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45화 (245/441)

# 245

힐통령 245화

84장 신들의 연회(1)

“연회?”

호른은 눈만 깜빡거렸고, 헬릭은 다 먹은 과자 봉지를 탈탈 털어 부스러기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만족할 만큼 부스러기가 나오지 않자, 곧장 투정을 부렸다.

“흐응…… 사탕과 과자, 케이크를 못 먹는데 연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더냐.”

“아, 물론 연회를 할 때는 드실 수 있게 허락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나는 찬성이니라!”

헬릭이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그 단순한 모습을 쳐다보던 호른이 앓는 소리를 냈다.

“끄응, 저 단순한 녀석…… 하지만 우선 연회를 열고자 하는 목적을 묻고 싶다만?”

예리한 사람, 아니 신.

사실 호른의 질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봐도 좋을 터.

‘신이라면 어느 정도 거짓을 간파할 수도 있겠지?’

잠시 생각을 정리한 카이가 입을 열었다.

“다른 신들의 존안을 직접 뵈고, 인사를 나누면 굉장히 기쁠 것 같습니다.”

틀린 말은 안 했다.

해야할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을 뿐.

잠시 카이를 쳐다보던 호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독특하군. 하지만 좋네. 들어보니 재미있을 것 같군.”

“그럼 날짜는 언제 정도가 좋을까요?”

헬릭이 다시 한 번 손을 번쩍 들었다.

“오늘! 오늘이 좋을 것 같으니라!”

“흠. 이런저런 준비를 하려면 그래도 최소 사흘 정도 후가 편하지 않겠나?”

“사흘 후. 알겠습니다. 그럼 어떤 신들을 초대하실 건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왜, 왜 내 말을 무시하느냐?”

자연스럽게 헬릭을 무시하는 두 사람!

하지만 헬릭은 카이가 머리를 몇 번 토닥여주자 금세 조용해졌다.

“흠. 사실 이 꼬맹이와 나는 알고 있는 신이 그리 많지 않아. 사교성이 그리 좋지는 않아서…….”

호른은 부끄러운지, 살짝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같은 상황에 놓인 헬릭은 달랐다.

“응? 호른.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더냐. 나는 로비랑 하쿠도 안다.”

“나를 포함해서 고작 세 명밖에 모르잖나.”

“……그게 적은 거더냐?”

혼자 고민에 잠긴 헬릭을 잠시 방치한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다고 내 사교성이 딱히 좋은 것도 아닌지라, 나도 대여섯 명 정도밖에 모르네.”

“음…… 괜찮습니다. 아마 다들 바쁘셔서 친구를 사귈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겠지요.”

카이의 위로에 고맙다는 표정을 지은 호른이 가볍게 탄성을 터뜨렸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러면 되겠군.”

“예?”

“사랑의 신 로비.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나?”

“헬릭 님이 말씀하시는 걸 몇 번 들어는 봤습니다.”

“그 녀석은 사랑의 신이라 그런지 제법 발이 넓어. 그녀의 도움을 받으면 신들을 제법 끌어모을 수 있을 걸세.”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혹시 신들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을지 알 수 있을까요? 연회 준비에 참고하려고 합니다.”

“음식.”

“먹는 거!”

처음으로 두 사람의 의견이 맞아 떨어졌다.

헬릭이 입을 열었다.

“평생 천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지상의 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그리 없느니라.”

“옳은 말이다. 게다가 가끔씩 먹는다고 해도, 아까 먹었던 치맥만큼은 절대 아니지.”

“결국 음식인가요.”

카이의 입장에서는 그저 쾌재를 부를 뿐이었다.

‘음식 준비는 간편하니까.’

게다가 스페셜 칭호를 얻는 일이다.

밥값 정도는 몇백 번이고 내줄 의향이 있었다.

“그럼 사흘 후 이 시간. 음식들을 들고 이곳에 찾아오겠습니다.”

“신들은 그보다 두 시간 정도 뒤에 오라고 해야 되겠군.”

“카이여. 다른 건 몰라도 케이크는 절대로 잊으면 안 되니라. 절대로!”

“크흠. 될 수 있으면 치맥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물론입니다 두 분.”

카이가 미소를 지었다.

연회 때는 그것보다 더한 음식들을 꺼내올 생각이니까.

‘신들의 정신을 아주 쏙 빼놓아야 하니까.’

바빠질 것 같았다.

***

지상으로 돌아온 카이는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그가 방문한 곳은 왕국의 가장 큰 규모의 도서관.

“키워드는 신으로 해주십시오.”

사서에게 신에 관한 서적의 안내를 받은 카이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르륵, 사르륵.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20시간을 넘어갔을 무렵.

툭.

드디어 책을 덮은 카이는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후우, 자료 조사는 이 정도면 되겠어. 신들의 기호는 알아냈으니까.’

미드 온라인의 신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다양한 이야기와 신화가 내려져 오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성정이나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신화를 읽다보면 대략적으로 유추가 가능했다.

‘이제 준비는 완벽해.’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이제 남은 건 호른과 헬릭, 로비가 신들을 잘 초청할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그래도 최소 10명은 오겠지?”

카이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

“오, 공간이 넓어졌네요?”

천계에 위치한 헬릭의 둥둥 하늘을 떠다니는 섬.

이미 몇 번이고 와본 적이 있는 장소였지만, 오늘은 그 모습이 사뭇 달랐다.

‘섬이 늘어나기도 하네?’

우선 평소보다 섬의 면적이 더 넓어졌다.

바닥에는 잔디가 깔려있고, 길가에는 하얀 대리석이 박혀 있어 고급스러운 기분을 자아냈다.

게다가 섬 중앙의 분수도 훨씬 화려해졌다.

원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수대에서 쏘아내는 물줄기는 동물 등을 그려내는 중이었다.

“물의 신 하쿠가 직접 만든 분수대일세.”

만족한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온 호른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혹시 오늘 신들이 몇 명이나 오시는지 알고 계시나요?”

“음…… 글쎄. 그 일에 관해서는 로비가 맡겨만 달라고 했던지라 잘 모르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준비를 하죠.”

카이는 신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건 무조건 부페 형식으로 가야해. 그렇지 않으면 답이 없어.’

카이는 학창시절에 보육원이나 노인정 등에서 봉사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백분 떠올린 그는 곧장 뷔페 스타일로 음식들을 세팅했다,

“오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군.”

카이가 준비한 음식들을 올려놓은 테이블은 그 길이만 20미터가 될 정도로 길었다.

그 위에 올려진 음식들은 치킨을 포함해서, 호불호가 그리 갈리지 않는 현대의 음식들뿐!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요.”

“음음, 이거 막상 연회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설레는군.”

“하하하, 모쪼록 즐겨주십시오. 그나저나…… 헬릭 님은 어디가셨지요?”

“아, 그 녀석은 로비가 데려갔다.”

“로비님께서요?”

카이가 눈을 깜빡였다.

연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주최자를 데려가다니.

“그나저나 이제 올 시간이 되었네.”

“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네요.”

없던 긴장이 피어오른 카이도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는군.”

카이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감지한 호른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카이는 사방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목격했다.

“뭐, 뭐야.”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는 카이가 입을 쩍 벌렸다.

그의 육안으로 확인한 공간의 일그러짐과 서른 개가 넘어갔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일그러진 공간에서는 다양한 군상의 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흠흠, 태양신이 주최하는 연회라니. 궁금하군.”

“그 꼬맹이 녀석 말이지? 키는 좀 자랐는지 모르겠네.”

“그나저나 이게 무슨 냄새인가요? 자꾸 침이 고이는 기분이 들어요.”

‘자, 잠깐. 이게 다 몇 명이야?’

그들의 면면을 확인하며 숫자를 세는 카이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의 신 하쿠를 목도했습니다.]

[스페셜 칭호, ‘물의 목격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힘의 신 가우스를 목도했습니다.]

[스페셜 칭호, ‘힘의 목격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전쟁의 신 마스를 목도했습니다.]

[스페셜 칭호, ‘싸움목격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지혜의 신 야니르를 목도했습니다.]

[스페셜 칭호, ‘진리목격자’를 획득하셨습니다.]

…….

그의 눈앞으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한 메시지들이 떠올랐으니까.

게다가 아무리 카이라도, 스페셜 칭호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수십 개나 얻는 건 처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 이 녀석이야? 네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대리인이?”

“그렇느니라.”

뒤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카이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어, 어때 보이느냐.”

헬릭은 연회의 주최자답게 적색 계열의 화려한 동양풍 드레스를 차려입은 상태였다.

드레스 곳곳에 박혀있는 황금색의 점들은 마치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느껴졌다.

여기에 정점을 찍은 것은 위로 묶어 올린 머리카락에 꽂혀진 고급스러운 비녀 한 자루.

만약 훗날 결혼해서 딸을 낳는다면, 꼭 이런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엄청 귀여우십니다.”

“……헤헷.”

카이의 진심이 담긴 칭찬이 부끄러운지, 헬릭이 옆에 선 이의 손을 꼬옥 잡았다.

‘아, 그리고 보니…….’

헬릭의 옆에 서 있는 여인.

아직 메시지는 뜨지 않았지만, 누구인지는 알 것 같았다.

‘사랑의 신, 로비.’

그 예상은 정확했다.

[사랑의 신 로비를 목도했습니다.]

[스페셜 칭호, ‘매혹목격자’를 획득했습니다.]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예, 저도 자주 들었습니다. 듣던 대로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빈말은 아니었다.

로비는 사랑의 신이라는 위명에 걸맞게,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녀와 미모를 견줄만한 사람이라고 해봤자, 카이가 알기로는 유하린이나 설은영 정도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 연회에 참석한 신들은 모두 몇 분이나 되십니까?”

그들을 초대한 건 로비다.

하지만 그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모르는데?”

“……예?”

“나도 모른다고.”

“하지만 직접 초대하셨잖아요?”

“응. 그런데 너, 신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는 알고 있어?”

“그야…….”

도서관에서 찾아본 결과.

미드 온라인에 존재하는 신들의 숫자는 정확히 77명이었다.

“77명 아닙니까?”

“어머, 지상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니? 유감. 틀렸어.”

“그 말씀은?”

“아무리 믿는 신도가 없다 해도 신위(神位)가 박탈되는 건 아니야. 그저 잊혀질 뿐.”

살짝 아련한 눈빛을 품은 로비는 계속해서 공간이 일그러지는 허공을 쳐다봤다.

“그래서 그냥 현존하는 모든 신들에게 초대를 보냈어.”

“……그게 몇 명인데요?”

“한 200명? 그중에서 몇 명이나 올지는 나도 잘 몰라. 아, 물론 쓰레기 같은 악신들에게는 안 보냈으니 걱정하지 마.”

200명이란다.

그중에서 절반만 응답을 하더라도…….

‘맙소사.’

시장 바닥처럼 시끄러워진 천상의 정원을 바라보던 카이가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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