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48화 (248/441)

# 248

힐통령 248화

84장 신들의 연회(3)

“두 분 다 뚝.”

“훌쩍…… 뚝.”

“크응…… 뚝.”

“잘하셨어요.”

헬릭과 칼 라샤, 귀여운 두 신들을 달랜 카이는 손수건으로 눈물까지 닦아주었다.

‘이렇게 보니까 둘이 꼭 자매 같네.’

금발의 머리카락이 풍성한 헬릭인 반면, 칼 라샤의 머리칼은 하늘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허나 잘 어울리지 것 같지 않은 두 색이 한데 모여 있으니, 이게 또 묘하게 어울려 보인다.

“그나저나 두 분 모두 눈이 퉁퉁 불었네요.”

“흐우…… 그런 말하지 말거라. 내 탓이 아니니까.”

“그래요. 모든 건 저의 탓이니 헬릭을 탓하지는 말아주세요.”

같은 신인데도 불구하고, 헬릭에게 유독 조심스럽고 저자세인 칼 라샤.

그 둘을 가만히 쳐다보던 카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어봐도 됩니까?”

카이의 질문에 서로를 쳐다보는 헬릭과 칼 라샤.

먼저 입을 연 것은 헬릭이었다.

“그대라면 괜찮겠지. 혹시 기억하는가? 아직까지 지상에 남아 있는, 한때 그녀의 신도였던 이들을.”

“아. 라이넬 같은 이들 말인가요? 그…….”

카이는 차마 듀라한들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허나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칼 라샤가 이를 대신 입에 담았다.

“나의 아이였던 이들은 망령이 되어 아직도 지상을 헤매고 있어요. 모두 제 탓이지요.”

“그게 왜 칼 라샤님 탓입니까?”

“……뮬딘교를 우습게보고 잘못된 신탁을 내렸으니까.”

칼 라샤가 우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상에서는 이미 옛 신이라 불리며 그 존재 자체가 까맣게 잊혀진 칼 라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이유는 뮬딘교 때문이었다.

‘무서운 놈들.’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교단을 철저히 파괴하고, 신의 이름마저 지상에서 지워 버린다.

그것이 뮬딘교가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타 교를 대하는 방법이었다.

‘신탁인가.’

칼 라샤는 도를 넘어선 뮬딘교를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당연히 자신들의 신도들에게는 뮬딘교에게 저항하라는 신탁을 내리게 되었고.

그 결과는…….

‘교단의 멸망.’

안타까운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어진 것은 칼 라샤교 신도들에게 내려진 끔찍한 고문과 생체 실험들.

칼 라샤는 자신의 아이들이 매 순간 비명을 지르며 자신을 찾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설득을 해보았다. 하지만 라샤는 내가 내미는 손을 잡아주지 않았지.”

“그, 그야 너는 태양과 자비를 관장하는 신이니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지…….”

이후 신도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한 칼 라샤는 그들의 비명을 들으며 나날이 피폐해져 갔다.

당연히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외부와의 모든 교류도 끊었다.

누구도 찾아올 수 없는 자신만의 장소에서 스스로 소멸 시도까지 하던 칼 라샤.

카이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야 헬릭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친구를 말리고 싶었는데,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는커녕,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버렸다 이거지?’

심지어 칼 라샤는 몇 달이나 몇 년 단위도 아니고, 무려 수백 년 동안이나 잠수를 탔다.

‘이건 맞아도 싸네.’

오히려 뺨 한 대로 모든 원망을 지워낸 헬릭이 자비의 신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이제는 좀 괜찮아지셨나요?”

“글쎄요……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된 건, 당신을 보기 위해서예요.”

“저를요?”

칼 라샤는 두 눈을 깜빡거리는 카이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당신이 해방시켜 준 라이넬과 나의 아이들은, 천계로 가기 전에 저와 대화를 나눴어요. 그들은 저를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제는 편안해져도 된다고 위로까지 해주더군요.”

“……그랬군요. 그러고 보니 라이넬은 당신의 교단이 다시 한 번 세워지기를 소망했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당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에 칼 라샤는 마치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푸른색 눈동자로 카이를 올려다봤다.

“저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고요? 저를 따르던 수천 명의 아이들이 죽고, 고문을 당했어요. 모두 뮬딘에게 대항하라는 저의 무책임한 신탁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후회하십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럼 만약 칼 라샤님이 과거로 돌아가신다면, 정 반대의 선택을 하시겠다는 소리입니까?”

카이의 질문에 칼 라샤의 눈빛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그, 그건…….”

“당신을 따르던 라이넬과 신도들을 욕보이지 마십시오.”

“제가 언제 그들을 욕보였다고……!”

칼 라샤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카이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왜 칼 라샤님을 원망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야, 그들은 저를 배려하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죽지도 못 하는 언데드가 되어 지상을 배회하던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배려심이 남아 있을 것 같습니까?”

“…….”

칼 라샤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칼 라샤님을 원망하지 않은 이유는, 원망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원망할 이유가…… 없다고요?”

“예. 당신은 지극히 옳은 선택을 내렸으니까요.”

그녀는 신으로써 내려야할 지극히 옳은 선택을 했다.

다만, 때로는 옳은 선택이더라도 그 결과가 안 좋을 수 있다.

그렇게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이 바로 ‘세상’이라는 놈이니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그 선택이 그릇된 선택이 되는 건 아닙니다. 당신이 바라던 변화라는 건, 과정은 제쳐두고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세상입니까?”

“그건 절대 아니에요!”

칼 라샤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아니지만…… 하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그녀는 여태껏 모든 원망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믿고 따라주던 신도들을 향한 속죄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칼 라샤교의 신도들은 그녀가 고통받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

라이넬을 만나보았던 카이는 그 부분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은 수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자신의 신을 믿고, 따랐다.

그녀의 선택에 담겨 있던 소신과 용기를 존경하고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니요? 그야 당연히 뮬딘교, 그놈들의 잘못이지요.”

“허억…….”

“크, 크흠. 뮤, 뮬딘교라니…….”

“으으음…….”

그 이름이 주는 공포에 몇몇 신들이 두려운 듯 몸을 떨었다.

괜히 자신에게 불똥이 튀기라도 할까봐, 껄끄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마저 있었다.

그 한심한 작태에 카이는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가,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무능한 방관자들.’

저 작자들은 뮬딘교의 세가 한창 강대할 때 몸을 숨기기 급급하던 자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그들의 교단은 어떠할까.

칼 라샤와는 다르게 뮬딘교에 대항하지 않았으니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을까?

‘천만에.’

그들의 교단 또한 칼 라샤교와 마찬가지로 멸망했다.

믿음을 주지 못하는 이를 열성적으로 믿고 따를 멍청이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칼 라샤의 승리다. 역시 그녀가 옳았어.’

그녀의 교단은 저들과 똑같이 망했지만, 적어도 그녀를 향한 신도들의 믿음은 영원하다.

악에 굴하지 않고 신도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이를 미워할 이는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피해자입니다. 왜 당신이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을지를 고민하고 있는 겁니까.”

토닥토닥.

칼 라샤의 가벼운 머릿결은 이를 쓰다듬는 카이의 손짓에 쉽게 흐트러졌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

부부와 벗은 서로 닮는다는 말이 있다.

‘……울보도 전염되나?’

카이는 목청껏 울어버리는 칼 라샤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천상의 정원, 그 적막한 하늘섬 위에는 칼 라샤의 울음소리만이 구슬픈 노랫가락처럼 울려 퍼졌다.

띠링!

[지친 이에게, 상처 받은 이에게, 좌절한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의 위로. 그것은 때때로 듣는 이의 삶을 바꿀만한 무게를 지니기도 합니다. 외적인 상처만이 아니라 내적인 상처까지 어루만져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타인을 치료하는 사제이자, 순례의 길을 걷는 당신이 끝없이 추구해야 할 궁극의 경지입니다.]

[칼 라샤의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하였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며,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태양신 헬릭이 당신의 치료술을 눈앞에서 목도했습니다. 그녀가 당신에게 왼쪽 눈을 찡그립니다.]

[선행 스탯이 30만큼 증가하였습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로 선행 스탯이 추가적으로 15만큼 증가하였습니다.]

[칼 라샤와의 호감도가 최대치를 갱신했습니다.]

[칼 라샤의 울음을 목도한 다른 신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일부 신들은 칼 라샤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신도들에게 퍼트릴 것입니다.]

[칼 라샤교의 재건 확률이 올라갑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헬릭은 정말로 왼쪽 눈을 찡그리며 윙크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대리인이 가장 좋아하는 친우의 상처를 돌봐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는 중이리라.

‘칼 라샤교라.’

그녀를 모시는 사람들이 모여들려면,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카이에게는 그 ‘구심점‘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칼 라샤의 인도자 반지.’

칼 라샤교의 히든 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반지다.

이제 자신이 칼 라샤교를 믿고 맡길만한 이를 찾아 건네기만 하면 모든 일은 해결된다.

카이는 한 쪽 무릎을 꿇어 칼 라샤와 눈높이를 맞췄다.

“칼 라샤님. 제가 반드시 칼 라샤교에 어울릴만한 인물을 찾아 당신께 보내드리겠습니다.”

“나, 나는 그대가 나의 의지를 이어줘도 좋다고 생각…….”

“그건 안 되느니라!”

뒤에서 조그마한 무언가가 끼어들어 칼 라샤와 카이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헬릭 님?”

“아무리 라샤, 너라고 해도 카이만은 양보할 수 없느니라. 그는 내 대리인…… 내 꺼란 말이다!”

“어머.”

“호오?”

“헬릭이 저렇게까지 본인의 의사를 내세울 줄이야…….”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군.”

헬릭의 당당한 선언에 이를 듣고 있던 신들이 이채를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방구석 폐인마냥 섬에만 박혀 있던 그녀에게서 이렇게 당당한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을 테니까.

그것은 카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 헬릭 님이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시고 계실 줄이야.’

하지만 틀린 건 틀린 거다.

그는 헬릭의 말에서 잘못된 점을 정정해 주었다.

“그런데 헬릭 님. 저는 제 것이지 헬릭 님의 것이 아닙니다. 사물이 아닌 인격체라구요.”

“뭐, 뭐……? 그대는 내 것이 아니었더냐?”

“아닙니다.”

카이의 단호한 말투에 헬릭은 나라 잃은 사람처럼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카이가 그녀를 달랬다.

“하지만 영원히 헬릭 님만의 대리인이 되겠습니다.”

“그, 그대여……!”

헬릭은 크게 안도한 듯, 어느 때와 같이 주변을 밝게 빛내주는 미소를 입가에 한껏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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