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힐통령 219화
75장 영혼의 인도자 (1)
미드 온라인에서는 사냥이 끝날 때마다 늘 치러야 하는 과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전리품 루팅.
물론 이 과정을 싫어하는 유저는 없다고 보면 된다.
특히 보스처럼 강력한 적을 처치한 유저들이라면 더욱 그렇고,
그 전리품을 혼자 독식할 수 있는 유저라면 더더욱 그렇다.
띠링!
[마왕추종자, 웃는 얼굴의 지르칸을 처치하셨습니다.]
[대륙의 공적으로 선포되어 있어 현상금이 걸려있는 대상입니다.]
[현상금은 모험가 협회에서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지르칸의 죽음에 마왕의 세력이 당신의 존재를 거북해합니다.]
[마왕 추종자들과 적대 상태가 되었습니다.]
[마왕 추종자들은 언제든지 당신에게 암살자를 보낼 수 있습니다.]
[태양신 헬릭은 이 땅에 정의를 바로 세운 당신을 칭찬합니다.]
[선행 스탯이 30만큼 상승합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로 선행 스탯이 15만큼 추가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스탯 포인트를 155개 획득했습니다.]
[지르칸의 그림자 로브를 획득하였습니다.]
[지르칸의 마력 증폭 팔찌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북-헬 파이어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북-다크 스피어를 획득하였습니다.]
[던전 지도-타락의 성지를 획득하였습니다.]
“좋네.”
카이는 방긋방긋 미소를 지으며 전리품들을 확인했다.
‘스킬 북은 두 개 다 유니크. 그리고 로브랑 팔찌도 유니크네.’
모두 카이가 사용할 일은 없지만 매우 비싼 가격에 팔릴 것이 불 보듯 뻔한 장비들.
‘서버에 하나씩 밖에 없는 아이템들이야. 못해도 개당 1억 이상 씩은 받아낼 수 있어.’
특히 지금은 공성전이 유행하는 전쟁의 시기.
전력 강화를 위해 고급 장비를 사고 싶어 하는 랭커들은 줄을 섰다.
여태까지는 살 만한 물건이 없어서 지갑을 열지 않았을 뿐.
이 정도 가치의 아이템들을 보여준다면?
‘사고 싶어서 안달이 나겠지.’
카이는 슬슬 모아놓은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통장에만 50억이 넘게 있는데…….’
은행 이자율은 기껏해야 2% 수준.
50억을 넣어둬도 1년에 들어오는 이자는 고작 1억이라는 뜻.
“뭐, 언제든 쓸 때가 오겠지.”
돈은 없을 때가 문제이지, 넘칠 때는 여유롭게 때를 기다려도 되는 법이다.
-신나 보이는군.
아직 강림 스킬의 지속 시간이 남아 있었는지, 체란티아가 말을 걸었다.
“예. 선물 받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내가 더 큰 선물을 줄 수 있을 것 같군. 지르칸의 시체를 보게나.
“지르칸의 시체……?”
고개를 돌린 카이는 식어버린 지르칸의 이마 부근에서 무언가가 빛나는 것을 목격했다.
“이게 뭡니까?”
-뭐겠나. 이제 그대에게도 영혼을 인도할 기회가 찾아왔다는 뜻이지.
“영혼의 인도요?”
-성환에 담아놓은 나의 기술은 잊지는 않았겠지?
“아…….”
분명 성환 페트라에는 영원한 안식이라는, 체란티아의 고유 기술 중 하나가 담겨 있었다.
여태까지는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몰라서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던 스킬.
‘그게 죽은 사람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었나?’
카이가 멀뚱멀뚱 지르칸의 시체를 쳐다보고 있자, 체란티아가 재촉했다.
-이런, 늦장부리다가는 그의 영혼이 소멸할 수도 있네. 서두르게.
“예. 그럼 바로…… 영원한 안식.”
스킬을 사용하자 성환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르칸의 이마 부근에서 반짝거리던 무언가를 그대로 흡수했다.
띠링!
[영원한 안식을 사용하셨습니다.]
[지르칸의 영혼을 불러냅니다.]
-으음…….
피곤한 목소리로 자리에서 일어난 지르칸은 카이를 쳐다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랐다.
-당신……! 그래요! 저는 당신과 한창 싸우던 중에……?
그의 성검을 꺾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그 사실을 떠올린 지르칸은 황급히 제 몸을 내려다봤다.
-아아…….
현재 그의 몸은 카이가 영체화를 사용할 때처럼 반투명한 상태였다.
지르칸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자신의 시체를 쳐다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꿈이 아니었군요
“응, 넌 죽었어.”
-다크 스피어.
울컥한 지르칸이 곧장 마법을 사용했지만, 당연하게도 현재 그는 한 줌의 마나도 없는 영혼.
주문이 시전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포기하고 앉아. 너 죽었다니까.”
-……후우. 절 불러낸 용무는 뭡니까. 조롱이라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지르칸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그야…… 아니, 그런데 죽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침착하지?”
-이미 죽은 마당에 침착하지 못할 이유는 또 어디 있습니까.
“아…….”
역시 마법사들은 머리의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는 기분이다.
저도 모르게 납득을 마친 카이는 지르칸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럼 나는 이제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영혼의 인도라는 걸 왜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체란티아가 하라고 하니 등 떠밀려 했을 뿐.
-카이여.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
체란티아의 뜬금없는 발언에 카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자신이 지치고 힘들 때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커다란 축복일세. 하지만 그 존재가 마왕이나 악신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특히 저 지르칸이라는 흑마법사의 강함은 비정상적이야. 분명히 마왕의 피를 흡수했을 걸세.
‘그걸 흡수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마왕은 물질계가 아닌 지옥의 존재. 그 피를 흡수한 자의 영혼은 물질계와 지옥의 경계선에 놓이게 되지.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카이는 잠시 고민을 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영혼이 경계선에 놓이면 애매해지지 않습니까?’
-맞네. 그리고 신들께서는 그렇게 애매해진 영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소멸시켜 버리지.
‘영혼의 소멸…….’
-소멸당한 영혼에게는 죽음 뒤에 있을 낙원도, 환생의 기회조차도 없네. 그저 무(無)로 돌아갈 뿐.
‘악을 섬긴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일이군요.
-맞네. 그러니 그를 한 번 잘 설득시켜 보게.
‘설득이라뇨?’
-내가 준 정보들을 가지고 그와 협상을 해보게. 그대는 영혼을 인도하여 안식을 내려주는 나, 체란티아의 후예이기도 하니 잘 할 수 있을 걸세. 마지막으로 힌트를 주자면, 빛의 군단에 소속된 빛의 전사들도 대부분은 나의 적이었던 존재들일세. 음. 그럼 이만 가봐야겠군…….
강림 스킬의 지속 시간이 때마침 끝났는지, 체란티아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흩어졌다.
‘체란티아도 자러간 건가.’
끄응.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누른 카이는 눈앞의 지르칸을 쳐다봤다.
‘지르칸과 협상을 하라고?’
협상이란 서로가 주고 받을 것이 있을 때 이루어지는 행위다.
하지만 카이는 눈앞의 영혼에게 받을 것도, 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아니. 받을 것이 아예 없지는 않을 거야.’
마왕의 세력에 대한 정보.
그리고 지르칸 정도의 흑마법사라면 꽁쳐 놓은 던전이나 재보들도 상당할 터.
생각을 마친 카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를 부른 이유는, 마왕의 세력에 대한 정보와 네 재산이 탐나기 때문이야.”
-…….
카이의 솔직한 발언에 지르칸은 입을 쩍 벌렸다.
-지, 지금 그게…… 저를 죽인 사람이 할 말입니까?
“하지만 넌 나쁜 놈이었잖아.”
-웃기는군요. 대체 그 선과 악은 누가 정하는 거죠? 그건 지극히 주관적인…….
“맞아. 내 기준으로 넌 나쁜 놈이었다는 소리지. 너 죄 없는 주민들도 자주 학살했잖아.”
할 말이 없어진 지르칸은 관심이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에게 패하여 죽은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자존심도 없이 당신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는 없습니다.
“자존심?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거래를 하자고 제안하는 거야.
-하, 이미 죽어 영혼이 되어버린 저에게 대체 무엇을 줄 수 있지요?
“네 영혼이 소멸하는 건 막아주지.”
멈칫.
한껏 여유를 부리던 지르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 표정을 빠르게 읽어낸 카이는 지르칸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너도 알지? 마왕의 피를 탐한 자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지.”
-…….
“이성적으로 생각해봐, 넌 벌써 죽었어. 그리고 이대로 있으면 곧 영혼까지 소멸되겠지. 그렇게되면 앙골 모아인지 앙팡 모아인지가 널 기억이나 할 것 같아? 네 죽음을 애도하며 기일마다 국화꽃이라도 줄 것 같냐고.
[중급 화술 스킬로 인해 지르칸의 평정심에 금이 갑니다.]
[지르칸이 앙골 모아에 대한 조그마한 의심의 싹을 피워냅니다.]
‘이 녀석, 보기보다 멘탈이 약하네.’
쾌재를 부르는 카이와는 달리, 한참이나 고민을 하던 지르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협력하면, 영혼의 소멸을 어떻게 막아주겠다는 겁니까.
“간단해. 네 영혼을 내 빛의 군단에 소속시켜주지.”
-빛의 군단이라니? 지금 저보고 자신을 죽인 이를 위해 싸우라는 겁니까?
“그게 유일한 방법이야. 선택은 네 몫이고.”
말을 마친 카이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눈을 감아버렸다.
지르칸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고민이 이어지기를 한참.
마침내 결정을 내린 지르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
누구라 해도 죽음 앞에서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하물며 영혼이 소멸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느껴지는 공포는 얼마나 거대할까.
그러나 그는 그 공포를 받아들였고,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
설마 그가 거절할 줄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카이가 눈을 깜빡였다.
“이유는?”
-지칩니다. 타인을 위해 평생을 살았는데, 죽어서까지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살기는 싫습니다. 어차피 죽은 마당에 충성을 져버리는 것도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럼 협상은 결렬인가?”
-예. 이제 절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지르칸은 자신의 결정에 그 어떤 후회도 없다는 듯, 시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던 카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것도.”
-……예?
“아무것도 안 한다고. 태양교의 교리는 자비롭거든.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아.”
오히려 카이는 태양교의 성호를 그리며 지르칸을 위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대체 무슨……?
설마 태양교의 사제가 자신을 위해 기도해줄 줄은 몰랐던 지르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도를 마친 카이는 올곧은 눈빛으로 지르칸을 똑바로 마주했다.
“넌 진짜 나쁜 새끼였지만, 마지막은 그럭저럭 멋있었다고 내가 기억해줄게.”
-기억이라…….
곧 존재 자체가 소멸되는 자에게 있어서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건, 그 무엇보다도 커다란 위안이었다.
“덕분에 전직도 했고, 성물도 다 모았어. 그동안 고마웠다. 그럼 가는 길 편안하게 가라고.”
-……후우, 열 받지만 어쩔 수 없지요. 피할 수 없으니 즐길 수밖에.
지르칸은 자신의 영혼이 서서히 깨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 남기겠습니다. 모험가들을 믿지 마십시오.
“가는 순간까지 이간질이냐?”
-이간질이 아닙니다. 제가 뮬딘 교와 손을 잡기 위해 그 쪽 교단을 방문했을 때, 그곳 소속의 모험가들을 몇 명 봤습니다. 당신 정도는 아니지만, 모험가들 기준으로는 최상급의 수준을 지니고 있었지요. 게다가 뮬딘 교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명심하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세력과 전쟁을 벌일 준비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것을.
“명심할게.”
-저를 죽인 자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마지막 담화는 제법 즐거웠습니다.
“나도 나쁘지는 않았어.”
지르칸이 그 말을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는 모른다.
그의 영혼은 이미 소멸당한 상태였으니까.
“기분이 뭐…… 나쁘지는 않네.”
영혼을 인도한다는 것.
그것은 비단 영혼이 소멸되지 않게 막는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띠링!
[영혼과의 대화를 성공적으로 마치셨습니다.]
[비록 지르칸의 영혼은 소멸을 피하지 못했지만, 그는 당신과의 대화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그는 당신이 자신의 능력 중 일부를 이어받을 것을 소망했습니다.]
[지능 스탯이 +30만큼 상승합니다.]
[멀티 캐스팅 능력이 강화되었습니다.]
“……끝까지 이상한 녀석.”
자신을 죽인 상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유산까지 남기다니.
처음 만나던 순간부터 괴짜라는 생각은 했지만, 마지막까지 이럴 줄이야.
카이는 가만히 지르칸의 시체를 쳐다보더니, 홀리 익스플로전으로 시체를 소멸시켰다.
“이건 내 나름대로의 감사 인사야.”
지르칸의 시체를 협회에 가져가면 현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카이는 그러지 않았다.
‘그럼 이제 가볼까…….’
전투를 성공적으로 끝마쳤음에도 느껴지는 왠지 모를 아쉬움.
떠날 준비를 하는 카이의 귓가로, 머쓱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저…… 일이 모두 끝났으면 이제 이것 좀 풀어주면 안 되겠나……?”
“…….”
그는 자랑스러운 드워프들의 국왕, 카룬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