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59화 (259/441)

# 259

힐통령 259화

87장 기묘한 파티(1)

띠링!

[선행이란 착하고 어진 행실을 의미합니다. 대상이 위기에 직면하지 않았더라 할지라도, 옳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를 바른 길로 이끄는 것 또한 선행의 일종입니다.]

[당신의 충고가 권력에 중독되어있던 파발의 정신을 일깨웠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이것은 라시온 왕국 차원에서도 커다란 축복이 될 것입니다.]

[파발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는 당신을 인생의 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들에게 과자를 적선받고 다니던 헬릭이 이 모습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짓습니다.]

[선행 스탯이 10만큼 상승했습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로 선행 스탯이 5만큼 추가 상승합니다.]

“이게 대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카이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뭐, 솔리드 때도 이런 식으로 건넨 충고가 그 사람 내면의 무언가를 바꾸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설마 파발이.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수호기사단장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바뀔 줄이야.

‘……나한테 그렇게 많이 쫄아 있으셨나?’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미안하기까지 했다.

카이는 짧게 기침하며 말했다.

“일어나세요.”

“아니, 선생이 나의 무례와 사과를 받아주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겠소.”

“……그러지 말고 일어나시라니까요.”

“나의 진심이 선생에게 닿…….”

“아, 눈 따가우니까 그냥 좀 일어나세요.”

“…….”

파발의 반짝이는 대머리는 태양빛을 그대로 카이의 얼굴로 반사시키는 중이었다.

결국 파발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딱히 담아두고 있는 건 없으니까 너무 그렇게 죄 지은 표정 안 지으셔도 돼요. 잘못한 걸 아셨으면 된 거니까.”

카이가 옆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이에 안색이 환해지는 파발.

“정말 고맙네. 그리고…….”

돌아간 파발의 시선 끝에는 바체가 서 있었다.

잠시 그와 눈을 마주치던 파발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마음가짐을 달리해도 저 얼음 덩어리가 단번에 좋아지지는 않는군.”

“누가 할 소리를.”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이었지만, 카이는 대화에서 희미한 정을 엿 볼 수 있었다.

‘싸우면서 정든다더니.’

훈훈한 분위기가 짙게 가라앉는 연무장 주변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갑자기 무슨 소란…… 헉!”

고개를 돌린 파발을 시작으로, 로열 나이트들이 일제히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잠깐, 그렇다는 건?’

아까 파발도 말했지만, 그들이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한 명뿐.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카이는 자신도 한 쪽 무릎을 꿇었다.

“…….”

시종과 대신들을 이끌고 연무장에 도달한 베오르크 국왕은 특유의 오만한 눈빛으로 기사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흐음. 오늘은 치고받고 싸우지 않았나보군.”

“커, 커험.”

“……흠.”

저지른 전적이 있던 파발과 바체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뱉어냈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마치자 베오르크 국왕이 짧게 손짓했다.

“그래서, 이 좁은 연무장에 이 나라의 모든 로열 나이트들이 모인 까닭은 뭐지?”

베오르크의 질문에 답한 것은 파발이었다.

국왕의 옆으로 쪼르르 달려간 파발은 마치 고자질을 하는 아이처럼, 조목조목 오늘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호오.”

파발이 말을 하는 내내 ‘절대자의 시선’을 사용하고 있던 베오르크 국왕.

그는 흥미가 동한 표정으로 카이의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모험가 카이는 고개를 들어라.”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고개를 든 카이와 눈을 마주친 베오르크.

그는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카이. 그대가 여태까지 본 국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며, 세운 공로가 깊다는 것은 나 베오르크 폰 라시온이 인정하는 바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많이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카이가 아는 베오르크 국왕은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한마디로 이렇게 말을 빙빙 돌려가면서 길게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뜻.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킁킁. 어디서 대단한 보상의 냄새가 난다.’

눈을 반짝거린 카이가 베오르크 국왕을 빤히 쳐다봤다.

마치 먹이를 물고 있는 어미새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

그 부담스러운 눈빛에도 굴하지 않고, 베오르크 국왕은 말을 이어나갔다.

“하여 그대에게 왕궁의 보고, 제 5구역까지의 열람을 허락한다. 그대가 원하는 물건에 한해서는 그 어떠한 조건도 없이 내줄 것을 약속하지.”

“폐, 폐하!”

“제5구역까지는 너무 과하옵니다!”

“그곳에 있는 물건들이 지닌 상징성을 생각해 보면…….”

당장 대신들의 반발이 쏟아졌다.

“상징성?”

인상을 찌푸린 베오르크 국왕이 곧장 몸을 돌려 그들을 쳐다보았다.

대번에 입을 꾹 다무는 대신들.

국왕은 고개만 숙이고 있는 그들에게 호통 쳤다.

“그대들 중 관직을 올라선 시간이 가장 짧은 이가 파츠슨 백작, 자네 아닌가?”

“마, 맞습니다. 7년입니다. 폐하.”

“그렇군. 그럼 묻지. 자네들 중에서 지난 7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짐의 검을 날카롭게 갈아주었던 이가 있던가?”

“…….”

“스스로 부끄러운 줄을 알거라.”

파발이 지닌 권력과, 그의 무력이 무서워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쓴소리를 하지 못한 대신들.

그런 그들에게 내리는 국왕의 따끔한 호통이었다.

할 말이 없어진 대신들은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조용하니 좋군.”

카이는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한 국왕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국왕 폐하의 성은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5구역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그곳에 가고 싶어 공적치를 모으고 있었건만!

‘지난번에 힘 상승의 영약을 받았던 건 분명…….’

제3구역이었다.

그곳에서도 간간히 유니크 등급의 장비를 볼 수는 있었다.

‘물론 대부분 결함이 있는 제품들이었지만.’

때문에 그때 카이가 고른 것은 힘 상승의 영약.

당시 힘이 고작 10포인트 올라서 속이 제법 쓰렸기에 아직까지 선명히 기억났다.

“나야말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파발과 바체. 두 기사 모두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나의 충신들이다. 특히 파발의 경우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 시절 보여줬던 총명함과 공명정대함이 사라져 제법 걱정이었거늘.”

“폐, 폐하아아! 저를 그렇게까지……!”

파발의 눈매에는 금방이라도 뚝뚝 흘러내릴 것 같은 굵은 물방울이 아롱아롱 새겨졌다.

다 큰 어른이 그러면 징그러울 만도 하건만, 베오르크 국왕은 귀여운 강아지라도 바라보는 눈빛으로 파발을 쳐다봤다.

“짐의 나라, 짐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혔다면, 주인 된 도리로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들을 이끄는 군주의 덕목이라, 짐은 배웠다.”

‘확실히…….’

베오르크는 군주의 자질이 차고 넘치는 남자였다.

그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얻은 것은 많은 유익한 시간이었다.

‘5구역이라.’

카이는 곧장 왕궁의 보고로 안내되었다.

한 번 와봤기에 큰 감흥은 없었다.

하나 그건 보고의 내부에서 3개의 문을 지나쳐, 네 번째 방에 들어섰을 때까지만이었다.

“이곳이 왕궁의 제 4구역.”

하나같이 반짝이는 명품들만이 시야로 들어왔다.

최소 유니크 등급의 장비들.

여기 있는 물건 중 아무거나 대충 집어서 나가더라도 1억 이상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지.’

눈호강도 거기까지.

카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섯 번째 방으로 향하는 문앞에 섰다.

쿠구구구궁.

천천히 열리는 다섯 번째 방.

라시온 왕국의 모든 보물이 모인 보고.

그 중에서도 국보급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물건만을 담아놓는 장소.

그것이 바로 ‘제5구역’이 의미하는 바였다.

“오오! 오오……?”

휘황찬란한 5구역을 돌아보는 것도 잠시, 카이가 바람 빠진 목소리를 뱉어냈다.

‘이게 다야?’

소문이 무성한 라시온 왕국의 제 5구역은 생각보다 조촐해보였다.

왜냐하면 방 안에 있는 물건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3개 밖에 안 보였으니까.

‘아니, 이런 곳에서 물건의 갯수에 연연하는 게 이상한건가.’

카이는 세 개의 물건을 차례대로 살펴봤다.

그것들은 각각 스킬북과 목걸이, 검이었다.

“……세 개 다 미쳤네.”

세 개의 물건 모두 단연 최상급.

등급은 당연한 소리지만 레전더리였다.

과연 국보급이라 불릴만한 능력치를 지닌 물건들이다.

‘아직 레전더리 등급의 검이 세상에 풀려난 적은 없었지?’

밖에 나가서 팔기만 해도 족히 수십억은 챙길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카이는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주저 없이 스킬북을 들어올렸다.

“그중에서도 얘는 진짜 제대로 미쳤네.”

밝은 황금빛을 뿜어내는 한 권의 스킬북.

카이가 제5구역에서 가져가기로 마음먹은 물건의 정체였다.

***

“흐흐흥.”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카이의 기분이 유독 좋아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전력이 기존의 20%…… 아니, 상황에 따라서는 30%까지 끌어올렸다고 봐도 되나?’

현재 그의 레벨과 능력치를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전력 강화였다.

원래 저레벨 때는 레벨도 빨리 오르고, 장비도 자주 바꿔주기에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플레이어에게는 어느 순간 다가온다.

레벨이 느리게 올라가서 장비도 자주 바꿀 수 없고, 성장도 정체되는 날이.

‘뭐, 나는 느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보통은 300레벨 전후로 그러한 증상을 느껴야 정상이었다.

스펙이 나날이 높아져만 가는 카이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지만.

“후우, 이 근처인 것 같은데…….”

현재 카이는 거대한 숲 속에 위치해있었다.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의 레벨은 50레벨부터 450레벨까지 매우 다양했다.

사냥감의 레벨이 몇인가, 잡기에는 수월한가, 개체가 많은가.

랭커들이 사냥감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여기고, 고려하는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현재 카이가 위치한 숲은 사냥터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단 하나.

‘이곳이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이타카 밀림인가.’

통칭 검은 숲이라 불리는, 사람의 손길을 거부한 야생의 숲.

4대 마경 중 하나로 불리는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우드드득.

하지만 본디 사람이란 월급을 받으면 돈을 쓰고 싶고, 새로운 스킬을 배우면 사용해 보고 싶은 법.

카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후후.”

펄럭.

인벤토리에서 꺼내든 지도 한 장이 펄럭이며 그 자태를 드러냈다.

‘타락의 성지라.’

지르칸이 죽으면서 남긴 던전의 지도!

“킁킁.”

던전의 이름에서부터 강력한 몬스터들이 들끓을 것 같은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자, 그리고 이곳이!”

대망의 던전 입구.

숨겨진 던전의 입구는 지도에 명시된 암호를 모르면 위치조차 드러나지 않는 장소였다.

쿠구구구구궁.

이타카 밀림의 흑목들이 갈라지며 거대한 입구가 땅에서 솟아났다.

거침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카이.

하나, 그의 몸은 강력한 반발력에 튕겨져 나왔다.

이어서 그의 눈앞으로 떠오르는 황당한 메시지.

띠링!

[입장 제한이 걸려 있는 던전입니다.]

[최소 5인 이상의 플레이어가 입장해야 합니다.]

[현재 파티의 멤버는 1명입니다.]

[던전 입장에 실패했습니다.]

“……뭐야 이거.”

카이의 눈동자가 클럽에서 입구컷을 당한 사람마냥 세차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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