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75화 (275/441)

# 275

힐통령 275화

90장 몬스터 투기장(2)

“푸흡!”

대륙의 최대 성세를 자랑하는 태양신이 고작 과자와 사탕을 많이 얻기 위해 주신께 기도를 올리다니.

그 상황이 참을 수 없이 웃겼기에, 카이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반응은 즉각적으로 터져 나왔다.

“우우?!”

천상의 정원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웃음소리에 헬릭이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두 귀를 잔뜩 움츠린 그녀는 롤리팝의 막대 부분을 두 손으로 잡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누, 누구…….”

“워!”

수풀에 숨어 있던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큰 목소리로 놀래키자, 헬릭이 비명을 터뜨렸다.

“흐아아아앙!”

두 눈을 질끈 감고 롤리팝 사탕을 붕붕 휘두르는 헬릭.

결국 그녀의 참을 수 없는 귀여움에 넘어간 카이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카이가 배꼽을 잡으며 웃자, 잔뜩 울먹인 표정의 헬릭이 그를 쳐다봤다.

“카, 카이……?”

그녀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치는 눈동자로 카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 으으…… 어, 언제부터 거기에……?”

“흐음.”

카이가 제 턱을 어루만지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하지만 헬릭 님이 주신님한테 기도하는 부분은 못 봤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 정말로 못 봤느냐? 정말로?”

헬릭의 얼굴이 밝아지며 안도하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네. 그런데 말입니다.”

꾸욱, 꾹.

“우부으…….”

카이의 큼지막한 손에 두 볼이 잡힌 헬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올려다봤다.

“우우…… 지큼 뭐하훈 거시햐(지금 뭐하는 것이냐).”

“지금 손에 들고 계신 롤리팝 사탕, 드린 기억이 없는데 어디서 난 겁니까?”

“흐우우?!”

헬릭이 재빨리 제 등 뒤로 사탕을 숨겼다.

그녀는 불안한 눈빛을 아랫쪽으로 데굴데굴 굴리며 땅만 쳐다봤다.

꾸욱, 꾸욱.

그 순간에도 카이는 헬릭의 두 볼에 꾹꾹이를 시전하고 있었다.

‘어라, 뭔가 치유되는 기분…….’

마치 갓 구운 빵, 혹은 갓 쪄서 나온 찹쌀떡을 만지는 것 같은 부드러운 감촉.

심지어 그녀의 볼은 살짝 꼬집고 늘리면, 5cm 정도는 쭈우욱 늘어나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처음에는 살짝 혼을 내려고 붙잡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오묘함에 깊이 빠져든 카이는 본격적으로 두 손을 이용해 볼을 늘리기 시작했다.

꾸우욱, 꾸욱.

“그, 그하해 주며 안회흐야?(그, 그만해주면 안 되느냐?)”

“버, 벌입니다. 어…… 아무튼 벌입니다.”

카이는 이후로도 실컷 헬릭의 볼을 가지고 놀다가, 그녀가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 그만뒀다.

‘아쉽네.’

족히 10분은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끝에 그 부드러운 감촉이 남아있어 아쉬웠다.

“흠. 벌을 받으셨으니 그 사탕을 가지고 있는건 봐드릴게요.”

“고, 고마우니라.”

일생의 보물이라도 된 듯, 제 얼굴만한 롤리팝을 사랑스럽게 끌어안는 헬릭.

그 모습이 또 귀여워진 카이는 그녀의 풍성한 금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런데 그 사탕은 어디서 얻으신 거예요?”

“헤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귀여운 표정을 지은 헬릭이 몸을 베베 꼬으며 말했다.

“그대가 지난 번 연회 때 다른 신들에게 준 선물 보따리 있지 않느냐.”

“있었죠.”

분명 있었다.

연회를 떠나는 신들에게 하나씩 쥐어준 선물 보따리.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음식들이 넣어놨는데, 사탕이나 초콜릿, 과자도 물론 들어 있었다.

“내가 막막 다른 신들의 정원을 청소해주고, 사탕이랑 과자들을 보상으로 받았느니라.”

헬릭은 뿌듯함이 잔뜩 묻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그 말을 듣는 카이는 큰 충격에 빠졌다.

‘다른 신들한테서라니…… 그럼 설마 그 때부터?‘

카이가 기억을 더듬었다.

파발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던 순간, 선행 스탯이 오르며 그런 메시지가 떠오르기는 했었다.

다른 신들에게 과자를 적선받고 다니던 헬릭이 이 모습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짓습니다…… 라고.

‘맙소사. 그럼 나의 귀여운 태양신께서…….’

사탕을 받기 위해 남의 집 청소나하고 다녔다니!

“헬릭 님. 앞으로 그런 거 하지 마세요.”

“하, 하지만…….”

헬릭이 조그마한 발끝으로 땅을 톡톡 두드리며 어깨를 흔들었다.

“사탕…… 먹구 싶으니라…….”

“후우.”

이 단것에 중독된 신을 대체 어찌해야 할까.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는 것처럼, 신을 이기는 신자도 없는 법이다.

결국 카이는 두손두발을 다 들었다.

“항복. 좋습니다. 오늘부로 간식 금지령을 풀어드릴게요.”

“저, 정말이느냐!?”

헬릭이 두 눈을 반짝이며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머리 위쪽에서는 연신 황금빛 광채가 폭죽처럼 터져나왔다.

“예. 원래는 조금만 드리려고 했는데…….”

마음이 약해진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그녀의 간식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늘은 먹고 싶은 만큼 다 드십시오.”

“우우…… 카이여! 그대밖에 없느니라!”

카이의 품에 쏘옥 들어온 헬릭은 그간에 느꼈던 서러움을 털어내듯, 엉엉 울었다.

***

“케이크가 그리 좋으십니까?”

“응!”

“저보다 좋으세요?”

“우으……?”

포크로 케이크 한 조각을 막 들어 올린 헬릭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무, 물론 그대가 더…….”

“확실하죠?”

“으응.”

별로 자신이 없는 듯한 말투.

‘케이크 이기려면 부지런히 점수 따야겠네.’

어깨를 으쓱거린 카이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 그녀에게 물었다.

“아참, 헬릭 님. 혹시 메모리 다이브라는 기술에 대해서 아십니까?”

“……메모리 다이브?”

헬릭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그녀는 그토록 좋아하던 케이크를 내려놓으며 카이를 쳐다봤다.

“그것을 그대가 어찌 아느냐?”

그녀답지 않은 진지한 목소리.

이에 당황한 카이가 저도 모르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아니 그…… 이번에 뱀파이어 군주를 처치했는데, 그 녀석에게 얻었습니다.”

“메모리 다이브라.”

눈을 지그시 감은 헬릭이 입을 열었다.

“카이여. 진정 그 힘을 사용할 생각인가?”

“일단 배워두기는 했습니다만…….”

“그렇구나. 그렇다면 이것 한 가지만은 꼭 기억해 두거라.”

“경청하겠습니다.”

“기억, 과거의 경험을 통해 획득한 생각, 지식과 지혜, 하다못해 성격까지…… 메모리 다이브는 이것들을 뒤바꿀 수 있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기술이다.”

“설명은 읽어봤습니다. 루시퍼를 타락시킨 기술이라고 하더군요.”

“그대가 바꾼 기억이 대상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는 두 번, 세 번, 설령 열 번을 고민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간만에 태양신다운 위엄을 보여준 헬릭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이 케이크 맛있느니라. 다음에 또 사오거라.”

“……네.”

카이는 저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지었다.

***

“메모리 다이브라. 헬릭 님이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떤 종류의 기술이길래?

덩달아 심각해진 카이는 고개를 흔들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지금 고민해봤자 답은 없나.’

시간이 늦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마음먹은 카이가 접속을 종료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 일리는 없고.”

달이 차오른 야밤에 배달을 하는 택배원은 없으니까.

현관문으로 향한 정우는 인터폰을 통해 야밤의 방문자를 확인했다.

‘설은영?’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뜬금없이 찾아오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무슨 일입니까?”

문을 열며 묻자, 설은영은 양손에 하나씩 쥐고 있던 캔 맥주를 들어올렸다.

“할 얘기가 있어서요.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복도에서 얘기 좀 하실래요?”

“……알겠습니다.”

슬리퍼를 신고 복도에 나가자 설은영이 캔 맥주를 건넸다.

“바이엔슈테판이네요. 맛있다고 정평이 난 맥주죠.”

“……아세요?”

설은영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에 정우는 낮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얼마 전에 맥주에 대해서 알아볼 일이 좀 있어서요.”

호른을 위해 최고의 치킨과 맥주 조합을 연구할 때, 알게 된 세계적인 맥주 중 하나였다.

“술을 좋아하시나 봐요.”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에요.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요.”

톡 쏘는 시원한 맥주를 목 너머로 넘긴 정우는 복도의 난간에 기대 밤하늘을 쳐다봤다.

“멋진 하늘이네요.”

“종종 마음이 답답할 때면 이렇게 복도에서 맥주를 마셔요. 밤바람과 달, 맥주의 조합은 최고거든요.”

“천화 길드 마스터의 취미라기에는 소박하네요.”

“저라고 뭐 다르겠어요.”

설은영은 살짝 눈꺼풀을 내리깔며, 골목의 담장에 누운 길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남들이랑 똑같죠.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기 위해, 손에 쥔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열심히 발버둥 칠 뿐…….”

“그 말, 인터뷰에서는 안 하셨죠?”

“푸흣. 아쉽게도 그 정도 눈치는 있네요.”

그녀는 꿀꺽꿀꺽,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서로 돌려 말하는 건 싫어하는 타입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워리어스에서 프리츠 공성전에 대해 제안을 보내도 참가하지 말아주세요.”

“……프리츠라면.”

현재 워리어스와 천화가 동시에 노리고 있는 대도시.

‘그러고 보니 워리어스의 공성전 날짜가 조만간이네.’

정우는 맥주를 홀짝이며 사태를 파악했다.

‘그렇군. 워리어스에서 자탄 공략권을 빌미로 넘긴 게 프리츠의 공성전 권한이었어.’

상황을 이해한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뭐,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쉽게요?”

설은영이 당황한 목소리를 뱉어냈다.

그야 정우가 이토록 쉽게 고개를 끄덕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정우는 생각보다 쿨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예, 솔직히 공성전은 귀찮기도 하고요.”

“……고마워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넨 설은영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사실 제안을 거절하면, 이걸 선물로 준 뒤 다시 한 번 제안할 예정이었어요.”

“이게 뭡니까?”

그녀가 건넨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게임 속의 스크린샷을 사진으로 인화한 것이라고나 할까.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확인하던 정우의 인상이 구겨졌다.

“……이거 뭡니까.”

그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게다가 살짝 화난 표정으로 따지듯 설은영을 쳐다봤다.

설은영이 재빨리 물러서며 두 손을 들었다.

“오해하지 말아줘요. 저희 쪽이랑은 관련 없는 일이니까.”

“……천화 쪽에서 이런 더러운 술수를 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진 속에 찍힌 것은 블리자드였다.

그것도 개 목걸이 같은 두꺼운 목걸이를 한 채, 철창에 갇혀있는 블리자드.

“검은 벌 사냥 때 봤어요. 당신의 소환수죠?”

“맞습니다. 여기 대체 어딥니까.”

“하란이라는 도시, 알아요?”

“……하란이요? 처음 듣습니다만.”

라시온 왕국의 지리는 빠삭하게 꿰고 있는 그였지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지명이었다.

“칼데란 제국에 위치한 최대 규모의 유흥 도시예요. 각종 도박과 경매가 이루어지는 장소지요. 하지만 최근 가장 핫한 사업체가 새롭게 생겨났어요.”

“이 녀석이 거기에 관련되어 있습니까?”

“예. 기존에 사람과 사람이 붙던 투기장의 레퍼토리는 너무 똑같아서 차츰 인기가 식어가는 추세예요. 때문에 하란 시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한 사업이 바로 몬스터 투기장. 몬스터와 몬스터를 싸움 붙이는 오락이에요.”

“……그렇군요.”

설명은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리자드족의 자랑스러운 전사인 블리자드가 스스로 그런 더러운 전장에 참여할 리 없었으니까.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나중에 갚죠.”

“혹시나 싶어서 하는 말이지만, 하란 시에는 칼데란 제국의 기사들이 쫙 깔려있어요. 될 수 있으면 대화로 일을 풀어나가는 게 좋을 거예요. 칼데란 제국은 대륙에서 제일 강대한 힘을 자랑하는 두 나라 중 하나니까요.”

“대화 좋지요.”

맥주를 단숨에 비워버린 정우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 상대방에게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말입니다. 맥주 잘 마셨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제 집으로 들어가는 정우를 쳐다보던 설은영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밤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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