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68화 (268/441)

# 268

힐통령 268화

89장 흡혈왕 데스몬드(4)

일행은 곧장 초원에 숨어 성채를 바라봤다.

“……오, 그 말이 맞네요.”

발터가 중얼거렸다.

설은영이 말했던대로, 성문을 열고 나온 뱀파이어 병사 몇 명이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봤던 뱀파이어는 의심이 많고 교활했어. 동시에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지.”

“달랑 세 마리가 나온 이유가 그것 때문일까요?”

“일반적인 몬스터랑 비교하지마. 뱀파이어 한 마리가 너와 나를 찢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으으…….”

질린 기색의 발터가 카이를 쳐다봤다.

“그래서, 이제 뭘 어떡할 건데?”

“저 녀석들을 짤라 먹어야지. 야금야금.”

“하지만 그것도 몇 번이지, 계속 통하지는 않을걸?”

“몇 번이면 충분해.”

“후우,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니까 믿는다.”

카이의 자신감에 고개를 내저은 발터가 말했다.

“유인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냉정하게 현재 상황을 파악해보면 항상 답은 나와. 지금만해도, 사실 저 녀석들이 찾는 건 우리가 아니야. 정찰용 매를 보낸 자 하나 뿐이지.”

“아아! 확실히. 놈들은 우리가 여러 명이라는걸 모르지?”

발터가 반색했다.

반면 마이클은 굽다 만 피자처럼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음…… 브로? 그 말은 나를 미끼로 사용하겠다는 거 아니야? 나 일단은 촬영 담당인데 말이지…….”

마이클이 슬며시 몸을 뺐다.

물론 이를 허락해줄 카이가 아니었다.

“마이클. 아무리 생각해도 이 프로그램, 예능으로 마무리 짓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아?”

“그건…… 으으…….”

어깨를 축 늘어트린 마이클은 반박하지 못했다.

확실히 타락의 성지는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을 찍는 장소로 치부될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마이클 스스로가 지닌 편집자, 감독으로써의 욕심도 크게 한 몫을 했다.

결국 마이클은 두 팔을 들어올리며 항복했다.

“후우, 좋아.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간단해. 밤의 귀족이라는 놈들에게 산책 좀 시켜주자고.”

카이가 낮게 웃었다.

***

“흠…… 흔적은 없는데.”

“하지만 누군가가 침입한 것은 분명해.”

“그렇겠지. 도시의 상공에 감히 독수리 같은 것이 날아다닐 리는 없으니까.”

“대체 어떤 간 큰 놈인지.”

세 명의 뱀파이어 병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수색을 계속해나갔다.

“데스몬드 님의 화를 피하기 위해선 무조건 찾아야해.”

“안 그래도 요즘 예민하신데…… 난 이런 일로 죽기 싫다.”

“죽긴 왜 죽어? 잡으면 되지.”

“흐음. 1층 녀석들을 교육한지 너무 오래 되었나? 감히 침입자를 올려보내다니. 빠져가지고.”

그들은 자신들이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않았다.

아무리 보초나 서는 하급 뱀파이어라고는 하나, 고귀한 뱀파이어라는 것에는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때였다.

쉬이이익악!

화살 하나가 바람을 가르며 가장 앞에 서있던 뱀파이어의 미간을 향해 쏘아졌다.

그를 단번에 죽이려고 생각한 듯, 정확하고 빠른 화살이었다.

우두둑!

물론 화살은 뱀파이어의 미간에 박히기도 전에, 그의 손아귀에 잡혀 두 동강이 났다.

뱀파이어들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놈 봐라?”

“가만히 숨어 있어도 모자랄 판에 선공을?”

“크큭. 설마 이 보잘것없는 화살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오히려 먹잇감의 위치를 파악한 뱀파이어들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휘익, 휘익!

바닥을 박찰 때마다 뒤쪽으로 빨려들어 가는 시야.

“찾았다.”

음흉하게 웃은 세 명의 뱀파이어들은 금세 궁수 한 명을 포위했다.

“이거, 침입자가 상상 이상으로 나약하군?”

“인간이 다 그렇지 뭘. 오히려 잘 되었어.”

“이 녀석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평화롭게 수다나 떨던 뱀파이어 병사들을 땀 흘리게 만든 죄인.

마이클은 침을 꿀꺽 삼키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연신 다른 쪽을 힐긋힐긋 쳐다봤다.

그는 좋은 감독이자 편집자였지만, 결코 좋은 배우가 되지는 못했다.

뱀파이어들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 때였다.

‘이토록 쉽게 겁에 질리는 녀석이 나에게 화살을 쐈다고? 그것도 세 명이 서있는 상황에서?’

‘……잠깐. 1층의 녀석들이 쓸모없기는 하지만, 이런 벌레가 올라가도록 두고 보지는 않을 텐데?’

‘복병! 복병이 있다!’

뱀파이어들의 송곳니가 길쭉하게 자라났고, 두 눈은 어둠 속에서 음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드드드드드.

“응?”

그들이 서있는 초원의 잔디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지진? 아니야. 이곳에 지진 따위가 날 리 없…….’

당황하는 뱀파이어가 황급히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우르르르!

그들이 서있던 땅이 무너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덥석!

땅에서 튀어나온 손이 뱀파이어 하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뭐, 뭣!”

“어서 오고.”

몸 전체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카이는 그대로 녀석을 땅 속으로 끌어당겼다.

“놔, 놔라!”

발목이 잡힌 뱀파이어가 당황하며 카이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카이의 2천이 넘어가는 카이의 힘 스탯이 이를 불허했다.

‘이, 인간 주제에 무슨 힘이……!’

라이벌인 늑대인간이 저절로 연상될 수준의 힘이라니!

뱀파이어의 저항은 무의미했고, 그는 볼썽사납게 땅 속에 쳐박혔다.

“크으으…… 감히!”

온몸이 흙더미에 파묻혀 더러워진 뱀파이어가 분노한 표정으로 카이를 노려봤다.

‘아니, 오히려 나쁘지 않을지도.’

녀석은 동료들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입을 쩍 벌리며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함정은 급조한 것이었는지 세 명의 뱀파이어와 인간 하나가 위치하기에는 좁았다.

그것이 이유였다.

‘오히려 잘 되었군.’

공간이 협소하다는 건, 상대와의 거리가 지척이라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뱀파이어는 코앞에 있는 인간에게 이빨을 박아 넣으려 했다.

허나, 인간을 향해 다가가는 시간은 영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뭐, 뭐냐. 내가 느려졌…… 다고?’

그건 비단 녀석에게만 펼쳐진 마법이 아니었다.

“크으으…….”

“이게 무슨 힘……!”

두 명의 동료들도 갑자기 무거워진 중력에 고통스러워했다.

무려 6배의 중력으로 펼쳐진 중력장!

스킬 한 번을 사용하는데 수중의 모든 마나가 소모됐지만, 카이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마나 릴리즈.”

마나 릴리즈.

자신 혹은 대상을 지정해 마나를 회복하는 사제의 기본 스킬이 사용되었다.

[1초당 100의 마나가 회복됩니다.]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하는 마나.

이 스킬의 유일한 단점은 높은 신성력 소모였지만 카이의 방대한 신성력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크으으……!”

카이가 힘겹게 검을 들어올렸다.

중력장을 대상이 아닌 일대에 적용시키면, 적아를 가리지 않고 적용되었으니까.

그건 시전자인 카이라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페널티였다.

콰드드득!

하지만 카이는 느릿느릿 검을 녀석의 벌려진 입으로 박아넣었다.

그 과정에서 카이의 이두와 삼두근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

쉬익, 쉬익.

뱀파이어는 비명을 내질렀지만, 타이어의 바람이라도 빠지는 듯한 소리만이 새어 나왔다.

이에 카이는 자연스럽게 손바닥을 뻗어 녀석의 얼굴을 꽉 쥐었다.

‘뭐, 뭘 하려는…….’

뱀파이어의 눈동자가 공포에 물든 채 데굴데굴 굴러갔다.

허나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시야를 차단한 손바닥 뿐.

그 상황에서 카이의 입술이 달짝였다.

“홀리 익스플로젼.”

위이이잉!

카이의 손바닥에서 생성된 네 개의 신성 마법진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이어서 성난 것처럼 토해내는 네 개의 신성 광선!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그 강렬한 빛에 초원이 대낮처럼 밝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선 곤란해. 아주 곤란하지.’

흑색 성채의 뱀파이어들이 그 빛을 목격하고 지원을 오는 건 카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카이는 일부러 함정을 설치했고, 상대를 땅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차례 빛이 번쩍였지만, 저 멀리의 성채에서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파스스스스스.

근거리에서 홀리 익스플로젼에 직격 당한 뱀파이어의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신성력만 해도 녀석들에게는 상극이다.

심지어 카이가 믿는 신은 태양신 헬릭.

어둠의 일족인 뱀파이어가 질색한다는 태양의 힘이 담긴 신성력은 놈들에게 독이나 다름없었다.

“이 불쾌한 냄새는 신성력…… 하지만 피부가 녹을 정도라면……?”

“태, 태양빛!”

두 명의 뱀파이어들은 자신의 동료가 당하는 순간 도망칠 생각을 품었다.

물론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어딜 가려고?”

이미 다른 일행들은 중력장의 범위 밖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확인한 뱀파이어가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망했군.”

***

뱀파이어 세 마리의 평균 레벨은 385.

하지만 시간은 밤이었고, 뱀파이어들은 보름달 아래에서 10%의 추가 보너스를 받았다.

결국 계산하자면 각각의 레벨이 550 정도가 된다는 뜻.

당연한 말이지만, 놈들을 처치했을 때 돌아오는 경험치 역시 덩달아 높아진다.

그 때문일까.

‘괜찮네.’

카이는 첫 사냥을 통해 두 개의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이로써 그의 레벨은 421.

아직 사용하지 않은 스탯도 25개나 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안 돼. 터무니없이 부족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뱀파이어들의 도시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었다.

레벨 몇 개를 올린다고 해결될 단순한 일이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카이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애초에 이 던전에 들어온 이유가 새로운 스킬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으니까.’

카이가 재촉했다.

“자자, 빠르게 파밍하고, 흔적 지우고 자리 떠납시다.”

“이걸 몇 번은 더 반복해야 될까?”

“글쎄. 적들도 바보는 아니니, 보내는 병력의 수는 점점 더 많아지겠지.”

“으으. 솔직히 중력장이 없으면 손도 못 댈 거 같은데.”

“걱정 마.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사용할 수 있으니까.”

딱히 시간제한이 있는 던전도 아니었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은 카이는 지도를 펼쳤다.

‘매복하기 좋은 장소가…….’

옆에서 함께 지도를 살펴보던 설은영이 몇몇 장소에 체크 표식을 남기고는 이를 공유했다.

“확인해 봐요. 매복하기 좋은 장소들을 간략하게 추려봤으니까.”

“……이게 간략한 거라고요?”

“장난 없는데?”

일행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그녀가 공유한 지도는 마치 전교 1등의 노트처럼 글자들이 빼곡히 들어서있었다.

매복하기 좋은 장소들이 표시되어 있었고, 그곳에서는 어떤 전술을 사용해야 하는지.

심지어 타이밍은 어떻게 잡고 적을 어떻게 유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석까지 꼼꼼히 달려 있었다.

‘과연 전장의 여왕. 빈틈이 없네.’

개인 기량은 카이나 유하린에 비해 모자랄지 몰라도.

전략, 전술을 세우는 데 있어 그녀를 따라갈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너무 깔끔하게 정리되어서 뭘 더 추가할 필요도 없겠네요. 이대로 진행합시다.”

카이의 칭찬에 설은영의 입가로 고혹적인 미소가 떠올랐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응? 잠깐만.”

마이클이 손을 들었다.

“시스터가 공유한 지도, 조금 이상하지 않아?”

“어디 가?”

모든 일행들이 지도를 펴고 이상한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은영이 기재한 주석 어디에도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이에 마이클이 당황했다.

“아, 아니 브로. 그리고 시스터들. 적들을 유인하는 부분이 굉장히 이상하지 않아?”

카이는 시선을 내려 설은영의 주석을 읽어내렸다.

‘원거리에서 적을 견제하여 유인.’

이미 궁수인 마이클을 통해 한 번 사용했던 방법이고, 현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이기도 했다.

“대체 어디가 이상한 건데?”

“그야…… 탱커인 발터 브로에게 원거리 견제 능력은 전무하잖아?”

“응.”

“그런데 어떻게 원거리에서 적을 유인해?”

마이클의 순수한 질문에 모두가 그를 빤히 쳐다봤다.

눈을 깜빡이던 마이클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자, 잠깐만. 아니지? 지금 나보고 저 성채 앞까지 가서 뱀파이어들한테 시비를 걸고, 협곡까지 죽어라 도망치라는 말은 아니지?”

“물론 아니지.”

“여, 역시 그렇지? 휴우.”

발터의 말에 마이클의 표정이 밝아졌다.

허나 발터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않아.”

“……응?”

“아니지 않아. 즉 네가 생각했던 게 맞다고. 미끼는 너야, 브로오.”

발터가 마이클의 말투를 흉내 내며 한쪽 눈을 찡그렸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효율적이기도 하죠.”

작전의 발안자인 설은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리고…… 시스터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을텐데요.”

커다란 눈을 도끼처럼 뜨고있는 설은영의 기세에 눌린 마이클이 몸을 움찔했다.

그 순간, 남자의 손 하나가 그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마이클.”

카이의 손이었다.

마이클은 자신을 위로하는 카이의 행동에 감동을 느끼며 눈시울을 붉혔다.

‘비즈니스를 통해 만난 사이지만, 브로는 날 진심으로 걱정…….’

물론 그러한 감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몸에 십수 종의 버프가 걸리기 시작했으니까.

“버프는 빵빵하게 걸어줬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죽으면 문자 보내. 부활시켜줄게.”

“……성기사가 그런 것도 해?”

“괜히 히든 클래스겠어? 그리고 궁수니까 이동속도도 빠르잖아. 멀리서 화살 쏘고 바로 도망치기 시작하면 아슬아슬하게 안 잡힐 거야. 다녀 와.”

‘이, 이게 아닌데…….’

분명 자신은 예능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 이 던전에 왔다.

하지만…….

“감히 데스몬드 님께서 통치하시는 성채에 화살을 날리다니!”

“쫓아라! 잡아!”

“아니, 그냥 죽여 버려라!”

“으아아아아아!”

마이클은 그날 미끼 역할을 12번이나 해야 했다.

도중에 지쳤다는 핑계를 몇 번이나 꺼내봤지만, 소용은 없었다.

그때마다 카이는 그의 체력과 스테미너를 끝까지 채워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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