격은 버틸 수 없겠군요.”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처럼, 남자의 양손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딱! 딱!

사막의 모래바람이 내는 울음소리를 뚫고 울린, 두 번의 손가락 튕기는 소리.

동시에 쌍둥이 협곡 아래에서 거친 모래바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르.

지휘자의 명령을 받고 튀어나오는 음표들처럼.

물경 500이 넘어가는 몬스터들의 무리는 성혈단을 향해 달려나갔다.

“싹을 밟을 때는 싹의 크기와 그 싹의 뿌리를 정확히 알고 밟아야죠.”

그래야 뒤탈이 없는 법이다.

검은 남자는 몬스터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촤아아아악-!

카이의 날카로운 검이 마기에 오염된 사막 전갈을 머리부터 꼬리까지 깔끔하게 잘라냈다.

[마기에 오염된 사막 전갈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307,413을 획득하셨습니다.]

“후우우…….”

카이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전장의 사신 칭호 덕분에 지치지는 않았지만 땀은 비 오듯 흘러내렸다.

물론 괴물 같은 체력을 지닌 것은 전장에서 카이 혼자만이었다.

“허억, 허억!”

“투하라 사막에는 원래 몬스터가 이렇게 많은 편인가?”

“끝도 없이 오는군……!”

“대체 몇 시간째인가?!”

성혈단이 투하라 사막에 들어선 지는 벌써 네 시간.

그들은 지난 네 시간 동안 쉴 틈도 없이 검을 휘둘러야 했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었기에 쓰러트린 몬스터만 100마리를 넘겼다.

덕분에 그들을 이끄는 카이의 레벨도 1개가 올랐을 정도.

‘지금은 성혈단장 칭호 효과로 모두의 능력치가 높아졌기에 버틸 만하지만…….’

카이는 짜증나는 표정으로 저 멀리서 다시 한 번 피어나는 모래 구름을 쳐다보았다.

이미 몇 차례나 봐왔던 저 모래 구름은, 새로운 몬스터 무리가 달려오고 있음을 의미했다.

“또 오네.”

“단장님. 이건 뭔가 이상합니다.”

하비에르 출신의 성혈단원, 자파가 카이에게 다가오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투하라 사막은 확실히 위험한 곳입니다. 마경이라 불릴 정도로 지형도 험난하고, 기후도 이상하며, 마기에 쉽게 오염되기도 쉬운 장소이지요.”

“그래. 위험한 곳이라는 건 겪어보니 알겠어.”

“하지만 몬스터가 이렇게 미친 듯이 몰려든다는 소리는 난생 처음 듣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카이가 고개를 돌리며 묻자, 자파가 침을 꿀꺽 삼키며 대꾸했다.

“애초에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몬스터들은 원래 본능에만 충실한 녀석들입니다. 배가 고프면 사냥감을 덮치고, 졸리면 잠을 자는 단순한 녀석들이지요. 심지어 투하라 사막의 몬스터들은 마기에 오염되어 다른 몬스터들보다 훨씬 더 본능을 쫓게 됩니다.”

“요점만 간단히.”

“만약 저희의 재수가 없어서 이 근처에 몬스터들이 이렇게 많은 거였다면, 아예 한꺼번에 저희를 덮쳤어야 합니다.”

자파의 말에 카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한꺼번에 덮쳤어야 한다?’

천천히 기억을 되짚기를 잠시, 그의 표정이 빠른 속도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만약 이 녀석들이 평범한 필드 몬스터라면 말이 안 되잖아.’

기본적으로 몬스터들은 서식지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서식지를 침범한 다른 몬스터 무리와는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태까지 성혈단을 공격한 몬스터들은 단 한 번도 저희들끼리 공격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냥 우연히 다른 방향에서 왔다고 생각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자파의 말을 듣고 보니 매우 수상하다.

‘투하라 사막에만 버그가 일어났다는 가정보다는…….

차라리 누군가가 몬스터들을 조종했다는 것에 무게가 더 실린다.

‘실제로 우리가 뒤쫓고 있는 녀석들은 몬스터들을 군대처럼 다루기도 하는 녀석들이니까.’

카이는 황급히 자파를 쳐다보며 물었다.

“자파. 혹시 마기에 감염된 몬스터들을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나?”

“그건 잘…… 아! 그러고 보니…….”

다가오는 모래 먼지를 바라보던 자파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단장님. 혹시 투하라 사막에 마기가 왜 넘치는지 알고 계십니까?”

“마왕이 부활한 곳.”

“맞습니다. 이곳은 예로부터 나라의 군대나 실력 있는 용병들도 오기를 꺼려하는 험지였지요. 때문에 마왕 추종자들은 그들의 눈길을 피해 이곳으로 들어와 마왕을 부활시켰습니다. 그로인해 이 사막에는 1년 365일 마기가 흐르는 저주받은 땅이 되었지요. 그런데, 예전부터 기묘한 소문이 들리기는 했습니다.”

“기묘한 소문?”

“마왕들은 대부분이 몬스터들을 조종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요. 마왕 하나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대륙이 멸망의 공포에 떨어야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왕을 추종하는 무리 중 일부가 몬스터들을 다루는 힘을 깨우쳤다는 소문이 들리고는 했습니다. 증명된 바는 없지만요.”

“일개 추종자들이 몬스터들을 다룬다고?”

“그렇게 딱 잘라서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닐 겁니다. 마왕을 추종하는 자들 중에는 악명 높은 흑마법사들이 많으니까요.”

몬스터를 조종하는 마왕.

그런 마왕을 따르는 추종자들.

그리고 몬스터를 조종하는 의문의 세력.

‘어떻게 연결이 되기는 하네.’

카이는 일개 가설일지도 모르는 자파의 말을 믿었다.

왜냐하면 현재 일어난 일이기도 했고, 언제나 그렇듯 특유의 감이 그에게 경고했으니까.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해. 만약 지금까지 상대한 몬스터들이 모두 누군가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는 거였다면.’

상대는 왜 몬스터들을 나누어서 보낸 걸까?

‘내가 상대였다면, 절대 이렇게 안 했어.’

지금까지 보냈던 몬스터들을 한꺼번에 보내는 것이 훨씬 위력적이었을 터.

하지만 상대는 몬스터들을 찔끔찔끔 나누어서 보냈다.

“무엇보다 단원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합니다. 저는 사막 출신이라 제법 버틸 만하지만…… 젠장. 무슨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왜 이런 식으로 몬스터를 보내는지.”

“그러게 말이다. 무슨 똥개 훈련도 아니…… 잠깐, 훈련이라고?”

눈빛을 반짝인 카이가 훈련이라는 단어를 연신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훈련, 훈련…… 그래. 만약 상대가 우리를 이렇게 툭툭 건드린 것이, 반복된 훈련을 통해 역량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카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각이 정답임을 깨달았다.

단 한 번도 겹치지 않는 몬스터들의 종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 가장 힘들어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거야.’

무섭고 치밀한 놈……!

카이는 상대방의 음흉한 속내에 식은땀을 흘리며 다가오는 모래 먼지를 쳐다보았다.

‘만약 내가 놈이었다면…….’

성혈단의 역량 파악?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지난 네 시간으로 차고 넘치는 샘플을 획득했을 터.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상대가 고를 선택지는 단 하나.

“자, 잠깐. 저게 무슨!”

“단장님! 몬스터들이…… 몬스터들이!”

“젠장,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못해도 500마리는 되겠는데요?”

성혈단의 숨통을 끊어버릴 강렬한 공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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