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힐통령 235화
80장 천하제일야장대회 (2)
“파견이야.”
“……파견?”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카이가 눈만 깜빡거렸다.
“리버티아에서 고민하는 이유가 그거라며? 경연에서 탈락한 107명의 드워프 대장장이들. 그들의 처우 때문에 골치아픈 것 아니야?”
“맞아.”
“그들이 비록 경연에서 패배하더라도, 모험가들은 그들을 모셔가지 못해서 안달일 거야.”
맞는 말이다.
특히 영지전의 활발한 지금, 자신이 다스리는 영지에 드워프 대장장이가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메리트였다.
‘대장간을 방문하기 위해 모험가들이 모이면, 그 모험가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위한 주민들도 모이는 법이지.’
제대로 된 시설 하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영지의 발전 속도는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그건 지금 당장의 리버티아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로열티를 받고 공방들을 다른 영지로 파견 보내.”
“……!”
카밀라의 제안은 카이의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어주는 기가 막힌 한 수였다.
‘드워프들을 리버티아에서만 볼 수 있다는 메리트가 사라지는 건 아쉽지만…….’
그것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카이와 리버티아는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된다.
‘무엇보다 드워프들의 노동력이 다른 영지의 배만 채워주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카이가 가장 견제하던 것이 바로 그런 점이었다.
거대 길드나 영지에서 공방과의 독점 계약을 맺고, 리버티아의 대항마로 떠오르는 것.
‘하지만 이쪽에서 파견을 보내는 입장이라면, 관계는 깨끗해져.’
만약 상대방이 허튼 짓을 하면 까짓 위약금을 물어내고 드워프들을 다시 데려오면 그만이다.
게다가 드워프들이 다른 영지에 파견을 간다 하더라도, 그들의 고향은 이제 잉가르트가 아닌 리버티아다.
‘영지의 홍보 또한 자연스럽게 되겠지.’
특히 드워프들이 갖고 있는 희소성과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다.
‘그뿐만이 아니야. 영지를 몇 개밖에 다스리지 않는 내가, 9대 길드 같은 거대 세력들에게 갑질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어.’
이제 미드 온라인의 판은 드워프 공방의 파견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기점으로 변화될 것이다.
드워프들의 공방이 들어선 영지와 그렇지 않은 영지.
아무리 방대한 영토와 영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차이를 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카이 스스로도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나 같은 족속들은 의외로 단순하단 말이지.’
카이처럼 뼛속까지 게이머인 존재들.
그들은 항상 최고를 지향하며, 최상의 결과를 추구한다.
그런 이들이 자신의 장비 관리해 소홀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일만 잘 풀리면 이 코딱지만 한 영지에 앉아서 9대 길드를 주무를 수도 있다는 거야.’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카이는 자신의 실력과 영향력.
게다가 드워프들의 희소성이 한데 모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카밀라가 달라 보였다.
카이는 의외란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너…… 생각보다 똑똑한데?”
“나 카밀라야. 도전의 대장장이를 계승하는 히든 클래스 유저이자, 대장장이로서의 인지도도 최상위권이라고!”
“네가?”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매장을 자주 살피기를 좋아하는 카이는 웬만한 대장장이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밀라는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지.’
사람이라면 으레 하게 되는 허세이리라.
카이가 피식 웃음을 짓자, 카밀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안 믿네?”
“미안한데, 나 경매장 죽돌이야. 유명한 대장장이들 리스트는 이 속에 다 있다고.”
검지로 제 머리를 톡톡 두드리는 카이.
하지만 이에 카밀라는 발끈하기는커녕,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상자 하나를 꺼냈다.
“과연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올까?”
“이건…….”
먼지라도 묻을까 겁이 날 정도로 하얗고 거대한 상자였다.
‘생각보다 의외인걸.’
예로부터 장인은 검집의 달린 노끈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는 말이 있다.
카밀라 또한 자신이 장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상자에만 엄청난 신경을 쓴 상태였다.
카이는 검지로 상자를 한 번 톡 터치했다.
[세트 박스-하얀 죽음의 용을 개봉하시겠습니까?]
[한 번 개봉된 세트 아이템은 계정에 귀속됩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대단한 장비를 얻어도 판매할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일단 한 번 열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마녀의 정수로 다시 밀봉한다음 판매하면 되지.’
카이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예] 버튼을 향했다.
동시에 천천히 열리는 상자 사이에서는 영롱한 빛이 흘러나왔다.
“오…….”
상자 안에 가지런하게 분류된 장비를 바라보던 카이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어냈다.
‘이, 이것은!’
카이는 과거에 솔리드로부터 바다의 폭군 세트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가 족의 왕자인 하카스의 비늘을 주 재료로 제작한 세트.
때문인지 투구는 나가의 그것과 닮은 도마뱀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도마뱀 따위가 아니야.’
용(龍), 드래곤(Dragon)의 머리를 형상화한 순백의 투구.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위엄이 흘러넘치는 모습의 장비였다.
‘투구 뿐만이 아니야.’
상의와 하의, 벨트를 시작으로 부츠까지!
투구를 포함해 총 다섯 개로 분류되어 있는 백룡 세트는 누가 봐도 최상급의 아이템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상자 안에는 길다란 백색의 창도 함께 들어있었다.
“후우.”
저도 모르게 참아왔던 숨을 내뱉은 카이가 짧은 감상을 뱉어냈다.
“아이템의 외형만 쳐다봤는데 압도되는 기분은 처음이야.”
“어머, 네가 그런 칭찬도 할 수 있었어? 하지만 놀라기는 아직 이를 텐데.”
베시시 웃는 카밀라를 슬쩍 쳐다본 카이는 조심스럽게 투구를 들어올렸다.
[하얀 죽음의 투구]
등급 : 유니크
지능 +130
위엄 +50
방어력 3842
마법 방어력 4215
*드래곤의 비늘과 뼈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단단합니다. 내구도가 쉽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내구도 100/100
착용 제한 : 레벨 400 이상
“음……!”
카이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뜨였다.
성의 니케를 얻은 이후, 새로운 아이템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카이다.
‘하지만 이거라면…….’
니케는 한벌 옷이라서 상, 하의를 함께 장비할 수 없었다.
이터널 레전더리라는 등급에 걸맞게, 카이의 레벨이 오르면서 능력치도 꾸준히 올라갔지만…….
‘그래봤자 방어력은 이것의 절반도 안 되지.’
무엇보다 중요한건, 니케는 한 벌옷인 주제에 체력 스탯의 증가량이 30밖에 안 되었다.
하지만 하얀 죽음의 투구에 붙어있는 지능은 그 수치만 무려 130.
‘하지만 카밀라는 도전의 미(美) 스킬 특성으로 인해 세 개의 추가 옵션이 붙게 될 텐데?’
카이가 카밀라를 빤히 쳐다보자,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린 그녀가 설명했다.
“투구에 기본적으로 붙는 최대 스탯은 100이야. 거기다가 추가 옵션으로 지능을 세 번이나 중첩시켰어. 그래서 130이 된 거니까 오해하지 마. 다른 장비들도 마찬가지야.”
“그런 거였나.”
납득을 마친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히든 클래스는 히든 클래스다.
스탯 30의 차이는 고 레벨일수록 무시할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낼 테니까.
카이는 내친김에 다른 장비들도 빠르게 감정했다.
[하얀 죽음의 흉갑]
등급 : 유니크
체력 +130
위엄 +75
방어력 4219
마법 방어력 4508
*드래곤의 비늘과 뼈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단단합니다. 내구도가 쉽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내구도 100/100
착용 제한 : 레벨 400 이상
[하얀 죽음의 벨트]
등급 : 유니크
힘 +130
위엄 +50
방어력 3100
마법 방어력 3100
*드래곤의 비늘과 뼈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단단합니다. 내구도가 쉽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내구도 100/100
착용 제한 : 레벨 400 이상
[하얀 죽음의 하갑]
등급 : 유니크
체력 +130
위엄 +75
방어력 4151
마법 방어력 4324
*드래곤의 비늘과 뼈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단단합니다. 내구도가 쉽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내구도 100/100
착용 제한 : 레벨 400 이상
[하얀 죽음의 부츠]
등급 : 유니크
민첩 +130
위엄 +50
방어력 3421
마법 방어력 3659
*드래곤의 비늘과 뼈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단단합니다. 내구도가 쉽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내구도 100/100
착용 제한 : 레벨 400 이상
훌륭하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그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 세트였다.
‘하지만 세트 아이템의 대미는 무엇보다 세트 효과지.’
만약 백룡 세트가 단일 장비들이라 해도, 카이는 이것들을 장비할 의사가 있었다.
그 정도로 스탯들의 증가폭과 방어력 수치는 압도적이었으니까.
‘신성 스탯이 붙지 않는 건 조금 아쉽지만.’
생전에 악명을 떨치던 레드 드래곤, 시네라스의 재료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물론 시네라스는 알비노 병에 걸려 비늘이 하얀색이었지만.
지금은 그 부분이 오히려 이롭게 작용하였다.
‘백룡 세트라. 멋있는걸.’
카이는 니케를 인벤토리에 넣으며 백룡 세트를 하나씩 직접 착용해보았다.
딸깍, 딸깍.
딱딱한 비늘과 뼈로 만들어진 갑주였지만, 푹신한 침대에 누운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동시에 떠오르는 세트 효과들.
띠링!
[하얀 죽음의 용 세트를 착용하셨습니다.]
[5세트 효과로 약자멸시가 발동됩니다.]
[5세트 효과로 모든 스탯이 50만큼 증가합니다.]
[5세트 효과로 모든 속도가 10% 증가합니다.]
“음!”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철그럭거리는 기분 좋은 마찰음이 귓가를 울렸다.
“마음에 들어?”
“몹시.”
“하지만 이번에도 그게 끝이 아닌데?”
“……아직도?”
“섭섭하네. 원래 내 주특기는 방어구 제작이 아니라 무기 제작이거든?”
눈짓으로 백색의 창을 가리키는 카밀라.
카이는 머뭇거리던 손을 뻗어 창을 움켜쥐었다.
“아이템 감정.”
[드래곤 혼(Dragon Horn)]
등급 : 유니크
공격력 666~707
힘 +70
민첩 +50
치명타 확률 +20%
공격 시 3%의 확률로 적의 방어구를 파괴합니다.
얼어붙은 산을 지배하던 사룡, 시네라스의 뼈를 깎아 만든 창.
*드래곤의 뼈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단단합니다. 내구도가 쉽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내구도 100/100
착용 제한 : 레벨 400 이상, 힘 1500 이상.
‘이건…… 정말이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
대장장이로서의 카밀라는 매우 유능하다.
드워프를 데리고와도 이 정도의 무구를 보여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만큼 유능하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없어. 이 정도 수준의 장비가 경매장에 돌아다녔다면, 내가 제작자의 이름을 잊어버렸을 리가 없…….’
드래곤 혼.
그 짧은 시간에 용뿔이라 명명한 창을 빙글 돌리던 카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
창대의 한 구석에 음각으로 새겨져있는 알파벳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God Hand……? 맙소사!”
고개를 번쩍 들어올린 카이는 카밀라의 당당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네가 신의 손이라고?”
God Hand.
직역하면 신의 손.
이 오만방자한 이니셜을 지닌 대장장이는 어느 날 경매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모든 대장장이들의 그의 이니셜에 코웃음을 쳤지만, 작업물을 보고나서는 비웃을 수 없었다.
여태까지 신의 손이 만든 무구는 총 일곱 개.
그 중에서 초창기 작품 세 개만이 레어고, 이후 네 개는 모두 유니크 등급의 무구였다.
‘많은 길드들이 물밑 작업을 했다고 했어.’
모두 신의 손, 그를 영입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정보 길드에 의뢰를 넣고, 경매장 관리인을 매수해 봐도 돌아오는 답변은 ‘모른다’뿐.
‘설마 갓 핸드의 정체가 카밀라일 줄이야.’
심지어 갓 핸드가 출몰한 시기는 카이가 언노운으로 한창 활동을 하던 때였다.
그래서 전투직에 언노운이 있다면, 생산직에는 갓 핸드가 있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돌아다녔다.
“어때, 이 정도면 대장장이로서 인지도가 없지는 않지?”
“……그렇네. 아니, 네가 정말 갓 핸드라면 차고 넘치는 수준이지.”
“그래서 널 처음 만났을 때 그런 말을 했던 거야. ‘진짜진짜 만나보고 싶었다’고.”
“기억 나.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비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한듯, 카밀라에게 말했다.
“하지만 널 천하제일야장대회에 출전시켜 줄 순 없어.”
“뭐? 왜! 약속했잖아!”
카밀라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물론 카이도 할 말은 있었다.
“들어보고 판단한다고 했지, 출전시켜 준다는 약속을 한 적은 없어.”
“…….”
미간을 찌푸린 카밀라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잠시 후 그녀는 리플레이 영상이라도 보고 온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진짜잖아…….”
어지간히도 출전하고 싶었나 보다.
‘아쉽지만 천하제일야장대회는 온전히 드워프들을 위한 무대가 되어야 해.’
그것이 이후 카밀라의 제안처럼 그들을 파견할 때, 더 높은 몸값을 받을 수 있으니까.
‘카밀라의 실력은 위험하거든.’
백룡 세트를 보고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를 대회에 출전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도 섰다.
대회가 끝나면 드워프들의 공방을 파견보내야 하는데, 인간에게 패배한 드워프라면?
당연히 값어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이제 슬슬 당근을 던져 줄까?’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밀라를 쳐다보던 카이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