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52화 (252/441)

# 252

힐통령 252화

85장 베이스커 남작(4)

“전군, 정지.”

베이스커 남작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가 초원에 묵직하게 내리깔렸다.

그러자 그의 군대는 건전지가 다 된 기계마냥 우뚝 움직임을 멈췄다.

일개 남작이 휘하로 데리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훈련된 병사들이었다.

‘저기 오시는군.’

베이스커 남작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험가 사제.

그러니까 그를 흉내내고 있을 카쿤을 쳐다보며 살짝 웃었다.

‘후후, 이제 적당히 시비를 걸면 받아주시겠지.’

카쿤과는 손발을 한두 번 맞춰본 사이가 아니었다.

이제는 척하면 척, 알아차려야 하는 사이.

베이스커 남작이 말 고삐를 흔들며 앞으로 나갔다.

“난 베이스커 남작령을 다스리는 영주, 베이스커 다론이다.”

“카이.”

“흠흠. 우리가 이곳에 왜 왔는지는 잘 알겠지?”

“흐음.”

팔짱을 낀 채 뚱한 표정을 지어보인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르르 몰려온걸 보니 좋은 의도는 아닌 것 같고. 영지전?”

“푸흐흐. 잘 아는구나.”

베이스커 남작은 말을 놓는 와중에도 남들 몰래 윙크를 보냈다.

물론 그럴수록 카이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져만 갔다.

‘이 녀석, 뭐하는 놈이지?’

영지전을 신청하러 온 주제에 살갑게 웃지를 않나, 윙크를 보내지를 않나.

자신의 상식선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녀석이었다.

‘일단 정상은 아닌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카이가 입을 열었다.

“영지전은 받아들이겠어. 방식은?”

“흐음. 굳이 길게 끌 필요는 없겠지. 깔끔하게 대장전 어떠한가.”

대장전.

그것은 영지전을 치루는 방식 중 하나였다.

각각 세 명의 기사를 내보내 상대편 기사를 모두 쓰러트리는 쪽이 승리하는 방식.

“깔끔하니 좋네. 그걸로 할게.”

“크흠. 아, 알겠다.”

카이의 자연스러운 하대에도 베이스커 남작은 별다른 반항을 할 수 없었다.

다만, 의구심을 드러낼 뿐.

‘카쿤 님의 연기력이 왜 이렇게 줄어드셨지?’

본래라면 역할에 걸맞게 자신에게 존대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토록 자연스러운 하대를 사용하시다니.

‘아무래도 오늘 컨디션이 별로 안 좋으신 모양이군.’

심기를 거스릴만한 일은 최대한 줄이자고 생각한 남작이 손짓했다.

그러자 휘하의 기사들 중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이들 세 명이 튀어나왔다.

‘후후. 사실 이것도 웃기는 일이지.’

자신의 기사들은 모두 뮬딘 교에서 지원을 해준 암흑 기사들이다.

일반적인 기사라면 열 명이 붙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괴물들이라는 소리다.

“음?”

대장전의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아군을 물리던 남작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바튼에게 물었다.

“저기 저쪽에 사람…… 아니, 모험가들이 왜 저리 많이 모여있는 것이지?”

“그, 글쎄요. 아무래도 영지전을 한다고하니 구경을 나온 것 아닐까요?”

“후후. 그렇다면 저들의 입을 통해 오늘의 일이 널리 퍼지겠군.”

“베이스커 남작님의 이름이 대륙에 널리 퍼질 것입니다.”

어깨를 당당하게 펴는 베이스커 남작.

물론, 그를 쳐다보는 유저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아하. 미친놈은 저렇게 생긴거구나.”

“언노운한테 영지전을 신청하는 머저리가 있다길래 궁금해서 와보기는 했는데…….”

“전면전도 아니고 대장전이라고? 뭔 일이래?”

그저 베이스커 남작의 그릇된 선택에 애도를 표할 뿐.

***

[아르칸 영지와 베이스커 영지간의 영지전이 성사되었습니다.]

[영지전 스타일은 ‘대장전‘. 상대방 영지의 기사 세 명을 모두 쓰러트린 쪽의 승리입니다.]

[영지전에서 승리할 시 상대방 영지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양도 받습니다.]

우드득, 우드득.

카이가 가볍게 목을 돌렸다.

찌뿌둥해있던 뼈가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느낌.

‘음. 검을 쥐는 것도 제법 오랜만인가.’

사실 따지고보면 굉장히 오래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

하지만 최근 몇 달 동안은 게임에 접속했다하면 검을 휘두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때문인지 지난 일주일의 공백은 제법 길게 다가왔다.

‘상대편 기사들의 레벨은…….’

카이의 시선이 그들의 머리 위로 향했다.

[베이스커 영지의 암흑 기사. LV.352]

[베이스커 영지의 암흑 기사. LV.348]

[베이스커 영지의 암흑 기사. LV.355]

‘일반 기사에 저런 클래스도 있었나.’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지는 이름들이다.

하지만 자신이 크게 신경쓸 바는 아니다.

‘강해봤자 350레벨이지.’

이미 자신의 레벨은 400을 넘긴 상태다.

게임에는 레벨이 깡패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미 50레벨이 넘는 격차가 만들어낸 스탯 차이는 압도적이니까.

하물며 카이는 태양의 사제.

수많은 선행 스탯과 스페셜 칭호로 능력치들을 몇 배나 뻥튀기시켜 놓았다.

“대장전은 본래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하는 겁니까?”

카이의 질문에 암흑 기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속삭이더니, 우르르 몰려왔다.

“당신, 정말로 카쿤 님이 맞으십니까?”

“응?”

그들의 질문에 카이가 눈을 깜빡였다.

‘카쿤? 그게 뭔데.’

어디선가 본 듯한 이름이기는 한데…….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암흑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역시 그렇군. 네 놈은 카쿤 님이 아니다.”

“감히 그 분의 행세를 하다니!”

“교의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을 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거늘…….”

영문 모를 소리만을 늘어놓던 기사들이 동시에 바닥을 박차며 달려왔다.

“네 놈을 눕혀놓고 그 분의 행방에 대해 묻겠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눈살을 찌푸린 카이의 온몸에서 사룡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드래곤 피어!

그것이 상대 기사들의 움직임을 찰나지만 굼뜨게 만들었다.

“교를 운운하는거보니 뮬딘 교에서 온 것 같은데. 사람 잘못 찾아왔다.”

카이의 몸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질풍신의 가호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질풍목격자의 효과로 모든 속도가 50% 상승합니다.]

[방랑신의 가호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방랑목격자의 효과로 스킬 숙련도 성장률이 50% 상승합니다.]

…….

카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탯이 굉장히 높은 플레이어였다.

따지고보면 직업이나 장비한 아이템들도 대단했지만, 강력함의 뿌리는 결국 스탯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스탯‘도‘ 높은 플레이어가 되어버렸다.

‘여러 신들을 만나고 얻은 목격자 칭호.’

이 세상에서 오직 카이만이 지니고있는 사기적인 스페셜 칭호들.

이것들을 쥐고있는 이상, 카이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는 이는 몇 없을 것이다.

까드드드득!

침묵과 냉기의 롱소드가 기사 하나의 가슴팍을 그대로 꿰뚫었다.

그 행위에는 어떠한 전문적인 기술이 가미되어있지 않았다.

그저 압도적인 힘이 이뤄낸 성과일 뿐.

“커어억……!”

“세 명이나 있으니까, 두 명은 필요없겠지?”

카이는 전투에만 돌입하면 손속이 매워졌고, 행동에는 거침이 없어지는 편이다.

그것은 상대가 뮬딘 교 소속의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후우우우웅!

두 명의 기사가 등 뒤에서 휘두른 공격을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피해냈다.

‘왼쪽 어깨, 오른쪽 옆구리.’

단순히 소리만을 듣고 어디를, 어떻게 노리는지 읽어내는 경지.

‘일주일 쉬었다고 감이 죽지는 않는구나.’

스스로의 대견함에 뿌듯한 미소를 흘린 카이가 자세를 두 자루의 검을 피해냈다.

동시에 휘둘러지는 발.

콰드득!

발은 정확히 기사의 가슴팍에 꽂혀있던 롱소드.

그 손잡이의 끝을 걷어찼다.

당연하지만 기사의 입에서는 폐부에서부터 끌어올린 듯한 고통어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걸로 한 마리는 전투 불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카이는 왼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고는 있는 힘껏 당겼다.

물론, 검을 뽑을 때도 순순히 뽑아주지는 않았다.

“칼날 쇄도.”

기사의 가슴팍에 박혀있던 검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뽑혀져나왔다.

뮬딘 교의 강력한 세뇌로 고통에 둔감한 암흑 기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멈칫.

단 한 번도 동료가 비명을 터트리는 것을 본 적 없던 두 명의 암흑 기사가 움찔거렸다.

그것은 카이에게 있어 또 하나의 기회가 되었다.

“성검, 프리우스 소환.”

카이의 오른손에 잡히는 백색의 신검.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신성 폭발.”

더 이상 신성력이 줄어드는 것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스페셜 칭호의 이름 그대로, 그의 신성력은 마르지 않으니까.

후우우웅!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암흑 기사들이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지만, 카이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우선 한 놈 더.’

까드드득!

성검이 기사 하나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었다.

파고든 성검은 일정 부근에 도달하자 그대로 날을 비틀더니, 수직으로 떨어졌다.

겨드랑이로 들어가, 옆구리로 빠져나오는 검!

“커르르륵…….”

기사는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뒤로 넘어갔다.

분수처럼 튀어나오는 피를 보아하니 과다출혈 디버프는 당연지사.

“뮬딘 교가 자랑하는 암흑 기사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실력이 영 별로야.”

“이, 이단심판관들께서 나서셨다면…….”

“아, 걔네도 실력 별로야.”

물론 너네보다는 낫지만.

조용히 중얼거린 카이는 암흑 기사의 몸이 굳어있는 틈을 타 냉기의 롱소드를 던졌다.

비수처럼 날아간 검은 기사의 왼쪽 허벅지를 그대로 꿰뚫었다.

“크윽, 비겁하게!”

“3 대 1로 덤빈 놈들이 비겁같은 소리하네. B급 같은 놈들이.”

촤르르륵.

자신의 말장난에 제법 감동을 받은 카이는 그대로 달려나가 검을 휘둘렀다.

앞가슴을 크게 베인 기사는 피를 뿜어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자, 그럼 남은 건…….’

뮬딘 교의 암흑 기사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를 알아내야한다.

카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베이스커 남작에게 돌아갔다.

“신성 사슬.”

촤르르륵.

왼손 소매에서 신성 사슬이 튀어나왔다.

이어서 신성 사슬은 정오의 햇빛을 반사시키며 시원하게 날아갔다.

“어, 어어?”

카이와 베이스커 남작의 거리는 50미터에 달했지만, 그 정도 거리는 무의미했다.

신성 사슬이란 결국 신성력을 주입하는 만큼 길이가 길어지는 스킬.

카이가 지닌 신성력이라면 이보다 몇 배는 더 되는 거리라 할지라도 무리가 없었다.

“마, 막아라!”

날아드는 신성 사슬을 목도한 베이스커 남작이 소리쳤다.

하지만 신성 사슬은 암흑 기사들보다 훨씬 재빨랐다.

후웅, 후웅!

베이스커 남작의 목을 세 바퀴나 휘감은 신성 사슬.

“후읍!”

먹잇감을 잡아챈 카이의 이두근이 크게 부풀었다.

이어서 신성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베이스커 남작은 허공을 날다시피 끌려왔다.

“성검 역소환.”

성검을 집어넣은 카이는 날아드는 남작의 목젖을 허공에서 붙잡아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쳤다.

“커어억…….”

“이제 대화를 할 만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 같은데.”

“카, 카쿤 님. 대체 왜 이러시는 겁…… 끄아아아악!”

푸른 역병.

아이러니하게도 뮬딘 교에서 만들어낸 희대의 극독이 베이스커 남작을 고문하는데 사용되었다.

한 번 주입시킨 푸른 역병은 빠른 시간안에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우두두둑.

베이스커 남작의 모든 피부 위로 푸른 색의 핏줄이 섰고, 눈은 붉게 충혈되었다.

“묻는 말에 제대로 답만 해도 해독은 시켜준다.”

“…….”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입을 꾹 다문 베이스커 남작.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는 그의 표정을 통해 침묵이 긍정이라는 뜻을 읽어낼 수 있었다.

“카쿤이라는 놈은 대체 누군데 자꾸 찾는 거지?”

“……그, 그 분은 뮬딘 교의 제 16암살단의 단장. 지난 밤 네 놈…… 아니, 당신을 암살하러 가셨습니다.”

“나를?”

의외의 말을 들은 카이가 눈을 깜빡였다.

“그런 놈 안 왔…… 아?”

기억을 더듬던 와중에 무언가가 불현듯 떠오른 카이.

‘설마 어젯밤에 잡았던 그 파리가?’

확실히 파리를 잡고 난 뒤, 암살단장이니 어쩌니하면서 저주까지 받은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사소한 해프닝인 줄 알고 짚어넘겼건만.

“왔던 것 같기도 하고.”

“그, 그렇다면 카쿤 님은……?”

“미안. 파리인 줄 알고 그냥 잡았는데.”

“…….”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리는 베이스커 남작.

카이는 그의 멍청한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후우. 그나저나…….”

이상한 놈들이랑 엮여서 귀찮은 짓을 해버렸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띠링!

[영지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지금부터 베이커스 영지에 대한 모든 소유권은 당신에게 이전됩니다.]

“또 생겼네.”

귀찮은 짐 덩어리가 하나 더 생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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