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74화 (274/441)

# 274

힐통령 274화

90장 몬스터 투기장(1)

“그런데 있잖아…….”

연신 데스몬드를 흘깃거리며 그의 눈치를 살피던 발터가 조용히 말했다.

“처치해야 할 주민들의 숫자가 117명이나 부족한데?”

117명.

아직 도시 안에 남아 있는 뱀파이어 귀족들과, 그들이 지키고 있는 어린 아이, 여자들의 숫자다.

“그건 걱정하지 마.”

카이가 슬쩍 뒤를 쳐다봤다.

폐허가 된 자신의 도시를 복잡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데스몬드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데스몬드.”

카이의 부름에 고개를 살짝 돌린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후우, 짧은 한숨을 내쉰 데스몬드가 자신의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쿠드드드.

마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올라가기 시작한 것처럼, 그들이 서 있는 공간 전체가 움직였다.

“어어어!”

“잠깐만요! 이건?”

겨우 주변 사물을 붙잡고 무게 중심을 잡은 설은영이 물었다.

이에 카이가 대꾸했다.

“타락의 성지가 위치한 장소가 어디인지는 아시죠?”

“이타카 밀림.”

“맞아요. 그럼 이 던전이 어떻게 등장했는지도 기억하십니까?”

“네. 이타카 밀림의 늪지대가 반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에서 던전이…… 아!”

말을 이어가던 설은영이 무언가를 이해한 듯 탄성을 터뜨렸다.

“설마?”

“제 생각이 맞다면 타운 타입의 던전은 공략 방법이 두 가지입니다.”

타운은 카이 일행에 의해 최초로 발견된 타입의 던전이다.

당연히 다른 던전들과는 다르게 정석적인 공략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는 던전 퀘스트의 내용대로, 도시 내의 모든 주민을 죽이는 것.”

쿠드드드.

천장이 그대로 갈라지며 이타카 밀림의 구름 낀 밤하늘이 그들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카이는 뒷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띠링!

[수백 년간 지하에 잠들어있던 타락의 성지, 브룩하임이 세상에 공개됩니다.]

[도시의 뱀파이어들이 몬스터에서 중립 NPC로 변경됩니다.]

[브룩하임의 혈통 관리 NPC를 통해 종족을 뱀파이어로 변경하실 수 있습니다.]

[뱀파이어들과의 호감도가 매우 낮은 상태입니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15개 획득했습니다.]

[강자의 자비로 뱀파이어 종족의 아이와 여자들을 살려주었습니다.]

[새근새근 자고 있던 헬릭이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잠꼬대를 합니다.]

[선행 스탯이 10 상승했습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로 선행 스탯 5개가 추가적으로 상승합니다.]

[칭호, ‘브룩하임의 방문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뭐, 뭐……?”

“종족 변경이라니, 이런 건 처음 보는데……?”

“오우, 쉿! 브로! 지금 커뮤니티도 난리가 났어! 브룩하임이 어디 있는 도시인지 벌써부터 질문 글만 수백 개가 올라왔는데?”

“아니, 그런데 엘프나 드워프, 인어들로 종족을 변경할 수는 없는데 왜 뱀파이어만……?”

“아인종들은 새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겠지. 뱀파이어는 물리면 전염이야.”

“아…….”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설은영과 유하린마저도 잔뜩 들뜬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카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종족을 뱀파이어로 바꿀 수 있다고?’

솔직히 자신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지.

뱀파이어는 인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데스몬드. 뱀파이어가 되면 어떤 점이 좋지?”

카이의 질문에 데스몬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훗. 이제야 밤의 귀족이 지닌 고귀함을 깨닫게 된 것인가?

“헛소리 말고 요점만 간단히.”

-우선 재생력이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나약한 몸뚱이와는 달리, 자연 치유력이 매우 뛰어나지. 도검에 의한 상처 정도는 하루이틀 지나면 아물게 된다. 두 번째는 역시 영생에 가까운 수명이겠군. 주기적으로 피를 섭취해야 하는 것을 제외하면 음식을 먹지 않아도 영생을 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뱀파이어는 밤 시간 동안 모든 능력이 상승된다. 게다가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훨씬 더 강력해지지.

말만 들으면 너도 나도 종족을 바꿀 정도로 달콤한 장점뿐이었다.

하지만 카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했다.

“물론 단점도 있겠지?”

-…….

그 부분을 쏙 빼놓고 말한 데스몬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쉽군.

“어서 말해.”

-뱀파이어 일족은 신분제다. 지닌 힘이 강해질수록 혈관을 돌아다니는 피도 순수해지지. 강력한 뱀파이어는 하급 뱀파이어를 상대로 절대적인 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게 끝은 아닐 테고.”

-……그리고 태양이 떠 있는 낮 시간 동안은 모든 능력이 살짝 감소하는 페널티가 있다.

“오케이. 낮 시간 동안에는 모든 능력치가 대폭 하향되는구나. 아, 그러고 보니…….”

뱀파이어 종족은 기본적으로 악마로 취급된다.

당연히 신성력과의 궁합이 나쁠 수밖에 없다.

‘뱀파이어로 종족을 바꾸는 순간, 각종 교단의 버프와 회복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겠어.’

장점이 명확한 만큼 단점 또한 뚜렷하다.

카이는 뱀파이어 종족에 대한 관심을 깨끗하게 지워냈다.

‘나와는 맞지 않아.’

사도의 몸으로 뱀파이어로 덜컥 종족이라도 바꾸게 되면, 헬릭이 울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끄응, 탱커는 힐러들의 지원을 못 받는 순간 이용가치가 사라지잖아. 난 패스.”

“메리트는 매력적이지만, 내가 느끼기엔 디메리트가 너무 커.”

일행들도 줄줄이 포기 선언을 했다.

오직 마이클만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마이클, 웃는걸 보니 종족을 변경하려고?”

“아니. 이 프로그램 대박 나겠다 싶어서.”

“갑자기 왜?”

카이가 물었다.

“헤이 브로. 왜라니, 지금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지난 이틀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봐. 이 모험을 상·하편 2부작으로 완벽하게 만들어내면 어떻게 될까?”

“음…… 예능이라고 하기에는 웃긴 장면이 많이 안 나온 것 같은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훌륭한 자기 관찰이었다.

일행들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때문에 우스운 멘트도 많이 나오지는 않았으니까.

“흐흐. 브로는 나의 편집 실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데?”

하지만 마이클은 달랐다.

실실거리며 웃는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모든 장면의 구상이 완료된 상태!

‘브로와 시스터들에게 이틀 동안 버스를 탄 은혜, 확실히 되갚아주겠어.’

그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을 하는 순간.

“하으…….”

갑자기 굉장히 귀여운 소리가 났다.

당연히 그 방향으로 돌아가는 모두의 시선.

그곳에선 밀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끈적하고 후덥지근한 더위에 굴복한 유하린이 자신의 투구를 천천히 벗는 중이었다.

사르르륵.

땀에 살짝 젖었지만 여전히 비단결 같은 은발이 투구 사이에서 찰랑거리며 흘러나왔고.

때마침 구름에 의해 가려져있던 초승달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앗…….”

일행들의 시선을 느낀 유하린은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투구로 제 얼굴을 가렸다.

“그,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부끄러워요.”

마이클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확신했다.

‘이 프로그램, 대박 나겠다.’

***

지난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피로를 느낀 일행들이 모두 로그아웃을 하자.

카이의 곁에는 데스몬드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 카이가 그리 달갑지 않은듯, 퉁명스레 말했다.

-들어가 있겠다. 인간의 본성을 알 수 있는 순간에 나를 부르도록.

빛의 입자가 되어 사라지는 데스몬드.

폐허가 된 광장에 혼자 남게 된 카이는 스탯 창을 불러냈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451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187,200

신성력 : 361,500

능력치

힘 : 2,707 체력 : 1,872

지능 : 1,744 민첩 : 1,217

신성 : 3,615 위엄 : 1,184

선행 : 594

남은 스탯 : 55개

독 저항력 +30

마법 저항력 +40%

자연친화력 +200

신성력을 소모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 +50%

악마/언데드에게 주는 피해 +50%

450을 넘긴 레벨.

심지어 모든 스탯의 수치가 1,000을 넘어선 경이로운 스탯 창!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카이가 꺼내든 것은 하나의 스킬 북이었다.

“메모리 다이브.”

데스몬드를 처치했을 때 그가 떨어트린 스킬 북.

‘사실 좀 이상하단 말이지.’

대부분의 보스 몬스터들은 자신이 배운 스킬을 기술로 떨어트리기 마련이었다.

아오사의 푸른 역병, 자탄의 중력장이나 석화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하지만 데스몬드가 이런 스킬을 사용하는 것은 본 적 없어.’

그가 사용하는 기술들은 죄다 피를 이용한, 뱀파이어 특유의 기술들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하나뿐.

‘데스몬드가 이 스킬 북 자체를 보관하고 있었을 경우.’

마왕의 부하였던 그가 지하 세계에 틀어박혀 보관하고 있던 스킬.

카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스킬의 내용을 확인했다.

“아이템 감정.”

[메모리 다이브]

등급 : 레전더리

먼 옛날 천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루시퍼를 타락시켰던 악마의 기술.

상대방이 기억 속에 뛰어들어 대상의 마음과 기억을 변경할 수 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일주일.

습득 제한 : 레벨 400이상.

“메모리 다이브라…….”

카이가 살짝 놀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 녀석을 타락시킨게 이 스킬이었단 말이지?’

대상의 기억에 뛰어들어 기억과 마음을 바꿀 수 있다니.

‘놀라운 힘이야. 스킬의 설명대로라면 대상을 타락시키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하지만…….’

이 힘을 꼭 대상을 타락시키는 데만 사용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타락시키는 게 가능하다면,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악한 자를 선하게 되돌릴 수 있지도 않을까?’

물론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이템 사용.”

메모리 다이브 스킬을 습득한 카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언젠가 사용해볼 날이 오겠지.’

그 날이 조만간 오기를 바라며, 카이는 입술을 달싹였다.

“신출귀몰.”

그의 모습이 나타난 곳은, 도시의 뒷골목이었다.

“미믹 소환…… 아, 역소환 당한지 24시간이 안 지났지.”

옅은 한숨을 내쉰 그는 결국 제 손으로 과자 가게에 들어갔다.

***

조용한 하늘 위의 낙원.

천상의 정원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헬릭 님……?”

남자, 카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니, 대체 어디 가셨지?”

평소 같았으면 등장과 동시에 ‘간식이다!’라고 소리치며 달려들었어야 하거늘.

오늘은 헬릭의 모습은 물론, 탐스럽도록 풍성한 태양빛 금발조차 볼 수 없었다.

“설마……?”

카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것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의 딸이 오후 6시가 넘어서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부모님이 짓는 표정과 똑 닮아있었다.

‘납치?’

걱정스러운 마음이 덜컥 든 그는 다시 한 번 신출귀몰을 사용했다.

땅! 땅!

용암이 흘러내리는 거대한 화덕이 들어선 공방.

그곳은 대지의 신인 호른이 기거하는 장소였다.

‘이런 일이 생길까봐 주변 신들의 거주 공간을 한 번씩 방문했었지.’

카이는 공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호른님!”

똑똑!

“호른님!”

그러자 안쪽에서 들리던 망치질 소리가 멈추더니, 문이 덜컥 열렸다.

“으응? 이게 누구야. 치맥아닌가.”

“카이입니다. 그것보다 호른님. 혹시 헬릭 님이 어디계신지 아십니까? 정원에는 없으시던데.”

“아아, 그 꼬맹이 말이지?”

호른이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정원으로 돌아가보게. 그리고 모습을 숨긴 채 느긋하게 기다려봐.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

“……재미있는 모습이라뇨?”

“그건 자네의 즐거움을 위해 비밀. 그럼 나는 하던 일이 있어서 그만.”

닫힌 문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카이는 그의 조언대로 정원에 돌아가 모습을 숨겼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무려 다섯 시간이 흘렀을 때.

강렬한 태양빛이 번쩍이며 헬릭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히잉…….”

털레털레.

의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의자로 돌아간 헬릭은 옆구리에 찬 보따리 하나를 뒤집더니 털털 털었다.

떨그럭.

그 안에서 나온 것은 그녀의 얼굴만큼 커다란 롤리팝 사탕 하나.

그녀는 그 롤리팝 사탕을 쳐다보며 눈을 감았다.

“주신님.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제발 제 대리자가 다음번에 방문할 때는, 사탕으로 지어진 집을 선물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적선 받으러 다니는거 너무너무 힘들어요…….”

“…….”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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