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23화 (223/441)

# 223

힐통령 223화

77장 구원 투수(2)

설산의 지배자 샤크투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그도 이름은 거창했지만 실속은 없었다.

레벨은 420으로 제법 높은 편이었지만 비교 대상이 카이라면 빛이 바랠 수밖에.

“지배자 일족은 제가 따끔하게 혼내줬으니 두 분은 이제 떠나셔도 됩니다.”

“카이 님…… 정말 감사의 말씀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소라와 루나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상태로 돌아온 카이를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계속해서 도움만 받는 것 같아서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저야 두 분이 남 같지가 않아서 그래요. 저도 누나가 있거든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매는 카이에게 받은 추천장을 꼭 쥐고 거듭 허리를 숙였다.

추천장은 글렌데일의 아르센 남작에게 이 두 사람을 도와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카이 님. 이건 주신 도움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드릴 게 이거밖에 없습니다.”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커다란 녹용을 내미는 소라.

사룡을 처치하고, 설산의 지배자 일족을 무릎 꿇린 보상으로는 부족하다 못해 초라하다.

하지만 카이는 녹용을 받으며 활짝 웃었다.

“이야, 안 그래도 요즘 몸이 좀 허했는데 잘됐네요? 저에게 꼭 필요하던 겁니다. 감사히 잘 달여 먹을게요.”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카이가 자신들을 배려해 준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카이 님 같은 분을 만난 것은 저희 인생 최고의 행운입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어요. 저희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남매에게 텔레포트 스크롤까지 쥐어준 카이는 그들을 보낸 뒤 슬쩍 뒤를 보았다.

“히익…….”

자신들이 신처럼 여기던 지배자 일족을 만나고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온 모험가.

코르도 마을 주민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카이를 쳐다봤다.

‘그래, 저들도 살고 싶었겠지. 나쁜 마음은 없었을 거야.’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하고,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여긴다.

당하는 입장에서야 억울하겠지만 세상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기분이 씁쓸해지는건 어쩔 수 없네.’

이런 문제에서는 과연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것인지, 카이는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카이는 코르도 마을 주민들을 버려둔 채 자리를 떠났다.

***

설산을 벗어난 카이는 곧장 라시온 왕국의 수도, 레이아크로 향했다.

발걸음을 재촉한 카이가 방문한 곳은 다름 아닌 새미의 과자집.

온갖 종류의 간식거리를 팔고 있는, 아이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가게였다.

“어머, 토끼야!”

“응? 토끼라고?”

“귀여워라. 사탕 먹으려고 왔어요? 오구오구.”

가게에 별안간 토끼 한 마리가 난입해 총총거리며 뛰어다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손님들. 토끼 정도는 저희가 쫓아내…… 음? 이 토끼는……!”

황급히 자리에 나타난 가게 매니저는 토끼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이런!”

그러고는 곧장 직원들 몇몇을 데리고 과자들을 포대 자루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케이크도 넣고. 이번에 신상 과자랑 사탕들 나온 거 있지? 큰 손께서는 신상은 모두 구매하시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넣어드려. 그리고 이번 달 카탈로그도 넣어드리고!”

직원들과 함께 과자를 쓸어 담기를 십여 분!

여덟 자루의 간식 보따리를 들고 뒷문으로 나간 매니저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번번이 죄송하네요.”

한 쪽 골목 모퉁이에서 걸어 나온 사내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

그는 다름 아닌 카이.

“아닙니다. 저희야 매상도 오르고 좋지요. 손님만큼 대량으로 구입해주시는 분은 없거든요.”

매니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카이를 맞이했다.

바닥을 총총 뛰어다니던 토끼, 미믹은 곧장 카이의 어깨로 올라탔다.

‘역시 이 방법이 제일 편하긴 해.’

카이가 출현하는 순간 도시의 거리는 마비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카이도 자신의 용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

때문에 그는 사탕 가게 매니저에게 따로 부탁하여 간식을 구매하고 있었다.

“4골드 46실버입니다, 손님.”

“여기 5골드요. 잔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큼직한 팁을 받게 된 매니저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과자 꾸러미를 두 손에 챙긴 카이는 신출귀몰을 사용하며 천상의 정원으로 향했다.

“그대여! 왜 이제서야 오느냐! 목 빠지도록 기다렸지 않느냐!”

바닥을 폴짝 폴짝 뛰어온 헬릭은 곧장 과자 꾸러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을 기다린 건지, 과자를 기다린 건지 구분이 안 간다.

“헬릭 님, 쓰읍.”

카이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낮추자, 헬릭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오므렸다.

“왜, 왜 보자마자 혼내느냐…….”

“기다려 보세요.”

과자 꾸러미들을 인벤토리에 넣은 카이는 천상의 정원의 한쪽 귀퉁이로 걸어갔다.

자신이 사온 과자들을 모아놓는, 일종의 과자 곳간이다.

“…….”

그리고 예상대로 그 곳은 텅텅 비어있었다.

자신의 계산대로라면 못해도 아홉 개의 과자가 남아있어야 할 터.

“헬릭 님. 제가 분명히 먹고 싶은 것 하루에 세 개씩만 드시라고 했죠?”

“드, 들어보거라. 이건 그대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다.”

“그럼 한 번 말씀해 보세요.”

카이의 차가운 태도에 억울한 표정을 지어보인 헬릭은 답답한 가슴을 콩콩 두드리며 말했다.

“사실 가끔씩 내가 사는 곳에 이웃 신들이 놀러오는데, 그들을 대접하는 데 과자를 내주었을 뿐이다.”

“이웃 신들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헬릭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친한 신은 몇 명 없지만…… 가끔씩 놀러 와서 같이 차를 마신다.”

“친한 신이 누군데요?”

“대지의 신인 호른, 물의 신인 하쿠, 사랑의 신인 로비가 가끔 찾아오니라.”

“그러니까 그들을 대접할 때 과자를 대접했다는 건가요?”

“혹시 이 몸을 못 믿어서 또 물어보는 것이더냐?”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헬릭은 양손은 제 허리에 척하니 갖다 대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으으으음.”

눈을 가늘게 뜬 카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믿어야지요.”

“역시 나의 대리인! 내 마음을 이렇게 잘 헤아려 준다!”

순식간에 얼굴에 생기가 돋는 헬릭.

만약 그녀가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쯤 휙휙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이건 이번 달 과자예요. 아시죠? 하루 세 개.”

“응응. 알겠느니라.”

마치 선물을 뜯는 아이처럼, 자리에 앉아 과자 꾸러미들을 열고는 배시시 웃음을 짓는 헬릭.

흐뭇한 아빠 미소로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가 입을 열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저 성물 세 개 다 모았습니다.”

“응? 아아. 나도 알고 있다. 성검은 다뤄보니 어땠느냐?”

“좋던데요? 신성력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긴 하지만, 제 신성 재생력이 높아서 제법 유지는 잘 될 겁니다.”

“성검은 마음이 선한 자만이 다룰 수 있는 신성한 검. 그대는 앞으로 마음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거라.”

“물론이죠,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카이가 싱긋 웃으며 답하자, 헬릭도 마주 웃으며 물었다.

“헤헤헤. 그럼 오늘은 기념으로 과자 다섯 개 먹어도 되느냐?”

“안 됩니다.”

“힝…….”

헬릭의 눈매가 축 늘어졌다.

***

“어때 보여?”

“무리예요. 쟤네 수준으로는 저거 공략 절대 못 합니다.”

“흐음…….”

천화 길드의 마스터, 설은영은 보이드와 함께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아아~ 니혼이치 길드! 이대로 무너지나요!]

[사실 니혼이치 길드는 이번 자탄 레이드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렇죠. 10대 길드…… 아니, 9대 길드의 힘이 아무리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건재하거든요? 그런데 최근 영지전에서 니혼이치 길드만 재미를 못 봤어요.]

[이제는 10대 길드에서 추방당한 타이탄 길드조차 도시 하나를 손에 넣었는데, 왜 니혼이치는 그러지 못했을까요?]

[인원 부족 문제가 가장 크죠. 니혼이치 길드는 순수 일본인만 길드원으로 받는 곳인데, 일본은 예전부터 대규모 MMORPG보다는 싱글 게임이 주류를 이루던 시장이에요. 오픈 초기에는 10대 길드 중 한 곳으로서 손색이 없었지만, 지금은 글쎄요…… 고작 80명으로 운영하기에는 많이 힘들죠.]

그들의 말은 모두 맞았다.

니혼이치 길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숫자라는 허들에 부딪쳐야만 했다.

‘좋지 않아.’

세계 10대 길드.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미드 온라인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던 세력들이다.

하지만 검은 벌에 이어 타이탄이 몰락하고, 니혼이치는 자멸 중이다.

‘이런 식으로 10대 길드의 이미지가 계속 손상되면 곤란해.’

설은영은 10대 길드라는 타이틀 하나를 손에 거머쥐려고 각고의 노력을 했다.

길드의 수장으로써 길드원들이 그 흔한 사건, 사고에도 연류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했고.

남들보다 부유한 돈을 바탕으로 최고의 인재들을 엄선하여 최고의 길드를 만드는데 노력했다.

그런데 그 노력들을 다른 놈들이 갉아먹고 있다?

‘마음에 안 들어.’

설은영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그녀는 보이드를 쳐다보며 물었다.

“저번에 알아보라고 했던 소문은?”

“알아보라고 했던 소문이요? 아아…… 그거요?”

보이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심증은 있는데 결정적인 물증이 안 잡히네요. 그런데 이 문제는 왜 그렇게 신경써요?”

“사실이라면 언노운한테 말해줘야지.”

“글쎄요. 만약 이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 녀석이라면 신경도 안 쓸 것 같은데……?”

“그도 사람인 이상 실수는 해. 하지만 그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자리에 서 있지.”

“정말 끔찍하게도 아끼시네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보이드가 말을 이었다.

“전 70% 확률로 소문이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야?”

보이드의 까다로운 입에서 70%라는 확률이 거론되었으면 거의 확실하다는 뜻이다.

다시 한 번 설은영의 아미가 찌푸려졌다.

“예. 그런데 저희가 모르는 뭔가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아요. 정보부 애들 겁나 굴려봐도 진척이 없다니까요?”

“천화 길드의 정보부가 파고들지 못한다?”

“어때요. 냄새 나죠?”

입 꼬리를 씨익 올린 보이드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간에서 장난질 치는 놈들이 있어요.”

“……목적이 뭐라고 생각해?”

“흐음. 솔직히 이미 퍼진 소문을 막기 위해 그 정도로 정보를 차단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서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고.”

제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보이드가 말을 이었다.

“검은 벌, 타이탄. 사이좋게 손잡고 망한 놈들이 뭘 꾸미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그놈들이 동맹을 한 건 맞는 것 같단 말이죠.”

“딱히 위협은 안 되는데.”

“네, 뭐. 솔직히 따로 따로 보면 무서울 게 없죠. 이미 레벨링도 많이 뒤쳐졌고, 보유한 영지의 개수부터 다른데.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잖아요? 만약 그 둘이 정말로 손을 잡는 거라면…… 저희 천화 정도 크기는 되지 않을까요?”

“음…….”

현재 천화 길드는 9대 길드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평가된다.

검은 벌과 타이탄이 손을 잡는다고 그 정도의 시너지가 정말 나올까?

“아, 그런 눈으로 보지마요. 나도 모른다니까? 그리고 마스터도 알잖아요. 카이 그놈이 워낙 괴물이라서 스팅이랑 골리앗이 찬밥 신세가 된 거지, 그 둘도 게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놈들이라는 걸.”

“그럼 그 둘이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 건지 알아내.”

“아니, 여태 뭐 들었어요? 중간에서 정보 조작으로 장난질 치는 놈들이 있다니까.”

“비싼 돈 받는 값은 해야지. 정보부 애들 더 굴려.”

“…….”

완강한 여왕님의 태도에 두 손, 두 발을 들어 올린 보이드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넵. 그럼 자탄 레이드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프레이 녀석들은 요즘 뭘 하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고, 다른 길드는 영지 모은다고 여념이 없어요. 워리어스는 참여한다고 하던데, 두고 봐야 하고…… 이거 우리가 먹습니까?”

“베이거스도 우리 손으로 끝냈어. 자탄도 우리가 먹어야 돼.”

“호오, 천화 길드에 메인 에피소드 종결자라는 이미지를 씌워주시겠다?”

“왜, 길드 전력으로 무리야?”

“으음…….”

눈을 감고 견적을 뽑아보던 보이드가 말을 이었다.

“마스터도 보셨잖아요. 이번에 니혼이치 쪽에서 공략하는 거 보니까 자탄 공격 회피하면서 무적 패턴 사라질 때까지는 버텨야 해요.”

“길드에도 몇 명 있을 텐데. 너도 있고.”

“저 하나 밖에 없는 게 문제죠. 저 정도 되는 실력자는 우리 길드에 더 없거든요? 최소 한 명은 더 있어야 돼요. 여유롭게 공략하려면 두 명 정도?”

“두 사람이라…….”

무언가를 고민하던 설은영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유하린한테 연락 넣어.”

“오케이. 그럼 나머지 한 사람은요?”

“그건 내가 구해.”

말을 마친 설은영은 곧장 게임을 종료했다.

외투를 걸친 그녀는 머리를 정돈하고는 곧장 아래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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