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09화 (209/441)

# 209

힐통령 209화

74장 변질된 천사의 요람(1)

“……호오?”

전투를 지켜보던 검은 남자가 흥미로운 듯한 목소리를 뱉어냈다.

네 시간 동안의 관찰 끝에 저들의 실력은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저 자가 무리의 대장일까요?’

누구보다 앞서서 돌격을 감행한 사나이.

전장의 포문을 열었고, 뒤이어 50마리의 사막 박쥐를 홀로 처치한 남자. 검은 남자는 그를 집중적으로 눈여겨봤다.

‘입고 있는 옷을 보면 성기사보다는 사제에 가까운데…… 당신, 대체 누구신지?’

그는 예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정의 소유자.

쌍둥이 협곡을 벗어나려는 그를 한 줄기의 음성이 멈춰 세웠다.

-거기까지. 대업을 그르칠 생각인가?

“이 목소리는…… 아트록 추기경님 아니십니까?”

검은 남자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말을 건 이의 모습은커녕 그 어떤 생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과연. 썩어도 준치인가. 거리를 무시하고 목소리만을 전달할 줄이야.’

아무리 몰락했다고는 해도 뮬딘 교는 한때 대륙을 공포에 떨게 만든 세력.

그곳의 추기경을 맡고 있는 아트록은 검은 남자조차 쉽게 대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결국 한발 물러선 검은 남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이거, 오셨으면 존안이라도 한 번 뵙게 해주시지. 매번 목소리만 들으니 섭섭하네요.”

-그대가 감정적으로 나서서 일을 그르칠까봐 걱정이 되어 말을 건 것뿐.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딱히 노출증이 있는 것도 않은데 부끄럽네요. 그럼 아까 전의 일도 다 보신 것 아닙니까?”

-일급 사제 한 명 정도야 상관없다. 강자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죽는 것은 당연할 뿐.

“내가 이래서 추기경님을 좋아한다니까.”

히죽거리며 웃은 검은 남자의 몸에서 칠흑의 연기가 물감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아트록 추기경님께서 몸소 경고까지 해주시니, 간단히 인사만 하고 오겠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겠지요?”

-……무리를 하지 않는 선에서라면야.

“저들을 요람으로 끌어들여야겠습니다.”

-뭣…… 그곳에는 드워프들이 제단을 짓는 중이잖은가. 너무 위험한 방법이야.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들의 수준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요람을 지키는 가디언을 이기지 못해요.”

-……확신하나?

“예. 마왕의 핏줄인 요람의 가디언은 일반적인 공격에는 상처도 입지 않습니다.”

빙그르르.

검은 남자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허공에서 고고한 백색의 검 한 자루가 나타났다.

“성검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타격 자체가 불가능하죠. 하지만…… 성검은 저에게 있잖습니까.”

-……괜찮군. 자네의 판단에 따르겠네.

그 말을 끝으로 아트록 추기경의 기운이 사라졌다.

잠시 후, 검은 남자도 물감처럼 지워지며 자취를 감추었다.

***

“좋아. 조금만 더!”

“승리가 코앞이다!”

성혈단원들은 곧 다가올 대승에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그들을 덮친 몬스터들의 군단은 강력하기 그지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더 강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단장. 그가 더 강했어.’

스-각!

몬스터들의 붉고 푸른 피를 뒤집어쓴 카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전장에 난입해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넘기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사신이나 다름없는 전장의 야차!

“후욱, 후욱.”

전투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정신력의 소모는 커졌지만, 모순적으로 그의 칼 끝은 더욱 예리해졌다.

지이이잉.

마치 모든 신경이 이마 앞쪽에 몰린 것 같은 묘한 기분.

카이는 눈앞의 풍경을 담는 즉시, 적들의 공격 궤도를 파악하고 몸을 움직였다.

하체가 먼저 움직이고, 상체가 그를 따라가며 적들을 베어 넘겼다.

서걱!

말 그대로 일당백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신위!

그 모습은 성혈단원들에게 압도적인 믿음과 신뢰를 주기에는 충분했다.

“단장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교단의 전설, 광휘의 성기사를 따르라!”

“그와 함께하는 전장에서 패배란 없다!”

띠링!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여 아군의 사기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아군의 능력치가 체력과 정신력이 5% 상승합니다,]

[위엄 수치가 10 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콰드드득!

데저트 오우거의 목뼈를 부러트린 카이는 제법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정도면 되겠지.’

전장의 사신 효과로 지치지 않는 그조차 피로함이 느껴졌다.

한 마디로 정신적으로 지쳤다는 뜻.

하지만 다소를 무리를 한 덕분에 몬스터들은 불과 몇십 마리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카이는 적당히 마무리 된 상황을 쳐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성혈단 세력창.”

띠링!

세력 : 성혈단

등급 : S-

인원 : 300명

<단원 상태>

카라칼 LV 410. 상태 : 양호.

시르도 LV 408. 상태 : 양호.

데크 LV 402. 상태 : 양호.

테페른 LV 394. 상태 : 위급.

…….

세력창에서는 성혈단원들의 현재 상태를 체크할 수 있었다.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보고 싶은 단원을 터치하면, 간단한 상태창이 추가적으로 표시되었다.

카이는 세력창을 통해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이들을 찾아 집중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몬스터들을 많이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혈단원들을 잃지 않는 것이 몇 배는 더 소중해.’

이제 온전히 자신의 단체라고 할 수 있는 성혈단은 등급부터가 S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웬만한 필드 보스 몬스터보다 강력하다는 뜻.

‘게다가 본격적으로 공성전을 시작하려면, 즉시 전력이 될 수 있는 것도 성혈단이겠지.’

물론 이 숭고한 엘리트들을 공성전에 동원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카이는 딱히 그런 문제로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거대 길드 녀석들. 세금을 미친듯이 올리고 있으니까.’

침공 이벤트가 끝난 후, 미드 온라인은 대영지전의 시대가 되었다.

현재 유저들의 손에 떨어진 땅은 대륙을 통틀어서 모두 299개.

하지만 그곳에서 정상적인 세금을 걷고 있는 곳은 10%도 채 되지 않았다.

‘덕분에 NPC들의 고충이 말이 아니지.’

몇 배나 올라버린 세금에 고통 받는 것은 결국 도시의 구성원인 NPC들.

카이는 그 부분을 주장하며 공성전을 펼칠 요량이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조용히 움직이던 그가 이렇게 공성전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라시온 왕국의 동부 지역은 내가 먹어야 해.’

모든 것은 자신의 도시인 리버티아 때문이었다.

‘리버티아는 조만간 황금알, 아니. 다이아몬드를 낳는 거위가 될 거야.’

지금만해도 엘프와 인어들이 만들어내는 특산품과 아름다운 도시 조감으로 반드시 가봐야 할 도시의 후보로 거론되는 중이다.

‘그런데 만약 이번에 드워프들을 무사히 구출해서 그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면?’

본래 1+1은 2지만, 그것이 3 혹은 4의 효과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이번이 바로 그런 경우다.

‘드워프들은 리버티아에 소속된 광산에서 끊임없이 광물을 캘 테고, 아직까지는 제법 부족한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꾸미겠지.’

그 생각은 드워프들의 대피처를 가본 뒤 확고해졌다.

그들의 예술적인 손재주가 가미되면 리버티아는 못해도 3~4배는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카이가 노리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전세계의 생산직 유저들이 리버티아를 방문할거야.’

생산직 유저들에게 있어서 드워프는 하늘 위의 하늘이다. 특히 건축가와 대장장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아주 사소한 가르침이라도 받기 위해 도시를 방문할 터.

‘마을에서 마냥 놀 수는 없을 테니 도시에서는 매일같이 양질의 장비들이 탄생하겠지.’

카이는 이미 카리우스와 엘라인 여왕에게 말해서 공방을 지을 면적을 확보해 둔 상태!

현실의 원룸 오피스텔을 마케팅한 건축물은 그들에게 비싼 값에 임대할 계획이었다.

‘못해도 월에 몇 억의 수익은 나올 거야.’

리버티아의 크기가 대도시처럼 크지는 않다는 걸 생각하면 굉장한 이득이었다.

누구나 노릴 수밖에 없는 노른자 같은 땅!

그런 만큼 카이는 리버티아를 지킬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런 고심 끝에 나온 것이 바로 라시온의 동부를 차지하는 것.

‘현재 귀족의 작위를 얻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소유한 도시를 인구 10만 이상의 대도시로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이는 이 방법을 깨끗하게 포기했다.

‘리버티아는 철저히 아인종들을 위한 도시가 될 거야. NPC들을 받는다고 해도, 철저하게 가려서 받아야 해. 도시 인구 10만명을 채우는건 현실적으로 무리겠지.’

게다가 10만 명의 영지민을 수용하려면 도시 자체가 크게 발전해야 한다.

막대한 돈이 필요하며, 인력이 필요하다. 결국 첫 번째 방법은 10대 길드와 같은 거대 길드를 위한 길.

‘나는 내가 챙길 수 있는 것만 챙긴다.’

카이는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세 개 이상의 영지를 소유.’

굳이 말하자면 질보다는 양!

카이는 두 개의 영지를 새롭게 차지하여 귀족의 작위를 얻을 생각이었다.

‘귀족 칭호를 따면 일반 유저들은 리버티아에 공성전 신청조차 못하게 돼.’

리버티아를 지키기에는 제법 훌륭한 임시방편이 될 터.

생각을 정리한 카이는 지도를 펼치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곧장 공성전이다.’

행동할 때 최소 두 수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는 카이!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눈앞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마기에 오염된 군단을 모두 처치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군이 한 명도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대승을 거두어 추가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경험치 4,817,546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스탯 포인트를 25개 획득하였습니다.]

심지어 세력창에서도 성혈단원들의 이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오오오……! 헬릭 님의 힘이 나에게 깃드는 기분이군!”

“흐음. 아까는 데저트 오우거에게 고전했지만, 왠지 지금은 무난하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소!”

레벨 업.

플레이어가 몬스터를 잡고 경험치가 올라 레벨이 오르듯, NPC도 마찬가지였다.

‘성혈단원들은 기본적으로 레벨이 높아서 제일 많이 오른 애가 2레벨 올랐구나.’

프레이 길드원들도 큰 이득을 보았으나, 대장인 카이보다는 획득한 경험치가 훨씬 작았다.

“자파. 모두가 지친 표정이야. 쉴 곳을 찾아야겠어.”

“몇 킬로미터만 걸어가면 쌍둥이 협곡이 나오는데, 그곳에 오아시스가 있으니 휴식하기 좋을 겁니다.”

“좋아. 그곳으로 안내…… 음?”

말을 잇던 카이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불쾌한 감각에 몸서리를 치며 뒤를 돌아봤다.

“호오, 설마했는데, 진짜로 이겨버리셨군요.”

붉은색 모래 위에 사뿐하게 내려선 흑의인은 주변을 돌아보며 박수를 쳤다.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오네요. 진짜 이길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분명 전력상으로는 이쪽이 우위였는데, 흐음. 이건 좀 더 분석이 필요할지도.”

“웬 놈이냐!”

라테르의 신성, 테페른이 검을 빼들며 그를 위협했다.

전신에서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그가 선인일리는 없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하, 싸우러 온 건 아닙니다. 인사만 하려고 온 거예요.”

“테페른, 떨어져.”

카이가 경고했다.

산책이라도 나온 듯 덜렁대는 상대방은 분명 우스워보였지만, 알 수 없는 위기감이 그를 덮쳤다.

‘이 느낌은…….’

언제, 어디선가 한 번 겪어본 적이 있다.

카이가 왜인지 모르게 익숙한 기분에 혼란스러워할 때, 테페른이 호기롭게 달려들며 외쳤다.

“걱정 마십시오! 적당히 무릎을 꿇려서 고분고분하게 만들겠습니다!”

“……거참. 싸우러 온 게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검은 남자의 목소리가 살짝 차가워지는 것과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검은색의 손이 튀어나와 테페른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헉!”

모래를 구르며 몇 바퀴나 구른 테페른은 기침을 하며 흙을 뱉어냈다.

하지만 검은색의 손은 만족하지 못하는 듯, 테페른을 노리며 재차 날아들었다.

“신성 폭발.”

사막의 열기가 한층 더 뜨거워진 순간, 카이의 신형이 바람을 가르며 튀어나갔다.

까아아앙!

카이의 검과 부딪친 어둠의 손은 살짝이지만 주춤 물러났다.

동시에 카이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공격을 주고받았어. 이제 녀석과 적대 상태가 되었다.’

이제 상대방의 이름과 레벨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

하지만 녀석의 머리 위에 떠오른 정보를 확인한 순간, 카이의 안색은 딱딱해졌다.

[지르칸 LV.742]

‘네가 왜 여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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