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
힐통령 231화
79장 어서 오세요, 드워프 공방에!(1)
어느 스포츠나 그렇듯 스포트라이트는 승자에게 돌아가는 법이다.
레이드도 마찬가지였다.
[랭킹 1위 카이! 두 번째 메인 에피소드의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다.]
[혼자서 다 해먹는 사나이.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
[자탄을 쓰러트린 미드 온라인 절대자의 위용(사진 첨부)]
[워리어스 길드, ‘언노운과의 합동 작전 결과에 매우 만족스러워.’ 공식 입장 발표.]
[자탄 쫓던 천화, 지붕만 쳐다보다. 천화 길드의 추후 행보는?]
[레이드 방송 역대 최다 시청률, 최대 티켓 판매량 갱신. 워리어스, ‘언노운 효과’ 톡톡히 봐.]
워리어스와 카이.
따지고 보면 둘 모두 승자였지만, 대부분의 조명은 카이에게 향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나.’
인터넷 기사들을 둘러보는 카이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서는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감정마저 엿보였다.
‘혼자서 자탄의 2, 3페이즈를 맡고 체력의 70%를 깎았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이번 레이드에서 돋보인 것은 단연 자신이었다.
그만이 주인공이었고, 그를 제외한 모든 이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의 존재감이 옅었냐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워리어스 길드는 그 어떤 무대에 던져 놔도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할 최강의 군단.
그럼에도 카이는 실력으로 그들의 흔적을 덮어버린 것이었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워리어스 생각은 눈곱만큼도 나지 않게끔 만들 정도의 강렬한 향기.
“후우, 몸은 조금 뻐근하네.”
우두둑, 우두둑.
카이가 목을 돌리며 온몸을 스트레칭했다.
자탄의 덩치는 무척이나 크다.
자신이 보았던 몬스터 중 가장 거대하던 녀석은 다름 아닌 사룡 시네라스.
자탄의 몸집은 그 사룡보다 약간 더 작을 정도로 컸다.
그 때문인지 카이는 온몸이 삐걱거림을 느꼈다.
‘이후에 다른 곳으로 새지 말고, 곧장 최고급 여관으로 가서 슬립 모드로 변경해 놔야겠어.’
이미 치료를 마친 캐릭터의 신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카이 본인.
한정우의 정신이었다.
‘뇌가 녹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야.’
현재의 카이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지쳐 있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꿀 같은 단잠뿐이었다.
그를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만든 것은 자탄이 꽁꽁 숨겨두었던 3페이즈였다.
‘만약 누군가 날 하루 전으로 회귀시킨다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그놈의 멱살을 흔들겠어.’
카이는 질린 듯한 표정으로 자탄을 상대하던 때를 떠올렸다.
자탄의 체력이 30% 밑으로 떨어지는 순간, 3번째 페이즈가 시작되었다.
중력장의 세기는 2배로 증가했고, 네 개의 다리에서 사대속성의 마법을 뿜어댔다.
‘어찌 보면 살아남은 게 용하지. 이건 두 번하라고 해도 할 자신이 없다.’
자신에게 날아드는 수백 개의 마법을 시시각각 파악하고, 피하며, 위크 포인트에 공격을 쑤셔 박는 것까지.
그야말로 무아지경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카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물론, 그 덕분에 현재 커뮤니티에서는 유례없는 축제가 벌어진 상태!
-아마 평생의 자랑거리가 될 거야. 나중에 태어날 자식에게도 말해줘야겠어. 아빠는 이 전설적인 레이드를 실시간으로 봤다고.
-예전에 검은 벌이랑 싸울 때도 느낀 거지만, 언노운 저 녀석 마법 저항력이 굉장히 높네.
└마법 저항력 높은데, 심지어 잘 맞지도 않아.
└스윽, 한 번 쳐다보고는 ‘뭐야 이거?’ 이러면서 그냥 피하는 것 봐ㅋㅋㅋ.
-역시 아무나 랭킹 1위가 되는건 아니구나.
-명실상부, 자타공인 미드 온라인 최강의 플레이어의 위엄을 다시 한 번 깨우쳤다.
-저 정도 실력이면 세계 9대 길드 위에 카이를 놔야 하는 거 아니냐?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세계 9대 길드는 엄청난 세력…… 흠. 말하고 있는데 조금 이상하네.
└그렇지? 그 엄청난 세력 중 두 곳이 이미 카이의 손에 무너졌으니까.
“반응 좋고.”
카이는 자탄 레이드에서 수많은 것을 얻어냈다.
물론 그것들을 얻어내기 위해 카이가 희생한 것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레이드 티켓 비용이지.’
카이는 레이드 티켓 비용으로 10원짜리 한 닢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카이의 미드 온라인 커뮤니티 계정에는 후원금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중이었다.
‘아, 지금이라면 그거 할 수 있을지도.’
후원금 창을 쳐다보던 카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확히 10초가 지나자,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좋아. 스포츠카 한 대 뽑았다.’
그 정도로 미친 듯이 쏟아지는 후원금!
일일이 다 셀 수도, 누가 얼마를 보내는지도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눈 한 번 깜빡이면 후원의 이름과 액수가 모두 뒤바뀌는 경이로운 상황.
후원금 창을 쳐다보고 있는 카이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알림창이었다.
띠링!
[기만하는 자들의 주인, 자탄을 쓰러트리셨습니다.]
[자탄을 처치하는 데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셨습니다.]
[태양신 헬릭이 독종을 쳐다보는 눈으로 당신을 쳐다봅니다.]
[선행 스탯이 10개 상승하셨습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로 선행 스탯 5개가 추가적으로 상승합니다.]
[스페셜 칭호, ‘재앙 파괴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스페셜 칭호, ‘에피소드 종결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스탯 포인트 35개를 획득했습니다.]
[당신을 향한 뮬딘 교의 악의가 더욱 짙어집니다.]
[뮬딘 교에서는 당신을 대상으로 한 저주를 준비할 것입니다.]
예상대로, 아니 어쩌면 예상보다 더 많은 보상들이 물밀 듯 밀려왔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카이는 마치 딸바보 아버지마냥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렸다.
‘스페셜 칭호가 두 개나 나오다니. 횡재네.’
자탄의 목숨을 끊으면 에피소드 종결에 대한 칭호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설마 절대적인 기여도를 획득하여 재앙 파괴자라는 칭호까지 얻게 될 줄이야.
‘레벨도 7개나 올랐고…… 선행 스탯도 15개면 나쁘지 않아.’
하지만 카이는 그 모든 것들을 가볍게 치부했다.
앞서 말했지만, 카이는 이번 레이드의 티켓 비용에서 10원짜리 한 장도 받지 않았다.
“모두 이것 때문이었지.”
자탄은 뮬딘 교에서 작정을 하고 만들어낸 초거대 키메라다.
여태까지 카이가 봤던 몬스터 중 가장 거대했던 것은 다름 아닌 사룡 시네라스.
자탄은 그 사룡과 견주어도 꿇리지 않을 정도의 덩치를 지닌 녀석이었다.
그 말인 즉, 뱉어낼 전리품도 많다는 소리.
카이는 레이드의 티켓 비용을 일절 받지 않고, 자탄의 2페이즈 이후를 혼자서 맡는다는 조건으로.
자탄의 모든 전리품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한 마디로 이 녀석이 뱉어내는 모든 보상은 내 것이라는 거지.’
게다가 이것은 게임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게임.
레벨 1,000짜리 토끼를 잡는 것보다는 레벨 100의 메인 에피소드 보스를 잡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룡은 레벨이 550이나 되는 무식한 놈이었지. 하지만 메인 에피소드의 레이드 보스는 아니었어.’
단순히 미드 온라인에 존재하는 4대 마경 중 하나인, 설산의 주인이었을 뿐.
그렇기 때문에 카이는 지금 이 순간 더더욱 기대가 되었다.
‘한 번 비교를 해보자고.’
레벨 550의 사룡.
그리고 레벨 350의 자탄.
과연 어느 놈이 더 흥미로운 전리품을 뱉어냈을까?
툭.
카이가 자탄의 시체를 건드리자, 루팅 목록이 주르륵 펼쳐졌다.
“전부 획득.”
[자탄의 단단한 껍질 320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자탄의 온갖 맛이 나는 고기 270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자탄의 합성된 뼈 158개를 획득하였습니다.]
[불타는 자탄의 다리 1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얼어붙은 자탄의 다리 1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찌릿찌릿한 자탄의 다리 1개를 획득하였습니다.]
…….
[스킬북-중력장을 획득하였습니다.]
[스킬북-석화를 획득하였습니다.]
[자탄의 핵을 획득하였습니다.]
“호오.”
생각보다 보상이 훨씬 풍부하다.
‘지금 내가 쓸만한 것들이라고 해봤자…….’
카이의 시선이 두 개의 스킬북으로 향했다.
“아이템 감정.”
[스킬북-중력장]
등급 : 유니크
일대의 중력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스킬북-석화]
등급 : 유니크
대상을 지정하여 석화 상태로 만듭니다.
석화 상태 동안 대상은 모든 피해에 면역이 됩니다.
“음……!”
중력장과 석화.
두 스킬 모두 자탄이 전투 중에 사용하던 스킬이었다.
‘하수인 소환은 없지만,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그 둘은 지금의 카이가 떠올려 봐도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녀석들이다.
만약 하수인들을 소환할 수 있는 스킬북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밸런스를 해치는 일.
‘하긴, 이 게임에서 밸런스 찾는 것도 우스운 일인가.’
피식 웃음을 흘린 카이는 잠시 고민했다.
‘중력장과 석화는 모두 마나를 사용하는 스킬이야.’
현재 그 어떤 버프도 걸려있지 않은 상태에서, 카이의 지능은 700 정도.
‘스탯 창에는 마나 수치가 표기되지 않게끔 설정해놨지만, 계산해보면 현재 내 마나는 7만이 조금 넘는 정도겠지.’
석화와 중력장.
신성력을 소모하지 않는 스킬이라고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스킬들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이 스킬이 넘어가는 것이 신경 쓰였다.
‘솔직히 이 스킬들을 제값 주고 살 만한 녀석들은 최상위 랭커들 밖에 없어.’
그리고 그 최상위 랭커들 대부분은 자신의 경쟁자들.
한 마디로 이 스킬들을 판매해봤자 경쟁자들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다.
‘차라리…… 그냥 내가 다 배워버려?’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자, 판매하려고 모셔두었던 스킬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이템 감정.”
[헬 파이어]
등급 : 유니크
지옥의 업화(業火)를 소환하여 적들을 불태워 버립니다.
*헬 파이어의 공격력은 지능 스탯에 비례합니다.
[다크 스피어]
등급 : 유니크
적들을 꿰뚫어버릴 어둠의 창을 소환합니다.
*특수 스탯, 마기가 있어야 습득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음? 다크 스피어는 어차피 못 배우는 스킬이네.’
마왕 추종자였던 지르칸의 고유 스킬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다크 스피어는 마기라는 특수 스탯 보유자만이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그럼 이건 예정대로 판매하고…….’
카이의 시선이 나머지 세 개의 스킬들을 향해 돌아갔다.
‘중력장과 석화, 그리고 헬 파이어라.’
문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나는 사제인데…….’
10레벨 때부터 여태까지 계속.
카이는 사제였고, 지금도 사제이며, 앞으로도 사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최전선에서 검을 휘두르고, 신성 주문을 쏘아낸다.
‘게다가 이제는 마법까지 배울 생각을 하는 이상한 사제지.’
남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검지를 관자놀이 부근에서 빙글빙글 돌리는 제스쳐를 취할 것이다.
‘헌데…… 나는 왜 재미있을 것 같지?’
카이의 표정은 누가 봐도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다만, 카이는 조심스럽게 헬 파이어 스킬북을 인벤토리로 집어넣었다.
‘지능 스탯 700 가지고는 헬 파이어를 사용해 봤자야.’
아무리 잘 봐줘도 스킬 이펙트가 화려한 파이어볼, 고작해야 그 정도 수준일 것이다.
그렇기에 카이는 자신이 100% 활용할 수 있는 스킬들만을 습득했다.
띠링!
[스킬-중력장을 습득하셨습니다.]
[스킬-석화를 습득하셨습니다.]
이어서 스킬 설명들을 읽어내리던 카이의 눈매가 돌연 반달처럼 곱게 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