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18화 (218/441)

# 218

힐통령 218화

75장 성스러운 검 (7)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카이의 손에 들린 성검을 쳐다본 지르칸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럴 리 없습니다. 성검은 제가 분명히 아공간에 보관해뒀어요.’

타인의 아공간에 보관된 물건을 빼오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된다.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르칸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순식간에 열린 아공간에서 한 자루의 검을 꺼내드는 지르칸.

“…….”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의 성검과, 카이의 손에 들린 성검을 비교했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애초에 눈이 옹이구멍이 아닌 이상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제가 들고 있는 성검이 가짜로군요.’

미약한 신성력까지 담고 있기에 진짜인 줄 알았던 성검은 잘 만들어진 레플리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거,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네요.’

전투 시작 이후 처음으로, 지르칸의 얼굴에 식은땀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금부터는 긴장을 좀 해야겠군요.’

물론 성검 하나를 손에 쥐었다고 자신의 패배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르칸은 0%였던 패배 확률이 1%라도 생겨난 것에 충분한 위협을 느꼈다.

그 말은 절대로 질 수 없는 싸움이 질 수도 있는 싸움으로 바뀌었다는 소리니까.

그 시각, 카이는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뭐지, 이벤트인가?’

그 궁금증은 몇 초가 지나지 않아 풀렸다.

눈앞에 반짝이는 성갑을 입고 있는 기사가 나타났으니까.

-드디어 나와 선대들이 남긴 유산을 모두 모았군.

“……패트릭 님!”

기사의 정체는 광휘의 패트릭.

일전에 하녹스의 시련에서 모습을 본 적이 있기에 가까스로 기억을 할 수가 있었다.

그는 카이의 손에 잡혀있는 성검을 쳐다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선대의 유산은 우리의 손을 떠나 자네의 손에 쥐어졌네. 우리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고, 자네의 시대가 떠오르고 있지.

“경청하겠습니다.”

-앞으로 자네가 걸어가야 할 길에는 악인들은 물론, 뮬딘 교의 잔당과 마왕의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네. 자네는 1대처럼 아군의 보호를 우선시할 수도, 2대처럼 영혼을 구제할 수도, 나처럼 적들을 모두 베어버려 후환을 없애버릴 수도 있지. 물론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그 길을 걸어 나갈 수도 있을 터. 선택은 자네의 몫이네.

‘내가 믿는 신념, 나의 길이라.’

카이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추상적인 무언가를 떠올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남긴 여명의 검법은 상승의 경지에 다다르면 성검을 소환해 낼 수 있지. 그것은 훗날 자네가 도달해야 할 마음의 검의 초석이 될 것이네.

“마음의 검이요?”

-베고 싶다고 마음먹은 상대를 베어내는 것. 그것이 마음의 검이네. 성검은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검을 끄집어내는 행위에 불과하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패트릭은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르칸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길게 이야기 할 시간이 없을 것 같군.

“이야기는 앞으로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언제든지. 하지만 이 말만은 꼭 전해주고 싶었네.

패트릭은 잘생긴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카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의 이명이 광휘인 것은 저 얼굴이 만들어내는 환한 미소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지경.

-여태까지 정말 수고했다. 이제 그대의 검을 받아낼 수 있는 존재는 대륙에서도 손에 꼽을 것이다.

“자만하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꼭 듣고 싶었던 말이로군. 고맙네. 앞으로도 계속 정진하며 이 땅의 정의를 수호해주게.

그 말을 끝으로 패트릭의 신형이 천천히 사라졌다. 동시에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음? 축하하네.

체란티아는 멍하니 성검을 내려다보는 카이에게 인사를 건냈다.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이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보기에 바빠 대꾸를 할 여유가 없었다.

[숭고한 심판의 검]

등급 : 이터널 레전더리

공격력 : 신성 스탯의 40% 고정

힘 +50

민첩 +50

신성 +100

위엄 +50

악마/언데드에게 주는 피해 +50%

내구도 감소 무시

스킬 ‘광휘의 검‘ 사용 가능

패트릭의 사념과 대화 가능

광휘의 패트릭이 프리우스라는 이름을 붙여 사용하던 성검이다.

신성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검은, 멸악(滅惡)과 파마(破魔)의 기운을 지니고 있다.

*이 장비는 착용자와 함께 성장하는 장비입니다.

착용 제한 : 레벨 350, 태양의 사제 클래스.

내구도 ∞

‘정말 미쳤어.’

카이는 감탄이 절로 흘러나오는 아이템 정보에 입만 멍하니 벌렸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파격적인 공격력이었다.

‘검의 공격력이 신성 스탯의 40%로 고정이라고?’

현재 카이의 신성 스탯은 1,500.

하지만 성검을 소환하고 있을 때는 무려 1,600으로 상승한다.

한 마디로 지금 이 상태에서 성검의 공격력은 무려 640을 웃돈다는 뜻.

‘침묵하는 냉기의 롱소드 공격력이 최대 412였던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공격력이야.’

심지어 최소 공격력도 아니고, 최대 공격력이 412였다.

그렇다고 침묵하는 냉기의 롱소드가 저급한 장비인가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315레벨 제한이 붙어있는 유니크 등급의 검은 구하고 싶어도 쉽게 못 구하는 수준이었으니까.

‘성검 소환 스킬의 등급은 레전더리인데, 성검의 등급은 이터널 레전더리야.’

누군가가 레전더리 등급의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 말도 안 되는 업적 때문에 밀려있던 알림이 물밀 듯 밀려왔다.

띠링!

[유저 중 최초로 레전더리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스페셜 칭호, ‘전설 기술 보유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태양의 사제들이 남긴 모든 성물을 모아 세트 효과가 발동합니다.]

‘아니. 전설 기술 보유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세트 효과라고?’

남들은 보기도 힘든 스페셜 칭호지만 카이에게는 이미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

심지어 성물들의 등급은 모두 이터널 레전더리.

전례 없던 효과가 나올 것이 분명하기에, 흥미도는 이쪽이 압도적으로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세트 효과 확인.”

[세트 : 사도의 길]

사도의 성물 세 개를 모두 장착할 시 효과 적용.

모든 스탯 +100 상승.

신성력을 소모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 +30%.

모든 스킬의 신성력 소모량 -30%.

“……!”

사람이 너무 놀라면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법.

카이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어디선가 턱하니 막혀버린 목소리는 성대를 지나지 못했다.

‘무, 물론 성물들을 모으는 게 원래는 미친 듯이 어렵겠지만…….’

개발자들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성물들을 얻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멸망한 아인종들의 도시를 전전하면서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찾는 것은 기본.

때로는 뮬딘 교와 전쟁을 벌이면서 하나씩 되찾아 와야 한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모았어도, 이 세트 효과를 보면 지난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질 거야.’

하물며 큰 고생조차 하지 않은 카이는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물이 고일 지경이었다.

카이는 내친김에 전설 기술 보유자의 효과도 확인했다.

[전설 기술 보유자]

등급 : 스페셜

내용 : 유저 중 최초로 레전더리 스킬을 획득한 자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킬의 숙련도 상승 속도가 증가합니다.(이 효과는 칭호를 장비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이것도 좋아.’

모든 유저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바로 스킬 숙련도 노가다.

헌데 이 칭호는 그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카이 입장에서는 두 팔 벌려 환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럼 이제 마무리를 짓자.’

카이가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시선을 받은 지르칸이 몸을 움찔거렸다.

‘제, 제가 겁을 먹었다고요?’

풋내기 모험가가 뿜어내는 상상 이상의 격.

그 기세에 순간적으로 몸이 겁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지르칸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저는 마왕 앙골 모아님의 피를 하사 받은 흑마법사. 고작 모험가 따위에게 겁을 먹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카이가 환골탈태에 가까운 힘을 아무렇지도 않게 흩뿌리듯, 지르칸도 전력을 이끌어냈다.

콰드드드드드득!

지르칸의 전신에서 짙은 어둠의 마나가 넘실넘실 흘러나왔다.

일반인조차 육안으로 구별해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어둠의 마나.

철창 속에 갇혀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룬달이 공포에 몸을 떨었다.

“으음……. 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이야!”

그는 곧장 경고를 할 요량으로 카이를 쳐다봤다.

하지만 카이를 쳐다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입이 꾹 다물어졌다.

‘겨, 경고를 해야 하는데…….’

왜일까?

카이를 쳐다보는 것 만으로 빠르게 뛰던 심장이 차츰 안정을 취해갔다.

그뿐만이 아니라 카이가 질 것 같지 않다는 이유 모를 신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요란하네.”

지르칸이 뿜어내는 사나운 마나를 쳐다보던 카이가 짤막한 평가를 내렸다.

-……굉장히 삭막한 반응이군. 저 정도 수준의 흑마법사는 내가 살던 시대에도 드물었네.

“그래서 제가 조심해야 할 수준인가요?”

체란티아가 낮게 웃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물론 그건 아니지. 가서 찢어라.

“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카이는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어떤 기교도 섞이지 않은 평범한 걸음이었다.

“크읏!”

하지만 카이를 마주한 지르칸은 그 평범한 걸음에서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현재 그의 눈에 보이는 카이는 자신의 목숨을 거두러 오는 저승사자와 다를 게 없었으니까.

“얌전히 죽으십시오!”

지르칸의 간절한 부탁과 동시에 사납게 요동치던 그의 마나가 수백 개의 창으로 변했다.

스킬 하나 하나가 랭커들도 일격에 사망하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마법이다.

쇄애애애애액!

카이를 향해 쇄도하는 수백 개의 어둠의 창.

자신에게 날아드는 공격들을 쳐다보던 카이는 본능적으로 중얼거렸다.

“스킬 사용, 광휘의 검.”

동시에 카이가 쥐고 있던 성검.

일찍이 패트릭이 프리우스라 명명한 성검의 검신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건…… 신성력?’

검신을 뒤덮은 것은 밀집된 신성력.

그것은 보통의 신성력과는 지닌 힘부터가 남달랐다.

화아아아악!

날아오던 어둠의 창들은 광휘의 검 앞에서 기세가 크게 꺾였다.

카이는 기계처럼 걸어 나가며, 기계처럼 검을 휘둘렀다.

그 때마다 속절없이 잘리며 흩어지는 어둠의 창.

‘이대로는……!’

위기감을 느낀 지르칸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마법을 동원했다.

“다크니스 포그!”

“헬 파이어!”

셀 수도 없이 많은 마법이 카이를 향해 쏘아졌다. 개중에는 카이가 익히 알고 있는 마법도 있었고, 생전 처음 보는 마법도 있었다.

하지만 공통점은 단 하나뿐.

바로 성검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게 사라진다는 것뿐이었다.

“크윽!”

결국 지르칸이 최후의 최후에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인질극이었다.

“머, 멈추십시오.”

지르칸은 왼손을 카룬달이 갇혀있는 철창을 향해 뻗었다.

“한 걸음만 더 다가오면, 철창이 가시로 변해 저 드워프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겁니다.”

우뚝.

제자리에 우뚝 멈춰선 카이는 가만히 지르칸을 쳐다보았다. 현재 그가 느끼는 감정은 다름 아닌 허탈함이었다.

‘개인의 강함이란 것은 결국 이렇게 덧없는 건가.’

아까까지만 해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강대한 힘을 자랑하던 지르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 세상에 성검을 불러낸 순간, 그의 강력함은 빛이 바랬다.

‘결국 강함은 상대적인 거야.’

자신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하다면 자신은 약자가 된다.

그리고 추락한 강자의 추한 모습에 카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검을 늘어트렸다.

그 모습을 수긍으로 받아들인 지르칸의 눈동자에는 희망이 넘실거렸다.

‘좋아. 이대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후퇴하기만 하면…….’

놈도 지쳐있을 터.

동료들을 모아서 다시 한 번 놈을 치면 그 때는 확실히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도망이 아닌 전략상의 일보 후퇴일 뿐.

지르칸은 오른손으로 교묘하게 텔레포트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두고 볼 텐가?

“……아뇨.”

고개를 천천히 흔들어 보인 카이는 검 손잡이를 꽉 쥐었다.

“움직이지 마십……!”

무언가 위험을 느낀 지르칸이 경고를 하려는 순간,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어느새……?’

울컥.

지르칸은 자신의 목에서 분수처럼 터져나오는 피를 쳐다보며 어지러움을 느꼈다.

언제 다가와서 자신의 목을 베었는지, 그는 카이의 움직임을 보기는커녕 느끼지조차 못했다.

“그럼 잘 가라.”

카이는 두 손으로 성검을 움켜잡고는 그대로 지르칸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푸욱!

“커헉……!”

자신의 몸속에 가득 퍼지기 시작한 신성력을 느끼며, 지르칸은 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대륙에 악명을 떨치던 자신이 풋내기 모험가에게 최후를 맞이하다니.

하지만 지르칸은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미소를 지었다.

‘뮬딘 교…… 터무니없는 강적을 만나겠군요.’

그 재미있는 장면을 직접 보지 못한다는 것이 마지막 아쉬움으로 남을 뿐.

옅어지는 의식 속에서 지르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먼저 가겠습니다, 마왕님.’

그리고 그 눈은 두 번 다시 뜨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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