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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통령 태양의 사제-221화 (221/441)

# 221

힐통령 221화

76장 휴식기(2)

“우선 시나리오상 별 접점이 없어야 할 뮬딘교와 마왕추종자들의 세력이 동맹을 맺도록 유도했고, 사룡 시네라스와 웃는 얼굴의 지르칸이라는 보스들까지 시나리오에 대거 투입. 카이가 알면서도 손을 못 써야 마땅한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다 뚫고 드워프 족을 구출했다고?”

“……예.”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후우.”

치이이익.

재떨이에 시가를 강하게 지진 마르코 사장은 상체를 앞으로 두 손가락을 깍지꼈다.

그러자 어두웠던 회의실이 다시 밝아졌고, 그는 짐 박사에게 물었다.

“박사는 예전에 놈이 얼마 안 가서 직업을 박탈당할 거라 하지 않았나?”

“…….”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기에, 짐 박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입만 다물고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박사 말대로 대책을 강구해보자고. 이미 유저들은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베이거스를 처치하고 뮬딘교의 존재를 파악했네. 게다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타락한 몬스터들을 해치우며 뮬딘교의 비밀 병기 중 하나인 자탄 레이드를 시도하고 있어. 자, 그럼 조만간 세 번째 에피소드가 열리겠지? 그러면 자연스럽게 네 번째 에피소드에 대한 단서를 뿌려야 해. 그런데 쨔잔! 언노운 그놈이 네 번째 에피소드를 아주 시원하게 날려먹었다고. 빌어먹을 멸망한 영웅들의 흔적 에피소드를 말이야, 젠장!”

“……사실 네 번째 에피소드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뭐? 그게 무슨 뜻이지?”

여기서 더 악화될 상황이 있다고?

마르코 사장이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박사를 쳐다봤다.

“이제 뮬딘교의 존재에 대해선 일반 유저들도 대부분 압니다. 메인 에피소드 퀘스트에서 그토록 단서를 줬으니 머리가 달려 있다면 알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언노운이 방송한 비르 평야 전투에서도 뮬딘교가 드러났고, 말씀하신 자탄도 조만간 쓰러집니다.”

“용건만 간단히 말해보게.”

“뮬딘교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약화되는데, 태양교의 전력이 건재해도 너무 건재합니다. 본래의 시나리오라면 뮬딘교의 내부 공작으로 부패한 태양교는 무너져야하지요. 구심점을 잃은 대륙은 혼란에 빠지고, 그 공포와 무질서를 뮬딘교가 차례대로 먹어가면서 공포의 상징으로 떠올라야 합니다.”

“하지만 카이가 교황의 목숨을 살려내면서 태양교는 오히려 단단해졌지.”

“예. 이제 대륙을 공포로 물들일 타락한 교황은 없습니다.”

“…….”

다시 한 번 회의실에 적막함이 찾아들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카이를 견제할 유저, 아니 길드조차 없습니다. 게다가 그를 비호하는 태양교의 힘은 개편 이후 매우 강력해진 상태이지요. 이들이 구심점이 된다면, 뮬딘교가 패배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끄응. 그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해. 그렇지 않아도 대주주 영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뮬딘교는 최대한 오래 버텨야 한다. 그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이야. 그래야 게임의 생명력이 길어져.”

“물론 그러기를 바래야겠지요. 그리고 그걸 위해서 정식으로 요청하겠습니다.”

“음? 무슨 요청인가?”

마르코 사장이 눈에 이채를 발하며 박사를 채근했다.

“이미 랭커들 중 몇 명이 히든 클래스 전직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히든 클래스야 이미 널리고 널린…….”

“모두 카이와 같은, 신화 등급의 직업들입니다.”

“……!”

마르코 사장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박사가 말을 이었다.

“그들이 성공적으로 전직에 성공한다면, 카이를 견제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카이는 이미 전직한 지 반 년이 넘었어. 그들이 신화 등급 직업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격차는 좁힐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상태일 텐데?”

“저는 미드 온라인을 완벽에 가까운 게임으로 만들었습니다. 좋은 직업은 있되, 절대적인 직업은 없습니다.”

“그 말은?”

“태양의 사제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상성마저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스킬의 구성 자체가 그렇습니다.”

“흐음. 그래서 정확히 무슨 허가를 해달라는 거지?”

“신화 등급의 전직 퀘스트 난이도는 극악에 가깝습니다. 그 난이도를 완화 조정할 수 있게 허가해 주십시오.”

“……여우를 내쫓기 위해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은 아니겠지?”

“지금 부르지 않는다면, 여우 한 마리가 산 전체를 먹어치워 버릴 겁니다.”

그 말에 심각한 고민에 빠진 마르코 사장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허가하겠네. 하지만 괜찮겠나? 별의 몰락은 대중들이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닐 수도 있어.”

현재 카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세계적인 게이머이며,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다.

혹시라도 그의 몰락이 주가에 약간이나마 영향을 끼친다면 페가수스 사로서는 곤란한 상황.

하지만 짐 박사는 마르코의 걱정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공위성과 별은 똑같이 우주에 위치하지만 두 존재를 같은 취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들어진 존재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존재.

짐 박사는 카이를 인공위성에 비유했다.

“게다가 무대 위에 올라선 선수는 항상 싸워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지요. 더 이상 상대할 이가 사라진 챔피언을 기다리는 건 고독과 은퇴뿐입니다. 아마 카이도 진심으로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라이벌을 원하고 있을 겁니다.”

만약 카이가 듣는다면 주먹부터 뻗을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 짐 박사.

하지만 그의 말에 공감한 임원들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도 절대자는 고독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

“불쌍하군. 언노운은 절대적인 강함을 손에 넣은 대신 주변에는 마음을 나눌 친구를 잃은 거야.”

“애초에 친구가 없는 것도 당연해. 접속 시간을 보면 먹고 자는 시간 빼고 전부 게임에 투자한다고. 애인도 없을 걸.”

“크흑…….”

졸지에 친구도, 연인도 없는 고독한 절대자가 된 카이!

마르코 사장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인간은 간사한 존재라더니, 해결책이 마련되니 모든 것이 좋게 보이는군. 그러고 보니 더 이상 구출할 아인종들도 없으니 카이의 성장도 정체되는 것 아닌가?”

“맞습니다. 물론 선행 스탯을 올리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짐 박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하. 아무리 카이라고해도 당분간 손댈 수 있는 컨텐츠는 없습니다. 아마 쥐 죽은 듯이 지내야겠지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페가수스 사의 회의실에 환한 웃음꽃이 피던 시각, 카이는 설산을 방문한 상태였다.

***

“정말 감사합니다. 이 못난 동생 놈 때문에 마음 고생한 거 생각하면…… 흐윽.”

항상 어른스럽던 루나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그런 누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동생 소라.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니까요…… 제가 백 번 잘못했습니다. 누님.”

카이는 설산에 위치한 코르도 마을에서 남매의 감사 인사를 받는 중이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요. 그래도 늦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만약 카이가 조금만 늦었어도 소라는 사룡에게 죽었을 것이다.

그 때를 다시 한 번 떠올린 소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의 저는 정말 무모했었군요.”

“이해는 합니다. 하나뿐인 누나가 그런 저주에 걸렸다면 저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루나님 몸은 좀 어떠신가요?”

“아! 사룡을 처치해주신 덕분에 저주의 낙인이 깨끗하게 지워졌답니다.”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팔을 어루만지던 루나가 들뜬 목소리로 답했다,

확실히 잔뜩 여위고 창백해 보이던 얼굴은 훨씬 생기가 가득 찬 상태.

“축하드립니다.”

“아니에요. 모두 카이 님의 덕…….”

“저기, 말하는 도중에 미안하네만…….”

제3자의 목소리가 루나의 말을 비집고 들어왔다.

“……뭐죠?”

“당신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오는 겁니까?”

카이 앞에서는 항상 사람 좋아보이던 루나와 소라가 안색을 굳히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한 노기가 실려 있었다.

‘반응들이 왜 이래? 이 사람은 분명…….’

아무리 소규모 마을이라고 해도, 키를 잡은 선장이 없으면 배는 나아가지 못한다.

코르도도 마찬가지.

카이의 기억에 따르면 눈앞의 노인은 코르도라는 배의 키를 잡은 마을의 촌장이었다.

“촌장님 아니십니까?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카이가 차가운 공기를 환기시키며 부드럽게 말을 꺼내자, 촌장은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며 남매를 쳐다보았다.

“루나, 소라. 너희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어서 이렇게 왔단다.”

“하, 용서요? 나 몰라라 할 땐 언제고, 일이 다 끝난 지금에야 용서를 빌러 왔다고요?”

코웃음을 친 소라는 당장이라도 등에 멘 창을 뽑을 기세였다.

그런 동생을 가까스로 말린 루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저에게 저주의 낙인이 찍히자마자 저희를 마을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시던 분이 용서를 입에 담으시다니. 생각보다 훨씬 뻔뻔하시네요.”

“정말로 미안하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도 방법이 없었어. 그저 공포에 질려 있었을 뿐이란다. 알다시피 우리도 너희처럼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일반인에 불과해. 혹시라도 사룡의 분노가 우리에게까지 미칠까 봐 두려웠어.”

촌장이 힘겨운 목소리로 사과하자, 그를 따라온 마을 주민들도 하나씩 입을 열었다.

“설마 사룡의 저주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줄은 몰랐지.”

“저주의 낙인이 찍힌 사람과 한 마을에 있으면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고…….”

“끄응, 무슨 변명을 해도 할 말이 없어. 아무튼 너희들에게는 정말 미안하구나.”

“지금 그걸 사과라고……!”

마을 사람들의 사과가 이어졌지만, 루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두 주먹만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던가.

저주의 낙인 때문에 하루하루 몸은 아파왔다.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괄시와 압박을 받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카이에게 의뢰해서 그들을 모두 혼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과의 옛정을 생각해서 가까스로 화를 참아냈다.

“됐어요. 이렇게 말을 섞는 것도 불쾌하네요. 소라야, 짐 싸.”

“알았어.”

“자, 잠깐…… 짐을 싸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럼 저희가 다시 얼굴을 맞대고 예전처럼 사이좋게 살 수 있을 것 같나요?”

“하지만 서로가 함께 노력하면…….”

“그것부터가 싫어요.”

카이는 설산의 살을 에는 바람보다 그녀의 목소리가 훨씬 차갑다고 생각했다.

“잘못은 여러분이 다 했는데, 왜 저희도 노력을 해야 하죠? 왜 수습을 같이 해야 해요?”

“쯧. 역시 어리긴 어리구나. 어른들이 이 정도로 사과를 했으면 못이기는 척 받아들여야…….”

“입 닥쳐.”

어느새 창을 뽑아든 소라가 형형한 안광을 뿌리며 입을 연 주민을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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