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53화 (253/441)

# 253

힐통령 253화

86장 검술의 달인(1)

대장전으로 치뤄진 영지전에서의 압승.

실제로 베이스커 영지 또한 수중에 들어왔지만, 카이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저 녀석들도 암흑 기사들인 것 같은데?’

베이스커 남작이 데려온 기사들.

총 50명가량이 왔고, 그중 3명을 처치했으니 47명이 남은 셈이다.

마치 기계처럼 도열해 있던 기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봐.”

“히익…….”

카이가 신성 사슬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자, 베이스커 남작이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안 잡아먹으니까 대답해.”

“예, 예!”

“저 녀석들도 전부 암흑 기사들인가?”

그 질문에 어찌 대답해야 할지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 베이스커 남작.

하지만 카이가 눈을 부릅뜨자, 슬며시 눈을 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습니다. 모두 뮬딘 교의 암흑 기사들입니다.”

“녀석들에 대한 명령권은 있고?”

턱 끝으로 암흑 기사들을 가리키며 묻자, 베이스커 남작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뮬딘 교에서는 저에게 저들에 대한 모든 지휘권을 맡겼습니다.”

“그럼 귀찮으니까 전부 내 시야에서 사라지라고 해.”

“……알겠습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베이스커 남작이 조용히 수긍했다.

저들에게 명령을 내리면 자신을 죽일 수 있는지 없는지, 빠르게 계산을 해본 것이겠지.

‘물론, 가장 먼저 죽는 게 자신이라는 결론이 나왔을 테고.’

그것이 베이스커 남작의 결정을 도와줬을 것이다.

“다들 이 전장에서 물러나 안전한 장소로 돌아가라!”

“…….”

그 말을 들은 암흑 기사들의 수군거림이 더욱 잦아졌다.

그러기를 잠시, 그들이 일제히 검을 뽑으며 다가왔다.

카이가 한심한 표정으로 남작을 쳐다보며 말했다.

“명령권 있다며.”

“어어…… 어어어……?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암흑 기사들이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이 충격적인 듯, 베이스커 남작의 눈빛이 흔들렸다.

곧 다가올 두 번째 싸움을 대비하며, 카이는 중얼거렸다.

“이러다가 차 식으면 창피해지는데…….”

* * *

게임이라는 것이 그렇다.

레벨과 장비, 능력치.

하나만 압도적으로 높아도 더 높은 등급의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카이는 그 모든 것이 높았고, 심지어 실력까지 월등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5개 획득했습니다.]

그것이 카이가 47명의 암흑 기사들을 손쉽게 정리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물론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웠다고는 무리가 있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대충 15분 정도인가.’

47명, 47개의 검, 47개의 스킬.

그것들이 카이의 몸뚱아리를 향해 쏘아 들었지만, 그는 옷깃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노 히트 올 킬(No Hit All Kill).

돈 주고도 못 본다는 그 진귀한 장면을 라이브로 목격한 유저들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캬, 역시 언노운이네.”

“그러게 왜 깝쳤대?”

“상대편만 불쌍하게 됐지.”

축제가 끝나면 인적 없는 쓸쓸한 거리만이 남는다.

한바탕 전투가 치러진 초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암흑 기사들이 남긴 전리품을 파밍한 카이는 베이스커 남작을 들쳐 엎고 성벽을 향해 뛰었다.

“차 식었어요?”

프레스콧은 아직 김이 피어오르는 차가 들어있는 찻잔을 든 채, 눈만 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본 광경이 현실인지, 아닌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이, 이게 대체…….”

“호로록. 아! 아직 안 식었네요.”

카이는 50명의 암흑 기사들을 쓰러트린 것보다, 차가 아직 식지 않았다는 부분이 더욱 기뻤는지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여, 영주님.”

뒤늦게 정신을 차린 프레스콧이 카이를 불렀다.

“예, 프레스콧.”

“혹시 영주님은…… 유명한 검객이십니까?”

“음. 제법 유명하고, 제법 강한 편이지요.”

“아! 역시…… 강력하다고 소문난 베이스커 영지의 기사들을 쓰러트리시는 모습을 보며, 로열 나이트에 비견되는 존재가 아닐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로열 나이트.

라시온 국왕의 명령만을 절대적으로 듣는 왕실 수호 기사단을 의미했다.

무(武)에 재능이 있음은 물론, 국왕을 향한 충성심이 남달라야지만 입단할 수 있는 곳.

수호 기사단과 철혈 기사단이 로열 나이트에 속했다.

‘로열 나이트라…… 그러고 보니 바체도 한 번 찾아가야 하는데.’

철혈 기사단장인 바체는 언젠가 한 번, 대련을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지금쯤 한 번 도전해 보는 게 좋을지도.’

패배하게 되더라도, 분명히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카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붙어본 적이 없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크게 밀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 그렇게나…….”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영주의 모습에 프레스콧이 진한 감동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전전긍긍했던가.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프레스콧은 눈앞의 어린 영주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가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있자니, 카이가 말했다.

“자, 그럼 가시죠.”

“……어디를 말입니까?”

“새로 얻은 영지요. 구경 정도는 해야죠.”

“하, 하지만 그럼 아르칸 영지와 영주님의 저택을 내버려 두겠다는 소리입니까?”

“어차피 더 털어갈 것도 없는데요 뭘.”

“그래도…….”

병력도 없는 영지를 그대로 비우겠다니.

프레스콧이 당황한 목소리를 뱉어내자, 카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올 때가 되었는데…….”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환한 빛무리가 그들의 눈앞에 일어났다.

“오, 마침 잘 왔어요.”

“여어! 우리 영주님 아니신가!”

“호오, 듣던 대로 정말 다 쓰러져가는 영지 아닌가.”

“이 영지 전체를 교육 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껄껄껄. 그거 재미있는 작업이겠는데? 하나의 건물도 아니라, 도시를 건축하다니!”

그들의 정체는 바로 리버티아에서 파견된 수십의 드워프들.

특히 건축 부문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던 이들이었다.

인어 족의 마법으로 순식간에 텔레포트 해온 그들은 저마다의 장비를 꼬나쥐고는 거침없이 도시로 들어갔다.

“일단 이 구질구질한 성벽부터 보수하는 게 낫지 않나?”

“보수? 지금 보수라고 했나? 보기만 해도 시력이 떨어지는 것 같은 이 성벽을 보수하자고? 제정신인가?”

“그 말이 맞아. 그냥 다 때려 부수고 새로 만들세!”

순식간에 의견을 조율하고 행동하는 드워프들.

쿠구구궁.

카이는 조금씩 무너지는 성벽을 바라보며 프레스콧에게 말을 건넸다.

“자, 그럼 이제 가실까요?”

“예…….”

프레스콧이 멍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 * *

베이스커 영지는 생각보다 훨씬 세련된 분위기의 도시였다.

‘이 정도면 딱히 관리가 필요 없겠는데?’

도시를 둘러본 카이는 크게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영지의 등급은 B급.

전문 경영인을 영주 자리에 대리로 앉히기만 해도, 다달이 몇천만 원은 최소로 들어올 것이 분명한 도시였다.

‘물론 내가 작정하고 관리하면 몇억도 우습지 않게 들어올 것 같긴 한데…….’

그러자니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욱 많다.

무엇보다 자신은 경영보다는 전선에서 몬스터들과 싸우는 게 맞는 체질이기도 하고.

“괜찮네.”

자신의 영지에 내려진 짤막한 평가를 듣던 베이스커 남작이 울상을 지었다.

거리 곳곳에서는 영주가 바뀐다는 사실에 흥분한 주민들이 축제를 벌이는 중이었다.

“와아!”

“악덕 영주가 물러났다!”

“제발 신임 영주는 그 욕심 많은 영주가 올려놓은 세율을 조금이라도 낮춰주기를…….”

“예끼 이 사람아. 나는 다달이 세율을 올리지만 않아도 큰절을 올리겠네. 큰절을!”

“오늘 장사 접습니다! 맥주 무료 가즈아!”

“와아아아아아!”

그 모습에 카이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인기 많네?”

“저, 저것들이 감히…….”

모자를 푹 눌러쓴 베이스커 남작의 입에서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물론, 그가 표현할 수 있는 분노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제 내 영지민들인데, 너무 과도한 신경은 끄고.”

그 짤막한 경고에 베이스커 남작은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드래곤 피어에 영향을 받은 탓이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건설적인 얘기를 좀 해볼까?”

이제는 카이의 소유가 된 영주 저택에 도착한 카이는 입을 열었다.

“거, 건설적인…… 이야기라뇨?”

이미 영지전에서 패배하고, 영지까지 빼앗긴 마당 아닌가.

베이스커 남작이 원망 어린 눈빛으로 카이를 쳐다봤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먼저 욕심부린 건 그쪽이잖아.”

“크, 크흠.”

“내 나름대로 조사를 좀 해봤어.”

카이는 조금 전 우편함에서 수령한 서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미네르바가 보낸 것이었는데, 정보 길드로부터 건네받은 아주 따끈따끈한 서류였다.

“베이스커 남작. 베이스커 영지를 제외하고도 총 네 개의 영지가 더 있네. 맞지?”

“예…….”

“자, 어떡할래.”

“……?”

카이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베이스커 남작이 눈만 깜빡였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듯한 그 표정을 본 카이는 확실하게 입장 정리를 해주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해주자면, 넌 결국 귀족 작위를 박탈당해.”

“그, 그게 무슨……!”

베이스커 남작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에 카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앉아.”

“넵.”

반란을 빠르게 잠재운 카이는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를 뱉어냈다.

“뮬딘 교와 손을 잡은 건 어떻게 봐도 역모로밖에 생각이 안 돼.”

“그, 그런! 역모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베이스커 남작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씨알도 통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네 의사가 아니야. 네가 암흑 기사들을 부려왔다는 것과 뮬딘 교의 암살단장과도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지. 왕실에서는 이걸 무조건 역모죄로 엮을 거야.”

“하,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협박을 받는 통에…….”

“아하, 그래서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그러셨어?”

“바로 그겁니다. 전 정말 억울합니다.”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술술 뱉어내는 베이스커 남작.

카이는 피식 웃으며 서류를 넘겼다.

“뮬딘 교가 요즘 재정난에 시달리나 봐? 영지 세율을 달마다 올리고 말이야.”

“그, 그건…….”

“입에 바른 소리 집어치우고. 쉽게 쉽게 가자. 너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카이가 손가락을 두 개 펼쳤다.

“하나는 귀족 작위를 박탈당하고, 로열 나이트들에게 끌려가서 평생 햇빛 한 줌 안 들어오는 지하 감옥에 수감되는 것.”

“으윽…….”

그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린 베이스커 남작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른 하나는 귀족 작위를 박탈당하지만, 여태까지 꿍친 돈을 챙겨 능력껏 도망치는 것.”

“……어?”

카이의 제안에 베이스커 남작이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입술을 혀로 한 번 훑은 남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심이십니까?”

“응.”

“……하지만 태양교의 사제잖습니까.”

“뮬딘 교의 버리는 패까지 신경 쓸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아.”

뮬딘 교의 버리는 패.

현재 베이스커 남작의 위치를 상기시켜주는 것으로는 이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가 없었다.

“결정은 빨리하는 게 좋을 거야.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카이가 대답을 재촉하자, 베이스커 남작이 마음을 굳혔다.

‘그래. 어차피 귀족 작위가 박탈당한다면…… 지하 감옥에서 평생을 썩는 것보다는 도망자의 삶을 사는 게 낫지.’

게다가 베이스커 영지가 뺏긴 시점에서, 귀족 작위는 유명무실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소유한 다른 영지들은 뮬딘 교의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베이스커 남작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토로했다.

이야기를 듣던 카이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칠 정도로 일목요연한 설명이었다.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괜찮네. 수고했어.”

“그, 그럼 저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능력껏 잘 도망치고. 부디 잡히지 마라.”

“감사합니다. 귀인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귀인은 무슨.”

베이스커 남작은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는 영주의 저택을 나섰다.

그가 떠나는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는 시계를 확인했다.

“흐음. 대충 5분 정도 후에 잡으러 가면 되겠지.”

카이는 능력껏 도망치라고 했지, 잡으러 가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가 거짓말까지 입에 담으며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행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야 권선징악 보상을 받으려면 내 손으로 깔끔하게 귀족 작위 박탈시키는 게 편하니까.’

덤으로 뮬딘 교에 대한 정보까지 손에 얻었으니 일거양득!

“뮬딘 교 녀석들 때문에 제법 바빠지겠어.”

그로부터 정확히 5분이 흘렀을 때, 카이의 신형은 영주 저택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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