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10화 (210/441)

# 210

힐통령 210화

74장 변질된 천사의 요람(2)

지르칸.

마왕의 부활을 꿈꾸는 네임드 NPC이자, 태양교의 이단심판관들도 가볍게 씹어 먹는…….

‘뭔가 묘하게 데자뷰가 느껴지는 문장인데?’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카이는 그의 레벨을 주목했다.

그리고는 울컥하고 올라오려는 욕지거리를 겨우 참아냈다.

‘레벨이 742라고? 그래 뭐,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쳐.’

중요한건 왜 저딴 게 지금, 자신의 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카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다.

‘지금 이 녀석이랑은 절대, 절대로 싸우면 안 돼.’

우선 레벨 차이만 400개는 난다.

아무리 카이가 선행의 효과로 각종 스탯이 뻥튀기가 된 상태고, 수많은 스페셜 칭호들은 물론, 성물도 두 개나 들고 있으니 비등하게 싸울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 돼.’

녀석의 숨통을 확실히 끊을 수 있다는 확신, 현재의 카이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만약 자신이 지르칸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베스트 시나리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패배한다면?

‘아니, 패배까지 갈 것도 없어. 녀석이 나랑 비등하게만 싸워도…….’

스윽.

카이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300여명의 성혈단, 자신은 그들을 지키면서 싸워야 할 터.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에서 발목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고 싸우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주사위를 굴리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성혈단원들이 죽게되면 교단과의 호감도도 떨어질 것이고, 명성도 대폭 하락할 것이다.

사망 시 잃게 되는 경험치나 접속 불가 페널티는 그것과 비교하면 애교 수준.

카이가 침만 꿀꺽 삼키고 있자, 지르칸이 쓰고 있는 흑색 복면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흐음? 의외군요. 금방이라도 검을 휘두를 줄 알았는데…… 싸울 의지는 없어 보이는군요? 흥이 식었습니다. 애초에 저도 싸우려고 온 것은 아니었으니 이쯤 할까요.”

지르칸은 조금 전까지의 기세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허무하게 어둠의 손을 흩어버렸다.

동시에 손가락을 튕긴 그는 하나의 포탈을 생성해 냈다.

“자, 그럼 여러분. 모두 이곳으로 들어가 주시겠습니까?”

당장 성혈단원들이 반발했다.

“웃기는군.”

“그 포탈이 어디로 이어질 줄 알고?”

“이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토록 사이한 기운을 뿜어대는 네놈의 말을 듣지는 않겠다!”

굳센 신념을 드러내는 성혈단원들!

“잠깐.”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킨 카이가 지르칸에게 물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어.”

“질문? 이런 상황에서 말입니까? 흐음. 해보시죠.”

“네 녀석 정도의 실력이라면 다른 걸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우릴 들이받으면 돼. 그런데 왜 이런 귀찮은 짓을 하는 거지?”

“하하. 여러분의 목적은 어차피 드워프 일족의 구출이 아닙니까?”

지르칸이 고귀한 신사처럼 허리를 숙이며 한쪽 손으로 포탈을 가리켰다.

“드워프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포탈입니다. 물론 여러분께서 자발적으로 들어가시지 않겠다면…… 무력을 동원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감옥인가?”

“글쎄요. 감옥이라고 칭하기에는 안 쪽이 너무나 자유롭고 쾌적한 공간인지라.”

“…….”

녀석의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카이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미네르바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미네르바 : 저 NPC, 레벨이 물음표예요. 혹시 카이님에게는 보이나요?]

[카이 : ……예. 742입니다.]

[미네르바 : 맙소사.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지금 저 괴물이랑 싸우려는 건 아니죠?]

[카이 : 고민 중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연락이 없던 미네르바는 깜짝 놀라 반문했다.

[미네르바 : 어머, 미쳤…… 아, 아니, 정신은 괜찮으세요? 레벨이 742면 당신보다 두 배는 높아요. 1레벨 유저 1,000명이 모여도 200레벨 유저…… 아니, 100레벨 유저 한 명을 못 당해요. 여긴 그런 세계라는걸 당신은 알잖아요?]

물론 그건 그녀가 카이의 스탯 창을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였다.

[미네르바 : 후우, 그럼 이러면 어떨까요. 저희 길드에서 먼저 포탈 안으로 들어가 볼게요.]

[카이 : 프레이 길드에서요?]

[미네르바 : 예. 먼저 들어가서, 안쪽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바로 연락을 드릴게요.]

[카이 : …….]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한 번 떨어지면 연락이 안 되는 NPC들과는 별개로, 유저들과는 계속 연락을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잘못되면 프레이 길드원들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다.

‘프레이 길드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현재 카이가 택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현실적이면서 좋은 방법이다.

카이는 이런 제안을 먼저 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승낙했다.

“흐음. 고민이 길어지시는데…… 정확히 3초 더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들어가겠다.”

“단장님!”

성혈단원들 몇몇이 화들짝 놀라 반문하자, 카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은 그저 날 믿어줘. 미네르바!”

카이가 눈짓을 보내자, 미네르바를 필두로 프레이 길드에 소속된 유저들이 자진해서 포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라, 정말 들어가시는군요. 말을 잘 들으셔서 기분이 정말 좋군요.”

지르칸이 뱉어내는 개소리를 무시한 카이는 곧장 메시지 창을 확인했다.

[카이 : 어떻습니까? 함정? 아니면 감옥입니까?]

[미네르바 : 어…… 어어…… 잠시만요. 여기…… 그냥 던전인데요?]

‘……뭐? 던전?’

카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던전이라니?

슬쩍 지르칸을 쳐다보는 카이의 눈빛에는 혼란이 가득 담겨있었다.

[미네르바 : 던전의 이름은 변질된 천사의 요람. 그리고…… 저희가 있는 장소에 철창이 있는데, 그 안에 드워프들이 갇혀 있어요. 갑자기 등장한 저희를 경계하네요. 그 밖에는 딱히 길이 안 보이고…… 저희가 위치한 커다란 공간이 전부인 것 같아요.]

‘변질된 천사의 요람이라…….’

사막의 건조함 때문인지, 지금 이 상황 때문인지.

카이는 자신의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우선 우리를 던전 하나에 몰아넣을 생각이야. 그곳에는 드워프들도 있겠지.’

지르칸은 지금 당장 자신들을 죽일 생각이 없다고, 카이는 생각했다.

‘드워프들을 죽일 작정이었다면 굳이 설산에서 이곳까지 고생하면서 끌고 오지는 않았을 거야.’

마왕추종자들이건, 뮬딘 교이건.

드워프 족의 손재주를 깔끔하게 포기하는건 아깝기 매한가지일 터.

‘게다가 던전이라면…….’

미네르바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건 게임이다.

‘길이 없는 던전 따위는 있을 리 없어.’

아마 길이 숨겨져 있거나, 특정한 조건을 발동시켜야지만 길이 드러나는 구조일 터.

‘지르칸이 우릴 그곳으로 밀어 넣으려는 의도는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녀석과 전면전을 펼치는 것보다는 던전으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안전해.’

결정을 내린 카이는 명령을 내렸다.

“다들 포탈로.”

“…….”

이번에는 성혈단원들의 반발이 없었다.

심지어 카이를 지나쳐 포탈로 들어가는 그들의 움직임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녀석들.’

성혈단원들과 만난 지는 아직 하루도 안 되었다.

짧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는 시간.

하지만 그들은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긴 자신들의 단장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이었다.

‘그 믿음에는 꼭 보답해 줄게.’

300여명의 성혈단원들이 모두 포탈로 들어가자, 지르칸이 고개를 까딱였다.

“자, 이제 방해꾼들도 사라졌는데…… 혹시 저와의 일대일 대결을 원하신 겁니까?”

“별로. 나도 들어갈 거야.”

카이는 지르칸을 대놓고 무시하며 포탈로 쏘옥 들어가버렸다.

붉은 모래의 사막 위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지르칸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상관없겠죠.”

***

띠링!

[던전-변질된 천사의 요람에 입장하셨습니다.]

[당신의 파티원이 최초 발견자 버프를 획득하였습니다.]

[게임시간으로 9일 동안 경험치 획득률과 아이템 드랍률이 30% 증가합니다.]

미네르바의 말처럼 그곳은 거대한 공간이었다.

마치 학교 운동장을 보는 것처럼, 사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간.

바닥과 벽은 푸르스름한 타일로 만들어져있었고, 공간의 모서리마다 푸른 화염을 달고 있는 거대한 횃불이 있어 내부가 어둡지는 않았다.

“여긴 어디지?”

“던전인가…….”

“그 검은 녀석, 대체 무슨 꿍꿍이지? 우리를 던전으로 집어넣다니.”

“단장님이 들어가라고 하셔서 들어오기는 했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겠군.”

성혈단원들이 주변을 경계하는 사이, 미네르바가 저 멀리서 손을 들어 카이를 불렀다.

“카이님! 여기예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간 카이는 거대한 철창을 마주했다.

‘감옥.’

카이를 비롯한 성혈단이 위치한 곳은 감옥의 바깥이었다.

슬쩍 쳐다본 감옥의 안쪽에는 수백의 드워프들이 갇혀 있었다.

그들은 카이를 비롯한 성혈단을 경계하는지, 철창에서 멀리 떨어져 벽에 꼭 붙어 있었다.

‘흐음. 어디보자…….’

철창 내부를 스윽 둘러다본 카이는 묘한 것을 발견했다.

‘주변 드워프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드워프가 하나 있어.’

그 모습에서 드워프의 신분을 짐작해 낸 카이가 입을 열었다.

“거기 당신, 혹시 잉가르트의 국왕인 카룬달입니까?”

“……나를 알고 있는 눈치로군. 역시 놈들과 한패인가?”

드워프 국왕, 카룬달이 의심어린 눈빛을 지으며 카이를 경계했다.

이에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그의 일지를 꺼내들며 그를 안정시켰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전 사룡의 둥지에서 당신의 일지를 발견한 모험가입니다.”

“사룡의 둥지……? 설마 사룡의 잠자리에 만들어놓은 비밀 장치를 말하는 건가?”

“예.”

“말도 안 돼. 그곳은 사룡이 잠을 자는 공간. 일개 모험가가 그런 곳에 숨겨진 일지를…….”

말을 잇던 카룬달은 카이의 뒤편에 위치한 성혈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 그러고 보니 저 문양은 분명 태양교의…… 그렇군. 저 정도로 강력한 태양교의 정예들이 나섰다면 이해가 되는군.”

지르칸이 언제 돌아올지, 그의 꿍꿍이가 언제부터 시작될지 모르기에 한시가 급하다.

카이는 그의 오해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기에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남겨주신 일지 덕분에 대피소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카밀라와 드워프 족의 아이들을 만나 일족을 구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작전을 수행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드워프들이 철창으로 몰려들며 짧은 팔을 쭉쭉 뻗었다.

“뭐라고?! 아이들! 아이들은 무사한가?”

“카밀라, 그녀를 만났나보군?”

“밥은 잘 먹고 있던가! 내 새끼들 말일세!”

“대피소의 안전은 괜찮은가? 주변에 몬스터가 많지는 않던가?”

어느 나라, 어느 종족이든 자식 사랑은 끔찍하게 마련!

카이가 한 편의 좀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진땀을 빼고 있자, 카룬달이 호통을 쳤다.

“조용! 이자는 사룡의 목을 베어 왕국의 복수를 해준 은인이자, 카밀라의 부탁을 받고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 찾아온 태양교의 인물. 더 이상의 무례를 범하지는 말게.”

“크, 크흠.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해서 그만…… 자네에게도 미안하네.”

드워프들이 빠르게 사과를 마치고 물러서자, 카룬달이 철창 가까이 다가왔다.

“자, 그럼 이제 이야기를 해주겠나.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그러니까…….”

지나간 이야기를 빠르게 축약해서 전하자, 카룬달의 얼굴 주름이 한층 더 우묵해졌다.

“으음. 그 말은…… 우리를 구해주러 이곳에 들어온 것이 아니란 말인가?”

“……뭐, 상황만 놓고 보면 저희도 잡힌 것이라고 볼 수도 있죠.”

카이의 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카룬달.

“저, 그래서 말인데. 국왕님에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다른 이들을 물린 카이는 주변을 돌아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인사가 늦은 점 죄송합니다. 전 4대째 태양의 사제직을 맡고 있는 카이라고 합니다.”

“태양의…… 사제……? 그, 그렇다면 자네가!”

“쉿.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입니다.”

카이가 황급히 조용히하라는 제스쳐를 취하자, 카룬달이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사도가 어찌하여 일개 흑마법사에게 질 수가 있나?”

“크, 크흠. 그건 제가 아직 사도로 각성한지 얼마 안 되서…… 그래서 말인데, 성검 프리우스가 현재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성검이라면, 모든 악을 멸하고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광휘의 힘이 담긴 프리우스라면 지르칸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을 터.

“이런, 아직 모르는가? 잘 듣게나. 성검은…….”

카룬달이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끼이이이이이-!”

마치 노래방 마이크에 혼선이라도 난 것처럼, 찢어지는 듯한 소음이 공간을 가득 울렸다.

“크윽!”

“꺄아아악!”

그 불쾌한 소리에 모두가 귀를 막고 인상을 찡그림과 동시에, 카이와 프레이 길드원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던전의 보스, 변질된 천사 루시퍼가 등장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루시퍼는 극심한 공복감을 느끼는 중입니다.]

[허기를 느끼는 루시퍼가 가장 즐겨먹는 주식(主食)은 인간입니다.]

‘……아하.’

카이가 재미있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르칸이 자신들을 이곳으로 몰아넣은 이유,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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