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
힐통령 249화
85장 베이스커 남작(1)
신들의 연회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천계에서의 소소한 낙이라고 해봤자 다른 신들과의 대화가 전부였던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끝내주는 음식과 놀이를 전파해 줬으니 반응이 좋을 수밖에.
더군다나 떠나는 길이 가볍지 않게끔, 음식물 꾸러미도 저마다의 품에 한 아름 안겨주었다.
‘그 대가로 이렇게까지 많은 걸 얻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리버티아로 돌아온 카이는 곧장 결산부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의 시야로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스페셜 칭호들.
칭호 북은 새롭게 추가된 페이지들로 인해 부실 지경이었다.
‘총 71페이지인가.’
연회에는 총 73명의 신이 참석했다.
하지만 태양목격자와 대지목격자는 사전에 미리 획득해 두었던 상황.
따라서 새롭게 획득한 스페셜 칭호는 71개였다.
“허.”
일반 칭호라고 해도 71개를 몇 시간 만에 그렇게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물며 스페셜 칭호다.
이 게임에서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칭호.
‘이제 스탯 올리는 맛 좀 나겠는데?’
연회에는 정말 다양한 신들이 있었다.
덕분에 카이는 다양한 목격자 칭호를 획득할 수 있었지만, 그 효과는 대동소이했다.
‘절반 정도는 스탯에 관련된 칭호들이었지.’
대지목격자의 효과가 힘 스탯 상승과 관련이 있듯, 중복된 효과를 지닌 칭호들이 많았다.
‘문제는 이게 중복 적용이 되냐는 건데…….’
그것은 곧장 실험해 보면 될 일.
카이는 곧장 스탯 창을 열어 힘 스탯을 하나 올려보았다.
“……와.”
동시에 카이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1,516이라는 힘 스탯이 순식간에 1,520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게 되네?’
그렇다면 다른 스탯들도 마찬가지라는 소리.
저도 모르게 입 꼬리를 올린 카이는 곧장 계산을 시작했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계산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신기했다.
‘우연의 일치인가?’
합산 결과 모든 능력치의 추가 상승은 300%로 동일했다.
‘스탯 하나를 투자하면 총 네 개가 올라.’
그 말도 안 되는 결과에 카이가 입을 쩍 벌렸다.
지금부터 자신의 레벨 업이 가지는 의미는 다른 이들과는 궤를 달리할 것이다.
‘다른 유저들이 레벨 4개는 올려야 나의 레벨 업 한 번과 동일하다는 소리야.’
카이는 자탄 레이드 이후 잠시 사냥을 쉬고 있는 상태였다.
사룡 시네라스 때부터 루시퍼와 지르칸, 마지막으로 자탄까지.
폭풍처럼 이어진 힘겨운 싸움에 몸과 마음도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사냥을 하고 싶은 기분도 오랜만이네.’
피가 끓는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고 몬스터들을 베어 넘기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스탯들의 추가 상승은 그만큼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럼 남은 스탯 256개를 어디에 투자해야 하나.”
사실 카이는 내심 신성 스탯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성검 소환 스킬을을 신성 폭발을 비롯한 각종 버프와 동시에 사용하면 신성력이 밑 빠진 구멍에 물을 붓는 것처럼 빠르게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연회로 인해 신성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신성 스탯이 3천 개가 넘었고, 마르지 않는 신성력이라는 스페셜 칭호까지 획득했다.
덕분에 카이의 스탯 창은 이제야 사제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힘과 신성 스탯의 수치가 비슷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사제의 스탯이라 보기에 무리가 있었으니까.
“그럼 답은 힘과 체력인가.”
레벨이 높아지면서 카이는 체력 스탯의 중요성도 느끼게 되었다.
물론 한 번에 죽지만 않는다면 치유 스킬로 빠르게 체력을 회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치유를 할 틈도 없이 죽어버리면 답이 없어.’
앞으로 더 잦아질 천상계 유저들과의 전투는 서로의 찰나를 겨루는 행위다.
특히 설은영으로부터 타이탄과 검은 벌이 모종의 작당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뒤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카이는 여분의 스탯 256개 중 100개는 체력에, 156개는 힘에 투자했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416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130,900
신성력 : 305,200
능력치
힘 : 1,988 체력 : 1,309
지능 : 701 민첩 : 674
신성 : 3,052 위엄 : 621
선행 : 461
독 저항력 +30
마법 저항력 +40%
자연친화력 +200
신성력을 소모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 +50%
악마/언데드에게 주는 피해 +50%
“음,”
카이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며 만족스러움을 표시했다.
‘신성력이 거의 두 배로 뻥튀기되었네.’
기존에 16만 수준이던 신성력이 이번 연회로 인해 단번에 30만을 뛰어넘었다.
이제 자탄 레이드 때처럼 전투 시 줄어드는 신성력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소리.
‘물론 장기전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 방대한 신성력을 이용해 전력으로 싸우면, 오래 버틸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을 것이다.
‘좋아. 도시들의 정비만 끝나면 바로 사냥을 떠나자.’
카이는 영지관리 창을 보며 생각했다.
‘리버티아는 이대로도 괜찮을 거야.’
지금 진행하고 있는 천하제일야장대회가 끝나면,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아인종들의 발전된 문명과 예술을 전파하는 장소로 말이다.
‘결국 해결해야 하는 건 아르칸과 하베로스야.’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이번 연회를 통해 모두 해결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지혜의 신 야니르에게 도움을 받았으니까.
‘야니르님. 만약 영지를 단기간에 성장시키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흠, 그리 어렵지 않는 걸 묻는군. 권력자들이 혹할 만한 시설을 지어라.’
그런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으로 대꾸하던 야니르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대답을 듣고 난 카이가 떠올린 것은 단연 아카데미였다.
‘저번 특별 경매를 보면서 깨달았어.’
이 게임의 권력자는 여전히 유저들이 아닌 NPC다.
유저들이 손가락만 빨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거대한 액수.
그것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시할 수 있는 것이 NPC들의 힘이다.
만약 대륙에 퍼져있는 각 나라의 황족과 왕족, 그리고 귀족이나 대부호의 자제들이 다니고 싶어 안달날 수밖에 없는 아카데미를 자신의 영지에 지을 수 있다면?
‘그럼 뭐, 그 때부턴 돈을 갈퀴로 쓸어담는 거지.’
결론을 내린 카이는 곧장 아르칸 영지로 향했다.
“…….”
영지의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워드, 이제부터 우리가 가려고하는 곳이 어디라고?”
“선샤이어 영지일세. 이곳에서 말을 타고 이틀을 달려야 나오지.”
“끄응, 말이 없으니 꼬박 10일은 걸어야겠구먼.”
“어쩌겠나. 이미 아르칸 영지는 회생 불가능일세.”
“신임 영주는 오지도 않고, 그 와중에 다시 한 번 전쟁이 일어난다니…… 끔찍하군.”
“어서 가세나.”
연이은 공성의 여파로 엉망이 된 시설들.
간단한 생필품을 넣은 보따리들을 수레에 싣고 피난길에 오른 주민들이 시야로 들어왔다.
두 남자의 대화를 듣던 카이가 그들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전쟁이 일어난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음?”
카이의 행색을 빠르게 훑어본 주민은 수레를 계속 밀면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모험가 신관 같은데, 가던 길 가시오. 대화를 들었나본데, 그 내용 그대로요.”
“그럼 전쟁이 일어난다는 게 확실한 건가요?”
“암. 아르칸 영지에서 사흘 떨어진 곳에 베이스커라는 도시가 있소. 그곳의 영주는 욕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곳까지 소문이 들려오더군.”
“최근 아르칸 영지가 모험가들의 손에 넘어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짐을 꾸려서 나가더라고. 영지 자체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어진 게지.”
“아하…….”
확실히 카이는 워리어스 길드에서 영지를 받은 뒤에 방문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이 땅을 욕심내는 자가 나타날 줄이야.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소문대로 욕심이 많은 작자네.’
머리를 긁적거린 카이는 영지를 떠나는 주민들을 지나치며 영주 저택으로 향했다.
굳게 닫혀있는 저택.
한때는 잘 꾸며진 저택이었을지도 모르나, 돈 될 만한 것은 주민들이 다 떼어갔는지 마당부터 휑하기만 했다.
“얼씨구?”
심지어 저택의 현관에는 문고리조차 달려있지 않았다.
‘대체 영주 저택 관리를 어떤 식으로 했길래…… 아, 관리할 사람이 없었구나.’
그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카이가 머쓱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밀었다.
‘안쪽은 나름 깨끗한데 말이지.’
저택의 내부는 확실히 깨끗했다.
바깥 풍경과 비교하면 누군가가 계속 관리해 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누구십니까……?”
“히익!?”
누군가의 조용한 목소리가 1층을 둘러보던 카이의 등 뒤에서 울렸다.
저도 모르게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린 카이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음?”
시야로 들어온 것은 검은색 정장을 빼입은 백발의 노신사였다.
가슴 부근에 붉은색 행거치프로 포인트를 준 것이 눈에 띄는 패션 스타일이었다.
그는 카이를 쳐다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몫 단단히 챙기려고 오신 거라면 당장 나가주십시오. 이미 돈 될 만한 물건은 모두 가져갔으니까요.”
“……그러는 그쪽은 누구십니까?”
“저는 이 저택의 집사, 프레스콧이라고 합니다.”
“흐음. 마을 주민들은 모두 피난길에 오르던데요.”
“할아버지 때부터 이 마을에서 자라며 영주님을 보필했습니다. 어차피 늙고 가족도 없는 몸, 저택 관리나 하다가 가고 싶군요.”
삶의 의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목소리.
카이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제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전 이 영지의 새로운 영주입니다.”
“……진심이십니까?”
“돈 될 만한 것 하나 없는 영지의 주인이라고 할 만한 정신 나간 놈은 없을 것 같네요.”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응용하자, 프레스콧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르칸 영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영주님. 하지만…… 너무 늦으셨습니다.”
“늦었다니요?”
“베이스커의 영주의 주인인 베이스커 남작은 벌써 몇 년 전부터 아르칸 영지를 눈독 들이고 있었습니다. 헌데 지난번의 몬스터 대침공으로 영지의 세가 급격히 기울고, 마침내 영지의 주인이 모험가로 바뀌자 야욕을 드러낸 것이지요.”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이 영주에 전쟁을 치를 병력은…….”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저 한 명 정도 있겠군요.”
“…….”
카이가 눈썹을 찡그렸다.
‘워리어스 놈들, 설마 전쟁 치루기 귀찮아서 영지 넘긴 거 아니야?’
그게 사실이더라도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들이 노른자 땅을 거래 대상으로 척척 내놓을 거라고는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흐음. 영지전이라.”
당연한 말이지만, 귀족 칭호를 유지하기 위해선 아르칸과 하베로스, 그 어느 영지도 잃어선 안 된다.
게다가 현재 아르칸의 영주는 카이.
그 어떤 길드도 소유하지 않고 있는 개인이었기 때문에, 마을의 병력이 전무한 이상 용병이라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프레이 길드나 성혈단 애들에게 말하면 달려와 줄 테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우드득, 우드득.
며칠간의 휴식으로 몸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카이가 천천히 목을 꺾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