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56화 (256/441)

# 256

힐통령 256화

86장 검술의 달인(4)

12일이라는 시간은 미드 온라인 내에서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어렵다는 말이다.

심지어 12일이라는 시간 동안 집중력을 날카롭게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카이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말았다.

“모험가라는 건 정말 신기하군.”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바체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 그대를 무시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지만…… 그대는 검술에 대한 재능도 부족하고, 골격은 빈말로도 검술을 연마하기에 좋은 형태가 아니다. 아,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군.”

“무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닌 거 확실합니까?!”

“말은 끝까지 들어라. 그런 애매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개성적인 검술을 보유했다는 것에 놀랐다는 말이니까. 그대보다 훨씬 재능이 뛰어난 이들도 쉽게 이룰 수 없는 것이 자신만의 검을 지니는 일이다.”

“으음…… 그렇다면 바체 님이 보기에 현재 제 검술 수준은 어떤가요.”

카이의 질문에 바체는 팔짱을 낀 손에 턱을 괴고,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군. 자신만의 검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히 대단한 일이지만, 검술 자체가 완성되지는 않았어. 그렇다는 건 나와 같은 ‘마스터’들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어디 가서 얕보일 정도의 실력은 아니다.”

그것은 상당히 애매한 평가였다.

하지만 카이는 제법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그가 물어본 것은 ‘검술 수준’에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만약 카이가 ‘제가 얼마만큼 강한가요?’라고 물었다면, 돌아오는 대답은 달라졌을 것이 분명했다.

‘내가 전력을 다한다면, 사용할 수 있는 건 검술뿐만이 아니니까.’

언데드 대군을 비롯해서 쿼드라플 캐스팅으로 쏘아내는 마법 폭격.

게다가 강림 스킬을 이용한 선대 사도의 현현까지!

카이의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패배하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정도였다.

‘12일간 제법 많은 것을 얻었어.’

이번 대련에서 얻은 것은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었다.

[고급 여명의 검법 LV.7]

바로 여명의 검법.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검법의 숙련도가 지난 12일 동안 무려 고급 7레벨까지 올라간 것이다.

스페셜 칭호인 ‘전설 기술 보유자’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

칭호 효과로 인해 모든 스킬의 성장 속도가 상승된 덕이 컸다.

“아. 그러고 보니…….”

문득 무엇이 생각났는지, 바체가 입을 열었다.

“검술 실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묻는 거지만, 혹시 로열 나이트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예?”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들어온 바체의 질문에 카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런 질문을 무슨 점심은 먹었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요?”

“미안하군.”

“사과하실 필요는 없고요…….”

이마를 짚은 카이는 바체의 제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로열 나이트라…….’

바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로열 나이트라는 집단이 지닌 명성과 상징성을 생각해 보면 이건 절대 가벼운 제안이 아니었다.

실제로 플레이어 중에는 로열 나이트는커녕 왕실 기사단에 입단한 이조차 없었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로열 나이트에서는 검술 실력만 보는 게 아니잖아요? 왕가에 대한 충성심을 엄청 세세하게 따지지 않습니까?”

“그 부분이라면 폐하께서 귀띔을 해주신 적이 있다. 최소한 뒤통수를 칠 녀석은 아니니 쓸 만해지면 받아도 좋다고 하시더군.”

“허.”

정말이지 쿨한 사람들이다.

물론 베오르크 국왕의 경우에는 ‘절대자의 시선’이라는 안전장치가 있기에 그럴 수 있겠지만.

대상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이 사기적인 스킬은, 이미 카이에게 몇 번이나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안심을 할 수 있는 건가.’

하긴, 베오르크 국왕에게 절대자의 시선이 있는 이상 배신의 성공률은 한없이 0에 가까울 수밖에.

띠링!

[로열 나이트 입단 제의를 받으셨습니다.]

[만약 당신이 로열 나이트의 일원이 된다면, 베오르크 국왕을 제외한 그 어떤 귀족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됩니다.]

[바체의 제안을 수락할 시, 스페셜 칭호 ‘로열 나이트’를 획득하게 됩니다.]

[로열 나이트들에게는 라시온 왕궁 공방에서 제작한 최고급의 무구와 집, 막대한 금화가 수여됩니다.]

하나같이 달콤한 제안들이다.

그러나 카이는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제안은 감사드리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로열 나이트는 기본적으로 국왕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고 그분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집단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다.”

“하지만 저는 모험가. 한곳에 묶이기보다는 이 넓은 대륙을 여행하며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습니다.”

NPC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할 때의 대답으로는 그야말로 100점.

모범 답안이나 다를 게 없었다.

실제로 바체는 자존심이 상한다기보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평생을 모험가로서 떠돌아다닌 자네가 라시온 왕궁에만 묶여 있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겠군. 그대의 선택을 존중하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카이는 진심으로 바체의 배려에 감사했다.

제안을 거절했을 때, 잘하면 호감도 하락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로열 나이트가 지닌 상징성을 생각하면 거절할 때의 리스크도 없을 수는 없으니까.’

말 그대로 바체의 넓은 이해심과 배려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심지어 바체는 거기서 한술 더 떴다.

“아, 그리고 피곤할 텐데 저쪽의 욕탕을 이용해도 좋다.”

감동을 받은 카이가 바체의 안내를 받아 욕탕에 들어간 사이, 왕궁이 떠들썩해졌다.

***

“그 얼음 덩어리가 모험가에게 입단 제안을 했다고?”

“예, 욕탕에서 두 사람이 그에 대한 대화를 나눈 것은 이미 궁 내부에 퍼진 상태입니다.”

왕궁에는 비밀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왕궁에서 나누는 대화는 누군가의 귀에 반드시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바체와 카이가 나눈 대화는 빠르게 궁 내부로 퍼져 나갔다.

“모험가 주제에 로열 나이트라니?”

로열 나이트 수호 기사단.

그곳의 단장인 파발은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제 부하를 쳐다보았다.

“그래. 그 모험가는 뭘 하는 놈이지?”

“아마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카이라고 하는 모험가입니다.”

“카이? 카이, 카이라…… 아아아! 혹시 지난번에 그 아오사를 처치했다는 모험가 아닌가? 비르 평야에서 뮬딘 교와 싸우고 폐하께 포상을 받은 녀석.”

“맞습니다.”

“헌데 녀석의 실력이 로열 나이트에 입단할 정도라고? 그런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데?”

파발의 눈빛이 날카로워지자, 수하가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긴, 그 얼음 덩어리가 재수는 없어도 일 처리에 사적인 감정을 집어넣지는 않으니까.”

파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산처럼 쌓인 서류더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흥. 철혈 단장 덕분에 로열 나이트의 질이 나날이 떨어지는군. 하다하다 로열 나이트에 모험가 단원마저 생기는 건가.”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카이는 철혈 단장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들었으니까요.”

멈칫.

서류철을 향해 나아가던 파발의 손이 덜컥 정지했다.

단번에 인상을 구긴 그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카, 카이는 철혈단장의 입단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로열 나이트의 일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설마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로열 나이트의 일원이 될 기회를 걷어찼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 대답에 파발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놈 참 웃기는 놈이로군. 그런데…… 너무 건방진 것 아닌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로열 나이트는 라시온 왕국의 모든 기사들이 들어가기를 꿈꾸는 기사 집단이었다.

심지어 라시온 왕국의 기사 수준이 3왕국 중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 데에는 로열 나이트의 존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그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갔다.

“그 녀석이 로열 나이트에 들어오는 것은 이쪽에서 사양이다. 하지만 거절을 하더라도 이쪽에서 해야 하는 법. 감히 모험가 따위가 로열 나이트의 일원이 되는 것을 거절해……?”

로열 나이트는 최고, 최강의 집단이다.

헌데 일개 모험가 따위가 이곳에 들어오는 것을 거절하다니.

로열 나이트의 명성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철혈, 그 고아 녀석 때문에 별 개같은 일이 생기는군. 지금 당장 준비해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파발은 외투를 챙겼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오히려 잘 되었어. 만차를 불러와라. 그 모험가 녀석을 테스트하겠다.”

“철혈 쪽 애들과 크게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내 말 못 들었나? 단순한 테스트일 뿐이야. 애초에 모험가를 로열 나이트에 받는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만약 내가 간단한 검증을 하겠다는데 철혈 쪽에서 반대한다면, 카이라는 놈의 자질을 의심하면서 물고 늘어지면 돼.”

생각해 보니 정말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라는 녀석을 흠씬 두들겨 패서 로열 나이트에 입단할 자격이 없음을 증명도 하고.

바체 녀석의 눈이 옹이구멍임을 증명할 수도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였으니까.

***

“가르침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뭘 인사까지. 그대는 가르치는 재미가 있는 편이기에 나도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바체는 담담한 음성으로 답했지만, 카이는 그 목소리에 담긴 아쉬움을 읽어낼 수 있었다.

‘12일.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 감정을 읽어낼 정도로 친해진 건가.’

고개를 숙인 카이는 바체에게 보이지 않게끔, 어렴풋이 미소를 지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미소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지?”

“타락의 성지라는 곳으로 갈 생각입니다. 지르칸을 처치했을 때 알게 된 장소이지요.”

“이름만 들어도 불길한 장소로군.”

“모험할 맛이 날 것 같습니다.”

“못 말리겠군.”

희미하게 웃어 보인 바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카이를 배웅했다.

그때였다.

일련의 무리가 제법 흉흉한 기세로 두 사람에게 다가온 것은.

“저들이 왜…….”

조그맣게 중얼거린 바체는 카이의 앞을 막아서며 다가오는 무리를 멈춰 세웠다.

“동쪽을 지켜야 할 수호 기사단이 서쪽 구역에는 무슨 일이지?”

그 질문에 답을 한 것은 무리의 가장 앞에 위치해 있던 대머리의 거구 사내였다.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힘겹게 참아 넘긴 듯한 목소리를 뱉어냈다.

“비켜라, 철혈. 오늘은 네놈에게 용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뒤의 모험가에게 있으니까.”

“그는 나의 손님이니 나의 일이기도 하다. 이해를 못 한 것 같으니 다시 묻겠다. 무슨 일이지?”

그 질문에 대머리 거구의 강렬한 눈빛이 바체를 노려봤다.

바체 또한 이에 지지 않고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누가 보면 싸움이라도 걸러온 줄 알겠군. 난 단순히 저 모험가의 자질을 테스트하고 싶을 뿐이다.”

“자네가 대체 무슨 권한으로 그를 시험하지?”

“안 될 게 어디 있나? 나는 로열 나이트의 수호 기사단장이다. 당연히 모험가를 로열 나이트에 받으려면 나의 동의도 있어야지.”

“웃기는 소리. 그가 로열 나이트의 일원이 되더라도 철혈 기사단에 배정될 것이다. 자네의 동의 따위는 필요 없어.”

“하지만 자네가 자질도 없는 이를 무분별하게 받으니 최근 로열 나이트의 수준이 떨어지네 마네 하는 말이 나도는 것 아닌가?”

한바탕 설전이 오갔다.

상황이 말로 해결될 것 같지 않자, 바체가 허리 부근의 검집을 툭 치며 말했다.

“나의 손님을 시험하고 싶다면, 나의 시험을 받은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큭, 그렇게 나오면 얌전히 물러갈 줄 알았나 보지?”

파발의 손도 어느새 등 뒤의 롱소드와 방패 쪽으로 옮겨지는 중이었다.

“잠시만요.”

바체의 등 뒤에서 걸어나온 카이가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괜찮습니다.”

바체를 안심시킨 카이가 파발의 앞으로 다가갔다.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이미 로열 나이트의 입단을 거절했습니다. 그쪽의 시험을 받을 이유는 하등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쪽? 허…….”

파발은 카이의 당돌함이 재미있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끅끅 웃었다.

“겁이 나서 도망치는 건가?”

“편하신 대로 생각하십시오.”

“큭. 그렇다면 나는 국왕 폐하께 그대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보고를 올려도 되겠군. 철혈 기사단장의 부족한 안목이 세상에 널리 퍼지겠어.”

원하는 것을 쟁취했다는 듯, 파발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잠깐, 멈추세요.”

카이의 목소리는 떠나가는 파발의 발목을 붙잡았다.

‘걸렸군.’

이에 미소를 지은 파발이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음. 그새 마음이라도 바뀐 건가?”

“예. 그까짓 실력 테스트. 받겠습니다.”

은인이나 다름없는 바체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결국 듣고 싶은 말을 끌어낸 파발은 호기롭게 웃었다.

“진작 이랬으면 얼마나 좋나. 그렇다면 자네가 상대할 기사는 내가 직접 지목해…….”

“아뇨, 어차피 받을 거라면 어중이떠중이와 붙고 싶지는 않습니다.”

카이의 입가에는 파발의 얼굴 위에 떠있는 그것과 똑같은.

아니, 오히려 더 만족스러워 보이는 미소가 떠올랐다.

“나와서 한 수 가르쳐 주시지요.”

“뭐? 내가 왜 그딴 일을…….”

“아, 혹시 겁이 나서 도망치시는 겁니까?”

히죽거리며 웃은 카이는 바체를 쳐다봤다.

그러자 단번에 상황을 파악한 바체는 태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국왕 폐하께 보고해야겠군. 수호 기사단장의 자질이 의심스럽다고.”

“이, 이 새끼들이 지금…….”

자신이 써먹었던 상황을 그대로 돌려받은 파발의 얼굴이 붉어졌다.

잘 구워놓은 문어처럼 새빨개진 두상!

“……오냐, 그렇게 원한다면 내가 직접 가르쳐 주도록 하지.”

철그렁.

등 뒤에서 한 자루의 롱소드와 방패를 꺼내 든 파발이 카이를 죽일 듯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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