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44화 (244/441)

# 244

힐통령 244화

83장 뜻밖의 인연(2)

하늘이라도 무너진 것처럼 서럽게 우는 헬릭.

하지만 이 자리에서 심각한 건 그녀뿐.

헬릭을 바라보는 호른은 오히려 피식 웃기까지 했다.

물론 그 시각 카이는…….

[대지 목격자]

등급 : 스페셜

내용 : 대지신 호른을 두 눈으로 목도한 이에게 주는 칭호.

효과 : 힘 스탯이 상승할 때, 50% 추가 획득.(이 효과는 칭호를 착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빵-끗!

한 명은 울고, 한 명은 피식거리고, 한 명은 방긋방긋 웃고 있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헬릭에게는 몹시 미안한 말이지만, 이 순간 카이의 머릿속에 그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힘 스탯 50% 추가 상승이라고?’

대지신 호른.

드워프들이 믿는 땅의 신이며, 제작을 비롯해서 손재주에 관련된 예술을 관장하는 신이다.

‘태양 목격자는 선행 스탯이 50% 추가 상승하는 효과였는데…….’

대지 목격자의 능력 또한 그에 꿇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힘 스탯은 범용성이 선행 스탯보다 훨씬 넓기에,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훨씬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잠깐만. 그렇다면……?’

한 번이면 우연이지만, 두 번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태양목격자와 대지목격자.

두 번의 통계를 통해 카이는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신들을 만나게되면, 목격자 칭호를 획득할 수 있어.’

마찬가지로 두 번의 사례를 되짚어보면, 목격자 칭호는 스탯의 추가 상승 효과를 지니고 있다.

‘신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카이의 시야로 아직까지 서럽게 울고 있는 헬릭이 들어왔다.

“흠흠.”

헬릭에게 천천히 다가간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손수건을 꺼내 헬릭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줬다.

“헬릭 님, 뚝.”

“흐, 흐으윽…… 끄윽…… 끕…….”

단번에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헬릭.

옅은 한숨을 내쉰 카이는 곧장 손수건을 그녀의 코로 향했다.

“헬릭 님, 흥.”

“흐으으응!”

시원하게 코를 풀어내는 헬릭.

“입에 남아있는 과자도 전부 냠냠 하시구요.”

“우웅…….”

냠냠.

그 와중에 눈물 젖은 과자를 꼭꼭 씹어 먹는 헬릭의 얼굴은 세상 행복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이 다시 말끔해지자, 카이는 그녀를 훈계했다.

“자꾸 그렇게 우시면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못 받습니다?”

“그치마안…… 로비가 그랬느니라. 어차피 산타는 없으니까 울어도 된다고.”

“…….”

사랑의 신 로비.

일전에 헬릭의 입을 통해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존재였다.

‘애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카이가 헬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지 않아요. 산타는 있습니다.”

“……정말 있느냐?”

“저번에 크리스마스 스페셜 스플리트도 드셨잖아요. 그게 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인 거예요.”

“크리스마스 스페셜 스플리트!”

헬릭의 머리 맡에서 광채가 강렬하게 번쩍거렸다.

자신이 가장 맛있게 먹은 과자들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은 단연 크리스마스 스페셜 스플리트!

“그것이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었다니…… 정말 고마운 존재이니라.”

“그러니까 울지 말아야 올해에도 또 선물을 받을 수 있겠죠?”

“우웅…… 하지만 이미 울어버렸느니라…….”

금새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땅만 쳐다보는 헬릭.

‘진짜 신이 아니고 애라도 돌보는 것 같다니까.’

물론 이와 같은 경험이 풍부한 카이는 그녀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헬릭 님이 울었다는걸 비밀로 해드릴테니까.”

“저, 정말 그렇게 해주겠느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은 헬릭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다리를 모으며 무릎까지 꿇었다.

그녀의 격한 반응에 살짝 놀란 카이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이죠. 저기 계신 호른 님도 헬릭 님이 우셨다는 비밀을 지켜주실 거예요.”

“호, 호른까지?”

반짝반짝.

2초 이상 마주하면 어떤 부탁이든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똘망똘망한 눈빛!

하지만 정작 그 시선의 대상자인 호른은 인상을 콱! 일그러트렸다.

“젠장, 귀찮은 일에 휘말렸군…… 알았으니까 그만 쳐다봐라.”

“호른! 그대는 역시 나의 벗이니라!”

한결 기분이 풀린 헬릭은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카이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저…… 그런데 카이여. 그럼 이제 과자는…….”

“오늘은 없습니다.”

“어흑.”

어깨가 2단 정도는 아래로 내려간 헬릭.

카이는 그 상황에서 그녀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처럼 친구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라면, 주인 된 입장에서 친구에게 과자 정도는 대접을 해야겠죠?”

“내, 내 말이 그거이니라. 내가 먹고 싶다는 말이 절대 아니고, 친구들을…… 위해…….”

헬릭은 말을 하면서 연신 호른의 눈치를 살폈다.

“흥. 그 달기만 한 것이 뭐가 그리 맛있다고. 쯧쯧. 맥주를 권하면 먹지도 않으면서.”

‘맥주?’

호른의 말에 귓가가 솔깃해진 카이가 입을 열었다.

“혹시 맥주 좋아하십니까?”

“……음? 당연하지. 애초에 내 아이들에게 맥주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 것도 나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그는 대지와 손재주를 관장하는 신.

호른은 자신을 쏙 빼닮은 드워프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확실히 드워프들의 맥주는 이미 리버티아에서 유명하지.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더 커.’

그 반대.

한 마디로 드워프들이 환장하는 술에 관해서다.

‘현재 미드 온라인에는 현대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술이 입점한 상태지.’

와인, 보드카, 소주, 사케, 위스키는 물론, 럼주나 고량주 같은 독특한 술까지!

‘게다가 실험 샘플은 이미 충분해.’

그야 잉가르트 왕국의 드워프들이 직접 증명을 했으니까.

그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인간들이 만든 수많은 종류의 맥주와 술을 마시며 천국과 같은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심지어 나는 그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맥주의 이름까지 알고 있지.’

베스트 블레테렌 12.

세계 최고의 맥주 중 하나로 평가받는 맥주의 왕국, 벨기에의 맥주다.

심지어 맥주병에는 그 어떤 라벨이나 문양, 심지어 회사의 로고조차 박혀 있지 않다.

하지만 특유의 진한 과일 향과 초콜릿처럼 달콤한 끝맛, 마지막으로 맥주 특유의 시원한 느낌까지 가미된 맛은 베스트 블레테렌 12를 결국 세계 최고의 반열까지 올려놓았다.

‘음음. 나도 한 번 마셔봤지만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지.’

단언컨대 그 맛을 한 번 보게 된다면 호른은 눈이 뒤집어질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찌 안주 없는 술상을 논할 수 있을까.’

최근 미드 온라인의 NPC들이 환장을 하는 현대의 기가 막힌 패스트푸드나 음식들.

그것들을 호른에게 바친다면?

‘뭐라도 떨어지지 않겠어?’

결정을 내린 카이는 호른에게 말했다.

“호른 님.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음? 무슨 일이지?”

“호른 님께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허허. 살다보니 인간에게 선물을 받는 일도 다 오는군. 그렇다면 잠시 기다리지.”

선물을 싫어하는 이는 없다.

설령 그게 신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흡족한 표정으로 백색의 수염을 어루만지는 호른을 뒤로한 채, 카이는 지상으로 내려갔다.

“카, 카이여…… 내 선물은…….”

신출귀몰로 사라지기 직전, 헬릭의 구슬픈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

“흠. 이게 뭔가?”

호른의 앞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

그리고 그 위에는 맥주 통 하나와 안주 하나가 먹음직스럽게 놓여있는 상태였다.

“이것이 닭이라고?”

“예. 닭을 자주 드시지는 못하시지요?”

“흠. 맥주 같은 인공 음식은 천계에서도 만들 수 있지만, 생물은 아무래도 힘들지. 내 아이들이 1년에 한 번, 나에게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음식에서 닭을 먹기는 한다.”

그 말에 카이는 입 꼬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장담하건대, 아마 오늘 드워프들에게 화가 좀 나실 겁니다.”

“음? 내가 내 아이들에게 화가 난다고?”

카이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호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어떤 말이나 설명보다, 그저 한 번 보는 것.

본인이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최고일 뿐.

“우선 드셔보시지요.”

“……허허. 그렇게까지 말하니 한 번 먹어보도록 하지.”

탐스러울 정도로 붉은 양념치킨 닭다리를 집어든 호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를 입에 머금었다.

쩝쩝.

닭다리를 크게 베어 물고, 이를 몇 번 씹는 순간.

호른의 눈동자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뜨여졌다.

“으, 으어어…….”

어찌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제대로 된 말조차 꺼내지 못할 정도!

혀끝을 통해 온몸으로 퍼지는 황홀한 미(味)의 세계에 입성한 호른.

한참이나 황홀감을 느끼던 호른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 음식의 이름이 무엇인가?”

“양념 치킨이라고 합니다.”

“양념 치킨…….”

고작 한입을 먹었을 뿐, 그것만으로도 호른은 이 음식에 매료되었다.

지금까지 그가 먹어왔던 닭 요리라고는 그저 숯불에 잘 구운 닭이었다.

하지만 이 음식은 달랐다.

‘설마 음식을 보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닭을 감싸안고 있는 얇은 튀김옷.

그리고 그 위를 이불처럼 덮은 붉은 양념으로 인해 튀김은 촉촉해진다.

바삭함이 죽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튀김옷이 부드럽게 변하기에 입 안에서의 식감이 더 좋아질 뿐.

게다가 화룡정점으로 치킨 위에 촘촘하게 뿌려진 깨소금을 보는 순간.

호른은 결국 탄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자네 말이 맞네. 내 아이들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야.”

“아마 올해의 제사부터는 이런 음식들이 올라올 것입니다.”

“허허.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그리고 이게 자네가 말하던 맥주인가?”

“맞습니다. 베스트 블레테렌 12. 이 맥주의 이름입니다.”

“이름 한 번 거창하군. 하지만 중요한건 이름이 아니라 맛이지.”

호기롭게 외친 호른은 맥주가 가득 담긴 잔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입에 잔을 붙이고는 고개를 뒤로 넘긴다.

꿀꺽, 꿀꺽.

한 번 그의 입에 붙어버린 맥주잔은, 동이 나기 전까지 내려올 줄을 몰랐다.

쿵!

“허어어!”

단숨에 맥주잔을 비운 호른은 황홀경에 다다른 사람처럼 풀어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이것이…… 정녕 맥주라는 말이냐.”

“예. 여태껏 드셔오시던 것과 조금 다르지요?”

“…….”

호른은 아무 말 없이, 맥주 통을 들어 잔을 다시 채웠다.

그리고 다시 이를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쿵.

하얀 수염에 묻은 액체를 손등으로 쓸어낸 호른이 선언했다.

“내가 졌군.”

“……예?”

“양념 치킨. 그래, 닭은 아무리 맛있어도 순수하게 즐길 수가 있었다. 내 전문 분야는 요리 쪽이 아니니까. 하지만…… 하지만 맥주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했거늘.”

그런 자신감이 하루아침에 깨져 버린 것이다.

현대의 세계에서도 최고라고 손꼽히는 벨기에의 맥주에 의해서.

“……반드시 이 맥주보다 뛰어난 맥주를 만들어 보이겠다.”

야심찬 포부를 드러낸 호른.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우선 눈앞의 음식들을 폭풍 흡입하기 시작했다.

“음……! 양념 치킨과 함께 먹는 맥주도 기가 막히는군!”

“그걸 치맥이라고 합니다.”

“치, 치맥?”

“치킨과 맥주의 줄임말입니다.”

“오오, 치맥! 듣기만 해도 강렬해 보이는 이름이군. 마음에 든다, 치맥! 치맥!”

불과 몇 분 만에 열렬한 치맥의 신자가 되어버린 호른.

그는 간만에 포식이라 칭할 만한 식사를 마치고는 잔뜩 튀어나온 배를 두드렸다.

“이렇게 즐거운 식사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나는 대지의 신 호른. 은혜를 받은 채 입을 씻는 건 신의 도리가 아니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나에게 말을 해보거라.”

‘왔다……!’

호른의 말에 눈을 빛낸 카이.

그는 헬릭을 한 번 쳐다보고는, 호른을 한 번 더 쳐다봤다.

그리고 입 밖으로 꺼냈다.

“두 분, 혹시 다른 신들까지 초대하는 거대한 연회를 한 번 개최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자신이 두 사람을 본 순간부터 그려왔던 원대한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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