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힐통령 227화
78장 혼자 다 해먹는 놈(2)
과거 천화는 베이거스 레이드를 실시간으로 공개하지 않고 유료 영상으로 가공한 뒤에 판매했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대로 지금의 발칸은 이번 공략에 승부수를 던진 자.
그는 이번 레이드를 편집 없이, 실시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시청자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머니(Money), 즉 돈이었다.
-흐음. 워리어스가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실시간 공개 이거, 리스크 되게 높지 않나?
└높지, 굉장히 높지. 당장 며칠 전의 니혼이치를 떠올려 보라고. 실시간 공략으로 기울어가는 분위기 반전해 보려다가 어떻게 됐지?
└이해가 바로 되네. 친절한 설명 감사.
└아아! 니혼이치 아시는구나!
-아니, 그것보다 워리어스에서는 천화를 대체 어떻게 구슬린 거지? 난 무조건 천화 쪽에서 먼저 자탄을 공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천상계 애들이 뒷거래하는 거 뭐 하루 이틀인가? 궁금하지만 우리가 영영 알 수는 없겠지.
많은 유저들이 천화와 워리어스 사이의 거래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지만 일반 유저들은 그들이 어떤 거래를 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빠르게 깨달은 유저들은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와, 그런데 라이브 티켓 판매량 실화냐?
-티켓 하나에 5달러고 현재 400만 명이 시청 중이니까…….
-뭐야, 그럼 2천만 달러라고!? 돈을 아주 쓸어담는구나, 쓸어담아!
└이게 세계 9대 길드, 그중에서도 3강의 힘이구나. 니혼이치는 티켓 판매량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잖아?
└나 그거 실시간으로 봤는데 걔네는 죽 쒔어. 겨우 70만 명 정도였거든. 심지어 레이드 이후에 스폰들도 대거 끊겼지.
└워어. 레이드 한 번 실패한 것치고는 타격이 큰데?
└세계 9대 길드는 그런 자리에 있는 이들이야.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지.
“사람들 평가 한 번 각박하네.”
카이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유저들의 댓글을 읽으며 중얼거렸다.
그들의 말마따나 워리어스는 현재 돈을 쓸어담는 중이었다.
고작 레이드 라이브 티켓을 팔아 200억이 넘는 돈을 벌어들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어차피 그 돈은 레이드에 실패하는 순간 다 토해내야 한다고.’
실제로 니혼이치가 그랬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매우 간단한 문제이기도 하다.
스폰서들이 왜 세계 9대 길드에 투자를 하는지를 떠올려 보면 되니까.
‘결국 스폰서들은 본인들의 기업을 홍보하고 싶어하는 것뿐이야. 연예인에게 광고 모델을 맡기는 것과 유사하지.’
하지만 그 어느 기업에서, 자신들의 로고를 장비에 박아 넣은 채로 죽어나가는 이들에게 투자하고 싶겠는가?
실제로 세계 9대 길드는 스폰을 받을 때, 기업의 이미지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있었다.
‘기업 이미지를 시궁창에 처박은 니혼이치는…… 위약금 뱉어내는데 속 좀 쓰렸겠어.’
그들이 라이브 티켓을 팔아서 번 돈은 35억이 넘지만, 아마 뱉어낸 돈은 더 많을 것이다.
‘니혼이치는 다음 행보가 중요해지겠어.’
한 번만 더 삽질을 한다면, 그나마 붙어있는 스폰서들도 모두 떨어져나갈 터.
심지어 지금 그들을 스폰하는 기업들은 모두 일본 기업들 뿐이다.
이미 해외 기업들이 모두 손을 털었다는 건 그들이 위험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는 소리.
한 걸음만 잘못 내딛으면, 그 곳은 천길 낭떠러지다.
“뭐, 지금은 니혼이치 애들 걱정할 때가 아닌가?”
카이는 1초가 흐를 때마다 높아져가는 티켓 판매량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현재까지 라이브 티켓 판매 액수는 211억이 넘어가는 상황.
‘만약 거기서 내가 쨔잔! 하고 등장한다면?’
판매량은 최소 1.5배 이상 튀어오를 것이다.
그것은 절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카이는 현재 자신의 가치가 어느정도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할 정도의 머리는 있으니까.
‘실제로 천화 때도 유하린 등장 직후에티켓 판매량이 폭주했지.’
만약 이번 공략 영상을 후에 워리어스 편집부에서 따로 편집하고, 완전판으로 판매한다면 그 때는 다시 한 번 더 돈을 쓸어담는 것이다.
“후우. 재주는 곰이 넘는데 돈은 사람이 챙기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카이의 입 꼬리는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하지만 이번 레이드에서 얻는 건 내가 더 많을 거야.’
워리어스에서 이번에 챙길 수 있는 건 돈과 명예뿐이다.
하지만 카이는 그것들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챙길 것이다.
가벼운 예시로, 그들은 카이에게 영지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리버티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내가 귀족 칭호를 얻는 편이 가장 좋아.’
때문에 카이는 바쁘게 공성전을 뛰어서라도 영지들을 손에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워리어스는 그런 카이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영지 두 개라.’
두 개의 영지.
지금과 같은 전국 시대에서는 돈으로 환산조차 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물론 그들이 처음 자신에게 제시한 건 얼굴 마담 역할과, 푼돈뿐이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가치로 움직이기에는 내가 너무 아깝지.’
그래서 카이는 그들에게 역으로 제안을 했고, 레이드를 성공시킬 시 영지 두 개를 건네받기로 계약을 했다.
‘레이드 실패 시에는 영지를 하나 밖에 받을 수 없지만.’
카이는 실패는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설령 자탄이 너무나 강대하다 해도, 무슨 일이 있어라도 이번 레이드는 성공시켜야 한다.
‘그리고 강해봐야 얼마나 강하겠어.’
이미 레벨 700이 넘는 지르칸까지 이겨봤던 자신이다.
물론 지르칸 같은 경우에는 뼛속까지 마기가 차있어서 상성이 매우 유리하기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발사인 페가수스에게 미안할 정도.
‘모든 공격이 치명타로 터질 정도였으니까.’
반면 자탄 같은 경우에는 소속이 뮬딘 교지만 기본적으로 키메라.
신성력으로 강타를 한다고 해도, 딱히 더 큰 아픔을 느끼지는 않는다.
-고오오오오오오!
카이의 생각이 한창 이어지려던 찰나, 자탄이 고통어린 신음을 뱉어냈다.
“시작 됐네.”
워리어스의 정예가 자탄을 둘러싼 채 녀석의 네 다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나올 정도의 차륜전!
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합을 맞췄을 지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우우우웅!
공격을 당한 자탄의 몸을 중심으로 반경 50미터의 공간이 옅은 청색으로 물들었다.
“크윽, 이거 생각보다……!”
“훨씬 불편한데?”
“폐부를 채우는 공기마저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워리어스의 정예들은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자 잔뜩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애초에 재능이 출중한 그들은 빠르게 적응을 마치고, 자탄의 피를 깎아내기 시작했다.
95%…… 85%…… 75%…….
레이드 시간이 25분을 경과했을 때, 마침내 70%의 벽이 허물어졌다.
-크로로로로로로로로!
쩌저저적.
한 차례 괴성을 뱉어낸 자탄의 몸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중력장 내부에 있던 모든 인원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웃차. 나도 이제 슬슬 준비해 볼까.”
언덕에서 워리어스 길드의 전투를 내려다보던 카이가 미믹을 소환해 냈다.
“미믹, 지난번에 하던 거 기억나지?”
“뀨룩?”
“투석기…… 아니, 퉤석기 말이야. 퉤! 하고 침 뱉어서 듀라한들 멀리 내보냈었잖아.”
“꾸루루룩!”
킹 샌드웜의 모습을 한 미믹이 자신의 입을 크게 벌렸다.
순식간에 제 덩치보다 몇 배는 커다란 입구가 만들어졌다.
녹색의 산성 침이 뚝뚝 흐르고, 날카로운 이빨 수백 개가 빼곡히 들어선 킹 샌드웜의 입.
‘굉장히 들어가기 싫은 비쥬얼이지만.’
원래 먹고 살기 힘든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카이는 미믹의 혀 위에 몸을 실었다.
띠링!
[자탄이 하수인 ‘라두스’를 소환했습니다.]
[자탄이 하수인 ‘두라스’를 소환했습니다.]
[두 하수인이 영원히 잠들기 전까지, 자탄은 ‘무적’ 상태에 돌입합니다.]
붉은 갑주를 전신에 두른 라두스.
푸른 갑주를 전신에 두른 두라스.
놈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카이가 소리쳤다.
“미믹! 뱉어!”
“퉤에에에!”
미믹의 힘찬 침 뱉기와 함께, 녹색 산성에 뒤덮인 카이의 몸이 구름을 향해 쏘아졌다.
***
-무난하네.
-무난해.
-아니, 그래도 너무 심각하게 무난한데?
워리어스의 정예진은 자탄의 공격을 여유롭게 회피하고, 자신들의 공격을 성공시켰다.
고도의 차륜전까지 드러내며 자신들의 역량을 뽐내는 워리어스의 공략대들!
하지만 그들의 전투는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만들 정도로 화려하지는 않았다.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1페이즈.
-이거 슬슬 지루해지는데…….
-난 그냥 나중에 액기스만 봐야겠다. 자러 갑니다, 모두 수고요.
-아, 그냥 천화가 레이드하지. 얼음 여왕님 모습이라도 보게…….
본래 시청자란 자극적인 것을 좋아한다.
대체 누가 뻔한 시나리오의 영상을 보고 싶어 하겠는가.
심지어 워리어스 길드의 구성원 대부분은 근육질의 남성들!
시청자들의 입에서 입을 타고, 그들의 공략 실황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워리어스 애들 공략 어떠냐? 구매할까 말까 고민 중인데…… 지를 만해? 선발대 후기 좀!
└구매하지 마. 내가 보고 있는데 그냥 무난해. 성공하면 나중에 하이라이트 액기스만 따로 뽑아서 보면 될 듯?
-어떻게 하기는. 그냥 잘 막고, 잘 때리고…… 워리어스 애들이 원래 싸움을 잘하기는 하는데, 옛날부터 큰 거 한 방이 없었잖아.
-천화나 프레이, 리미트리스처럼 내세울 만한 얼굴 마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검은 벌처럼 아예 길드 자체에 컨셉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컨셉이 왜 없음. 근육질 남성들 짱 많은데.
└응, 꺼지시고~
-뭐랄까, 워리어스 애들은 그냥 무슨 일이든 척척해내서 재미가 없어.
혹평에 혹평, 그리고 혹평!
확실히 워리어스의 레이드는 교과서에 수록되어도 될 만큼 정석적이었다.
바꿔 말하면 보는 이로 하여금 없던 잠도 유발할 정도라는 뜻.
-자탄 피 70% 밑으로 내려갔네. 어? 석화 시작된다.
-이제 2페이즈인가? 확실히 워리어스 애들이 실력은 좋네. 1페이즈 클리어는 역대 최단 기록이야.
-흐음. 두라스, 라두스 잡을 때는 조금 재미있어지려나?
└그렇겠지. 워리어스에도 마법사들이 없는 건 아닌데, 걔네들이 손 잡고 중력장 안에 들어가도 두라스를 잡을 수는 없을걸?
└아마 워리어스가 고용한 용병이 대체 누구인지 이제 공개될 듯.
궁금증을 한가득 담은 유저들의 시선이 각자의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워리어스의 정예들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기만 할 뿐, 새로운 전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뭐야……?
-왜 아무도 안 나와?
-설마 레이드 중도 포기냐? 아니면 지각?
심지어 자탄에 의해 소환된 두라스와 라두스마저 주변을 돌아보며 상대방을 기다렸다.
하지만 자신들의 주위에 그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자, 놈들이 입을 열었다.
“겁쟁이들이로군.”
“하지만 그쪽에서 오지 않는다면, 이 쪽에서……?”
쇄애애애애액-!
말을 잇던 라두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건…… 위쪽에서 들리는 소리?’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올리는 라두스.
동시에 차가운 검신이 그의 목덜미에 틀어박혔다.
그것이 자탄 레이드의 2페이즈를 알리는 효시가 되었다.
-어……?
-잠깐만, 저 검 어디서 많이 봤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검.
유저들이 그 검의 정체를 떠올리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 저거 거인을 쓰러트린 검이잖아?!
미드 온라인에서 거인이라고 칭해질 만한 존재는 한 곳밖에 없다.
다름 아닌 타이탄.
그리고 그들을 쓰러트린 이는, 1년이 넘어가는 기간 동안 단 한 명밖에 없었다.
휙!
라두스와 두라스를 잡고 있던 카메라의 시점이 돌연 하늘을 향해 돌아갔다.
파아아아앙!
구름을 반으로 갈라내며 멋있게 등장하는 카이.
-언노운, 카이다!
-맙소사…….
-등장 임팩트 보소ㅋㅋㅋㅋ 구름을 두부마냥 자르면서 등장하네ㅋㅋㅋㅋ 최종보스세요?
-워리어스 이 정신 나간 녀석들, 사랑한다!
-아니, 그런데 언노운이 왜 나와? 그럼 두라스는 누가 잡는 건데?
채팅방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언노운의 등장은 시청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고, 라이브 티켓의 판매량도 덩달아 치솟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할까.”
쇄애애애애액.
차갑게, 그리고 빠르게 자신의 볼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면서.
카이는 정신을 집중했다.
“홀리 익스플로젼.”
우우우웅.
카이의 왼손에 하나, 오른손에 하나.
홀리 익스플로젼을 토해낼 신성마법진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더블 캐스팅!
-흠. 근데 저건 아오사 레이드 때도 보여줬잖아?
-하지만 허공에서 추락하면서 더블 캐스팅이라, 집중력 하나는 명불허전이군.
모두가 감탄을 뱉어낼 때, 카이의 오른쪽 어깨 부근에서 또 하나의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파지지지직!
-오…… 마이…… 갓! 홀리 쉿!
-트, 트리플 캐스팅이라고!?
-저, 저런 미친 놈! 대체 왜 성기사를 하고 있는 거냐?!
-나 같으면 캐릭터 삭제하고 마법사 키웠다.
미드 온라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영재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더블 캐스팅의 벽.
그리고 천재만이 두드릴 수 있는 것이 바로 트리플 캐스팅의 벽이라고.
‘사룡 시네라스의 드래곤 하트.’
카이는 그것을 취함으로써 트리플 캐스팅을 완성시켰다.
본인의 재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도달할 수 없는, 세 개의 주문을 쏘아낼 화포가 자신의 캐릭터에 장착된 것이다.
‘그리고…….’
파지지지직.
-서, 설마?
-아……니겠지?
-누가 내 뺨 좀 때려줄래? 아무래도 내가 잠에서 덜 깬 것 같거든.
지르칸.
악연이라고 불러도 좋을, 지긋지긋한 인연이 남기고 간 유산.
파지지지지지직.
카이의 왼쪽 어깨 죽지에서 신성마법진 하나가 원을 그리며 천천히 완성되었다.
“쿼드라플 캐스팅.”
우우우우우우웅!
카이의 부름에 답하기라도 하듯, 갓 생성된 네 번째 마법진은 밝게 빛나며 힘차게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