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39화 (239/441)

# 239

힐통령 239화

81장 경매를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다 (3)

다크 스피어 스킬 북이 팔린 이후, 경매장은 한층 더 흥겨워졌다.

특히 파사낙스의 돈 주머니에 굴복한 마법사들은 패배의 설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다양한 물품에 적극적으로 입찰했다.

하지만 그 흥겨운 분위기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젠장!’

시커먼 로브를 입고, 깊은 후드로 머리를 덮어놓은 플레이어.

그는 한때 검은 벌 길드의 부마스터이자, 스팅의 오른팔로 유명하던 빙제(氷帝) 라우스였다.

검은 벌 길드가 한창 잘나갈 때는 마법사 랭킹 6위에까지 랭크되었던 인물.

하지만 카이의 손에 의해 길드가 갈가리 찢어진 후에는 랭킹도 덩달아 수직 하강.

현재는 30위권까지 떨어져서 없던 탈모까지 생겨난 상태였다.

‘일이 꼬여도 이렇게까지 꼬일 줄이야.’

검은 벌이 몰락한 이후, 거의 모든 길드원들은 의리도 없이 검은 벌의 마크를 떼버렸다.

애초에 게임에서 만난 인연이란 딱 그 정도에 불과했다.

세계 10대 길드라는 타이틀을 지닌 세력이 자신을 보호할 울타리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

자신이 길드를 보호할 울타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는 이들의 모임이었으니까.

‘엘프의 숲에서 치러진 전투. 그날 이후로는 하루하루 이를 악물고 사냥했다.’

반년 넘게 쏟아 부었던 모든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 되어 버린 공허함.

그것이 라우스를 매일같이 괴롭혔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사냥했다.

울타리가 무너졌다고 자신을 무시, 조롱하는 이들의 시선이 짜증나서 자는 시간까지 줄였다.

하지만 사람이란 항상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 미련한 존재다.

‘마법사가 길드의 지원 없이 사냥을 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지.’

자는 시간을 줄이고 사냥하는 시간을 더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랭킹은 점점 더 떨어졌다.

‘길드의 서포트가 있을 때는 달랐는데 말이지.’

검은 벌의 마크만 보여줘도 헤헤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주던 유저들은 이제 세상에 없었다.

오히려 예전에 사냥터나 던전을 빼앗겼던 이들이 복수를 위해 찾아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나까지 길드 마크를 떼버리고 싶은 기분이 저절로 들 정도였어.’

라우스는 스팅과의 의리를 지키고,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만약 라우스가 진작에 길드를 탈퇴했었다면, 여전히 그의 인생은 장밋빛이었을 것이다.

검은 벌 길드 소속이었던 마법사들은 스카우터들이 침을 뚝뚝 흘리며 노리는 대상이었으니까.

애초에 검은 벌 길드는 재능이 출중한 마법사만을 골라 받는 엘리트 집단이었으니 당연했다.

‘사실 나도 떠나려고 했었지.’

길드를 탈퇴하겠다는 말을 하기위해 스팅을 찾아갔었다.

그리고 스팅과 만난 순간, 라우스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건 절대 무언가를 포기한 눈이 아니었어.’

분노와 야망, 복수심이 한데 엮인 것처럼 타오르는 뜨거운 눈빛.

무엇보다 충격이었던 건 스팅이 그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스팅은 무슨 일이든 본인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고함부터 지르는 스타일이었다.

‘그랬던 그가 변했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왔던 나기에 알 수 있는 변화였지.’

한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스팅의 내부에서도 무언가 심적 성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벌은 조금 더 교묘해지고, 자신이 지닌 침을 더욱 날카롭게 갈고닦는 시간을 보냈다.

‘마스터는 카이에게 패배한 이후, 오래도록 고민하셨지.’

주로 자신의 패배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스팅은 끝내 한 가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자신의 방심과 카이의 마법 저항력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말씀하셨지.’

카이의 마법 저항력은 미친 듯이 높다.

즉, 자신이 마법사인 이상 혼자서는 카이를 정면 대결에서 꺾을 수는 없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스팅은 하늘을 찌를듯 고고하던 자존심을 꺾고, 골리앗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합이 잘 맞았다.’

우선 그들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한 때는 최고였으나 카이에게 패배해 밑바닥 신세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있다는 점.

골리앗은 스팅이 자신을 찾아온 순간 아무 말 없이 악수를 청했고, 스팅은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리벤지 길드가 탄생했다.’

리벤지(Revenge) 길드.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오직 한 사람을 파멸시키겠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길드였다.

물론 규모 자체는 크지 않았다.

고작 25명 정도만이 소속된 조그마한 길드.

하지만 소속된 길드원들은 함부로 무시하기에는 꺼려지는 중위권의 랭커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무도가인 골리앗.

그리고 마법사인 스팅.

두 사람이 반전의 기회를 손에 넣은 것이다.

‘히든 클래스.’

그것도 세간에 알려진 일반적인 히든 클래스가 아니었다.

‘일반 유저들은 꿈에도 모르겠지.’

히든 클래스에도 등급이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대형 길드를 운영해본 이들 정도만이 알 수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일반적인 히든 클래스는 영웅 등급이다.’

보통 커뮤니티에 소개되는 대부분의 히든 클래스가 바로 영웅 등급에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스팅과 골리앗이 수행하고 있는 전직 퀘스트는 그보다 높은 등급이었다.

‘무려 신화 등급의 히든 클래스지.’

신화 등급!

입 안에서 몇 십번이고 굴려보았지만, 아직도 곱씹을 때마다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 동시에 히든 클래스 퀘스트를 받다니.

이건 카이에게 복수를 하라는 운명의 계시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쯧. 파멸의 마도사로 전직할 예정인 마스터에겐 다크 스피어 스킬이 딱이었을 것 같은데….’

파멸의 마도사는 무려 마왕으로부터 파생된 직업이었다.

스팅은 그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마왕 추종자들의 비호를 얻을 수가 있었다.

당연히 전직을 완료하면 마기 스탯이 개방될 것이라는 단서 또한 알아낸 상태였다.

‘하지만 설마 저런 복병을 만나게 될 줄이야…….’

적탑주 파사낙스.

모험가고 NPC고, 마음에 안 들면 우선 태워버리고 시작한다는 미친 마법사다.

저 종잡을 수 없는 노인이 수집가로도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일이 꼬일 줄이야.

‘쯧. 예전처럼 스폰서를 자처해 주는 기업들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현재 상황에서는 고작 스킬 하나에 몇 억씩 투자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적탑주의 지갑은 절대 쉽게 마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 계속해서 입찰 경쟁을 해나갔다면 10억을 넘겼을 수도 있을 터.

‘부가적으로 적탑에 제대로 찍히는 효과까지 일어났겠지.’

옅은 한숨을 내쉰 라우스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며 다시 경매에 집중했다.

물론, 라우스는 그 시각 카이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저 녀석은 대체 정체가 뭐지?’

현재 카이가 위치한 좌석은 굉장히 높다.

무려 적탑주 파사낙스의 옆자리일 정도이니, 경매장 측에서도 파격적인 대우를 해준 셈이다.

그 때문인지 아래쪽의 인물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아주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개중에 카이의 눈길이 향한 것은 단연 라우스였다.

‘저 시커먼 로브를 뒤집어쓴 녀석이 다크 스피어 스킬 북을 입찰했어.’

다크 스피어는 마기 스탯을 개방하지 않는 이상 쓰레기나 다름없는 스킬 북이다.

카이가 판매하기로 결심한 것도 그와 같은 연유에서였다.

‘흐음, 단순한 취미 때문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만약 적당한 가격에서 손을 털고 물러났다면 이런 의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경매가가 5억 가까이 찍힐 때까지 바짝 쫓아왔었다.

‘그리고는 상대가 파사낙스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입찰을 포기했지.’

물론 마법사들의 수집욕이 상당하다고 하지만, 쓸모없는 아이템 하나에 몇 천 골드씩 소비할 정도로 미치거나, 부유한 자는 몇 없다.

‘파사낙스야 마탑 하나를 이끌고 있으니 저만한 돈을 펑펑 쓸 수 있는 거고.’

다른 마법사들은 어딘가에 고용되어 포션을 만들거나, 연구를 진행하고 사냥을 해야 돈이 생긴다.

그것은 플레이어도 마찬가지였다.

‘플레이어가. 그것도 자신이 습득할 수 없는 스킬 북을 5억이 될 때까지 따라 붙는다?’

정말 수집욕 하나 때문에 그런 거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설마 마기 스탯을 개방한 유저인가?’

그를 유심히 쳐다보는 카이의 두 눈은 이미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

경매는 계속되어 진행이 되었다.

다크 스피어 스킬 북이 낙찰된 지도 어언 두 시간째.

살짝 지친 표정을 보이던 지스가 돌연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까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렸지요. 이번에는, 이 자리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축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음?”

“무슨 소리지?”

수많은 NPC와 플레이어들이 지스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지스는 반응에 흡족해하며 두 팔을 힘껏 펼쳤다.

“먼 옛날, 여러 신들을 보필하던 4명의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NPC가 알고 있는, 4대 천사의 이야기.

“천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4명의 천사. 그중에서도 강력한 것은 다름 아닌 루시퍼였지요.”

하지만 그는 스스로의 강력함에 심취한 나머지 천계를 배반하고 제 발로 지옥에 떨어졌다.

지옥에서 마왕의 피를 머금고 타락한 천사가 되어버린 루시퍼.

그건 NPC라면 어린 시절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오래된 전설이었다.

지스가 잠시 말을 멈추자 여러 NPC와 수정구들로부터 중얼거림이 쏟아져 나왔다.

“유명한 일화지.”

“예전에 마왕이 대륙에 강림했을 때 루시퍼도 함께 나타났다는 기록을 본 기억이 나.”

“그런데 대체 무슨 물건을 팔기 위해 저런 이야기를 꺼낸 건지 궁금하군.”

“흐음. 아무리 물건을 판매하고 싶어도 종교를 끌어들이는 건 좋은 판단이 아닐 텐데.”

“저 친구, 오늘 하루 진행을 깔끔하게 하더니 마지막에 실수를 저지르는군.”

그들의 말이 맞았다.

이미 4대 천사와 타천사 루시퍼라는 이름이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구매자들의 기대를 한껏 끌어 모을 수는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기대치가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높아져버린 기대치를 충족시키면 최고의 마케팅이 될 것이고.

반대로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없다면 희대의 악수(惡手)가 될 것이다.

물론 카이는 남들 몰래 씨익 입 꼬리를 올렸다.

‘지스. 보면 볼수록 제법인데?’

단순히 아이템을 소개/판매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사전에 간단한 설명과 이야기를 통해 아이템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 것이 그의 주 장기였다.

만약 카이도 곧 나올 아이템의 정체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이 자리의 모두와 같았을 것이다.

‘궁금해서 미치겠지.’

TV에서 곧잘 방영하는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자를 발표하기 직전처럼.

침이 꿀꺽 삼켜지고 발이 절로 동동 굴러지는 초조함이 느껴졌을 것이다.

웅성웅성.

지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자, 장내의 중얼거림이 거짓말처럼 뚝 사라졌다.

그 고요해진 장내를 천천히 살펴보던 지스는, 더 이상 설명을 추가하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소개합니다. 천계의 배반자가 죽으면서 남긴 유품, 루시퍼의 날개입니다.”

드르륵, 드르르륵.

화려한 크리스탈 박스를 싣고 있는 수레가 무대 위로 굴러왔다.

“저, 저건 설마…….”

“진짜 루시퍼의 날개라고?!”

“말도 안 돼!”

무대 정중앙을 자리잡은 크리스탈 박스.

그리고 그 안에 보관되어있는 칠흑의 날개 장식을 두 눈에 담은 순간.

NPC들은 비명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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