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62화 (262/441)

# 262

힐통령 262화

88장 타락의 성지(1)

미드 온라인이 출시된 뒤로, 몇몇 방구석 폐인들은 번듯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물론 ‘몇몇’ 방구석 폐인들만이 가질 수 있게 된 이 직업명은 다름 아닌 랭커.

게임에서 몬스터를 잡고 부와 명예도 함께 얻을 수 있는 꿈만 같은 직업이 생겨난 것이다.

실제로 랭커가 되어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들은 수백 명이 넘었다.

하지만 미드 온라인이 발굴한 스타는 플레이어뿐만이 아니었다.

마이클 레이놀드.

게임 속의 영상을 자신의 입맛대로 수정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편집의 마술사.

그의 손에서 빚어진 개성 넘치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호평일색이었다.

당연히 몸값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고, 카이가 영상 편집을 의뢰할 때만해도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마이클 레이놀드.”

“엉?”

카이의 말에 발터가 고개를 휙 돌렸다.

“마이클 레이놀드라고. 저 남자.”

“잠깐만, 그 이름은…… 설마 편집의 마술사?”

“어.”

마이클 레이놀드의 메일함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개의 메일이 오는 중일 터.

그만큼 그의 편집 실력을 원하는 플레이어들은 많았다.

비록 자신의 실력이 별로라고 하더라도, 마이클의 손을 거치면 그럴듯한 영상이 나왔으니까.

“그럼 혹시……?”

“이번 예능의 영상 편집은 마이클이 전부 맡을 거야.”

“대박!”

발터는 흘러넘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만큼 편집의 마술사, 그 이름이 주는 신뢰감은 압도적이었으니까.

“야야, 나도 이 기회에 좀 친해지자. 저 사람 성격은 좀 어때?”

“음…….”

카이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NET미디어와 비르 평야 전투에 대한 영상을 두고 계약할 때.

연출에 대한 부분은 마이클 레이놀드가 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약속을 받아냈었다.

‘그때 몇 번 만났었지.’

마이클은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가 현장에서 입을 꾹 다문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면, 누구도 쉽게 말을 걸 수 없었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 카이가 입을 열었다.

“성격은 조금 까다로워. 그리고 엄청 과묵해. 그가 입을 여는 건 나도 몇 번 못 봤어.”

“응? 그런 것치고는 아까 엄청 반가워하던데?”

“……그러게.”

어떤 의미로는 유하린보다도 신비스러운 남자.

마이클 레이놀드는 카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에 카이는 정중하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

“보고싶었다고! 브로!”

하지만 돌아온 것은 마이클의 오른손이 아니었다.

와락-!

카이를 꽉 껴안은 마이클은 잠시 후 그를 놓아주더니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냈다.

“아무 말이나 좀 해봐, 브로, 응응?”

“마, 마이클 씨? 일단 좀 진정하세요. 왜 이렇게 흥분했습니까?”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드디어 브로랑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콧김을 씩씩 내뱉은 마이클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물론 카이는 그런 그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대화는 만났을 때 몇 번이나 나눠봤잖습니까.”

“지저스, 대화라고? 그게 대화라고?”

마이클이 질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어서 그는 순수한 눈빛으로 카이를 쳐다보았다.

“브로 영어 개 못하잖아.”

“…….”

“말이 나왔으니 하는 소리인데, 내가 편집 작업할 때 당사자의 생각을 듣고 싶었던 의뢰인은 브로가 처음이었거든? 아 그러면 뭐하냐고. 애써 물어봐도 구글 번역기에 넣은 것 같은 문장 몇 개만 달랑 보내는데.”

“크, 크흠.”

카이는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문장이 맞았으니까.

유하린과 설은영은 못 들은 척하며 고개를 슬며시 돌렸고, 발터만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큭, 크하하하! 그래. 네가 유독 영어가 약하기는 했지. 저놈이 수시로 한국대학교에 진학하다니. 그야말로 주입식 교육 시스템의 적폐가 따로 없다니까?”

“시끄러워.”

발끈한 음성으로 대꾸한 카이는 마이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 자리 잡은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니 악의는 없는 모양이다.

‘천재 중에는 괴짜가 많다더니.‘

하긴, 제 2의 스티븐 스필버그라고까지 불리는 천재적인 예술가다.

일반적인 범주로 묶는 게 도리어 이상한 거겠지.

“생각보다 말이 많으셔서 놀랐습니다.”

“말 편하게 해 브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는지 알아?”

“그게 편하다면 뭐. 그럼 그동안 날 만났을 때 인상을 찌푸린 이유가…….”

“답답해서 그랬어, 답답해서!”

마이클은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제 가슴을 쿵쿵 때리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후우, 다행히 미드 온라인에서는 실시간 번역이 되니까 답답할 일이 없지. 슈퍼 컴퓨터 만세다.”

“그런데 마이클…… 아, 게임에서는 뭐라고 부르지?”

“닉네임도 마이클이야.”

“좋아, 마이클. 지금 레벨이 몇이야?”

마이클 레이놀드는 몇 년치 일감이 밀렸다고 알려진 아주 바쁜 인물이었다.

당연히 게임 캐릭터를 육성할 시간도 없었을 터.

하나 지금 마이클이 입고 있는 장비들은 절대 초보자의 것이 아니었다.

“응? 나 레벨 177이야.”

“생각보다 높네. 게임할 시간은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에이, 브로.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돈만 주면 200레벨까지 버스를 태워주는 랭커 파티가 득실거린다고. 물론 돈이 좀 많이 들기는 하지만.”

버스 파티라.

카이는 별 게 다있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직업은?”

“궁수.”

“괜찮네. 어차피 궁수 포지션은 후방이니 나와 비슷한 위치에서…….”

게임 초보자인 마이클에게 속성 강의를 마친 카이는 자리에 모인 이들을 파티에 초대했다.

[‘발터’님이 파티에 참가했습니다.]

[‘유하린’님이 파티에 참가했습니다.]

[‘설은영’님이 파티에 참가했습니다.]

[‘마이클’님이 파티에 참가했습니다.]

‘이로써 다섯 명.’

카이는 곧장 인벤토리에서 던전의 지도를 꺼냈다.

“아, 잠시만!”

카이가 암호를 풀려는 순간, 마이클이 그를 제지했다.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내자 마이클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기전에, 뭐 좀 물어봐도 될까?”

“얼마든지.”

“내가 아는 언노운의 성격은 철두철미하고, 의심이 많아. 아니라고 하지는 마. 너의 영상을 백 시간 넘게 편집한 게 다름 아닌 나니까. 어떻게 보면 너 자신보다 내가 널 더 잘 알 수도 있어.”

“……계속해 봐.”

“이번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예능이라고 들었어. 이 제안을 거절할 수도 있었을 텐데, 수락한 이유가 뭐지?”

합류 이후 항상 사람 좋게 웃고만 있던 마이클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작업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선 프로라 이건가.’

그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든 카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지금 내 정보가 유출될까 봐 걱정해 주는 거야?”

“맞아. 너에 대한 영상이 하나 공개될 때마다, 랭커들은 널 분석해. 그건 고독한 절대자의 입장에서는 절대 달갑지 않을 텐데, 이 촬영 제안을 수락한 이유가 뭐야?”

“난 또 뭐라고. 그건 걱정 안해도 돼.”

그의 말처럼 분명 자신에 대해 꽁꽁 감추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신화 직업을 소유했다 해도, 자신은 약자인 솔로 플레이어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그가 솔로 플레이어인 것에는 변함이 없으나, 아주 커다란 것이 바뀌었다.

‘더 이상 약하지 않으니까.‘

카이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었다.

세 개의 성물을 모두 모아 사도들의 영혼을 언제든지 불러올 수 있게 되었고, 여태까지 쌓아 올린 선행 스탯으로 인해 본인 레벨을 아득히 넘어서는 스탯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뿐만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신들의 연회를 통해 스페셜 칭호를 무더기로 획득하기까지 했으니까.

심지어 여명의 검법 스킬 레벨은 고급 7레벨로 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때문에 카이는 확신했다.

‘이제 드러내도 돼.’

꽁꽁 숨겨왔던 자신의 발톱이 세상에 드러나도 된다고.

‘어중간하게 강력한 힘은 견제의 대상이지.’

하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힘은 숭배나 동경, 혹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카이의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마주한 마이클이 어깨 위에 올려놨던 손을 치웠다.

“눈빛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한 것 같네.”

“그럼 이제 입장해도 될까.”

“부디.”

카이는 지도에 기록된 패턴대로 던전의 문을 열었다.

쿠구구구궁.

이타카 밀림의 거대한 늪지대가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그 위로 천천히 솟아오르는 거대한 던전의 입구.

“오오…… 지저스.”

마이클은 궁수의 탁월한 시력으로 그 장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지금 그가 보고있는 장면들은 나중에 영상을 편집할 때 귀중한 자료가 될 테니까.

“들어가지.”

카이가 던전의 입구에 손을 올리자, 며칠 전에 보았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입장 제한이 걸려있는 던전입니다.]

[최소 5인 이상의 플레이어가 입장해야 합니다.]

[현재 파티의 멤버는 5명입니다.]

[던전에 입장합니다.]

물론 출력된 메시지는 그 때와 달랐다.

카이를 포함한 파티원들은 어떠한 제지도 없이 던전으로 들어섰다.

쿠구궁.

다섯 사람이 던전에 들어오자, 입구가 그대로 닫혀 버렸다.

[던전-타락의 성지를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게임 시간으로 9일 동안 경험치 획득률과 아이템 드랍률이 30% 증가합니다.]

[370,418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15,200 명성을 획득했습니다.]

“흠. 개떡 같네.”

자연스럽게 탱커의 자리인 선두를 차지한 발터가 중얼거렸다.

던전의 최초 발견 보상을 획득한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다.

허나 문제는 다른 부분에 있었다.

“입구가 꽉 닫혀 버린 걸 보니, 섬멸형 던전인데?”

섬멸형 던전.

말 그대로, 던전의 모든 몬스터를 처치해야 출구가 열리는 던전을 의미했다.

과거 플레이어들이 가장 싫어하는 던전은 개미굴 형태의 던전이었다.

미로같이 꼬여있는 개미굴 던전은 단순히 몬스터를 죽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보스방을 찾아가는 것도 커다란 일이었으니까.

“이거…… 농담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개떡 같은 던전이잖아?”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플레이어들의 레벨은 점점 더 높아져갔으니까.

그에 따라, 그들을 맞이하는 던전도 더욱 더 진화했다.

당연히 플레이어들이 싫어하는 형태의 던전도 새롭게 바뀌었다.

“이 던전, 대체 조건이 몇 개나 걸려있는거야?”

“지저스! 플로어, 섬멸, 개미굴. 세 개나 있잖아?”

예전처럼 한 가지 조건만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최악의 조건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던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니까.

“흐음…….”

카이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입구 쪽에는 그리스 숫자로 1이라는 문양이 쓰여 있었다.

‘층을 나타내는 숫자가 있는걸보니 플로어 형식이야. 몇 층이나 될까?‘

일반적인 던전은 단일 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플로어 형식의 던전은 달랐다.

예전 카이가 방문했던 라이넬의 던전처럼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개미굴과 섬멸.’

그야말로 최악의 조합이었다.

개미굴 형태의 던전은 일반적인 던전보다 몬스터의 수가 훨씬 많다.

한데 거기에 섬멸이라는 조건까지 추가된다면?

‘결국, 이 층에 존재하는 몬스터를 다 잡아야 한다는 소리야.’

몬스터가 수백, 어쩌면 수 천 단위로 도사릴지도 모르는 장소가 던전이다.

발터가 골치 아프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우…… 아니, 카이야. 이거 어떻게 하냐?”

“뭘 어떻게 해.”

카이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공략해야지.”

사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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