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
힐통령 233화
79장 어서 오세요, 드워프 공방에!(3)
가족과의 저녁 식사 약속은 7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때문에 정우는 그 공백의 시간을 메꾸고자 자연스럽게 미드 온라인에 접속했다.
‘인벤토리도 한 번 비워야겠네.’
사룡의 전리품과 루시퍼의 전리품.
거기다가 지르칸과 자탄의 전리품까지!
현재 카이의 인벤토리는 그야말로 보물 창고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자탄의 전리품까지 들고 다니니까 이동속도가 느려지잖아.’
카이는 상인이 아니었기에, 일정 개수 이상의 아이템을 들고 다니면 속도 페널티가 생겼다.
그것이 카이의 발걸음을 리버티아로 향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어떻게 바뀌었나 보고 싶기도 하고.’
리버티아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기와도 같은 마을이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하루 곁에 붙어서 지켜보고 싶을 정도.
‘여태까지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영주인데 관리는 해야지.’
오늘 저녁, 발칸으로부터 영지의 인수인계가 완료될 것이다.
그것도 무려 두 개나 되는 영지다.
그 말은 즉 오늘 저녁, 카이는 귀족 칭호를 손에 넣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최초의 귀족은 아니다.
‘그 칭호는 이미 9대 길드 마스터와 거대 길드 애들 손에 넘어갔지.’
간단한 예를 들면, 흑룡 길드는 벌써 손에 넣은 영지의 수가 열 개를 넘어갔다.
도저히 개인의 무력으로 저지할 수가 없는 수준.
“자, 그래도 당분간 걱정거리는 없으니까.”
신출귀몰의 효과로 리버티아에 도착한 카이는 두 눈을 깜빡였다.
‘이게 뭐야…?’
리버티아는 본래부터 관광 마을로 유명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마을 전체에 미남, 미녀들만이 득실되는 장소는 미드 온라인에서도 흔치 않다.
더군다나 완벽한 몸매를 자랑하는 엘프와 인어들이니 남녀를 불문하고 찾아오기를 원했다.
하지만 결코,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어! 어떻게 됐어? 뭐? 공방들이 독점 계약을 거부한다고? 젠장! 대체 이유가 뭔데?”
“영주의 허가가 필요해? 영주가 대체 누군데?”
“그걸 물어볼 만한 사람이… 아! 엘프 여왕은 만나 봤어? 뭐? 자격이 안 된다고? 젠장! 내가 그래서 엘프 관련 퀘스트는 미리미리 해두라고 했지!”
“아, 미치겠네. 눈앞에 보물이 있는데 손이 닿지를 않는다니.”
다들 번쩍번쩍한 장비를 두르고 있는 최상위권 플레이어들이다.
개중에는 카이도 얼굴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9대 길드 소속의 랭커들도 있었다.
‘저 녀석들이 리버티아에는 왜?’
얼떨떨한 기분으로 발을 내디딘 카이는 굼뜬 발걸음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아하. 그렇게 된 거구나.’
한 바퀴를 채 돌기도 전에, 카이는 이 사태의 원인을 파악해 낼 수 있었다.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새로 지어진 드워프 공방 앞에는 아이돌 콘서트 대기 줄 마냥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니까.
‘카룬달을 한번 만나봐야겠어.’
카이는 언노운을 연상시킬 수 없는 누더기 같은 장비를 걸쳐 입고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세계수의 꼭대기로 향했다.
처억!
당연하지만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엘프 족의 전사들.
뭍에서의 전투 능력이 가장 뛰어난 엘프들은 리버티아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정지. 방문 목적을…… 어?”
“카이 님!”
카이가 누더기 같은 옷의 후드를 들어 올리며 씨익 웃자, 그를 알아본 엘프들이 소리쳤다.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카이 님의 저택인걸요.”
“아, 그리고 각 종족의 대표들을 좀 보고싶은데.”
“그분들에게도 바로 연락을 넣겠습니다.”
“부탁할게.”
전사들을 무사히 지나친 카이는 세계수의 꼭대기에 마련된 2층짜리의 원목 저택을 바라봤다.
“흐음. 미드 온라인에서는 내 집 마련의 꿈이 비교적 쉽다고는 하지만…….”
우스갯소리로 현실에서는 집이 없지만 미드 온라인에는 집 한 채씩 있다는 소리가 나돈다.
그만큼 시골 영지 쪽의 집값은 굉장히 저렴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자본금에 여유가 되는 고레벨 유저라면, 시골 영지의 집 한 채쯤은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이 정도까지는 아니겠지.’
신생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리버티아는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곳이다.
심지어 아인종이 아니면 이곳의 부동산을 구매할 수가 없다.
그런데 세계수 꼭대기의 펜트하우스 버금가는 2층짜리 대저택을 인간이 소유한다?
만약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난리가 나도 단단히 날 것이 분명했다.
끼이익.
저택의 내부로 들어선 카이는 곧장 응접실로 향했다.
-하와와오아아아!
-집주인이다!
-카이잖아?
-이게 얼마 만이지?
응접실 내부로 들어서자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소리가 카이의 귀를 간지럽혔다.
곧이어 그의 눈앞을 날아다니는 주먹 크기의 조그마한 생명체들.
“잘 지냈지?”
엘프들이 이주할 때 함께 데려온 숲의 요정, 페어리들이었다.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고, 대화와 집안 가꾸기를 좋아하는 종족.
그들은 자연스럽게 카이의 저택을 돌보는 일에 배정되었다.
“오렌지 주스 한 잔 부탁해.”
-앗, 주문이다!
-오랜만이야!
-응접실 반짝반짝하지? 우리가 닦아놨어!
“깨끗하네. 나 없는 동안 고생 많았어.”
손가락으로 페어리들과 놀아주던 카이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손님들을 기다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일련의 무리가 응접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이어서 들어온 것은 각 종족의 대표들.
엘프 여왕 엘라니아와 세계수 루테리아.
인어들의 왕 카리우스와 드워프들의 국왕 카룬달이었다.
“돌아오셨군요, 영주님.”
“그 칭호는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네요.”
엘라니아를 향해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인 카이는 그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우선 앉아요. 이야기도 나누고, 물어볼 것도 있으니까.”
그들이 자리에 앉자, 카이는 영지의 근황부터 물었다.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은, 영지의 재정을 맡고 있는 카리우스였다.
“순항 중이라네. 모험가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아.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마을에서 쓰는 돈도 놀랍도록 많지. 방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 상업 지구를 계속해서 증축하고 있는 상황일세.”
“그래요?”
카리우스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카이는 자연스럽게 영지 관리창을 띄웠다.
[영지 관리]
이름 : 리버티아
등급 : C+
인구 : 5,279명(이주 신청 22,150명. 계속 상승 중↑)
월수입 : 1,729골드(계속 상승 중↑)
“음?”
활성화된 인터페이스를 쳐다보던 카이가 저도 모르게 제 눈을 비볐다.
‘잠깐, 이게 리버티아의 상태라고?’
카이가 마지막으로 마을을 방문했던 건, 태양교 본단의 배반자들을 숙청한 뒤였다.
그때의 영지 등급은 고작 D.
게다가 월수입도 300골드 수준으로 용돈 벌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 이 수치들은……?’
영지라는 게 원래 이렇게 콩나물처럼 쑥쑥 성장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카이가 기획했던 아인종들의 도시라는 콘셉트가 유저들의 취향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몽환적인 마을.
인간의 건축물이 아닌, 아인종들의 문화로 이루어진 마을은 유저들의 로망에 불을 질렀다.
‘제대로 먹혔네.’
카이는 자신의 작품이 내놓은 결과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엘라니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인구가 지난번보다 몇백 명이나 늘었네요?”
그 짧은 시간에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태어났을 리는 없다.
엘라니아는 자애롭게 웃으며 답했다.
“리버티아의 소식을 듣고, 대륙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있던 엘프와 인어, 드워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뿔뿔이 흩어지다니요?”
“설마 이 넓은 대륙에 엘프와 인어, 드워프가 저희만 있으리라 생각하신 건 아니겠죠?”
“…….”
그렇게 생각한 것 맞다.
카이가 입을 꾹 다물자, 카룬달이 말을 받았다.
“우리 드워프 일족만 봐도, 뮬딘교와의 100년 전쟁 이후에 소수 부족으로 나뉜 이들이 상당하다네. 물론 잉가르트는 드워프들의 본고장임이 틀림없지만, 흩어졌던 소수 부족들이 소식을 듣고 리버티아로 몰려드는 모양이야.”
“엘프들도 마찬가지예요. 대부분은 노예로 잡혀 있다가 도망 다니던 이들이지요.”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인어들의 경우엔 조금 더 간단하네. 실컷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집이 그리워서 찾아오는 게지. 껄껄껄.”
“그렇군요. 그렇다면 거주 지역도 증축해야겠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그 건에 대해서는 보고서를 작성해놨네. 영주인 자네의 허락만 떨어진다면 즉시 공사에 착수하도록 하지.”
카룬달이 믿음직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서를 읽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마을의 공방들은 대체 뭔가요?”
“으음, 그게 말일세…….”
안 그래도 그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카룬달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카이의 시선을 회피했다.
“커허험. 드워프들은 태생이 쇠와 망치를 놓을 수 없는 이들이네. 뮬딘교와 사룡에게 휘둘려 그 꼴을 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안전한 이곳에 도착하니 다시금 일 생각이 나는 녀석들이 많은 것 같더군.”
“그래서……?”
“다들 제 공방을 하나씩 차리더군. 그렇게 만들어진 공방이 108개일세. 그들 모두 실력만큼은 어디서도 꿇리지 않는 제작의 달인들일세.”
“끄응.”
리버티아는 대도시는커녕 도시라고 불리기에도 규모 면에서 부족하다.
그런 곳에 대장간만 108개나 있다니.
‘이건 너무 과한데.’
하지만 자신이 영주라고 해도, 권력을 남용하여 공방을 접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늦었어.’
이미 드워프들의 공방이 마을에 가득 들어찬 것은 유저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져 버렸다.
지금 와서 물리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다.
“그래서 드워프들은 그냥 무구만 만들면 그걸로 족한 겁니까?”
“처음에는 그랬는데…… 이 녀석들, 묘한 경쟁이 붙은 모양이더군.”
“경쟁이라면?”
“잉가르트에 있을 때부터 내 무구가 낫니, 네 무구가 낫니 싸우던 녀석들이네. 다만 그때는 정확하게 판단해 줄 이들이 없어서 논쟁만 하고 끝났는데…….”
“이제는 무구들의 가치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구매할 고객들이 생겼군요.”
“맞네. 그 때문인지 벌써부터 리버티아 제일의 대장장이가 누가 될 것인지 저들끼리 내기를 하고 난리도 아니네.”
“흐음.”
이래서 예술가들을 통제하는 것은 어렵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짜들이니까.
‘드워프들이 거대 길드와 독점 계약을 하게 둬선 안 되는데.’
드워프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물론 그 황금알은 자신의 품 안에서 낳아야 가치가 있는 것.
절대 남의 품 안에서 놓게 두어선 안 되었다.
‘거참, 오랜만에 방문한 마을에 늑대들이 이리 도사리고 있을 줄이야.’
카이는 자신의 것을 강탈해 가려는 늑대 무리의 존재에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루테리아는 어떻게 생각해?”
[나의 벗이여. 이미 생겨난 공방을 다시 무너뜨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네.]
“그건 그렇지.”
[그렇다면 발상을 전환해 보는 것은 어떤가?]
“발상의 전환?”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무럭무럭 든다.
카이의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한 루테리아는 테이블 위를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말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공방 드워프들과 계약을 하고 싶다는 명목으로 요청이 들어오네. 나의 아이들은 물론이고, 인어 족들도 업무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야.]
“끄응…… 그 부분에 관해서는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카룬달이 쩔쩔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나이도 적지는 않았지만, 세계수 앞에서는 갓난아이에 불과했으니까.
[그렇다고 드워프들의 기술을 외부에 빼앗기는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당연하지.”
[이런 경우에는 양측이 원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되는 법일세.]
과연 세계수.
귀엽고 앙증맞은 외견과는 달리, 몇 천 년 동안 누적시킨 경험은 녹록지 않았다.
[인간들이 원하는 것은 드워프들이 만든 양질의 무구일세. 그리고 드워프들이 바라는 건…….]
“자신들 중에서 누가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인지를 가리는 것이지.”
[그렇다면 답은 나온 것 아닌가? 영지 차원에서 대회를 열면 되는 것 아니겠나.]
“영지 차원에서……?”
[공방의 드워프 장인들을 한데 모아 경연을 시키는 것은 어떠한가?]
“경연이라? 그럼 경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순위를 상정하고…….”
[결과물로 나오는 양질의 무구를 자연스럽게 인간들에게 판매하는 걸세.]
“훌륭해!”
짝!
카이는 저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루테리아가 제시한 방책은 그 정도로 명안(名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