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힐통령 213화
75장 성스러운 검(2)
강림을 통해 단숨에 우위를 손에 넣은 카이는 천천히 전방을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루시퍼 녀석이 위치해 있던 장소를 쳐다본 것이다.
‘강림 스킬을 했다고는 해도 앞이 안 보이는 건 여전하니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강림 스킬의 지속 시간은 1시간.
그 시간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루시퍼를 끝장낼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상대방의 방어력이 0으로 고정되고 자신의 모든 공격이 치명타로 발동하는 지금.
카이는 아까보다 훨씬 과감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신성 사슬.’
촤르르르륵!
카이의 왼쪽 소매에서 사슬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사슬의 개수는 달랑 하나가 아니었다.
촤르륵, 촤르르르륵!
무려 스무 개가 넘어가는 사슬들은 보스 룸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철그렁, 철그렁!
던전의 벽과 바닥, 심지어 드워프들이 갇혀 있는 철창과 천장까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뻗어 나간 신성 사슬들은 거미줄처럼 연결되기 옥죄기 시작했다.
‘크르륵.’
본능적으로 사슬에 닿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루시퍼가 열심히 도망을 쳤지만, 그가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은 결국 한정되어 있었다.
철그럭.
왼팔을 통해 무언가와 부딪치는 감각이 드는 순간, 카이는 확신했다.
‘찾았다.’
거미가 자신의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을 탐지할 수 있는 것처럼.
루시퍼의 위치를 파악한 카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업그레이드, 신성 사슬.”
평소보다 훨씬 굵고, 거대하게 변한 신성 사슬!
카이는 순식간에 세 개의 강화된 사슬 세 개를 루시퍼에게 사출했다.
처러럭, 철그렁!
“키에에에엑!”
사슬은 눈 깜짝할 사이에 녀석의 목과 양쪽 팔을 구속했다.
거미는 먹잇감을 향해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다.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적인지를 충분히 파악한 뒤, 그 힘부터 무력화시킨다.
‘우선 거슬리는 건…… 아무래도 저 날개지.’
카이의 이두근에서 힘줄이 우두둑 솟아올랐다.
동시에 루시퍼의 몸은 마치 중력에 이끌린 사과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바닥의 타일들이 깨지며 먼지가 피어오르는 순간, 루시퍼의 귀가 쫑긋거렸다.
“크르륵?”
전방에서 들려온 어떠한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는 양팔을 들어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미안하지만 이제는 소용없어.”
가볍게 바닥을 박찬 카이는 녀석의 머리 위를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녀석이 양팔을 들어 올린 것은 양손에 묶어놓은 사슬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다.
‘앞을 막아봤자 소용없을 거다.’
순식간에 루시퍼의 뒤로 돌아간 카이는 수십 개의 사슬을 주워 녀석의 목에 휘감았다.
그러고는 녀석의 등을 강하게 발로 밀어냈다.
“커…… 커르르륵!”
루시퍼는 목 부근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고통과 호흡 곤란에 입에 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카이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걱!
“키아아아아악!”
카이의 비어있는 오른손은 곧장 검을 휘둘러 녀석의 날개를 노렸다.
‘굳이 두 개 다 잘라낼 필요는 없지.’
본디 날개란 한 쌍이 있어야 비행을 할 수 있는 법.
카이는 루시퍼의 한쪽 날개만을 집요하게 난도질했다.
루시퍼가 필사적으로 양손과 다리를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그때마다 카이의 왼팔이 붙들고 있는 사슬들이 녀석의 움직임을 알려줬다.
‘이 정도면…… 할만해.’
물론 자신은 이 어둠 속에서 상대방을 볼 수 있는 시력이 없다.
그렇다고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초음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청각이 유별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 이 소리지.’
감각.
자신의 팔을 통해 전해져 오는 감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 카이의 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철렁!
사슬이 크게 움직이면, 녀석이 두 팔을 휘두른다는 뜻이다.
찰그랑.
사슬이 미약하게 움직이면, 녀석이 하체 공격을 시도했다는 뜻.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영체화 덕분에 카이가 입는 피해는 여전히 전무!
카이는 최고의 상황에서 녀석의 패턴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영체화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지속 시간이 끝나자 카이의 몸이 천천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키르르륵!”
상대방의 소리와 위치가 확실해졌다.
그 사실을 깨달은 루시퍼는 지금까지의 수모를 갚아주겠다는 듯 맹공을 퍼부었다.
후웅, 후웅!
하지만 분석의 성과인 걸까.
루시퍼의 양손과 다리는 카이의 몸을 몇 번 스치는가 싶더니, 점점 허공을 휘두르는 횟수가 많아졌다.
“후우, 후욱.”
루시퍼의 공격이 충분히 익숙해졌다고 느껴지자, 카이는 틈틈이 반격을 시작했다.
서걱! 푹!
[치명타를 입히셨습니다. 81,172의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치명타를 입히셨습니다. 82,237의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치명타를 입히셨습니다. 82,741의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
어디를 공격해도 터져 나오는 치명타!
그 짜릿한 손맛과 쾌감에 중독된 카이의 손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키, 키에에엑!”
루시퍼는 어느 순간부터 반격의 의지를 잃고 카이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맨몸으로 검을 막아낸다는 건 어불성설.
심지어 카이는 루시퍼에게 있어선 천적이나 다름없는 상대였다.
서걱, 서걱!
[여명의 검법 효과로 13,970만큼의 신성 피해를 입힙니다.]
[치명타 발동! 6,835만큼의 추가 신성 피해를 입힙니다.]
바로 신성력.
타천사 루시퍼의 유일한 약점인 절대적 신성!
대악마인 그의 신체를 뚫고 피해를 줄 수 있는 신성력은 개나 소나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만약 카이가 태양의 사제가 아니었다면 꿈도 못 꿀 일.
물론 그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카이는 흐뭇한 표정으로 검을 놀렸다.
‘오늘따라 손맛이 좋은데?’
“키에에엑!”
거듭된 공격과 누적된 피해에 공포를 느낀 루시퍼는 도망을 치기 위해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고는 한 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휑한 무게감에 얼굴을 찌푸렸다.
“날아가려고? 안 될 텐데.”
그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카이는 한 걸음을 내디디며 녀석의 심장을 강하게 찔렀다.
“크르르르르륵!”
루시퍼는 살기 위해 연신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눈앞의 인간은 그마저도 허락지 않았다.
철그렁.
“도망도 못 쳐.”
자신의 목과 양손을 구속하고 있는 사슬은 아무리 힘을 줘도 풀리지 않았다.
그야 마기와는 극상성의 기운인 신성력으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당연한 소리.
“레벨이 워낙 높은 놈이라 언제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잘 부탁한다.”
카이는 현재 600레벨이 넘는 보스 몬스터에게 쉴 새 없이 치명타를 박아넣는 중이었다.
그 때문인지, 단순히 검을 휘둘러서는 절대 오를 일 없는 검술 숙련도가 매우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 단순한 폭력이 이어지기를 어언 50분.
결국 루시퍼는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해냈다.
띠링!
[변질된 천사, 루시퍼를 처치하셨습니다.]
[신의 권위를 넘보던 교만한 천사의 영혼이 세상에서 소멸되었습니다.]
[스페셜 칭호, ‘대악마 사냥꾼’을 획득하셨습니다.]
[변질된 천사의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던 헬릭은 사탕을 흔들며 기뻐합니다.]
[선행 스탯이 25만큼 증가합니다.]
[태양목격자의 효과로 선행 스탯이 13만큼 추가 증가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스탯 포인트를 160개 획득했습니다.]
“호오.”
32개의 레벨 업과 38개나 상승한 선행 스탯.
고작 1시간 동안 전투를 치른 성과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푸짐한 보상이었다.
화르르륵.
루시퍼가 죽자, 지옥불이 피어나오던 횃불은 정상적인 불을 뿜어냈다.
동시에 동공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으음. 눈이 부시군.”
“엇! 벼, 변질된 천사가…….”
“단장님이 녀석을 처치하셨어!”
성혈단원들의 존경 어린 시선을 받던 카이는 드워프들이 갇혀 있는 철창으로 다가갔다.
“물러나세요.”
그들이 물러나자, 카이는 깔끔하게 검을 휘둘러 철창을 베어냈다.
“오오, 정말 깔끔한 솜씨일세. 설마 자네가 루시퍼까지 처치할 정도의 실력자였을 줄이야…….”
“운이 좋았습니다.”
“운? 대악마들은 운이 좋다고 처치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닐세. 분명 자네에게 신의 가호가 따르는 것이겠지.”
“신의 가호라…… 뭐, 비슷하네요.”
정확히 말하면 대선배님의 가호이지만.
-괜찮아요. 이번 일로 헬릭 님의 명성이 높아진다면 전 그것으로 만족한답니다.
엄마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 시미즈의 목소리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제 가봐야 할 시간이에요. 오늘 불러줘서 고마웠어요. 그럼 다음에 또…….
‘예.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강림 스킬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그녀를 배웅한 카이는 대악마 루시퍼가 남긴 재료들을 파밍했다.
[루시퍼의 심장]
[루시퍼의 날카로운 뼈 손톱]
[루시퍼의 흑색 날개]
[500골드]
“흐음. 이걸 어떻게 봐야 할지…….”
루시퍼의 심장은 연금술을 위한 재료 아이템이었다.
날카로운 뼈 손톱은 무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
흑색 날개는 아쉽게도 비행 능력이 배제된 장식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마무리는 500골드.
‘심장이랑 뼈 손톱만 챙기고, 흑색 날개는 경매장에 팔아야겠어.’
고작 장식 아이템이다.
팔려봐야 얼마에 팔리겠냐만은…… 카이는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유치찬란한 날개를 등 뒤에 달고 다닐 자신이.
***
“음?”
항상 여유롭던 지르칸의 표정이 드물게 경직되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눈빛을 감으며 빠르게 무언가를 파악했다.
‘……루시퍼의 기운이 사라졌다고요?’
말도 안 된다.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지르칸도 알고 있었기에, 몇 번이나 탐지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도출되는 결과는 마찬가지.
“이건 말이…… 말이 안 되는 일이야.”
항상 습관처럼 입에 담던 존댓말을 잊어버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지르칸.
하지만 루시퍼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자들은, 그의 심정을 백분 이해할 것이다.
루시퍼는 마왕의 피를 하사받아 그의 피를 머금고 그의 자식이 된 존재.
비록 강력한 마기에 미쳐 버려 이성을 잃어버렸다지만, 전투력만큼은 발군이다.
‘게다가 마왕의 피로 강화된 육체는 성검이 품은 신성력 정도가 아니면 피해조차 줄 수 없어.’
한데 그런 존재가 죽었단다.
지르칸은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키는 더러운 기분을 느꼈다.
‘한 번이면 우연이지만…….’
두 번부터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실력이다.
지르칸은 처음 성혈단이 몬스터들을 휩쓸었을 때 자신의 분석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분석이 한 번 틀린 건 괜찮아. 그깟 몬스터 몇백 마리는 하루면 충원하고도 남으니까. 하지만…….’
가디언인 루시퍼는 다르다.
그가 뚫렸다는 것은…… 이제 그가 지키고 있던 곳도 위험해졌다는 뜻이다.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감히!”
흉신악살 같은 표정을 지은 지르칸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