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12화 (212/441)

# 212

힐통령 212화

75장 성스러운 검(1)

후우웅.

온다.

루시퍼의 공격이 다시 한 번 이어졌고, 카이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진보한 형태로 그 공격에 반응했다.

‘소리는 앞쪽에서부터 크게, 왼쪽으로 휘둘러졌어.’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이번 공격은 왼쪽에서 온다!

때문에 카이는 검을 세워 자신의 측면을 방어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철 깃털들의 세례.

파바바박!

‘젠장!’

녀석의 공격 수단이 팔 한 짝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 맹점이었다.

카이는 순식간에 40%나 빠진 체력을 회복하며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했다.

‘미묘하게 달라. 소리가.’

팔을 휘두를 때와 날개가 펼쳐질 때의 소리가 미묘하게 다르다.

‘팔을 휘두를 때는 조금 더 소리가 가벼워. 반면에 날개를 휘두를 때는 공기를 밀어내는 느낌이다.’

그 사소한 차이를 인지한 카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와라.”

“키르르.”

자신의 공격에 반응조차 못하는 인간이 가소로운 것일까.

그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개를 힘껏 펼친 루시퍼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카이의 얼굴에서도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소리는…… 날개를 펼치는 소리인데?’

하지만 아까와는 반대로, 거칠게 흔들리는 바람이 안면을 강타했다.

‘이 녀석, 날았구나!’

상대방이 정면에서 공격해주기만을 바란 것은 자기 자신의 욕심이었다.

보스 몬스터인 루시퍼의 지능은 웬만한 플레이어의 수준.

녀석은 앞을 볼 수 없는 카이가 자신의 소리에 반응하는 것을 허락치 않았다.

콰드드드드득!

하늘 높이 떠올랐던 루시퍼가 바람처럼 쇄도하며 무릎으로 카이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크흑!”

고통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자기 전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다가 얼굴에 떨어트린 정도의 미약한 충격.

하지만 시큰거리는 코뼈가 가라앉기도 전에, 루시퍼가 카이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촤악, 촤악! 푸욱!

양손에 자리잡은 날카롭고 기다란 손톱을 검처럼 이용하여 카이를 베고, 찌른다.

그 상황에서 카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몸을 비틀며 피해를 경감하는 것 뿐이었다.

‘젠장. 이대로는 안 되겠어.’

구석까지 몰린 카이는 비장의 한 수로 남겨두려했던 스킬을 사용했다.

“영체화!”

후우우웅!

루시퍼의 공격이 반투명한 상태로 변한 카이를 스쳐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루시퍼가 기괴한 소리를 냈다.

“끼에?”

두리번두리번.

놈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연신 고개를 돌렸다.

‘햇살의 따스함, 햇살의 따스함.’

자신의 체력을 치료하던 카이가 이상함을 느낀 것도 그때였다.

‘왜 공격을 안 하지?’

600레벨이 넘어가는 보스 몬스터라면, 게다가 타천사라면 마법 쯤은 기본 소양으로 익히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아무리 영체화가 되었다고 한들, 루시퍼는 자신을 공격할 수단이 차고 넘친다는 소리.

‘영체화는 딱 공격 한 번을 피할 목적으로 사용한 임시방편에 불과한데…….’

루시퍼는 자신의 위치를 가늠조차 못하는 듯, 애꿎은 허공을 때리며 분노했다.

‘설마…… 영체화가 된 나의 위치는 파악할 수 없는 건가?’

영체화가 된 카이의 몸은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으며, 무게를 지니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루시퍼가 상대방을 찾아내는 건, 사막 박쥐와 비슷한 원리인가?’

초음파.

소리의 공명을 통해 상대방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

‘거기다가 루시퍼의 경우에는 청각도 크게 발달한 것 같았어.’

성혈단원들이 소리를 낼 때마다 그곳으로 달려가던 녀석의 모습은 아직도 선명히 떠올랐다.

물론 확실하지는 않았다.

아직 예상일 뿐.

그렇기에 카이는 자신의 논리를 입증할 수단이 필요했다.

“그럼…… 이건 어떨까.”

카이가 천천히 입을 열어 중얼거리는 순간, 후웅!

강렬한 소리와 함께 루시퍼의 날카로운 손톱이 카이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당연한 소리지만 영체화 상태인 카이가 받은 피해는 전무.

‘역시. 소리에도 크게 반응을 할 줄 아는구나.’

확인이 끝난 카이는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러 루시퍼를 불렀다.

“키에에에엑!”

부웅, 부웅!

소리를 낸 카이를 향해 연신 양손을 휘두르는 루시퍼.

이에 카이는 주저없이 녀석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햇살의 따스함.”

“키, 키륵!”

악마 족인 루시퍼에게 힐은 축복이 아닌 저주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녀석이 뱉어내는 소리에 카이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뭐야. 데미지는…… 여전히 조금 밖에 들어가지 않는 건가?’

아프다는 비명 대신 깜짝 놀랐다는듯 감탄사만 터트리는 루시퍼.

가볍게 아랫입술을 깨문 카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드넓은 해변가 또한 셀 수도 없는 모래 알갱이들이 모여 이루는 법. 영체화의 지속 시간은 10분이니 그 안에 최대한 체력을 깎아놓고…… 그 후는 그 때가서 생각하자.’

카이가 다시 한 번 햇살의 따스함을 사용하려고 할 때, 돌연 루시퍼가 날개를 펼쳤다.

화악!

녀석의 입장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시비를 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직 방 안에는 카이를 제외하고도 300마리의 먹잇감이 더 있었으니까.

“크윽!”

루시퍼가 자신의 손을 뿌리치고 허공으로 날아가자, 카이는 서둘러 뒤를 돌아봤다.

아니나다를까, 뒤쪽의 벽면에 붙어있던 성혈단원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크윽, 젠장!”

“왜 갑자기 타겟을 우리로 변경한 거지?”

“검을 들어서 일단 공격을 막아!”

“함부로 검을 휘둘러선 안 돼! 동료들이 다칠 수도 있다!”

황급히 세력창을 켜보니, 성혈단원들의 체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젠장, 이건 어쩔 수 없네.’

지르칸이라는 상상 이상의 강적을 만났기 때문인지, 카이는 의식적으로 선행 스탯을 소모하는 강림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선행 스탯 20개를 아끼자고 성혈단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법.

카이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입을 열었다.

“강림 스킬 발동.”

띠링!

[강림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영구적으로 20개의 선행 스탯이 소멸됩니다.]

[당신의 몸에 강림시킬 선대 사도의 영혼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300명의 아군을 지켜야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불러내야 할 사도?

이건 고민을 할 가치도 없는 문제였다.

“늘 하던거…… 말고, 수호의 시미즈로.”

띠링!

[제1의 사도, 수호의 시미즈가 사용자의 몸에 강림됩니다.]

체란티아가 강림될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온몸이 붕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은 똑같았지만, 뭐랄까.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체란티아의 성정과는 달리, 시미즈의 유려함이 옮은 듯한 기분이다.

-마침내 절 불러주셨군요.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이제 카이도 잘 알고있는 친숙한 이의 것이었다.

‘시미즈.’

-잘 불러주셨어요. 호호. 이걸로 저도 체란티아 그 꼬맹이에게 큰 소리 칠 수 있겠네요.

‘…….’

자신의 몸이 언제부터 선대 사도들이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장기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이는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상황이 안 좋습니다. 지금 시미즈 님을 부른 건…….”

-알아요. 하지만 조급함은 일을 망치게 되는 법. 서두르지 마세요.

부드럽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카이를 잘 타이른 시미즈가 말을 이었다.

-체란티아가 설명해 줬을 거예요. 제가 직접 설명하고 싶었는데, 당신이 그 황소 같은 꼬맹이를 먼저 불러냈잖아요?

“그건 죄송…….”

-후훗. 이제 그만 놀릴테니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저를 불러낸 이상, 안심하셔도 된답니다.

머릿속의 시미즈는 자신감을 잔뜩 끌어안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의 적은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털 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테니까.

카이가 그녀의 광오한 발언에 눈을 크게 뜨기도 전에, 알림이 떠올랐다.

띠링!

[시미즈가 사용자의 육신에 강림하였습니다.]

[그녀의 제한된 능력들 중 일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킬-절대수호영역을 획득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킬-거울의 방을 획득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킬-무장해제를 획득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킬(패시브)-시미즈의 신념을 획득하셨습니다.]

[스킬(패시브)-시미즈의 신념 효과로 아군의 모든 방어력이 200% 증가하며, 주변 적들의 모든 방어력을 80% 감소시킵니다.]

체란티아 때와 마찬가지로, 카이는 각 스킬들의 사용법을 절로 깨달을 수 있었다.

‘……대단해.’

동시에 그녀를 향한 경외심이 카이의 마음을 밀물처럼 채워나갔다.

‘인정해. 수호라고해서 솔직히 큰 쓸모가 없을 줄 알았는데…….’

기본적으로 전투란 한쪽을 죽여야 끝난다.

때문에 카이는 효과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방어로는 상대방을 압도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이것이 수호의 시미즈. 교단의 움직이는 성이라 불리던 초대 교황의 힘……!’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카이는 성혈단원들의 비명이 들리는 곳을 향해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절대수호영역 선포.”

우우우웅.

기묘한 소리와 함께 신성한 방어막이 바닥에서 올라오며 성혈단을 감싸안기 시작했다.

“루시퍼를 공격할 생각하지 마. 절대수호영역은 보호받는 자가 공격을 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풀리게 되니까.”

“이 목소리는…… 단장님?”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성스러운 힘이 나를 보호하고 계시는게 느껴집니다.”

“카이 단장님. 당신은 도덕, 아니 도대체…….”

루시퍼의 마수에서 살아남은 성혈단원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카이의 실력을 찬양했다.

“키르륵?”

물론 알 수 없는 힘에 밀려난 루시퍼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 알 수 없는 방어막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

루시퍼의 강력한 양 손이 곧장 방어막을 두드렸다.

“키에에에엑!”

그리고는 비명을 터트리며 뒤로 튕겨져나갔다.

저벅저벅.

천천히 루시퍼에게 다가간 카이가 경고했다.

“소용 없어. 절대수호영역은 아무리 큰 힘으로 내려쳐도, 더 큰 피해를 돌려줄 뿐이니까.”

“크르르…….”

절대수호영역은 강림이 풀리거나, 자신의 신성력이 바닥 나기 전까지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제 정말 우리 둘만을 위한 무대가 되었네.”

아직도 영체화의 시간은 남아 있었다.

카이는 천천히 손을 뻗어 루시퍼가 있던 방향을 더듬었다.

“대충 소리는 이쪽…… 아니, 이 쪽인가. 무장해제.”

띠링!

[정확한 대상을 가리켜주십시오.]

“흠. 이쪽이 아닌가. 그럼…….”

“키리리릭!”

카이가 눈앞에서 계속 종알거리자, 루시퍼가 어둠의 마력을 양손 가득 거머쥐고 카이를 향해 휘둘렀다.

콰드드득!”

“크흑!”

불시에 옆구리를 얻어맞은 카이가 거친 숨을 뱉어냈지만, 그의 입가는 웃고있었다.

그는 루시퍼의 손이 날아온 방향을 정확히 가리키며 말했다.

“무장해제.”

철컥, 철컥.

마치 견고한 갑옷이 강제로 해제되는 기분 좋은 효과음과 함께, 루시퍼의 당황한 목소리가 보스 룸에 울려퍼졌다.

“크, 크르르?”

띠링!

[변질된 천사, 루시퍼에게 무장해제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루시퍼의 모든 방어력이 0으로 고정됩니다.]

[사용자의 모든 공격은 루시퍼에게 치명타로 적용됩니다.]

“……어때. 네가 자랑하는 단단한 맷집도 이제는 소용 없겠지?”

자신의 방어력은 최대로!

상대의 방어력은 최저로.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무섭네.’

자신이 평소에 시미즈를 얼마나 무시했던가.

그런 그녀의 진면목을 알게되자, 카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수호의 시미즈,

그녀는 아군에게는 무한한 신뢰와 안도감을 주지만 적에게는 압도적인 공포를 선사하는.

이 세상 누구보다 잔혹한 전장의 여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