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16화 (216/441)

# 216

힐통령 216화

75장 성스러운 검 (5)

태양 분신의 능력치는 본체가 지닌 능력의 70%만큼.

‘그래서 아쉬워. 레벨 차이가 크게 나서 망각의 효과가 이렇게까지 줄어들다니.’

만약 자신이 지르칸에게 망각의 검을 박았다면 적어도 10초라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터.

아쉬움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카이는 미소를 지었다.

‘뭐, 그래도 10초면 충분하니까.’

전투 중인 전사에게 10초라는 시간은 마법의 시간이다.

말 그대로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

‘물론 나는 사제지만 말이야.’

꾸우욱.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각종 칭호의 효과와 체란티아의 신체로 인해 카이의 힘 스탯은 1700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괴물 같은 사제의 양쪽 허벅지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이런. 먼지 날리는 건 싫은데.”

마치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자조 섞인 미소를 짓는 지르칸의 얼굴로 카이의 주먹이 꽂혔다.

콰아아아앙!

눈 깜짝할 사이에 보스 룸 반대편의 벽에 처박힌 지르칸.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

카이는 절대 이 공격 한 번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9.4초 남았다.’

촤르륵!

카이의 왼 소매에서 튀어나간 여러 개의 신성 사슬이 지르칸의 몸을 단단하게 묶었다.

“흐읍!”

왼팔을 뒤로 당기자, 지르칸의 몸은 실에 묶인 연처럼 힘없이 딸려왔다.

다가오는 녀석의 복부를 노리고 타이밍에 맞춰 올라가는 카이의 무릎!

콰드드득!

카이의 니킥은 지르칸의 복부를 강하게 강타했다.

지르칸이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이, 그의 몸이 천장 높은 곳으로 날아갔다.

물론 그에게는 고통의 몸부림을 칠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꽈아아악.

지르칸의 몸이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자, 팽팽해지는 신성 사슬.

이에 카이는 다시 한 번 사슬을 당겼다.

그리고 떨어지는 지르칸의 면상을 향해 그대로 오른손 스트레이를 한 번 더 꽂아넣었다.

콰아앙!

바닥에 떨어졌다가 탄력 있게 튀어오르는 지르칸의 몸.

카이의 싸커킥은 녀석의 복부를 기세 좋게 차올렸다.

뻐엉! 콰득! 콰드드득!

마치 같은 동영상을 반복 재생이라도 하듯, 비슷한 행위가 몇 번이고 똑같이 이루어졌다.

지르칸의 온몸을 벌집처럼 쑤셔대는 카이의 공격.

힘 스탯이 1700을 넘는 순간, 그의 주먹과 발은 그 자체만으로도 둘도 없는 무기가 되었다.

‘마지막 1초.’

하지만 이제는 정말 치명상을 안겨줄 차례.

사슬을 강하게 당긴 카이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지르칸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짝였다.

“업그레이드, 파이널 어택, 솔라 필드, 칼날 쇄도.”

[업그레이드 스킬에 의해 파이널 어택이 강화되었습니다.]

[파이널 어택의 피해량이 50% 상승합니다.]

[업그레이드 스킬에 의해 솔라 필드가 강화되었습니다.]

[솔라 필드의 스탯 증가량이 15만큼 증가하고, 영역이 늘어납니다.]

[업그레이드 스킬에 의해 칼날 쇄도가 강화되었습니다.]

[칼날 쇄도의 회전력이 상승하며, 피해량이 100% 상승합니다.]

메시지들이 카이의 눈앞을 어지럽혔지만, 그의 시선은 지르칸에게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칼날 쇄도!”

드드드득!

회전력을 머금은 카이의 롱소드에 얻어맞은 지르칸이 멀리 튕겨나갔다.

카이는 날아가는 지르칸을 향해 스킬을 시전했다.

“추적하는 빛의 화살, 홀리 익스플로젼!”

콰아아아앙!

수백 다발의 빛의 화살.

그리고 두 개의 홀리 익스플로젼.

그 스킬들이 지르칸에게 적중하는 순간, 카이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안 그래도 방어력이 약한 흑마법사야. 10초 동안 정신없이 때렸으니 체력은 바닥이겠지.’

저 멀리의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지르칸을 쳐다보던 카이는 검을 흔들었다.

습관처럼 검신에 묻어있는 피를 털어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행동이 카이의 안색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잠깐만, 피가 안 묻어있다고?”

검신에는 묻어있는 피가 없었다.

그 사실에 당황한 표정을 지은 카이는 지르칸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지르칸의 체력.

[남은 체력 : 100%]

“마, 말도 안 돼.”

카이가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10초라는 마법의 시간 동안 녀석을 셀 수도 없이 두드렸다.

‘그런데 데미지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고?’

방어력이 그렇게 단단하던 루시퍼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물며 흑마법사가 이 정도의 방어력을 지녔을 리는 없다.

심지어 파이널 어택을 포함한 일격은 방어력 무시 데미지가 아니었는가?

“후우. 이래서 먼지 날리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지르칸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벽과 천장에 처박히고, 바닥을 굴렀기 때문에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

하지만 그에게서는 그 어떤 상처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설마 아까 그 상황에서 저런 재미있는 걸 준비해 놨을 줄이야.”

“……대체 어떻게?”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카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지르칸이 어깨를 으쓱였다.

“죄송하지만 저는 루시퍼 같은 실패작과는 다릅니다. 마왕님의 힘이 담긴 지옥불의 힘을 완전하게 받아들였지요. 당신의 신성력은 대단한 편이지만, 저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저자의 말 대로다.

가만히 전투를 지켜보던 체란티아가 지르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니, 전 태양의 사제입니다. 그런데도 피해를 줄 수 없다니…… 그게 가능하나요?”

-가능하네. 애초에 마왕의 힘을 일부나마 계승한 이들은 모두 그렇다네. 그리고 태양의 사제가 지니고 있는 주 업무도 그와 관련이 있었지.

“설마?”

-그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쓰러트릴 수 없는 그들을 세상에서 지우는 것이 사도의 업무 중 하나였지.

“말이 안 되잖아요. 제 힘으로는 타격조차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처치하죠?”

-후우. 그건 앞으로 자네가 거쳐 갈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군. 너무 이른 시기에 저런 존재를 만났어.

한 마디로 지금 당장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긴다는 소리다.

“그럼 지금 저더러 그냥 죽으라는 거예요?”

-도망 칠 수 있으면 도망치게. 그게 최선이야.

체란티아가 이토록 부정적인 말을 내뱉을 정도면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젠장, 하지만…….’

지금은 카룬달이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

물론 혼자서 몸을 빼고자하면 신출귀몰로 언제든지 몸을 뺄 수 있다.

“도망치게!”

고민에 사로잡혀있던 카이의 귓가로 카룬달의 음성이 번개처럼 꽂혔다.

“자네 정도의 모험가라면 그 정도의 대비는 해놨을 터. 나는 괜찮으니 어서 자리를 피하게.”

“카룬달…….”

“살 만큼 살았고, 누릴 만큼 누렸네. 근래의 가장 큰 걱정이던 일족의 안전 또한 자네 덕분에 덜어놓았으니 나는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네.”

카룬달의 입가에는 어렴풋이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바보 같기는.’

자기 딴에는 걱정을 덜어주겠다고 미소를 지은 것일 테지만, 안력이 크게 강화된 카이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입가를 저렇게 떨어대고 있으면서.’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해도 카룬달 또한 한 명의 인격체.

당연히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두려울 것이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도망을 치라는 거야.”

카룬달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치라고 했지만, 오히려 그 말이 카이의 생각을 굳혔다.

‘지르칸을 베고, 카룬달과 함께 이 자리를 벗어난다.’

각오를 굳힌 카이의 표정을 쳐다본 지르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망을 쳐도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지만…… 표정을 보니 그럴 생각조차 없는 듯하군요.”

“그래. 널 쓰러트리고 카룬달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갈 거다.”

“푸흡!”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지르칸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지금 당신의 수준으로는 턱도 없습니다. 아!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지르칸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생겨난 아공간이 검 한 자루를 뱉어냈다.

고고한 백로처럼 백색 검신이 특징인 검.

“여기 있는 성검으로 저를 공격할 수 있다면 저는 큰 피해를 입겠지요.”

“……저게 성검이라고?”

당황한 카이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카룬달을 쳐다봤다.

그는 몹시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사룡과 몬스터들의 군대가 잉가르트를 침공했을 당시, 저자가 왕궁의 보고에서 직접 성검을 강탈해 갔네.”

한마디로 성검이 맞다는 소리.

“……아, 헬릭 님 보고 싶다.”

돌아가는 상황이 매우 엿 같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다음 순간 성검은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저는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지라. 성검은 아공간에 곱게 보관해 놓겠습니다.”

“치사하게…….”

그것은 자신의 패배 가능성을 0%로 만들겠다는 지르칸의 선고와도 같았다.

‘그 어떤 스킬을 사용해도 지르칸에게 피해를 입힐 수는 없어.’

이미 모두 사용해 보았다.

홀리 익스플로젼, 추적하는 빛의 화살.

게다가 방어력을 무시한 물리 공격까지.

하지만 그 어떤 방법도 지르칸에게 피해를 입힐 수는 없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카이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나 이번에 진짜 죽나?’

사망으로 인한 경험치 손실과 페널티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역시 혼자 도망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빠르게 흩어졌다.

“자, 그럼 우선 귀찮은 것부터 치워놓을까요.”

지르칸은 멀뚱멀뚱 서 있던 태양 분신의 목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아무리 분신이라고 하지만, 그야말로 허망한 죽음이다.

그 모습이 곧 있을 자신의 모습처럼 보였기에 카이는 기분이 울적해졌다.

-속지 말게.

체란티아가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성검 말일세. 내가 천상의 끝자락에서 패트릭과 대화를 나눴을 때 궁금해서 부탁한 적이 있네. 성검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니 보여달라고 말이야. 하지만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지.

“뭐라고요?”

-이미 자네에게 물려줬기에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수가 없다고 말이야.

체란티아가 너무나도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자, 카이는 저도 모르게 제 기억을 더듬었다.

‘패트릭이 성검을 나한테 이미 물려줬다고?’

단언컨대, 그런 사실은 없었다.

카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패트릭 님이 뭔가 착각을 한 걸 겁니다. 저는 받은 적 없어요. 게다가 성검은 지금 지르칸이 가지고 있잖아요.”

-아니야. 패트릭은 분명 자네에게 성검을 물려줬다고 했어.

“말이 안 되잖아요?”

성검은 현재 지르칸의 아공간에 잠들어있다.

성검이 두 개가 아닌 이상, 자신이 성검을 들고 있을 이유는 없다.

‘아니, 설령 두 개라고 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고.’

패트릭이 치매라도 걸린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되는 상황.

“그럼 이제 귀찮은 것도 사라졌으니 저희도 다시 시작해 보지요.”

이 상황이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지르칸이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그의 손아귀로 어둠이 몰려드는 순간, 체란티아가 불쑥 말을 이었다.

-나야 패트릭이 어떻게 자네에게 성검을 넘겨줬는지 모르네. 하지만 이런 말을 같이 하더군. 성검은 자신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자만이 다룰 수 있다고 말일세.

“자신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자?”

카이가 패트릭에게 이어받은 것이라고는 몇 개 없었다.

‘모두 여명의 검술관에서 배운 것들이지.’

패트릭이 죽기 전에 자신의 마지막 가르침을 남기려고 만들었다는 검술관.

카이가 그곳에서 배운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신성 폭발 스킬. 그리고…… 여명의 검법이지.’

대체 그것들을 배운 것과 성검을 다룰 수 있는 것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자세한 생각을 하기도 전에, 어둠의 파도가 카이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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