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42화 (242/441)

# 242

힐통령 242화

82장 더 큰 거래(2)

강민구의 차림새는 이전에 게임 내의 사무실에서 봤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 때는 판타지 게임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전사로 보이는 갑옷을 입은 채 검을 메고 있었다.

“늦기는요. 생각보다 빨리 오셨는데요 뭐.”

“당연히 제가 먼저 찾아왔어야 하는데, 생각이 짧았습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조금 서운할 뻔했는데 말이에요.”

사람 좋게 웃어 보인 카이는 자리에 앉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우선 자리에 앉으시죠.”

“아…… 예.”

돌바닥을 쳐다보던 강민구는 순간 당황했지만,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앉았다.

성공가도를 달린 후로는 푹신한 소파나 침대만을 사용해 왔던 그였다.

언뜻 차가운 기운마저 느껴지는 바위의 감촉은 낯설기만 했다.

카이는 그가 당황한 틈을 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찾아오신 이유는 역시 골드 때문이죠?”

“예? 아, 예. 현재 보유하신 골드 때문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런 질문에 고개를 반사적으로 끄덕인 강민구가 말을 이었다.

“카이 님. 혹시 환전소의 하루 거래량이 얼마정도인지 아십니까?”

“음.”

잠시 고민하던 카이가 잘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1만 골드 정도 되나요?”

“날마다 약간의 오차 정도는 있지만, 평균 3만 골드 정도는 됩니다.”

3만 골드.

1골드 당 10만 원 꼴이니, 한화로는 30억 가량.

그것이 하룻동안 환전소에서 오고가는 자금의 액수다.

“본사에서는 그 어느 것보다 환전소의 관리를 철저하게 합니다. 만약 버그라도 일어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유저들은 모르지만, 환전소의 하루 거래 제한은 5만 골드로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5만 골드라…… 그 이상의 금액을 환전 요청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순간 환전소의 모든 시스템이 마비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아하.”

카이는 그제야 강민구 사장이 이렇게 부랴부랴 달려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현재 내가 보유한 총 골드가…….’

대략 380만 골드다.

하루에 환전되는 골드의 127배 정도나 되는 엄청난 액수라고 보면 된다.

만약 카이가 대수롭지 않게 5만 골드 정도만 환전을 해도, 환전소 시스템은 마비된다.

‘그야말로 난리가 나겠지.’

미드 온라인의 아이템 거래, 현금 거래가 활발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 어디서든 환전소를 통해 간편하게 골드와 현금을 맞바꿀 수 있으니까.’

예전의 게임들과는 달리 게임 아이템을 사는 것을 투자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페가수스 사가 직접 운영하는만큼, 신용도 부문에선 최상의 입지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 거래가 단 한 번이라도, 불과 몇 분이라도 막히게 된다?

‘그럼 그때부터 머리 아파지는 거지.’

인간은 상상력이 뛰어난 동물이고, 겁도 많은 동물이다.

페가수스에서 아무리 공지사항을 올리더라도, 이미 유저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신의 씨앗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페가수스 사에서는 제가 뭘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겁니까?”

“카이 님 한정으로 환전소의 일일거래 제한을 상향 조정 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은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그동안 환전소를 이용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전 이미 3천 골드를 환전했습니다만?”

“하루 거래 제한량에 지장을 줄 정도만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그렇군요. 일주일이라지만 상당히 불편하겠네요.”

기브 앤 테이크.

대가를 내놓으라는 소리다.

“짧은 불편함을 감내하시는 대가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정보라면?”

“두 가지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카이 님에게 꼭 필요한 정보들이며, 게임 내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얻을 수 없는 정보들입니다.”

“좋습니다.”

어차피 카이 입장에서는 일주일 동안 골드를 가지고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그 대가로 두 가지 정보를 받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제로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첫 번째는 영지에 관한 정보입니다. 혹시 영지 관리 창을 자주 확인하시는 편입니까?”

“예,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확인해요.”

“그렇다면 영지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겠군요.”

당연히 카이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가 보유한 세 개의 영지 관리창을 띄우기만 해도 등급이 표시되었으니까.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민구가 희미하게 웃었다.

“하지만 영지의 등급이 올라가면 무엇이 좋은지는 모르고 계시겠지요.”

“영지 등급이 올라가면 따라오는 혜택도 있었습니까?”

“있습니다. 저희는 이 게임의 사소한 부분조차 허투루 집어넣지 않았으니까요.”

리버티아의 영지 등급은 초고속으로 상승 중이다.

‘하지만 딱히 혜택이라고 할 건…… 혹시 세금이 늘어나나?’

카이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우선 입소문입니다. 영지의 등급이 높아지면 NPC들 사이에서 영지의 존재가 더 널리 퍼지게 되지요.”

“사람들이 더 많이 유입되겠군요.”

“물론입니다. 자연스럽게 영지의 수입도 높아지는 거죠. 하지만 영지의 등급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영지의 가치가 등급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가치요?”

“예. 영지는 B등급이 되면 도시로 승격되고, A등급이 되면 대도시로 승격됩니다. 그리고 S등급이 되면, 한 나라의 수도가 되어도 부족함이 없지요.”

“수도라고요?”

카이의 눈이 번뜩였다.

“예. 영지가 S등급이 되는 순간 플레이어는 소속된 국가에 독립을 선언할 수 있습니다.”

독립 선언.

그건 한 마디로 소속된 국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독립 선언만하면 해당 국가에서 무조건 허락해 줍니까?”

“그럴 리가요. 오히려 절대 허락하지 않겠죠. 플레이어는 협상을 하거나, 무력으로 자신의 왕국을 지켜내야 합니다.”

무대만 차려줄 테니, 그 뒤는 알아서 하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영지 등급은 어떻게 해야 올라갑니까?”

“영지의 크기, 인구수, 걷어들이는 세금과 외부인들의 방문 수. 그 모든 것들이 고려되어서 산정됩니다.”

“한 마디로 땅이 크고, 모범 납세자들이 많이 살고, 지갑 잘 여는 관광객이 많으면 등급이 오른다는 소리네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강민구의 떨떠름한 말에 카이는 씨익 웃었다.

‘뭐야, 그렇다면 하베로스와 아르칸. 그 두 곳도 신경을 좀 써야겠는데?’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커뮤니티에 따르면 두 영지는 지극히 평범한 곳이다.

당연히 사람들이 굳이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는 장소일 터.

‘두 영지도 리버티아처럼 확고한 컨셉이 필요해.’

리버티아는 아인종들의 도시라는 컨셉이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영지는 어떤 컨셉이 어울릴까.

고민에 빠져 있는 카이에게 강민구가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정보는 다름아닌 현재 카이 님이 보유한 칭호에 대한 조언입니다.”

“칭호요?”

“예. 에피소드 종결자 칭호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물론 아직까지 그 칭호를 활용하지 않은 이유는 카이 님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셨기 때문이겠지요.”

“…….”

에피소드 종결자 칭호.

자탄을 잡고 획득한 두 개의 칭호 중 하나였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어.’

심지어 에피소드 종결자는 물론, 함께 나온 재앙 파괴자 칭호의 효과도 읽어보지 않았다.

결국 카이는 강민구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한 표정으로 칭호 도감을 펼쳤다.

[에피소드 종결자]

등급 : 스페셜

내용 : 메인 에피소드의 보스를 처치한 자에게 주는 칭호.

효과 : 영웅의 기개를 이용하여 단 한 번, 그 어떤 조건도 없이 원하는 NPC와 독대 가능.

[재앙 파괴자]

등급 : 스페셜

내용 : 기만하는 자들의 주인, 자탄을 쓰러트린 이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공격력 +10%(이 효과는 칭호를 장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

칭호들의 효과를 확인한 카이는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던 비명을 꾹 눌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효과야?’

모든 공격력 10%의 효과.

여태까지 카이가 쌓아왔던 모든 스펙의 10분의 1이 상승한다는 뜻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본 적은 물론 들은 적도 없었다.

‘그리고 종결자 칭호. 원하는 NPC와의 독대라면…….’

만약 카이가 제국의 황제를 보고 싶다면, 그 즉시 독대가 성사된다는 뜻이다.

“음? 카이 님. 몸이 떨리시는데, 괜찮으십니까?”

흥분으로 온 몸을 부르르 떨어대는 카이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강민구가 물었다.

“아, 아닙니다. 그냥 그 칭호들을 얻던 순간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라서요.”

“아하. 자탄 레이드 방송은 저도 실시간으로 봤습니다. 정말 대단한 싸움이었죠.”

“감사합니다. 그래서 종결자 칭호의 효과로 조언을 주고 싶다는 말씀은 뭔가요?”

“마도와 지식을 추구하는 오곤 제국의 수도. 그곳에 위치한 도서관으로 가면 대륙의 위인들이 기록되어 있는 책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설마……?”

“예, 그곳에 적혀 있는 인물들 중에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흠. 한마디로 종결자 칭호의 효과는 그때를 위해 비축해두라는 소리군요.”

“물론 선택은 카이 님의 몫입니다. 하지만 쉽게 만날 수 없는 만큼, 그들과 만났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 또한 막대할 것입니다.”

카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과연 저 말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회사를 위한 것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니, 고민해봤자 소용없나. 어차피 판단은 그의 말처럼 내 몫이야.’

오곤 제국의 도서관에 방문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여차하면 헛걸음을 했다고 판단하면 그만.

“앞으로 일주일 동안 제가 환전소를 이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민구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단 일주일을 기다리는 조건으로, 카이는 귀중한 정보들을 손에 넣었다.

***

강민구와의 만남이 끝난 후, 게임을 종료한 정우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돈이라…….”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전에도 부자라 불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지금은 가히 재벌 수준.

때문에 정우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집도 사고 싶지만 이사하는 게 귀찮으니까 당분간은 패스. 밖에 돌아다닐 일이 없으니 차를 살 필요도 없고…… 마찬가지 이유로 옷도 별로.’

하지만 돈은 많은데, 마땅히 쓸 데가 없었다.

원래 사람 마음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새로운 무기를 구매하면 휘둘러보고 싶듯, 막대한 돈이 생기자 쓰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정우는 돌연 손뼉을 치더니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뚜뚜뚜.

세 번째 신호가 울리기도 전에 통화는 연결되었다.

[정우 아니냐.]

“예, 아버지, 저예요”

전화 상대는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

[네가 대낮부터 무슨 일이냐, 게임하는 시간일 줄 알았는데.]

“다름이 아니고 뭐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물어봐라.]

“며칠 전에 식사하실 때, 보육원 후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잖아요.”

[그랬지.]

정우의 부모님은 정기적으로 보육원을 후원하고 계셨다.

그것은 하루이틀이 아닌, 정우가 어렸을 때부터 해오던 일이었다.

“저도 예전엔 부모님 따라서 보육원 봉사 활동 자주가고 그랬는데, 요즘은 잘 못 가니까요.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금전적으로라도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하고 싶어서요.”

[네가?]

깜짝 놀라 되묻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구의 아들도 아닌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낮게 웃었다.

[녀석.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이제는 제법 기특한 생각도 스스로 할 줄 아는구나.]

“뭘요. 오히려 늦은 감이 없잖아 있죠.”

[자금 여유가 되면 후원을 하려고 뽑아놓은 리스트가 있다. 추천해 주랴?]

“해주시면 감사하죠.”

[그럼 주소와 전화번호는 문자로 보내주마. 하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해 둬라. 누군가를 후원한다는 일,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쳐서 할 만한 게 아니다.]

“아이고, 어려서부터 두 분 따라다닌 게 접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가지고 하라는 가르침.

정우는 한 시라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돈이라면 이제 많으니까.’

게임에서의 선행도 물론 중요하다.

무엇보다 선행 스탯을 올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게임에서 선행을 한다고 현실에서 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띠링.

보육원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담긴 문자가 도착한 것을 확인하며, 정우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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