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34화 (234/441)

# 234

힐통령 234화

80장 천하제일야장대회 (1)

리버티아에 새롭게 세워진 108공방의 드워프들.

그들은 드워프 일족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장비 제작의 달인들이다.

카이는 각 종족 대표들과 의견을 나눈 끝에, 그들을 한데 모아 경연은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대회의 이름은 <천하제일야장대회>.

다소 오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드워프들만이 모여 경연을 치룬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저들도 충분히 납득을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후우. 우선은 여기서 일단락 짓도록 하죠. 보강해야 할 문제는 각자 생각을 해보자구요.”

회의를 파(罷)한 카이는 대표들을 돌려보내고는 접속을 종료했다.

‘슬슬 준비해야지.’

정우는 오랜만에 꼼꼼히 씻고, 면도를 한 뒤 사람답게 보일만한 옷을 꺼내입었다.

집 근처의 청과물 아주머니가 보셨다면 아예 딴 사람이라고 기함 할만한 대변신!

‘가족끼리 밥 한 끼 먹는데 뭘 이렇게 차려입고 오라고 하시는지.’

어머니의 신신당부가 있었다.

대충 차려입지 말고, 예전 자신의 생일 파티 때 보여준 번듯한 차림으로 오라고.

준비를 마친 정우는 택시를 잡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정우야! 여기!”

호텔의 로비에 서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정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주변 남자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고 있는 그녀는 정우의 누나인 한지혜였다.

“일찍 왔네?”

“나도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어.”

“그나저나 또 여기야? 나는 이제 좀 질리는데.”

그곳은 예전에도 방문했던 천화 호텔의 스카이 라운지 레스토랑였다.

셰프의 음식 솜씨가 부모님의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인지, 정우는 어려서부터 이곳에서 음식을 많이 먹어왔었다.

“남들이 들으면 너 욕해. 여기 한 끼 식사비가 얼마인지는 알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랬어.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질리도록 먹으면 질리는거야.”

간만에 누나와 투닥거리며 레스토랑으로 들어선 정우는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정우 왔냐.”

의자에 앉아계시던 아버지가 슬쩍 눈을 마주치며 말씀하셨다.

언제나처럼 근엄한 표정이었지만, 정우는 그 표정 밑에 감춰진 반가움을 읽어냈다.

“잘 지내셨어요?”

“빨리도 묻는구나. 나는 잘 지냈다. 네 엄마 달래주느라 고생하는거 빼면.”

“엄마가 왜요?”

“자식 키워봤자 집 나가면 소용 없다면서 서운해하더라. 내 여자 괴롭히지 마라.”

“……엄마가 그러셨어요?”

항상 카리스마 넘치던 엄마가 그런 반응을 보이셨을 줄이야.

심지어 정우는 못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연락을 드렸었다.

“앞으로는 더 자주 연락 드릴게요. 그나저나 엄마는요?”

“화장실 갔다.”

정우가 자리에 앉자, 때마침 김현정 여사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다들 모였네?”

집에 있을 때는 속을 썩이던 딸과 아들이었지만, 멀리 떨어져 살면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은 법이다.

아들을 훑어보던 김현정 여사의 아미가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너는 밥 잘 챙겨먹는다더니, 피부가 왜 그리 푸석푸석해?”

하루종일 게임만 하고, 3분 요리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니 건강이 좋을 리는 없었다.

할 말이 없어진 정우가 머리만 긁적이자,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 말 나온 김에 다들 어떻게 사는지 근황이나 들어보자. 지혜 너는?”

“직장인한테 근황이 어딨겠어요? 챗바퀴 도는거죠. 그래도 뭐, 일 배우는 재미는 쏠쏠해요.”

“인생이란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워나가는 시간의 연속이다. 배움을 거부한 삶은 고여 버린 물과도 같지. 배움에 있어서 항상 감사하는 자세로 살아가라.”

“명심할게요.”

딸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인 아버지가 정우를 쳐다봤다.

“너는 아직도 그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거냐?”

“예.”

“쯧쯔…… 그게 아직도 돈이 된다는 말이냐?”

“아빠, 요즘 저 게임 난리도 아니에요.”

에피타이저로 제공되는 스프를 호호 불어먹던 한지혜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길드 하나가 레이드 방송인가? 그걸로 네 시간 만에 수백억을 벌었다고 하던데요?”

네 시간 만에 수백 억!

그 말도 안 되는 수치에도 아버지는 고개만 절레절레 흔드셨다.

“어느 업계나 잘 나가는 이들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누구나 업계의 상위 1%가 될 수는 없어. 항상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을 염두에 두고 뛰어들어야 하는 소리지. 대한민국의 치킨집이 하루에만 수백 개씩 생기고, 망하기를 반복하는 이유를 잊지 말거라.”

아버지는 예전부터 항상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말을 즐겨 해주셨다.

정우가 또래에 비해 성숙한 성격을 지니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예전부터 아버지는 나의 우상이셨지.’

그런 만큼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다.

이제 어디 가셔서 아들 자랑 실컷 하셔도 된다고.

스윽.

정우가 품에서 꺼낸 통장을 내밀자, 아버지가 피식 웃음을 지으셨다.

“지난번이랑 비슷한 상황이구나.”

“다릅니다.”

“……?”

아들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통장을 열었다.

“으음!”

동시에 항상 근엄함을 잃지 않던 그의 표정에 균열이 생겼다.

지난번에 2천만 원을 벌고 통장을 보여줬을 때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실 수 없을 테지.’

현재 정우가 건넨 통장에는 현금만 10억이 넘게 들어 있었다.

물론 그건 정우가 지닌 재산의 1/8 정도밖에 안 되는 양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구나.”

통장을 덮은 아버지가 심각한 표정으로 아들을 추궁했다.

아버지의 표정에서 걱정스러움을 읽어낸 정우는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모두 정당하게 벌어들인 겁니다. 누나가 아까도 말했지만, 그 게임의 인기가 요즘 뜨거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액수는 납득이 가질 않는다.”

“아까 말씀하셨죠. 상위 1%만 보고 업계에 뛰어드는 건 미련한 짓이라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정우는 잔을 들어 물을 한 모금 삼켰다.

차가운 물줄기가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 가는 기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탁.

잔을 내려놓은 정우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상위 1%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정도의 돈이…….”

“그냥 1등이지요.”

정우는 가릴 것 없이, 자신이 랭킹 1위라는 정보를 시원하게 공개했다.

가족이다.

게임에서처럼 정보를 숨기고, 독점해야 할 경쟁자들이 아닌 가족이다.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 응원을 해줄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숨길 이유는 없었다.

“으으음…….”

1등.

업계에 뛰어든 모든 이들을 한 줄로 세우면, 가장 앞자리에 위치하는 자.

그 위치의 무게를 알고 있는 정우의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고생했다.”

“감사…… 합니다.”

꽈악.

정우는 저도 모르게 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지 않으면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로부터의 인정.

어렸을 때부터 모든 걸 압도적으로 잘하는 누나와 항상 비교되었다.

당연히 주변인들의 칭찬은 누나를 향해서 쏟아졌다.

‘어쩌면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일지도.’

누군가를 도와주고 보상을 받을 때만큼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칭찬해주니까.

정우는 무뚝뚝하고 근엄한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어른 중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사람이었으니까.

‘솔직히 휴학하는 순간부터는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특히 미드 온라인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를 실망시켰던 게임을 통해서 그의 인정을 받아냈다.

그 사실이 어떤 것보다 정우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어주었다.

“당신. 대체 무슨 일이예요?”

“어디 편찮으세요?”

엄마와 누나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버지는 말 없이 고개를 흔들며 통장을 정우에게 내밀었다.

“가져가라. 네 엄마에게는 내가 잘 설명해 주마.”

정우는 제 앞으로 돌아온 통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쓰셔도 됩니다.”

“나 아직 젊다. 그리고 아들의 코 묻은 돈을 받을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아.”

과연 사장님.

정우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통장을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럼 엄마가 쓰세요.”

“대체 얼마나 들어 있길래…….”

무심코 통장을 열어본 김현정 여사는 1,000,000,000이라는 숫자에 눈만 크게 떴다.

“정우 너…….”

“제가 전화로 매번 말씀드렸잖아요. 이제 저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

아들이 그런 말을 한다 해도, 그 어느 어미가 아들을 걱정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통장의 액수는 그런 걱정을 봄날의 눈처럼 사르륵 녹게 만들어주었다.

그것은 부모님이 속물이어서가 아니라, 아들이 이제 제 앞가림은 할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엄마도 아직 돈 잘 벌어. 이건 네 월급쟁이 누나한테나 줘라.”

다시 접혀진 통장은 누나에게 돌아갔다.

“뭔데? 대체 얼마나 들었길래…… 허업!”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한지혜는, 장소가 장소임을 깨닫고 서둘러 제 입을 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지혜는 인상을 찌푸리며 통장을 다시 한정우에게 내밀었다.

“나도 대기업 다니면서 나름대로 돈 잘 벌거든? 자존심 상하게 정우 왜 써?”

“아니, 써도 되는데…….”

“됐어. 도로 가져가.”

누나의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그 목소리에는 자신을 향한 따스함과 대견함이 배여 있었다.

‘이것 참…….’

10억이라는 큰돈이 들어 있는 통장이다.

그 통장은 세 명의 사람을 거쳤지만, 결국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자신에게 돌아와 버렸다.

‘내 가족이지만, 정말 착해빠졌다니까.’

자신의 성공을 허울 없이 터놓을 수 있고,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정우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

“흐으으음.”

가족과의 멋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리버티아로 돌아온 카이는 한 가지 고민에 잠겨있었다.

‘천하제일야장대회. 아이디어는 좋아. 하지만 그 이후는 어떻게 하지?’

경연을 여는 이상 우승자는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우승자의 명성은 말도 안 되게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우승자는 모두가 바라는 드워프 족의 기술.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이들 중에서 최고의 대장장이라는 소리일 테니까.

‘그렇다고 나머지 107명의 대장장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지는 않을 거야.’

경연에서 패배했다고 해도 그들의 실력이 볼품없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모두의 관심이 우승자에게 쏠릴 때, 그들을 포섭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수도 있다.

“끄응. 그렇다고 리버티아에서 계속 냅두는 것도 이상한데…….”

리버티아라는 작은 마을에서 108개나 되는 공방을 유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가뜩이나 상업 지구와 주거 구역의 증축이 대두되고 있는 지금에서는 더더욱.

‘공방이 108개나 들어서면서 안 그래도 좁은 영지의 면적이 더욱 줄어들었잖아.’

카이가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골머리를 쥐고 있을 때, 손님이 찾아왔다.

“여~ 의뢰인!”

“……카밀라?”

여전히 불꽃처럼 강렬한 머리칼이 카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시에 그녀가 자신을 방문한 목적도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장비가 완성될 때가 되었나?”

“헐. 사룡의 재료를 맡겨놓은 사람이 그렇게 무방비해도 돼?”

“어차피 너 도망도 못 치잖아. 시스템으로 보호받고 있는데 뭘.”

사실이다.

대장장이는 의뢰인이 맡긴 재료나 완성품을 제멋대로 판매, 교환하지 못한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카밀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애초에 도망칠 생각도 없었네요. 됐고, 왜 그렇게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아, 그게…….”

카밀라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자, 그녀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두 손을 꼬옥 모았다.

“나도! 나도 나가게 해줘!”

“참가 자격은 드워프 한정이야. 기각.”

“아직 대회를 연 것도 아니잖아? 그 정도야 바꾸면 되지.”

“내가 왜?”

카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묻자, 카밀라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네가 고민하는 문제를 해결해 줄게.”

“……네가?”

“응. 그것도 네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결과로 말이야.”

“들어보고 판단할게.”

자세를 바로하며 귀를 쫑긋 기울이는 카이.

카밀라는 혀로 입술을 살짝 축이더니, 천천히 운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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