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
힐통령 230화
78장 혼자 다 해먹는 놈(5)
‘한 놈이 공격할 때, 다른 놈은 가만히 있어.’
놈들이 벌써 지쳤을 리는 없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절호의 기회를, 피곤하다는 이유로 걷어찰 리도 없다.
‘그렇다면……?’
카이는 마치 머릿속에 전구라도 켜진 것처럼, 사고가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들, 지금 링크(Link)되어 있구나?’
링크(Link).
미드 온라인의 던전에는 종종 그런 특성을 지닌 몬스터들이 출현했다.
말 그대로 서로의 영혼을 결속하여 한 개체에게 힘을 몰아주는 희귀한 특성이다.
‘그렇다면 피부로 느껴지는 온도가 그렇게 극명하게 바뀐 것도 설명이 돼.’
한 놈의 힘은 강해지고, 한 놈의 힘은 한없이 0까지 떨어진다.
그러니 주변 온도는 자연스럽게 더 낮아지거나,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쯧, 힌트는 충분했는데 이걸 이렇게 늦게 깨닫다니.’
카이는 본인의 부족함을 깨닫고는 짧게 혀를 찼다.
하지만 지금에라도 알아차렸으면 됐다.
‘공략법이 다 나온 적을 잡지 못하면 게임 접어야지.’
더군다나 현재 카이의 상태는 전력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세 개의 성물을 착용했기에 적용되는 ‘사도의 길’ 세트 효과.
그리고 자신의 모든 능력치를 상승시켜주는 솔라 필드.
그 밖에도 사제의 기본 버프는 물론 태양의 사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급 버프들까지.
‘당황했을 때는 당했지만, 이제는 괜찮아.’
방금 전까지는 한 놈을 상대하면서, 다른 한쪽을 신경 쓰느라 전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뿐.
‘처음부터 한 놈만 상대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쉽지.’
카이의 앞발차기가 두라스의 가슴에 그대로 박혔다.
두라스는 물리 공격에 면역인지라 피해는 없었지만, 밀쳐내는 것쯤은 가능했다.
콰드드득!
“으음……!”
뒤로 밀쳐진 두라스의 동공에서 일렁이던 푸른빛이 사라졌다.
‘바뀌었다!’
두라스의 몸이 활동을 정지했다는 것을 깨달은 카이는 곧장 몸을 돌려 라두스에게 달려갔다.
“음……?!”
카이의 반응이 이렇게 빠를 줄 몰랐던 라두스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모든 대비를 마친 카이는 가볍게 몸을 숙여 이를 피해냈다.
‘그리고 박아 넣는다.’
콰드드드득!
성검은 라두스의 명치를 파고들며, 그대로 녀석의 상체를 꿰뚫었다.
“커허어어억!”
텅!
성검의 검극이 무언가와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뼈? 아니었다.
“이제 돌려줘야지? 내 검.”
성검이 두드린 것은 다름 아닌 카이의 검.
여전히 라두스의 목덜미에 박혀 있던 ‘침묵하는 냉기의 롱소드’였다.
“너무 오래 썼어. 도로 가져간다.”
푸우우욱!
카이는 왼손으로 침묵하는 냉기의 롱소드를 붙잡고, 그것을 단번에 빼버렸다.
그러자 라두스의 목덜미에선 살얼음이 내려앉은 혈액이 거칠게 튀어나왔다.
동시에 카이의 눈빛이 두 하수인의 체력을 빠르게 훑었다.
‘라두스 놈의 체력이 35%, 두라스는 여전히 48%.’
이놈들은 영악하다.
본인들 스스로가 동시에 죽지 않으면, 영원히 소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소리다.
‘한 놈의 피만 많이 빼놓으면 곤란해지겠지.’
만약 카이가 라두스의 체력만 1%로 만들어 놓는다면?
놈들은 두라스에게 모든 능력치를 몰아주며 두라스만 줄창 카이를 쫓아다닐 것이다.
‘귀찮아지겠지.’
우선은 10% 정도.
카이는 그 정도 수준에서 두 놈의 체력을 맞추기로 결정했다.
“네놈이 아무리 발악해도 우리 둘에게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말 한 번 잘했다.”
싱긋 웃은 카이는 그대로 녀석의 명치에 박아넣은 성검을 비틀면서 빼냈다.
라두스의 갑주가 걸레마냥 찢어졌고, 출혈 상태에 빠지자 체력은 조금씩 깎이기 시작했다.
“너희는 둘인데, 내 무기는 하나더라고. 불공평하잖아?”
“뭐라……?”
“나도 한 번 들어보자. 무기 두 개.”
왼손에는 침묵하는 냉기의 롱소드.
오른손에는 성검 프리우스.
각각 다른 검을 꼬나쥔 카이는 그것들을 열 십(十)자 형태로 휘둘렀다.
“그랜드 크로스!”
말은 번지르르 했지만, 실상은 그냥 십자베기였다.
“감히 말장난 따위를!”
라두스는 잠시 당황했지만, 황급히 인페르노 소드를 내밀어 냉기의 롱소드를 쳐냈다.
“장난 아닌데.”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성검이 라두스를 비웃기라도 하듯, 천천히 회전을 시작했다.
“칼날 쇄도!”
까드드드드득!
붉은 갑주를 드릴로 꿰뚫기라도 하듯, 성검은 거칠게 놈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커어어억!”
라두스가 황급히 성검의 검신을 붙잡았지만, 오히려 성검은 녀석의 손을 베어버렸다.
“다시 한 번, 칼날 쇄도.”
이번에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진 냉기의 롱소드가 라두스의 옆구리를 그대로 뚫어버렸다.
동시에 라두스의 체력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이쯤 되면 슬슬 포기를 할 때가 됐지.’
카이의 예상은 적중했다.
라두스는 본인이 회생 불가능한 상태라고 생각했는지, 모든 힘을 두라스에게 넘겼다.
뒤쪽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이노오오오옴!”
“라두스 체력은 5%인가. 괜찮네.”
더 이상 붉은 안광을 발하지 않는 라두스의 가슴을 뻥 차버린 카이는 두 개의 검을 갈무리하며 다가오는 두라스를 쳐다봤다.
“아무리 빠르고 강해도, 한 놈이라면 쉽지.”
혼자 움직일 거라면 압도적으로 강해야 한다.
‘마치 나처럼.’
촤르르르륵.
카이는 자신의 왼손 소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사슬의 감촉을 느끼며 히죽 웃었다.
***
“마스터. 언노운을 지원해 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발칸은 자신에게 질문은 던진 길드원을 힐긋 쳐다보더니 다시 전장을 바라보았다.
“지원은 없다.”
“예……? 하지만 혹시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내 독단이 아니야. 언노운의 요청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원을 ‘할’ 필요가 없다겠지.”
“언노운이 지원하지 말라고 했다고요?”
“왜요?”
길드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에 발칸은 뚱한 표정을 짓더니 툭하니 단어 하나를 뱉어냈다.
“칭호.”
“예?”
“스페셜 칭호 따야 하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하더군.”
“…….”
카이의 속셈을 알아차린 워리어스 길드원들이 입을 쩍 벌렸다.
“그, 그거 하나 따겠다고 저런 무리를……?”
“난놈은 난놈이네요. 저였으면 랭킹 5위권에만 들어도 죽을까 봐 조마조마할 것 같은데.”
“위험을 극복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인가. 그런 부분은 조금 멋있네요.”
사뭇 달라진 눈빛으로 카이를 쳐다보는 워리어스 길드원들.
그들은 막바지에 이른 전투를 보며 병장기를 챙겼다.
“2페이즈는 거의 다 끝난 것 같은데, 3페이즈 때는 지원하실 거죠?”
“아니. 3페이즈 때도 지원은 없다.”
“……?”
“설마 그것도 언노운의 요청입니까?”
“……후우.”
발칸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지자, 길드원들이 다시 한 번 의문을 표했다.
“아니, 하수인들은 스페셜 칭호 때문에 이해가 간다지만…….”
“대체 자탄은 왜?”
“그놈은 우리가 1페이즈 때 이미 체력 30%를 깎아놔서 단독 처치 칭호는 못 얻을 텐데요?”
그들의 질문을 가만히 듣고 있던 발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메인 에피소드의 대미를 장식하는 레이드 보스 몬스터. 그놈을 처치하면 칭호가 따라오겠지.”
“그렇죠.”
“지나가는 동네 필드 보스만 잡아도 뱉어내는 게 칭호니까요.”
길드원들이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피소드 1에서 그 칭호를 획득한 것은 유하린이었다. 당연히 어떤 칭호를 획득했는지 알 길이 없어.”
그녀는 아직까지 솔로잉을 고집하는 신비로운 유저.
몇 개의 칭호를 획득했는지, 칭호의 효과는 무엇인지는 알고 싶어도 알 길이 없었다.
“서, 설마…….”
“그럼 있을지도 모르는 추가 스페셜 칭호를 위해서 3페이즈를 혼자 공략하겠다는 겁니까?”
“아니, 그럼 우리 길드는 1페이즈 때 얼굴 내미는 게 전부였다는 겁니까?”
“듣다보니 얼굴 마담은 언노운이 아니라…….”
“우리 같은데요?”
워리어스 길드원들이 황당함에 입을 쩍 벌렸다.
이건 말만 워리어스가 언노운을 고용한 것뿐이었다.
껍질을 까보니 실속은 모두 놈이 챙겨가고 자신들은 이름만 빌려준 꼴.
발칸은 길드원들을 다독이며 그들을 달랬다.
“너무 실망하지 마라. 언노운이 실패할 가능성도 있는 거고, 무엇보다…….”
자신들은 워리어스라는 이름을 빌려주었다.
그리고 이 레이드가 성공했을 때, 그 이름의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거대해져 있을 터.
‘물론 언노운 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지.’
돈과 명예.
발칸은 이번 레이드에서 그 두 가지만 챙겨가기로 결심했다.
물론, 그것조차도 언노운 만큼은 아닐 테지만.
***
띠링!
[단신으로 자탄의 두 하수인을 처치했습니다.]
[당신의 영웅적인 행보에 태양신 헬릭이 물개 박수를 치며 감탄합니다.]
[선행 스탯이 5개 상승했습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로 인해 3개의 선행 스탯이 추가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스페셜 칭호, ‘기사 도살자’를 획득했습니다.]
[자탄의 석화가 풀려납니다. 자탄의 무적 상태가 해제되며, 타격이 가능해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모든 스탯을 15개 획득했습니다.]
‘좋아.’
패턴을 모두 파악한 이상, 두 하수인이 쓰러지는건 시간 문제였다.
하수인 두 마리를 홀몸으로 상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카이의 체력은 쌩쌩했다.
“제법 귀찮기는 했지만, 딱히 힘들지는 않아.”
게다가 지금과 같은 짧은 휴식시간에는 어김없이 ‘원기 회복의 샘’을 설치했다.
그것도 한 번에 무려 네 개씩 설치되는 샘!
‘어라?’
원기 회복의 샘으로 스테미너를 보충하던 카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페가수스 놈들 봐라?’
본래 원기 회복의 샘 효과는 중첩이 되었다.
자신이 화이트홀에서 아오사를 잡을 때를 떠올려보면 확실하다.
하지만 현재 스테미너 회복량을 봤을 때, 아무래도 그 이후 패치가 된 듯하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패치 로그 좀 훑어봐야겠어.’
안 그래도 쓰레기나 다름없는 원기 회복의 샘을 너프할 줄이야.
누가봐도 명백히 자신의 플레이를 의식한 패치다.
페가수스의 속보이는 행동에 피식 웃음을 지은 카이는 자탄의 석화가 완전히 풀리기 전에 상태를 점검했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416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111,300
신성력 : 180,600
능력치
힘 : 1720(+201) 체력 : 1113(+201)
지능 : 905(+201) 민첩 : 878(+201)
신성 : 1806(+201) 위엄 : 825(+201)
선행 : 461
남은 스탯 : 257
독 저항력 +30
마법 저항력 +40%
자연친화력 +200
악마/언데드에게 주는 피해 +100%
신성력을 소모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 +55%
모든 스킬의 신성력 소모량 -30%
이것이 현재 카이가 강림을 제외한 모든 스킬을 사용하였을 때 낼 수 있는 최고의 스펙.
솔라 필드와 신성 폭발, 블레스나 사도의 길과 같은 세트 효과.
그렇게 상승한 수치가 괄호 옆에 쓰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온라인 게임에서 사제는 뒤로 갈수록 귀족 대우를 받는 이유가 있지.’
다른 사제들도 자신 만큼은 아니겠지만, 못해도 모든 스탯을 30씩은 올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귀족이라는 소리를 듣고 산다.
‘그러니 확실히 보여줘야지.’
쩌저저저적.
석화에서 완전하게 깨어난 자탄은 자신의 몸 밑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인간 하나를 향해 분노했다.
-고오오오오오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굉음!
하지만 카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탄을 올려다보았다.
‘설은영이 그랬던가? 검은 벌과 타이탄의 잔존 세력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그들이 뭉쳤다면 당연히 스팅과 골리앗이 함께하고 있을 터.
하지만 카이는 그들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것이 놀라울 정도.
‘하지만 실제로 그런 걸 뭐 어떻게 해.’
골리앗과 스팅.
두 사람 모두 뛰어난 플레이어다.
하지만 게임에서의 뛰어남은 결국 상대적으로 평가를 해야 하는 법.
카이는 설은영에게 그들의 소식을 듣고, 경고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내 목을 따고 싶다는데 어쩌겠어? 하지만…….’
기왕 올 것이라면 제대로 된 각오를 하고 와라.
카이는 그런 의중을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와라.”
그날, 메인 에피소드2의 레이드 보스 몬스터인 자탄은 카이의 검 앞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