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47화 (247/441)

# 247

힐통령 247화

84장 신들의 연회(3)

미드 온라인의 모든 사제 혹은 성기사들이 지니고 있는 신비로운 힘, 신성력.

그들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원리는 간단하다.

바로 신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힘을 내려주기 때문.

‘한마디로 이 자리에 있는 신들 중, 신성력이 없는 이들은 없단 말이지.’

물론 신도가 없어서 지닌바 힘은 천차만별일 수 있으나, 신성력은 다르다.

그건 신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힘.

신성력이 없는 신이었다면, 진작 신위를 박탈당했어야 정상이다.

“아주 약간의 신성력. 그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흠, 신성력이라.”

“확실히 못 낼 정도는 아니군.”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자린고비처럼 자신의 신성력을 내줘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지는 신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먹고 싶은 음식 한 달 어치가 걸린 시점에서, 빙고 게임에 참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여기있네.”

신들의 손 위로 저마다 다른 색을 지닌 신성력이 떠올랐다.

각각의 권능이나 능력에 따라 그 형태는 다르겠지만, 본질은 모두 같은 신성력이다.

띠링!

[힘의 신 가우스가 신성력 10을 지불하였습니다.]

[물의 신 하쿠가 신성력 10을 지불하였습니다.]

[태양신 헬릭이 신성력 10을 지불하였습니다.]

…….

카이가 참가비로 걷은 신성력은 겨우 10.

하지만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들 수도 있는 법!

‘모여든 신들의 수가 정확히 73명이니, 신성력도 730이나 모여.’

정상적인 플레이어라면, 146레벨을 올리는 동안 신성력에 모든 스탯을 몰아줘야 가능한 수치!

하지만 카이는 신들을 먹을 것으로 휘어잡고, 빙고 게임이라는 초강수까지 두면서 이를 손쉽게 얻어냈다.

‘음식 정도는 사실 여기 있는 모두에게 1년 내내 먹고 싶은 만큼 먹여줘도 손해가 아니야.’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모든 것을 퍼주면 감사함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항상 바라는 것을 조금씩, 애가 탈 정도로 나눠서 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자, 그럼 어서 시작해 보지. 그 빙고 게임이라는 걸 말일세.”

“내가 룰을 잘 이해한 게 맞다면, 자네가 그 상자에서 뽑아든 숫자들. 그것들이 내 판에 일렬로 나오면 된다 이거지?”

“잘 이해하셨습니다. 역시 지혜의 신다우십니다.”

“허허, 이 정도야 뭐.”

지혜의 신 야니르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들을 쳐다보던 카이가 대망의 첫 번째 공을 뽑아 들었다.

“47!”

“오오, 나왔군!”

“나도 나왔네.”

“이런, 내 빙고판에는 47이라는 숫자가 없네.”

73명의 신들은 47이라는 숫자 하나에 희비가 교차했다.

“자, 그럼 두 번째 공 뽑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카이가 계속해서 빙고를 진행해나가던 순간, 헬릭이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손을 들었다.

“예, 헬릭 님. 왜 그러시는지요?”

“카이여! 이 게임은 너무 불공평하다!”

그녀는 이어서 한 남자를 척 가리키며 말했다.

“행운의 신은 그대가 숫자를 뽑는 족족 다 들어맞고 있지 않느냐!”

“어, 어흐흠! 그것도 본인의 능력 아니겠어요?”

“…….”

행운의 신은 젊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치트를 쓰다가 들킨 사람처럼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음…… 확실히.”

행운의 신은 이 세상의 모든 행운을 관장하는 신.

당연히 이렇게 운이 따라줘야 하는 종류의 게임에서는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좋아요. 그럼 행운의 신님은 이 게임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뭐, 뭣! 그러는 게 어디 있나!”

행운의 신이 당장 격노했다.

하지만 카이는 한마디의 말로 그의 분노를 잠재웠다.

“대신 행운의 신님께는 식사 한 달 무료권을 따로 드리겠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나도 별다른 불만은 없네.”

오히려 만면에 활짝 미소를 지을 정도.

물론 다른 신들은 카이의 독단적인 결정에 반발했다.

“아니, 잠깐 기다리게! 게임도 하지 않으면서 1등 보상을 손에 넣다니?”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럼 행운의 신님을 게임에 참여시킬까요? 그의 행운을 당해내고 1등할 자신이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크, 크흠.”

“그게 좋다는 건 아니고…….”

행운의 신을 향한 질투 때문에 괜히 입을 열었던 신들은, 본전도 못 찾고 꼬리를 말았다.

“그럼 게임 계속하겠습니다. 23!”

게임이 진행될수록 신들의 감정은 더욱 고조되었다.

“으아아, 41 한 번만 뽑아주게!”

“25! 25! 25!”

“3번! 무조건 3번이어야 돼! 그것만 나오면 빙고가 두 줄이나 완성된단 말이다!”

흡사 도박장에서나 느낄 수 있는 광기!

그들이 빙고 게임 하나에 이렇게 몰입할 줄은 카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오, 축하드립니다. 3번 공입니다.”

“으아아아! 주신이시여!”

최초로 빙고 3줄을 완성시킨 전쟁의 신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런 그를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쳐다보는 다른 신들.

“그럼 다음 공 진행하겠습니다.”

카이가 공을 뽑자 순식간에 2등과 3등이 정해졌다.

“허어…… 숫자가 하나만 더 나왔으면 나도 승리할 수 있었거늘…….”

“후우, 난 너무 운이 없었네. 어찌 빙고가 한 줄도 완성되지 않을 수 있겠나.”

상품을 받지 못한 신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신의 빙고판만을 쳐다봤다.

그 순간 카이의 목소리가 그들의 귀를 유혹했다.

“자, 그럼 첫 번째 게임의 승리자는 다 정해졌군요. 그럼 바로 다음 판으로 가보실까요?”

“응? 다음 판?”

“어라, 그럼 설마 한 판만 하고 끝내실 생각이셨습니까?”

“오오, 그렇군!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면 되는 거로군!”

“허허허. 이번에는 나도 지지 않을 걸세.”

새로운 게임에 다시금 의욕을 드러내는 신들.

그런 그들에게, 카이가 웃는 낯으로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럼 참가비는 다시 내셔야지요?”

“…….”

이번에는 게임에 참가할 수 없는 행운의 신을 제외한, 72명의 신이 지불한 신성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

‘신성력 1,450개라…….’

이것은 버그 플레이는 아니다.

하지만 치트가 아니냐고 묻는다면, 카이도 할 말은 없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수확까지.’

그건 두 번째 게임의 참가비를 걷으면서, 신성력의 총 스탯이 3,000을 넘어갔을 때 떠올랐다.

띠링!

[스페셜 칭호, ‘마르지 않는 신성력’을 획득하셨습니다.]

마르지 않는 신성력.

신성 스킬의 효과를 25%나 상승시켜 주는 고마운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글렌데일의 성자, 화이트홀의 성자, 그리고 마르지 않는 신성력까지.’

이것으로 카이는 신성력을 소모하는 스킬의 효과를 무려 5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래저래 얻은 게 많은 날이야.’

두 번째 게임의 승자도 정해졌다.

카이는 게임을 더 진행하라면 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 생각이었다.

‘과하면 부족한 것만 못해. 지켜야 할 선은 지켜야지.’

카이는 게임의 진행자로서 신들의 면면을 모두 관찰할 수 있었다.

개중에는 게임이 잘 풀리지 않는지, 한 게임을 더 하자하면 화를 낼 신들도 더러 보였다.

‘그런 식으로 분위기가 싸해지면, 게임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신들도 주저하게 되지.’

그 결과는 자신을 향한 호감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카이는 깔끔하게 장사판을 접었다.

“게임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약소하지만 선물도 준비해 놨으니 가는 길에 하나씩 챙겨 가시길.”

“호오, 선물까지?”

“허허. 덕분에 오늘 맛있는 음식도 먹고, 재미있게 놀다가네.”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아 기분이 좋지만은 않던 신들도, 맛있는 음식이 담긴 선물 보따리를 하나씩 쥐어주니 표정이 많이 풀렸다.

“다음에 연회를 열게 되면 그 때도 꼭 좀 초대를 부탁하네.”

“우리 자주 보세나!”

“하하, 당연히 초대를 드려야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카이는 웃는 낯으로 연신 허리를 숙이며 신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힘의 신, 가우스와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지혜의 신, 야니르와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사랑의 신, 로비와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

예의도 바르고, 재미있는 놀이와 먹거리까지 선물해 준 대상이다.

신들이 카이를 좋게 봐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음?”

제법 길어진 연회에 지쳤는지,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헬릭이 눈을 반짝이며 일어났다.

“헬릭. 이 기운은?”

“……응, 맞는 것 같구나.”

로비의 목소리에 헬릭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갑자기 왜 이러시지?’

카이의 물음과는 별개로, 그녀와 같은 기운을 느낀 신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 기운이라면…… 아직 신위를 박탈당하지 않고 있었나보군?”

“허어. 신탁을 잘못 내려 자신의 신도들을 모두 잃은 뒤에는 반쯤 실성했다고 들었건만.”

“그런가? 난 우울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소멸했다고 들었는데.”

“헬릭과는 절친이었다고 하지 않았나?”

“한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지. 벌써 수백 년 동안 그 어떤 신과도 교류가 없다던데.”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헬릭이 바라보는 방향을 쳐다봤다.

쩌저적.

다른 신들이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갈라지는 공간의 균열.

그 틈에서 경건한 백색의 드레스를 차려입은 소녀 한 명이 걸어 나왔다.

헬릭의 또래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신의 얼굴이라는 믿기 힘들 정도로 얼굴이 수척했다.

겉모습만 보면 병자라고 오해를 해도 무방할 정도.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헬릭을 발견하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헬릭…….”

“…….”

소녀의 부름에 항상 밝아보이던 헬릭의 표정이 더없이 진중해졌다.

이어서 조심스럽게 드레스 끝자락을 잡아 올린 헬릭은 그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짜악!

다짜고짜 뺨을 때리는 그녀의 과격한 행동에 깜짝 놀란 카이가 곧바로 그녀를 뜯어 말렸다.

“헤, 헬릭 님!?”

“……바보 같으니라고.”

소녀를 내려다보는 헬릭의 두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잠시 그녀를 쳐다보던 카이는 우선 넘어진 소녀부터 부축했다.

“저기, 괜찮으십니까? 많이 다치신 거 아니에요?”

어쩔 줄 모르는 카이에게 괜찮다고 손을 흔든 소녀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르튼 입술을 힘겹게 열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헬리익…….”

“되었다. 아무 말 하지 말거라. 내 마음 속 응어리는 방금 전 그것으로 모두 풀렸으니.”

소녀와 마찬가지로, 두 눈 가득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헬릭이 두 팔을 힘껏 펼쳤다.

“그저 내 품에 안겨 울거라. 나의 벗, 칼 라샤여.”

“……응.”

헬릭의 말에 소녀, 칼 라샤는 헬릭의 품으로 쏙 들어가 안기더니 한참을 울었다.

누가봐도 귀엽고 예쁜 두 소녀가 서로를 껴안고 펑펑 울고 있는 모습은…… 뭐랄까.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묘한 감정을 선사해 주었다.

‘그런데 잠깐, 칼 라샤라면 분명?’

과거 라이넬의 던전에서 마주친 듀라한들이 생전에 모시던 신의 이름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녀의 능력이 변화였지?’

카이의 의문에는 시스템이 응답해 주었다.

[변화의 신, ‘칼 라샤’를 목도했습니다.]

[스페셜 칭호, ‘변화의 목격자’를 획득했습니다.]

‘변화라…….’

변화란 사물의 성질이나 모양, 상태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사람의 외형일 수도 있고, 마음일 수도 있다.

혹은 눈앞의 헬릭과 칼 라샤처럼, 서로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도 변화의 일부일지도.

‘정말,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울보들이 있을까.’

평소보다 손수건을 한 장 더 꺼내든 카이가 두 소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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