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
힐통령 254화
86장 검술의 달인(2)
띠링!
[권선징악 효과가 발동합니다.]
[부패한 영주의 작위를 박탈시켰습니다.]
[박탈시킨 영주의 작위는 ‘남작’입니다.]
[선행 스탯이 25 증가합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로 선행 스탯이 13만큼 추가 상승합니다.]
“으아아아아아! 이건 사기야! 사기라고!”
손목에 수갑을 찬 채, 로열 나이트들에게 연행당하는 베이커스 남작, 아니, 베이커스 ‘전’ 남작.
그를 힐긋 쳐다본 카이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는 아마 왕궁의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평생 빛을 못 보게 될 것이다.
‘그러게 누가 뮬딘 교 같은 애들이랑 손을 잡으래.’
어깨를 으쓱거린 카이는 눈앞의 보상 창에 집중했다.
‘권선징악 보상을 받는 건 간만이네.’
카이도 여태까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단 두 번밖에 받아보지 못한 보상이다.
이번이 겨우 세 번째라는 소리.
‘남작이 한 번, 자작이 한 번이었지.’
그리고 이번에 처치(?)한 베이스커도 남작이다.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린 카이는 라시온 왕실의 복도를 거닐면서 스탯 창을 확인했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416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140,900
신성력 : 315,200
능력치
힘 : 2,296 체력 : 1,461
지능 : 853 민첩 : 826
신성 : 3,204 위엄 : 773
선행 : 499
독 저항력 +30
마법 저항력 +40%
자연친화력 +200
신성력을 소모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 +50%
악마/언데드에게 주는 피해 +50%
“……와.”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감탄사.
그것은 비단 자신의 스탯이 높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카이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이번에 권선징악 효과로 상승된 선행 스탯은 38개.’
평소였다면 모든 스탯이 38개씩 상승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와, 이런 식으로도 목격자 칭호가 적용된다고?’
변수는 바로 목격자 칭호들이었다.
현재 카이는 다양한 목격자 칭호 덕분에, 스탯이 하나 오를 때마다 300%가 추가 상승된다.
그 말도 안 되는 효과는 선행 스탯에도 적용이 되었다.
‘즉, 평소였다면 모든 스탯이 38개씩 올랐어야 했는데, 152개씩 올랐다는 소리지.’
목격자 칭호와 태양의 사제가 지닌 선행 스탯.
개발자들도 미처 염두해 두지 못한 그 둘의 시너지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카이는 한 가지 의문점을 품었다.
‘만약 선행 스탯을 소모해서 스탯이 다운되는 상황이 온다면?’
과연 그때는 몇 개의 스탯이 사라질 것일지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카이가 입을 달짝였다.
“태양 분신.”
[태양 분신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선행 스탯 5개가 영구적으로 소모됩니다.]
[태양 분신의 레벨과 스탯은 시전자의 70%로 설정됩니다.]
[레벨 291, 카이(분신)가 소환되었습니다.]
카이와 똑같은 장비를 착용한 분신이 눈앞에 생성되었다.
고작 70%의 능력치를 지녔다지만,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랭커는 찜쪄먹을 수 있는 녀석이다.
‘자,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카이는 황급히 스탯 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스탯들의 수치를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모든 스탯이 5개씩 내려갔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카이는 안도와 동시에 희열을 느꼈다.
이제부터는 선행 스탯을 소모하는 스킬을 사용한다고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니까.
‘내가 여태까지 강림 스킬을 사용하기를 주저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어.’
바로 강림 스킬을 사용하려면 선행 스탯을 소모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선행 스탯을 소모하면 자연스럽게 모든 스탯이 하락하고, 그것은 스펙의 하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목격자 칭호를 얻은 이후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현재 선행 스탯을 얻을 때마다 상승하는 수치는 기존의 4배.’
한 마디로 강림 스킬 등을 통해 선행 스탯을 소모해도, 계산기를 두드리면 오히려 플러스다.
페가수스 사에서는 선행 스탯의 과도한 스탯 축적을 경계했을 터.
‘그래서 강림이나 태양 분신 같은 스킬들을 만들어 둔 거겠지.’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선행 스탯을 필수적으로 소모할 수밖에 없는 스킬들을 말이다.
하지만 카이는 목격자 칭호라는 돌파구를 통해 태양의 사제가 지닌 유일한 단점을 없애버렸다.
“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야.”
유일한 걱정거리가 사라진 카이는 개운한 기분으로 복도를 거닐며 어딘가로 향했다.
‘이왕 왕궁에 들린 김에, 만나는 편이 좋겠지.’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철혈 기사단의 연무장.
당연하지만 외부인인 그는 입구에서부터 제지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의 카이는 옛날과는 다른 위치에 서 있는 존재.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알버트 교황이 만들어준 태양교 교황의 직인이 찍혀진 패.
그것을 내미는 순간, 왕궁의 연무장조차 카이의 뒷마당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저기 있다.’
연무장을 둘러보던 카이는 벤치에 앉아 독서를 즐기는 흑발의 미남을 발견했다.
‘바체 댄 블랙.’
자신이 알고 있는 한, 미드 온라인에서 가장 검을 잘 쓰는 라시온 왕국의 철혈 기사단장.
카이가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낀 바체가 책을 덮고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군.”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극한까지 단련된 초인의 육체는 잔병을 치르지 않는다.”
“그건 부럽네요.”
가벼운 인사말이 오고 갔고, 바체의 두 눈에 흥미로움이 깃들었다.
“……많이 성장했군.”
“그만큼 시간이 흘렀으니까요.”
“그동안 흐른 시간의 열 배가 주어진다 해도, 나아가지 못하는 인간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바체가 연무장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다 나가.”
“예!”
그 어떤 의문조차 품지 않고, 명령에 복종하는 철혈 기사단원들.
평소 철혈 기사단 내부에서 바체가 지닌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눈빛 한 번 찌릿찌릿한데.’
항상 무표정한 얼굴에 공허한 눈빛을 고수하는 바체였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마치 재미있는 먹잇감을 바라보는 듯한 흉포한 사냥꾼의 눈빛.
침을 꿀꺽 삼킨 카이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해주신 약속, 기억하십니까?”
“물론. 그 날이 오기를 제법 고대하기도 했다. ……그 날이 오늘일 줄은 예상치 못했지만.”
뒷말을 조용히 중얼거리던 바체는 몸을 돌려 열 걸음을 나아갔다.
다시 몸을 돌렸을 때, 바체의 몸에서는 투기라 불릴만한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선택할 기회를 주지,”
바체가 말했다.
“하나는 내가 적당히 봐주면서 그대를 상대해주는 것. 이것만으로도 그대는 제법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뭡니까?”
카이는 첫 번째 제안에 관심도 없다는 듯, 두 번째 선택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바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뻔한 걸 묻는군.”
“그럼 두 번째로 부탁드립니다.”
“죽을 것이다.”
“괜찮아요.”
사양이나 근거 없는 자신감 따위가 아니었다.
어떤 치명적인 피해에도 한 번, 부활을 시켜주는 유니크 등급의 스킬.
불사의 의지가 있었기에 내릴 수 있는 과감한 선택이었다.
“무운을 빌지.”
말을 마친 바체는 자신의 검 손잡이 위에 손을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연무장의 공기가 뒤바뀌었다.
‘흐읍……!’
마치 주변의 공기가 자신의 정수리와 어깨를 짓누르는 느낌.
카이는 실제로 위에 무언가가 있나 싶어서 고개를 들어 확인까지 했다.
‘이게 왕국의 로열나이트, 철혈 기사단장의 위압감.’
카이의 몸 주변에 마법진들이 떠오르며 그의 신체를 강화시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그를 상대하면서 여유를 부리는 건 오만이다.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부족하면 부족했지 넘칠 일은 없을 테니까.
“갑니다.”
모든 버프를 몸에 두른 카이의 전신에서는 바체 못지않는 흉흉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이미 연무장 또한 솔라 필드의 영역으로 지정이 된 상태였다.
카이의 몸 상태는 그 어떤 때보다도 좋았다.
“와.”
바체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카이의 신형이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
꾸욱!
활처럼 유연하게 휜 허리를 튕긴 카이는 음속을 돌파하는 속도로 바체의 뒤를 점했다.
‘빠르게, 빠르게……!’
이미 카이의 손에는 백색의 검이 자리한 상태였다.
성검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하지만 조용히 공기를 절삭하며 바체의 목을 노렸다.
“쓸만한 움직임이다.”
스르릉.
바체의 검집에서 뽑혀 나온 롱소드는 카이의 성검을 부드럽게 흘려보냈다.
그 모습은 마치 사과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아주 당연하게 느껴졌다.
“하나 빠르기만 하다고 능사는 아니지.”
대련 와중에 내려지는 가르침.
카이는 첫 번째 공격이 실패하자 곧바로 미련을 버리고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속도로 안 된다면…….’
다음은 힘이다.
카이가 검을 쥐는 그립부터가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는 검을 최대한 빠르게 휘두를 수 있도록 가볍고 넓게 쥐었다.
하지만 지금은 팔의 힘을 그대로 쏟아부을 수 있도록 손잡이를 촘촘하게 강하게 붙잡았다.
그 사소한 차이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카이의 성검이 태산과도 같은 무게를 지닌 채 바체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까아앙!
전투 시작 이래 처음으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현재 카이의 힘 스탯은 각종 버프와 스페셜 칭호, 세트 효과로 인해 3천에 다다른다.
아무리 바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소리다.
“힘은 나쁘지 않군.”
“아직 놀라기는 이릅니다.”
카이는 거기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중력장.”
우우웅.
카이는 자신의 롱소드에 가해지는 중력을 조작했다.
그가 높인 중력의 배수는 무려 세 배.
스킬을 한 번 사용하는데 6,000이라는 마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으음.”
그 효과는 대단했다.
바체의 입에서 놀라움이 섞인 옅은 신음을 끌어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놀라운 기술이군. 하지만…….“
바체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부르르 떨리며 저항하던 카이의 검이 천천히 위로 밀려났다.
‘히, 힘에서 밀린다고? 중력을 세 배나 높였는데?’
예전에도 몇 번이나 보았지만, 바체는 상대방의 급소를 위주로 노리는 똑똑하고 스타일리쉬한 검법을 선호한다.
우직하게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모습을 본 적은 없기에, 당연히 힘은 자신이 우위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기 캐릭터가 있다니!’
심지어 카이는 중력장이라는 편법까지 사용해 힘의 우위를 차지하려고 했지만, 패배했다.
오른팔의 이두근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팔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안간힘을 썼지만, 바체가 검을 밀어내면 카이의 검은 속절없이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었다.
“힘에만 의존하는 자는 더 강대한 힘을 만났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말을 마친 바체의 손목이 순식간에 회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