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15화 (215/441)

# 215

힐통령 215화

75장 성스러운 검 (4)

지르칸의 주변에 떠있던 어둠의 구는 곧장 수십 개의 기다란 창으로 변모했다.

그 창이 누구를 노릴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

쇄애애액.

카이는 자신에게 쇄도하는 창을 노려보며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까앙, 까앙!

창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튀어 올랐다.

마치 한여름밤의 폭우처럼 쉴 새 없이 카이를 두드리는 어둠의 창.

하지만 창 끝이 아무리 날카롭다한들 찌르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법.

“역시. 우리 풋내기 사제님은 너무 강해지셨다니까.”

허공에서 카이의 철통같은 가드를 내려다보던 지르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는 항상 다양한 수를 강구해야 하는 존재.

자신의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통할 때까지 밀어붙이는 건 미련하다.

‘새로운 길을 찾아볼까요.’

카이에게 공격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손이 빠르기 때문.

‘게다가 공격 방법이 너무 단순했지요.’

애초에 이것은 간단한 테스트.

카이가 어디까지 반응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지르칸이 좋아하는 분석의 단계였다.

“자, 그럼 제대로 갑니다.”

지르칸의 나지막한 경고에 카이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일 났다.’

카이에게는 전장의 사신이라는 스페셜 칭호가 있다.

그 효과는 적을 처치할 때마다 스테미너를 생성해내는 최상위급 칭호.

하지만 카이는 처음으로 그 칭호의 단점을 깨달았다.

‘이 칭호…… 일대일 상황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잖아?’

왜 이걸 지금에서야 깨달았을까.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카이는 저 멀리의 카룬달을 쳐다봤다.

포탈 쪽으로 달려가던 그는 포탈이 파괴된 지금, 지르칸과 카이의 사이에서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선 시미즈를 불러내자.’

강림 스킬의 지속 시간은 한 시간.

그리고 재사용 대기시간 역시 한 시간이다.

이론적으로는 24시간 내내 강림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다.

물론 선행 스탯이 빵빵하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하지만.

“강림 스킬 사용.”

중얼거림과 동시에 카이의 눈앞으로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동시에, 카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이, 이게 뭐야?’

평소에 강림 스킬을 사용하면 항상 시미즈와 체란티아의 이름이 밝게 빛났고, 패트릭의 이름은 검은색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패트릭에 이어 시미즈도 흑색으로 변해 있는 상태.

당황한 카이가 그녀의 이름을 연호했다.

“제1의 사도, 시미즈 선택.”

띠링!

[사도의 영혼은 한 번 전투를 치루면 여덟 시간 동안 잠에 빠져듭니다.]

[시미즈의 영혼은 현재 천상의 끝자락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습니다.]

[시미즈의 영혼을 재강림시키려면 7시간 47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 이런……!”

낭패의 연속.

강림 스킬을 연달아 사용해본 적이 없었기에, 미처 알지 못한 강림 스킬의 단점이었다.

‘젠장. 시미즈의 절대수호영역이 없다면…….’

카이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카룬달을 담았다.

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불안감은 카이의 얼굴 위에 그대로 떠올랐다.

“흐음. 드워프들의 왕이 걱정인가 보군요.”

카이가 순간적으로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속에 구렁이를 몇 마리나 품고 있는 괴물 앞에서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다니.

“그렇다면 걱정을 덜어드리지요.”

지르칸의 왼손아귀에서 휘몰아친 어둠의 힘은 그대로 카룬달을 한쪽 벽으로 날려버렸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주변을 칠흑의 철창이 에워쌌다.

“자, 이제 고민은 덜어놓으시고, 전력을 다 하십시요.”

“…….”

시미즈의 영혼을 제 몸에 강림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카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도망이었다.

‘신출귀물 스킬을 이용하면 카룬달과 함께 도망칠 수 있어. 하지만…….’

그러자면 우선 저 철창부터 뜯어내야 한다.

물론 지르칸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럼 결국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싸워야 해.’

루시퍼와의 전투 이후, 승리감에 도취되어 느슨해진 긴장감이 불러온 최대의 실수였다.

카이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현재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뭐가 있지?’

나이트 오브 나이트메어를 사용한 죽음의 군단은 이미 몇 시간 전에 써먹었기에 사용 불가.

결국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건 자신이 터득한 기본적인 스킬들.

‘그리고 체란티아라도 불러와야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능력은 지르칸 같은 마법사와의 일대일 상황에서는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패시브 스킬인 체란티아의 신체. 그게 필요해.’

선행 스탯 20을 영구적으로 소모하여 모든 스탯을 1시간 동안 300이나 높일 수 있다.

현재 카이는 찬 물, 뜨거운 물을 가릴 수 없는 상황!

“제2의 사도, 안식의 체란티아로.”

[체란티아가 사용자의 육신에 강림하였습니다.]

[그의 제한된 능력들 중 일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킬-빛의 군단을 획득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킬-정화하는 불의 파도를 획득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킬-망각의 검을 획득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킬(패시브)-체란티아의 신체를 획득하셨습니다.]

[스킬(패시브)-체란티아의 신체 효과로 모든 스탯이 300 상승합니다.]

체란티아의 굳건한 힘이 카이의 몸을 가득 채웠다.

물론 그의 굵은 목소리도 카이의 머리를 가득 메웠다.

-흐음. 탁한 기운이 느껴지는 마나로군. 마족과 관련이 있는 자인가?

“예. 마왕 추종자입니다.”

-골치 아프게 되었군. 척 봐도 수준급의 고위 마법사로 보이는데…… 카이 자네가 사용할 수 있는 빛의 군단은 그의 상대가 되질 못해.

“하지만 방법이 없잖습니까.”

-방패막이.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을 걸세.

체란티아의 충고를 듣고 있는 카이에게, 지르칸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음? 뭔가 분위기가 바뀐 듯한…….”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지르칸이 눈을 가늘게 뜨며 카이를 관찰했다.

‘외형적인 변화는 없어요. 하지만…….’

눈앞에 위치한 풋내기의 ‘격‘이 순간적으로 올라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요.’

지르칸은 애써 고개를 흔들며 이를 부정했다.

격을 올리는 것은 일개 인간이, 그것도 몇 초만에 이룰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었으니까.

“자, 그럼 제대로 한 번 가봅시다.”

지르칸이 양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마치 피아니스트의 거장이 연주 전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는 것처럼.

경건한 자세로 두 손을 뻗은 지르칸의 마법은 찰나의 순간에 발현되었다.

“……!”

별안간 두 다리에서 느껴지는 강한 구속감에 카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 느낌은…… 속박!’

속박 또한 상태이상의 일부지만, 이건 외부적인 요소로 생긴 현상.

햇살의 따스함 스킬을 통해 풀어낼 수는 없었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홀리 인챈트.”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카이의 검신은 밝게 빛났다.

그 검을 그대로 휘두른 카이는 두 다리를 묶고 있는 기운 덩어리들을 깔끔하게 잘라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야.’

자신의 두 다리를 묶은 것은 도망을 칠 수 없게 만드는 준비 과정에 불과했다.

주위를 빠르게 훑는 카이의 표정은 빠르게 굳어갔다.

바닥에서는 뾰족한 가시들이 튀어나왔고, 허공에서는 화살과 창들이 내리꽂히는 상황!

‘교란.’

카이의 몸은 분신만을 남긴 채 공격 범위 바깥으로 이동했다.

그가 이동한 곳은 다름 아닌 지르칸의 머리 위.

‘이 이동은 헬릭조차 속일 수 있어.’

한 마디로 자신의 발밑에 위치한 지르칸에게 강력한 한 방을 자유롭게 먹일 수 있다는 뜻.

‘업그레이드. 망각의 검.’

망각의 검.

체란티아의 스킬 중 하나로, 적중 당한 이는 상태이상 ‘망각’에 걸리게 된다.

5분 동안 그 어떤 스킬도 사용할 수 없는 효과를 지니고 있지만, 같은 효과를 지닌 침묵보다 훨씬 상위 등급의 상태이상.

‘이것만 먹이면……!’

전사가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과, 마법사가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천지차이다.

전사는 스킬을 사용하지 못해도 높은 신체 능력으로 전투를 속행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마법사는?

‘스킬이 봉인되는 순간부터 앙꼬 없는 찐빵, 케찹 없는 오므라이스가 되는 거지.’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는 뜻!

푹, 푸욱!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겼지만, 카이는 살아서 분신을 남겼다.

그리고 그 분신은 지르칸의 마법 수십여 개에 적중당했다.

‘됐다!’

완벽한 공격의 순간.

지르칸은 여전히 분신을 쳐다보는 중이었고, 자신은 그의 머리 위에 있다.

카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쇄애애애액!

바람을 찢어발기며 쇄도하는 날카로운 검격!

그 공격은 훌륭하게 지르칸의 몸을 일도양단했다.

‘잠깐, 원킬이라고?’

아무리 마법사의 방어력이 약하다고 해도, 지르칸은 700레벨이 넘는 마법사다.

‘그런 존재가 원킬이 뜰 리는 없어.’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카이는 본능적으로 스킬 하나를 사용했다.

그리고는 곧장 몸을 최대한 웅크리며 피격 범위를 좁혔다.

“역시 예전부터 눈치 하나는 빠르시다니까.”

카이의 분신이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것과 동시에, 일도양단된 지르칸의 몸도 흩어졌다.

동시에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충격.

콰드드득!

“커헉……!”

띠링!

[4번, 5번, 6번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부러진 뼈가 장기를 찌르고 있습니다.]

[상태이상 ‘호흡곤란’에 걸리셨습니다.]

[초당 소폭의 스테미너가 감소합니다.]

[상태이상 ‘대출혈’에 걸리셨습니다.]

[초당 1,250의 피해를 입습니다.]

콰아아앙!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카이는 고통섞인 신음을 뱉어낼 시간도, 고민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우선은 치료부터.’

우우웅.

햇살의 따스함이 온몸으로 번지자 옆구리 부근에서 느껴지던 불쾌한 기분이 차츰 사라져갔다.

모든 상태이상을 해제한 카이는 허공의 지르칸을 올려다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대체 어떻게 교란을 읽은 거지?’

이 수는 아무리 전투의 베테랑이라고 해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태양신인 헬릭조차 처음 봤을 때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잠깐, 처음 봤을 때라고?”

카이는 그제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 표정을 조용히 쳐다보던 지르칸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까? 본인의 실수를.”

“……스킬을 사용한 걸 읽어낸 건 아니었구나.”

“예. 아쉽게도 신을 믿지 않는 저에게 그런 예지 능력은 없어서요.”

지르칸은 단순히 대비를 한 것뿐이다.

물론 그가 대비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사막 박쥐와 싸울 때 한 번, 이 스킬을 사용한 적이 있었지.”

“맞습니다. 그때 본 이후로, 위협적인 기술이라 판단하여 처음부터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녀석이다.

한 번 본 기술의 위험성을 단번에 파악하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할 함정을 파두다니.

‘이래서 마법사들은 상대하기가 싫어.’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줄 아는 마법사들과의 싸움은 이래서 힘들다.

최소 몇 수 앞을 내다보면서 착실하게 함정을 파두는 그들을 상대하는 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곤하니까.

‘차라리 검은 벌의 스팅처럼 제 실력만 믿고 까부는 스타일이라면 모를까…….’

지르칸은 뼛속까지 치밀한 마법사.

자신의 약점은 절대 보여주지 않되, 상대방에 관한 건 사전에 모두 파악을 해두고 움직인다.

‘가만, 그럼 내가 몬스터 군단이랑 싸울 때 사용했던 스킬들은 모두…….’

지르칸의 머릿속에 들어있다는 소리.

카이는 자신이 그때 무슨 스킬들을 사용했는지 기억을 더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밑천 다 털렸네.”

“준비가 된 자와, 준비되지 않은 자. 둘이 싸워서 누가 이길지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지르칸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카이를 내려다봤다.

누가봐도 첫 격돌의 승자는 지르칸이라 생각되는 모습.

하지만 그 상황에서 카이는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런데 거짓말해서 정말 미안해. 사실은 내 밑천이 바닥까지 다 털린 건 아니거든.”

“음……?”

카이의 얼굴 위로 피어나는 미소를 보는 지르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푸욱!

지르칸이 의문을 표하는 순간, 한 자루의 검이 그의 등을 꿰뚫으며 가슴 앞으로 튀어나왔다.

“커헉……?”

“오늘의 교훈. 이길 때까지는 이긴 것이 아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지르칸이 마주한건, 카이와 똑같은 장비를 입고 있는 존재였다.

아! 물론 한 가지 부분은 달랐다.

바로 얼굴에 눈, 코, 입이 달려 있지 않고 계란처럼 매끈하다는 점.

“원래 모자란 놈들이 잘하는 게 딱 하나 있잖아.”

카이는 지르칸을 열 받게 만들려고 작정이라도 한듯,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불리해지면 친구 부르는 거.”

지르칸의 몸이 양단되는 것을 보는 순간. 카이가 본능적으로 사용한 스킬은 하나였다.

“소개할게. 내 소울 메이트. 태양 분신이야.”

더불어서 기분 좋은 알림이 카이의 귀를 두드렸다.

띠링!

[상대방이 망각의 검에 적중당했습니다.]

[상대방이 상태이상, ‘망각‘에 걸렸습니다.]

[상대방의 레벨이 현저하게 높아 망각의 효과가 대폭 감소합니다.]

[상대방은 10초 동안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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