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힐통령 232화
79장 어서 오세요, 드워프 공방에!(2)
[중력장]
등급 : 유니크
일대의 중력을 조작하거나, 대상 하나를 지정하여 그 대상에게 가해지는 중력을 조작합니다.
조작하는 중력장의 내용과 유지 시간에 따라 소모되는 마나량이 결정됩니다.
최소 3,000 마나 소비
재사용 대기 시간 : 1시간
[석화]
등급 : 유니크
지정된 대상을 1분 동안 석화 상태로 만듭니다.
석화 상태의 대상은 모든 종류의 공격에 면역이 됩니다.
3,000 마나 소비
재사용 대기 시간 : 24시간
스킬의 효과를 자세하게 읽던 카이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찾아들었다.
‘이게 뭐야? 기대 이상이잖아?’
예로부터 대부분의 게임들이 그랬다.
보스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스킬이나 장비들은 사기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반면.
그 보스를 죽이고 자신이 똑같은 기술을 배우거나, 장비를 주워 사용하면 심각한 너프를 받는 상황 말이다.
‘솔직히 중력장이랑 석화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했는데…….’
아니, 따지고 보자면 두 스킬 모두 너프를 받은 것은 맞았다.
자탄이 시전하는 중력장의 범위는 훨씬 넓었고, 유지 시간에는 제약조차 없었다.
석화도 마찬가지.
회색빛에 물든 자탄은 하수인들이 쓰러지기 전까지 석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감지덕지야.’
우선 석화.
위기 시에 1분은 충분한 시간이다.
아니, 애초에 1분은 커녕 10초 정도만 되었어도 매우 훌륭한 스킬이다.
‘모든 공격에 면역이니까 말이지.’
카이의 머릿 속에서는 이미 석화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수십 가지의 방법들이 둥둥 떠다녔다.
하물며 중력장은?
‘간만에 재미있는 장난감을 얻었어.’
짧은 감상을 마친 카이에게, 발칸이 길드원들을 이끌고 다가왔다.
그는 가까이서 보니 더욱 거대한 자탄의 시체를 보며 감탄의 목소리를 뱉어냈다.
“정말로 쓰러트렸군.”
“그게 계약의 내용이었으니까요.”
담담한 표정의 카이를 쳐다보던 발칸이 말을 이었다.
“자탄 레이드 영상은 막이 내릴 때까지 총 2,300만 명이 시청했다.”
“…….”
2천 3백만 명.
티켓 값이 5달러였으니, 5천 원으로 계산해도 1,150억에 육박하는 돈이다.
‘물론 저기서 40%는 세금으로 뚝 떨어져나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만에 벌어들였다고 보기에는 천문학적 액수.
다른 길드들이 대체 왜 그렇게 메인 에피소드의 레이드 보스를 공략하지 못해서 안달이 났었는지 능히 알 것만 같다.
‘필드 보스나 던전 보스들을 아무리 많이 레이드한다고 해도, 이 정도의 돈을 벌어들이는 건 쉽지 않지.’
자탄이 메인 에피소드의 대미를 장식하는 레이드 보스였기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이다.
과거에 천화가 그 영광을 가져갔듯, 이번에는 워리어스와 카이가 그 영광을 독식했다.
툭툭.
발칸이 자탄의 시체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대가 이번 레이드에서 얻은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군.”
“별말씀을.”
카이는 빙그레 웃으며 화답했다.
어차피 돈은 지금도 넘치도록 많았다.
게다가 레이드의 실시간 티켓 정산만 받지 않기로 한 것이지, 이후에 편집이 되어 나갈 유료 영상에 대한 지분은 카이도 30%를 받기로 했다.
‘그것도 분명 큰돈이 되겠지.’
여전히 달마다 몇천 만원의 후원금을 물어오는 아오사 공략 영상과 쌍두마차를 달릴 평생 연금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좋아.’
괜히 돈 몇 푼 더 얻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자탄이 뱉어낸 것을 온전히 독식하는 데 차질이 있었을 것이다.
‘그 고생을 해놓고 중력장과 석화를 빼앗겼다면 분해서 잠도 못 잤을 거야.’
누군가는 자신을 바보라 칭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는 굉장히 만족한 상태였다.
“그럼 다음에 또 좋은 일로 보도록 하지.”
“예, 그랬으면 좋겠네요.”
찰칵!
카이가 발칸과의 악수를 나누는 장면은, 스크린 샷으로 찍혀 커뮤니티의 대문에 박혔다.
***
“흐으어어어어.”
카이는 곧장 도시의 최고급 여관으로 달려가, 구름처럼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지며 로그아웃을 했다.
그로부터 12시간 후, 한정우는 구수한 목소리로 기지개를 켜며 몸을 꿈틀거렸다.
‘으으…… 일어나기 싫다.’
하루쯤은 게임을 쉬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려는 순간.
벌떡!
한정우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는 법이지.”
다이어트를 하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몇 달 동안 열심히 다니던 운동도, 딱 하루만 쉬게 되면 다음 날도 쉬고 싶어지는 법.
순식간에 세안을 마친 한정우는 슬쩍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후 1시라. 아침 먹기 딱 좋은 시간이네.”
물론 세상 사람들은 이 시간에 먹는 밥을 점심이라 칭한다.
“흐흐흥.”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찾기 위해, 냉장고를 연 한정우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음식 재료가 모두 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직 내게는 찬장이 있어. 찬장! 찬장을 보자!’
이어서 찬장까지 열어 확인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턱.
힘없이 찬장 문을 닫은 한정우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거실 소파에 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장을 한 번 보러 간다는 게 깜빡했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귀찮았던 한정우는 한 번 장을 보러 가면 마트를 쓸어버릴 기세로 음식들을 사왔었다.
덕분에 한 번 장을 보러 가면 2~3주는 거뜬히 버틸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건 딱 어제까지였던 모양.
‘나가기 싫은데. 음식 배달이나 시켜먹을까…….’
저절로 늘어지는 그의 정신을 일깨운 건 한 통의 전화였다.
“음? 엄마?”
서둘러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들, 오늘 저녁에 집에 와.]
“오늘 저녁이요? 갑자기 왜…….”
[일요일이잖아?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여서 밥이나 먹게. 지혜도 온다고 했어.]
“끄응. 알았어요.”
남자에게 있어선 국방부의 부름 이후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가족의 부름.
그것도 엄마의 부름이다.
“그럼 저녁에 뵐게요.”
전화를 마친 한정우는 결국 점심으로 짬뽕과 오므라이스를 시켜 먹었다.
***
아인종들의 도시, 리버티아.
일반 유저들은 모르지만 비르 평야 전투에 참가했던 길드 마스터들만이 아는 사실이 하나 있다.
‘저 땅은 언노운의 땅이지.’
‘아인종들에게 땅을 제공하는 대가로 그가 과연 무엇을 받아냈을까?’
‘엘프들의 특제 비약? 인어들의 마법 지식?’
그 땅이 카이의 땅이라는 것을.
하지만 자존심 높은 아인종들이 카이를 영주로 추대했다는 사실만큼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리버티아는 못 먹는 감이나 마찬가지다.
‘리버티아. 확실히 탐나는 땅이긴 하지만…….’
‘저 곳을 건드리면 카이는 물론이고 엘프와 인어, 거기다가 라시온 왕실과도 척을 지게 된다.’
‘건드리면 득보다는 실이 많을 곳이야.’
‘게다가 굳이 손에 넣지 않아도 그곳으로 가면 인어와 엘프들의 지식을 배울 수 있지.’
그 장애물들을 치워 버릴 힘이 있지 않은 이상, 리버티아를 차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와중에, 리버티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음?”
“왜 그래?”
“아니, 저 건물 말이야. 어제도 있었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건물이 하루 만에 지어질 리가…… 어?”
하룻밤 사이에 사뭇 달라진 리버티아의 풍경에 유저들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공방들도 여러 개나 지어졌는데?”
“하룻밤 만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니, 그런데 대장간은 마을당 하나씩만 있으면 충분한 거 아니었어?”
“뭐가 이렇게 많이 생겼대…… 다 같이 굶어 죽을 일 있나?”
“하여튼 NPC들이란.”
유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인종들의 욕심을 비웃었다.
“좀 지나갈게요.”
그런 그들 사이를 지나가는 유저 하나가 있었다.
그의 닉네임은 라면물조절장인.
조금 전의 사냥에서 무리를 하다가 무기의 내구도가 크게 손상된 이였다.
‘빨리 수리를 해야지, 이러다간 무기가 깨지겠어.’
미드 온라인에서는 장비의 내구도가 0이 되었는데 추가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면 운이 나쁠 시 장비 자체가 파괴되었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유저들은 수리 키트를 들고 다니거나 마을에 방문할 때마다 장비 점검을 꼼꼼하게 하는 편이었다.
“실례합니다. 여기 장비 수리…… 어?”
대장간의 문을 연 라면물조절장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도 없어?’
분명히 화덕은 뜨겁게 달구어져있는데,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선반이랑 의자들이 뭐 이리 낮아?’
도구를 올려놓는 선반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앉아야 할 의자나 작업을 위한 화덕까지!
모든 것의 높이가 필요 이상으로 낮았다.
“대체 뭐가 뭔지…… 아무도 안 계십니까?”
“아래쪽이다. 덜 떨어진 녀석 같으니!”
라면물조절장인은 자신의 허벅지 부근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어…… 어……?”
이어서 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드, 드워프다아아아!!!”
그의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리버티아의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
“드워프라고?”
“제국의 황실 공방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들 아니었어?”
“아니, 분명 여기가 아인종들의 도시니까 드워프들이 나타나도 이상할 건 없지만…….”
“그래도 드워프라니!”
리버티아의 새로운 식구, 드워프.
그들의 정식 합류가 알려지자 마을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여보세요? 네네, 마스터. 이번에 고론 공방에 발주한 장비들 있죠? 그거 다 취소하세요.”
“드워프라니까요? 와, 지금 대장간에 전시되어 있는 장비들 보고 있는데, 대박이에요.”
“아직 공방을 연지 몇 시간 안 되서 그런지 만들어놓은 아이템은 몇 개 없어요. 하지만 진열된 장비들은 최소 매직 등급, 심심하면 레어가 보이는 곳이라니까요?”
“더욱 놀라운 점은, 공방이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제가 확인한 곳만 52곳입니다. 아마 더 있을 거예요. 한 시라도 빨리 움직여서 공방과 독점 납품 계약을 해야 합니다.”
드워프들이 무구.
일반적으로는 제국의 황실 공방에서만 제작된다고 알려진 장비들이다.
심지어 그것조차도 제국의 기사들에게만 입혀주니 시중에는 매물 자체가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언제든지 주문만 하면 살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유저들은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공방으로 몰려들었다.
“롱소드! 롱소드 만들어주세요!”
“여기 활이랑 화살도 만들어주시나요?”
“갑옷도 제작할 줄 아시죠? 전 풀 플레이트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재료는 이걸 사용해 주십시오. 블랙 오우거의 가죽과 뼈입니다. 제작비는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요.”
“만약 저희 블랙 마켓 길드와 독점 계약을 맺으신다면, 최고의 작업환경을 제공…….”
“Take my money!”
향기로운 꽃에는 벌들이 모여드는 법.
드워프들의 합류로, 안 그래도 인기 관광 명소였던 리버티아는 북새통을 이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