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
힐통령 220화
76장 휴식기 (1)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좋은 제안을 해주어 고맙네.”
드워프들을 무사히 드워프들의 대피소로 데려간 카이는 카룬달과 악수를 나누었다.
“리버티아의 위치는 이곳입니다.”
“호오, 괜찮은 지역이군. 그런데 이쪽의 산맥은 혹시…….”
“광산입니다. 다양한 광물이 매장되어 있으니 여러분도 좋아하실 거예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만. 이곳의 정리가 끝나는 대로 연락을 하겠네.”
“예, 그럼 그때 텔레포트를 도와줄 인력을 보내겠습니다.”
드워프들의 리버티아 합류가 정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잉가르트의 위치는 뮬딘 교와 마왕 추종자들에게 발각된 상황이다.
그들이 언제 재침공할 지는 누구도 몰랐기에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
결국 카룬달은 일족의 미래를 생각해 보금자리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것으로 당초에 구상하던 리버티아는 완성이야.’
인어와 엘프, 그리고 이제 드워프까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아인종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은 리버티아가 유일하다.
‘입소문을 한 번 더 타겠어.’
조만간 다시 한 번 영지의 등급이 오를 것이라고 확신한 카이는 눈물겨운 가족 상봉을 하고 있는 드워프들을 바라보았다.
“엄마! 아빠!”
“이제 절대로 저 두고 다른 데 가면 안 돼요?”
“물론이지 욘석아. 핏덩이 같은 널 두고 우리가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
“밥은 잘 먹었고? 어휴, 내 새끼 마른 것 좀 봐.”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상봉한 것처럼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서로를 끌어안는 드워프 가족들!
그 모습에 코끝이 찡해진 카이는 콧잔등을 긁으며 생각했다.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시간을 확인하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카이.
“이번에 몇 개나 터트렸으려나…….”
혼자 중얼거리는 카이의 눈앞으로, 그가 기다리던 알림 폭격이 떨어졌다.
띠링!
[뮬딘 교로부터 드워프 일족을 성공적으로 구출하셨습니다.]
[메인 에피소드 : 부러진 망치의 발동 조건이 파괴되었습니다.]
[부러진 망치 퀘스트가 소멸됩니다.]
[이에 관련된 하위 퀘스트 1,859개가 함께 소멸됩니다.]
[태양신 헬릭은 드워프들의 감동적인 상봉을 지켜보며 눈물을 닦을 손수건을 찾습니다.]
[선행 스탯이 40개 상승합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로 선행 스탯 20개가 추가적으로 상승합니다.]
[드워프 일족과의 우호도가 최고치를 갱신합니다.]
[그들은 당신의 일족의 은인으로 여기며, 당신이 하는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60개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카이.
하지만 그는 이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아인종들은 모두 해방시켰어. 그럼 당분간 선행 스탯이 크게 오를 일은 없다는 건가?’
요컨데 스케일의 문제였다.
불행에 빠진 개인을 도와줘도 선행 스탯은 오르겠지만, 수치는 1개에서 2개 정도.
‘반면에 일족의 멸망과 비견되는 스케일이라면, 최소 20개부터 시작이지.’
부패한 영주들만 골라서 찾아다니지 않는 이상, 카이의 성장 속도는 대폭 느려진다는 소리.
“하긴, 지금 수준만 유지해도 문제될 건 없지만.”
조용히 중얼거리던 카이는 오랜만에 랭킹 창을 열었다.
[Rank No. 1. 카이 LV.413]
[Rank No. 2. 유하린 LV.342]
[Rank No. 3. 다크샤 LV.328]
…….
랭킹 2위와 3위가 14레벨 차이가 나는데, 1위와 2위는 무려 70레벨이 넘게 차이난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수치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는 예전처럼 소란스럽지 않았다.
-또 혼자서 레이드 보스 잡거나 전쟁이나 하고 있는 거겠지.
-뭐야. 평소랑 똑같잖아. 신경 쓸 필요는 없겠네.
-혹시 언노운의 모험 같은 거 특집으로 방송해 주지 않으려나? 해주면 대박인데.
└언노운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방송을 하겠어? 이미 돈이나 명예는 차고 넘치는데.
└맞는 말이야. 언노운은 스테디셀러 동영상만 만들기로 유명해. 업로드한 지 몇 달이 지난 영상들도 간간히 랭킹 100위 안에 들어올 정도로 꾸준히 팔린다고. 모르긴 몰라도 이제 자산이 최소 수백만 달러일걸?
이미 플레이어들은 카이의 비정상적인 플레이와 강함에 충분히 면역이 된 상태였다.
우스갯소리로 미드 온라인 랭킹 1위는 신의 것이고, 2위부터가 인간계 랭킹이라는 말이 나돌아다닐 정도였으니까.
‘그렇다면 유하린이 인간계 랭킹 1위인건가?’
피식 웃음을 짓던 카이는 랭킹표를 잠시 훑어보았다.
‘못 보던 사이에 순위권에도 변동이 조금 있었네.’
우선 최상위권을 독식하던 세계 10대 길드 소속 랭커들의 순위가 크게 떨어졌다.
물론 그 이유를 유추해 내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공성전 때문이겠지.’
길드 소속의 랭커들은 사냥을 포기하고 길드의 이익을 위해 공성전에 참여했다.
당연히 하위권과의 격차가 줄어들었고, 이내 추월당할 수밖에.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큰 손해는 아닐 것이다.
점령한 성에서 다달이 걷는 세금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강력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거야.’
아예 처음 보는 이름들도 랭킹표에서 제법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흐으음…….”
카이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랭킹을 뒤집는 건 불가능해.’
랭커들은 모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더군다나 그런 이들이 방심하지 않고 노력까지 겸비하며 경쟁하는 곳이 바로 최상위권 랭킹.
그런데 처음 보는 이들이 갑자기 등장한다?
‘이유는 하나겠지.’
그들이 모두 유하린처럼 괴물이 아닌 이상, 히든 클래스를 획득한 것이 분명하다.
“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자신의 바람을 중얼거리는 카이의 귓가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의뢰인. 벌써 왔어?”
고개를 돌리자 머리를 뒤로 묶어 올린 카밀라가 보였다.
시원하게 뻗은 그녀의 목선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일하던 중인가 봐? 땀 많이 흐르네.”
“네 장비 만들던 중이었지. 드래곤 비늘이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다루기 힘들더라고.”
“포기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드워프한테 맡기면 되니까.”
“와, 그 발언 굉장히 서운하다?”
“됐고. 장비는 언제 완성 될 거 같은데?”
“길어봐야 게임 시간으로 일주일 정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카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방방 뛰었다.
“뭐야, 그 눈빛은! 누나 못 믿어?!”
“빨라도 너무 빠르니까…… 진짜 믿어도 되는거 맞지?”
“흥. 히든 클래스의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해. 결과물은 확실할 테니까 의심 좀 그만하고. 어이없어 진짜!”
토라진 듯 몸을 휙 돌려 떠나가던 카밀라는 눈물을 보이는 드워프들을 쳐다보더니 우물쭈물 다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드워프족 구출…… 고, 고마워.”
“별말씀을.”
그녀와 함께 드워프들을 쳐다보던 카이는 오랜만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
“후우…….”
페가수스 사의 사장, 마르코의 한숨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아무리 자유의 국가라 불리는 미국이라도, 직원들은 결국 사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법.
회의실의 임원들은 눈알만 굴리며 숨조차 조심스럽게 뱉어냈다.
“박사. 놈의 레벨이 벌써 400이라고?”
“넘죠. 정확히는 413입니다.”
“미치겠군. 후우!”
답답함에 숨을 크게 뱉어낸 마르코가 정장 안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며 직원들에게 흔들어보였다.
“미안하지만 답답해서 한 대 펴야겠네. 다들 괜찮지?”
“물론입니다, 사장님.”
“이럴 때 피셔야지요.”
“자네들도 답답하면 펴. 마음속에 낀 먹구름을 입으로라도 뱉어내야지. 안 그런가?”
“…….”
“며, 면목이 없습니다.”
마르코 사장의 허락이 떨어졌음에도 감히 담배를 꺼내는 간 큰 사람은 없었다.
그 먹구름을 만들어낸 존재가 무능한 자신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었으니까.
치이이이익.
눈치 빠른 비서가 빠르게 재떨이와 라이터를 가져와 마르코의 시가에 불을 붙였다.
“애꿎은 화풀이는 그만하고, 대책을 강구해 보지요.”
“쓰읍. 후우우…… 화풀이라고?”
연기를 뱉어내던 마르코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시선의 끝자락에 잡힌 것은 짐 루이스 박사.
이 자리에서 마르코에게 그런 말을 뱉어내고도 무사할 수는 이는 그 정도뿐이었다.
“저들의 잘못이 아니잖습니까. 아니, 애초에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 하지만 결과가 나왔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지거나 해결해야 하네. 안타깝게도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그의 말대로였다.
한창 잘나가는, 그것도 랭킹 1위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이머를 사측에서 제재한다?
심지어 명분도 없었다.
그저 그의 플레이가 매순간 기발했고, 재능도 있었으며, 하다못해 운조차 그의 편이었을 뿐.
이걸 제재하면 당장 모든 게이머들이 들고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 결과는 주가 그래프가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고.
결국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문제였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한다.
“마이크. 녀석이 날려먹은 퀘스트가 벌써 몇 개지?”
“어…… 그, 그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치에 마이크가 쩔쩔매자, 짐 박사가 한숨을 내쉬며 대신 말했다.
“5,095개입니다.”
“알려줘서 고맙네. 그래, 말 그대로 5천 개가 넘었어. 반 만개란 말일세, 반 만개!”
콰아앙!
회의실 책상을 쾅 내려친 마르코는 게임의 밸런스 팀을 이끌고 있는 맥스를 노려봤다.
“인어족과 엘프족의 실패를 밑거름 삼아 드워프 구출 퀘스트는 반드시 사수하고 성물도 카이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자네에게 이 말을 들은 지 두 달도 되지 않았어.”
“죄, 죄송…….”
“대체 뭐가 문제인가! 조치는 충분히 취했다고 하지 않았나?”
꿀꺽.
회의가 소집될 때부터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올 줄 알았던 맥스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조치는 취했습니다만…… 카이의 실력이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겐가?”
“우선 화면의 자료를 봐주십시오.”
맥스가 조심스럽게 스크린을 켜자, 회의실의 조명이 자동적으로 어두워졌다.
모두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했다.
“저희 밸런스 팀에서는 인어족과 엘프족의 실패를 몇 번이고 검토하고 충분히 학습했습니다.”
스크린에는 카이가 인어 족의 멸망 퀘스트에서 상대한 나가들의 레벨과 스탯.
그리고 당시 카이가 보유한 스킬과 스탯들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었다.
“인어족 퀘스트 때는 확실히 저희들의 계산 밖이었습니다. 마법의 소라고둥과 불사 콤보는 게임을 개발할 때 저희는 물론, 슈퍼 A.I인 라무스조차 고려해 보지 않은 경우의 수였으니까요.”
“그 콤보, 대비는 해뒀겠지?”
“예. 힘들었지만 개발팀과 손을 잡고 긴급 패치 데이터를 만들었습니다. 아마 다음 패치 때 적용이 될 거고, 카이에게도 직접 공지를 띄울 겁니다.”
화면은 이어서 엘프족 퀘스트로 넘어갔다.
“솔직히 이 때는 카이의 운이 좋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운이 좋았다?”
“포이즌 마스터. 그 스킬북은 현재 아오사만이 드랍하도록 설정해놨습니다. 설마 카이가 아오사를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건 인정하도록 하지.”
입을 꾹 다문 마르코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솔로 플레이어가 레이드를, 그것도 최소 길드 단위로 공략해야하는 보스를 잡아낼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영상이 공개됐을 때의 파급력은 감히 세계를 뒤집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포이즌 마스터를 습득한 카이가 하필이면 태양의 사제인 것도, 게다가 하필이면 독에 중독된 루테리아와 만난 것도 안 되는 행운입니다.”
“후우…….”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행운들의 연속이다.
행운의 여신이 카이를 보살펴주기라도 하듯, 그는 두 개의 성물을 너무나도 손쉽게 획득했다.
“그래서 저희 밸런스 팀은 카이가 세 번째 성물을 획득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고자, 드워프 족 구출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난이도를 대폭 상향시켰었습니다.”
스크린이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