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
힐통령 266화
89장 흡혈왕 데스몬드(2)
“크어어억!”
비틀비틀.
샤르단의 2미터 거구는 마치 춤이라도 추듯 비틀거리며 뒤쪽으로 밀려나갔다.
그리고 녀석의 가슴 부근에는 아담한 체구의 여인이 연인처럼 착 달라붙어 있었다.
하나 현재 두 사람은 애정 어린 춤 따위를 추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우드득.
샤르단의 심장에 박힌 유하린의 검이 90도 정도 돌아갔다.
동시에 샤르단의 입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크하악!”
그들은 서로의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인간 따위가!”
샤르단이 노성을 터트리며 팔을 휘둘렀다.
손목이 잘렸기 때문에 공격 자체가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유하린을 떼어내는데에는 충분했다.
“크으, 크으으…….”
샤르단이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이어서 그의 손목에서는 부글부글 기포가 끓어오르더니, 멀쩡한 손이 튀어나왔다.
‘손을 재생하니 체력이 깎였다.’
체력을 제물로 바쳐 두 개의 손을 다시 재생시킨 샤르단.
그는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유하린과 카이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먹잇감이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하린 씨, 저 녀석의 손톱을 조심하세요. 맹독이 묻어 있으니까.”
“재미있어…… 정말 재미있어.”
“곧 죽을게 분명한 이 상황이 재미있다니, 취향 참 독특하네.”
“죽어? 지금 이 몸에게 하는 말이냐?”
샤르단이 낮게 웃었다.
저 인간은 대체 뭘 믿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래, 손톱에 묻어 있는 독. 그것을 알아낸 눈썰미 하나는 인정해 주지.’
게다가 눈앞의 모험가들은 자신이 보아왔던 그 어떤 기사들보다도 빠르고, 강했다.
‘하지만 딱 그 정도 수준이지.’
샤르단이 독특한 호흡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흡흡, 하아…… 하아…….”
동시에 녀석의 얼굴이 순식간에 고통으로 물들었다.
홱!
멀쩡하던 샤르단의 몸이 기괴하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쩍 벌어진 녀석의 입에서는 신음과 침이 계속해서 뚝뚝 떨어져내렸다.
고통스러운 듯 눈을 까뒤집고 팔과 다리, 몸을 베베 꼬는 샤르단.
“……뭐하는 거지?”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낀 카이가 유하린에게 소리쳤다.
“하린 씨!”
끄덕끄덕!
그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유하린이 다시 한 번 가속했다.
카이의 움직임이 군더더기 없는 초고가의 스포츠카라면, 유하린은 초고가의 세단 같았다.
빠르기도 빠르기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부드럽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음에도 빠르다는 생각보다는 몸이 유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저 유연함 속에는 강함이 감춰져있지.’
카이의 버프를 받은 유하린은 평소보다도 훨씬 좋은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읍!”
유하린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아주 예리한 각도를 품은채 날아갔다.
불과 몇 초 전 샤르단의 심장을 꿰뚫었던 것과 똑같은 공격.
하지만 결과는 판이했다.
키잉!
가죽이 아닌 단단한 쇳덩어리라도 찌른 것 같은 소리.
공격에 실패한 유하린은 약간이나마 당황했다.
그녀의 검은 목적지를 망각한 범선처럼 허공이라는 바다에 표류했다.
“키키킥.”
그러자 허리를 둥글게 말고 굽은 자세를 취하고 있던 샤르단이 킥킥 웃었다.
프스스, 푸우욱.
강철처럼 단단한 샤르단의 등이 그대로 갈라지며 피부보다 더욱 단단한 뼈 칼날이 튀어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푸욱, 푸욱.
샤르단의 팔과 다리, 심지어는 무릎에서도 날카로운 뼈가 튀어나왔다.
심지어는 이마까지 갈라졌고, 그곳에서 나온 건 단단하고 뾰족한 뿔이었다.
“……변신?”
유하린이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오사나 자탄과 같은 대형 레이드 몬스터들만이 한다고 알려진 변신을 소형, 그것도 인간형 몬스터가 처음으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후우.”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고, 어깨를 당당하게 펼친 샤르단이 나른한 목소리로 숨을 뱉어냈다.
녀석의 키는 1미터 정도가 더 자라 3미터 정도가 되었다.
하나 부담스러울 정도로 근육이 팽배하던 이전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오히려 이전보다 슬림해진 몸매.
“이 모습도 오랜만이군.”
샤르단의 목소리는 더 이상 경박하지 않았다.
구울들의 왕에 걸맞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무게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통달한 것 같은 눈을 하고선 카이와 유하린을 쳐다보았다.
“그대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감히 나에게 발톱을 드러낸 이상, 죽음만이 기다릴뿐.”
말을 마친 샤르단은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는 벼락처럼 쏘아지는 니킥.
무릎 끝에서 돋아난 날카로운 뼈는 유하린에게 송곳처럼 쇄도했다.
“하읏!”
유하린이 귀여운 비명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동물적인 반사신경이 저도 모르게 휘두른 것이었다.
까아아아앙-!
운 좋게도 검신에 막힌 니킥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유하린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반면 샤르단은 웃었다.
“계집, 제법 빠르구나.”
단 한 수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더 빠르고, 위력적이다.’
샤르단은 확신했다.
‘내가 더 강하다.’
확신을 가진 그는 좀 더 과감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개의 팔과 다리는 하나하나가 살인적인 무기가 되어 유하린에게 쏟아졌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흐릿해지는 잔상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카앙, 캉, 카아아앙!
이에 대항하는 유하린도 훌륭했다.
샤르단이 뻗어내는 날카롭고 빠른 공격을 무려 15회나 쳐냈으니까.
게다가 간간히 터져 나오는 날카로운 반격은 과연 랭킹 2위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흠. 이 정도인가.”
15번의 공격과, 15번의 방어.
그것이 오가는 동안 유하린에 대한 파악을 끝낸 샤르단이 중얼거렸다.
“이것이 지닌 실력의 전부인가?”
“…….”
유하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샤르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즐기지조차 못할 정도로 짧은 여흥이었다. 이제 그만 죽어라.”
휘익!
샤르단의 손바닥이 돌연 휙 튀어나왔다.
유하린이 황급히 검을 휘둘렀으나, 샤르단은 이를 무시하며 그녀의 검신을 꽉 잡았다.
파스스스스스슥.
샤르단의 손을 통해 뿜어져 나온 맹독이 유하린의 검을 빠르게 부식시켰다.
유하린이 휴식 시간마다 열심히 손질한 검은 불과 2초 만에 녹아내렸다.
“무기를 잃은 인간은 나약하지.”
샤르단이 웃었다.
“마치 벌레처럼 말이다.”
샤르단이 유하린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마치 벌칙 게임에서 패배한 연인에게 꿀밤이라도 때리듯, 아주 천천히.
하나 그 결과는 절대 일반적이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
허공을 격하고 날아든 강렬한 충격파가 유하린을 덮쳤다.
“꺄악!”
허공으로 붕 뜨는 유하린의 신형.
이를 묵묵히 쳐다보던 샤르단이 다시 한 번 니킥을 준비했다.
떨어지는 그녀의 배를 그대로 꿰뚫어 죽일 생각이었다.
‘저 계집은 아까 나의 심장을 한 번 뚫었었지. 넌 나의 무릎 장식으로 삼아주마.’
유하린이 들었다면 비명을 내질렀을 생각을 한 샤르단이 고개를 돌렸다.
‘침입자는 총 다섯 명. 그 중 나를 상대하는 두 명의 침입자가 가장 강하다.’
나머지 세 사람은 손가락 하나만 사용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결국 자신이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손목을 잘라버린 남자와 눈앞의 여자였다.
‘여자는 이번 공격으로 죽는다. 그렇다면 다음은 저기있는 남자…….’
생각을 이어가던 샤르단이 눈을 깜빡였다.
“음?”
분명히 조금 전까지 시야에 넣고 있던 남자가 유령처럼 사라진 탓이었다.
‘……내가 움직임을 놓쳤다고?’
그럴 리가.
자신은 구울들의 왕.
게다가 지금 자신은 모든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언데드, 구울이 되고 200년 동안 모아온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
그런 힘을 지니고 모험가 따위의 움직임을 놓치다니?
“말도 안되는…….”
“뭐가.”
귓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샤르단의 등줄기에 소름이 쫙 일어났다.
그가 무엇보다 경악한 것은, 상대의 기척을 감지조차 못했다는 것이었다.
“가, 감히!”
당황한 샤르단이 일갈을 내지르며 손을 뒤로 휘둘렀다.
사가아악-!
그의 손톱이 뿜어내는 강렬한 예기는 공터의 한쪽 벽 전체에 거대한 흔적을 남겼다.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게 만드는 광역 공격.
‘하지만…….’
손 끝에 적이 걸리는 감각이 없었다.
샤르단은 인상을 구기며 그대로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 꽉 쥐려고 했다.
“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샤르단이 저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경악했다.
“무, 무슨!”
손 끝에 적이 걸리는 감각이 없던 이유는 당연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손목 아래는 텅 비어 있었으니까.
‘어, 어느새?’
손목이 잘리는 순간조차 반응을 못했다니?
경악하는 샤르단의 귓가를 향해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하는건가?”
서둘러 고개를 돌린 샤르단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손가락이었다.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하나의 손가락.
그것은 정확히 샤르단의 이마에 돋아난 뿔을 강타했다.
파가가가각!
뿔을 그대로 부숴버리며 날아든 꿀밤이 샤르단의 이마를 강타했다.
***
[던전 1층의 보스, ‘샤르단’을 처치했습니다.]
[2층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습니다.]
[문의 위치가 지도에 표시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5개 획득했습니다.]
“후아!”
개운한 표정을 지은 카이가 몸을 가볍게 쭉쭉 늘리며 스트레칭했다.
아주 한바탕 제대로 날뛰었기 때문인지 기분은 굉장히 상쾌했다.
‘하린 씨와 둘이서만 호흡을 맞추는 건 처음인데, 괜찮네.’
카이의 꿀밤을 맞고 반쯤 실성한 샤르단을 상대하는건 쉬웠다.
정신을 차린 유하린도 여분의 검을 꺼내 전투에 참여했고, 두 사람의 현란한 태그 플레이에 샤르단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1층 공략이 끝났으니 잠시 휴식하죠.”
일행은 샤르단에게서 나온 아이템을 분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샤르단은 390레벨의 보스 몬스터치고는 뱉어낸 것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피부와 손톱, 끈질김이라는 유니크 등급의 스킬 북이 전부.
끈질김은 재생력을 대폭 높여주는 패시브 스킬이 기록된 책이었다.
“흠.”
스킬 북을 집어든 카이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스킬 북을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발터에게 던졌다.
“너 써라.”
“……응?”
저도 모르게 스킬 북을 받아든 발터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카이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네가 써.”
“아니…… 왜? 어째서?”
“왜냐니. 이 파티의 탱커는 너잖아? 끈질김은 수호 기사만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야.”
“그건 그렇지만…….”
무려 유니크 등급의 스킬 북이다.
게다가 스킬의 능력 또한 좋은 편이니, 최소 3천만 원은 호가할 것이다. 그런 물건을 단순히 스킬을 배울 수 있는 탱커라는 이유만으로 주다니?
‘길드원들이랑 던전을 공략할 때조차 이런 걸 받아본 기억은 없어.’
애초에 길드라는 건 서로의 이익을 위해 힘을 합치는 이익 집단이다.
물론 휘몰이 길드원들은 서로 친하고, 스스럼없기는 하다.
하나 결코 수천만 원짜리 스킬 북을 턱하니 줄 정도의 사이까지는 아니었다.
“빨리 배워. 탱커 무너지면 던전 공략 힘드니까.”
“그래도…….”
“나도 찬성이예요. 이번 전투, 탱커가 없었다면 힘들었으니까.”
끄덕끄덕.
설은영과 유하린의 동의까지 받아낸 발터는 떨리는 표정으로 스킬 북을 펼쳤다.
스킬을 성공적으로 습득한 그는, 천천히 눈을 뜨며 일행들을 돌아봤다.
“이 은혜는…… 진짜 팔이 부러져라 방패를 들어서라도 꼭 갚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치킨이나 한 번 사.”
“너는 돈도 많은 놈이…….”
발터는 괜히 투덜거리면서도 속으로 다짐했다.
‘그 치킨, 내가 열 마리고 백 마리고 사주마.’
자신을 챙겨주는 친구의 모습에 괜히 코 끝이 찡해진 발터가 주제를 돌렸다.
“나머지 재료들은 어떻게 하지? 아, 물론 나는 스킬 북 하나로 충분해요.”
“기여도에 맞게 분배해야지.”
카이의 말처럼 나머지 재료들은 기여도에 맞게 알아서 잘 분배했다.
“하린 씨, 검은 괜찮아요?”
끄덕끄덕.
유하린이 여분의 검을 흔들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질질 끌 것 없이 다음 층으로 가죠.”
다행히 원기 회복의 샘 옆에서 휴식을 취한 덕분에 일행의 상태는 최고조였다.
2층으로 향하는 문.
지도를 보고 문의 위치를 찾은 카이는 망설임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제법 긴 계단을 오르자 희미한 빛이 조금씩 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왔을 때, 카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브로, 갑자기 왜 그래? 계단에서는 뒷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길을 터줘야지.”
영문을 모르는 마이클은 카이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그와 마찬가지로 전방을 바라봤다.
“어……?”
마이클이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제 볼을 긁었다.
“음…… 있잖아, 브로. 내가 지금까지 편집한 동영상이 거의 천 개가 넘어가거든? 그런데 이런 종류의 던전은 처음 보는 것 같거든?”
“그럴 수밖에요.”
차분한 목소리의 설은영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전방을 쳐다봤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높디높은 천장.
그리고 일행을 환하게 비춰주는, 둥글고 푸른 달.
결정적으로, 그들의 눈앞에는 거대한 성채가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 이런 종류의 던전을 발견한 건 우리가 세계 최초일 테니까요.”
그녀의 말이 맞다는 듯, 곧이어 일행에게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새로운 타입의 던전을 발견하셨습니다.]
[발견된 던전의 타입은 ‘도시’입니다.]
[모든 도시 주민들을 처치하여 던전을 공략하십시오.]
“……내가 뭐랬어. 이 던전 개떡 같다고 했었잖아.”
발터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