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77화 (277/441)

# 277

힐통령 277화

90장 몬스터 투기장(4)

“누가 이길까?”

“그야 당연히 검은 혜성이지.”

“모르는 소리. 저 돌연변이 오우거를 생포하는 데는 병사만 칠십이 죽고, 기사 두 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네.”

“그, 그 정도인가?”

“암. 오우거 중에서도 강력한 녀석이지.”

“그렇다면 이번만큼은…….”

“검은 혜성이 질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니겠나.”

관중들의 수다를 듣던 부하 직원이 상단주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힘들 수도 있겠어. 애초에 오우거가 자연의 포식자로 불리는 이유는 간단해. 하나는 웬만한 공격으로는 상처를 입지 않는 두꺼운 피부와…….”

“체급 차이 때문이군요.”

부하의 말에 상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복싱, 주짓수, MMA 등등.

현대 사회의 모든 메이저 격투기는 체급 별로 선수들을 분류해 놓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체급이 차이 나면 애초에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니까.”

키가 크면 팔다리의 리치가 길어지고, 골격도 훨씬 튼튼하다.

게다가 근육량도 많으니 힘이 세고 스피드도 좋을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체급의 차이는 싸움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만들어준다.

키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이유.

그 단순한 이유가 경기 시작도 전에 승패를 갈라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란 시에서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요.”

“알면서도 붙인 거야. 이게 더 자극적이니까. 더 큰돈이 되니까.”

“……빌어먹을 놈들이군요.”

“그래, 빌어먹을 놈들이지.”

그 순간 관중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어라? 그런데 검은 혜성, 다리 한쪽을 절고 있지 않아?”

“듣고 보니 그러네. 대체 왜지? 지난 번 싸움에서 입은 데미지가 컸나?”

“그럴 리가. 저렇게 다리를 절뚝거릴 정도로 큰 피해를 받은 적은 없었는데.”

“끄응. 이거, 진짜 검은 혜성이 질 수도 있겠는걸. 너무 불리하잖아.”

그들의 말처럼 검은 혜성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영양 보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건조해진 비늘.

사용하는 두 자루의 곡도는 이가 모두 빠져 오우거의 두꺼운 피부에는 생채기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다.

반대로 그가 입고 있는 방어구들은 심하게 파손된 상태였고, 심지어 투구는 보이지도 않았다.

챔피언이라 불리는 존재치고는 볼품없는 모습.

“자, 이미 오우거 전사는 눈앞의 231번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

사회자가 경망스럽게 소리치자, 관중들이 팔을 흔들며 성토했다.

“시작해라!”

“시작해!”

“죽여버려!”

양팔을 벌린 채 그 뜨거운 환호를 즐기던 사회자는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긴 말이 필요없겠지요. 몬스터 투기장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가 될 지도 모르는 순간! 두 눈 똑바로 뜨고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사회자가 손을 흔들자 경기장을 반으로 갈라놓고 있던 반투명한 벽이 사라졌다.

동시에 오우거 전사가 쿵쿵! 거대한 울림을 내며 검은 혜성에게 달려갔다.

“…….”

다가오는 오우거 전사를 바라보던 검은 혜성, 블리자드는 곧장 스텝을 밟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단번에 일그러졌다.

‘다리가…….’

움직임의 주축이 되어야 할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블리자드는 스텝을 밟는 것을 포기하고, 오우거 전사가 다가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크워어어어어!”

블리자드의 몸집만한 거대한 둔기가 위에서 아래로, 마치 단두대처럼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둔기는 경기장의 돌을 그대로 박살냈다.

그곳에 블리자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크르르.”

왼쪽 발 하나를 이용해 몸을 날린 블리자드는 빠르게 바닥을 짚고 일어나는 중이었다.

“크워어어!”

오우거 전사의 분노에 찬 눈동자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곧장 방향을 틀어 그곳으로 달려가는 오우거 전사.

이번만큼은 블리자드도 몸을 날려 피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그는 두 자루의 곡도를 뽑아들었다.

주인이 관리를 잘해 녹이 슬지는 않았지만, 이가 빠진 것만은 어쩔 수 없는 곡도들.

‘지금.’

블리자드는 오우거 전사의 공격을 끝까지 쳐다보다가, 유연하게 몸을 낮춰 이를 피했다.

“크워어어어어!”

콰앙, 콰앙, 콰아아앙!

오우거 전사의 손에 붙잡힌 둔기가 바닥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허나 둔기는 블리자드를 스치지조차 못했다.

스윽, 스윽!

마치 신에 들린 듯한 몸짓으로, 왼쪽 다리를 주축으로 이용한 채 모든 공격을 흘려내는 블리자드.

“와아아아아아!”

“역시 네가 최고다!“

관중들이 환호하는 순간, 블리자드의 눈이 번쩍였다.

‘기회.’

그리고 번개처럼 튀어나간 두 자루의 곡도가 오우거 전사의 목을 유린했다.

서걱, 서걱, 서거걱!

“나왔다아아아! 검은 혜성의 주특기! 블레이드 템페스트!”

“와아아아아아!”

사회자의 입에서 웃기지도 않은 기술명이 튀어나왔지만, 관중들은 이에 열광했다.

“검은 혜성!”

“검은 혜성!”

경기장 전체를 울리는 거대한 소리였지만, 블리자드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못 끝내면…….’

자신이 끝난다.

블리자드는 그런 각오를 품고 필살의 공격을 내뿜고 있는 것이었다.

“클클?”

하지만 오우거 전사는 이를 비웃었다.

그는 마치 간지럽다는듯 두꺼운 손가락으로 목 부근을 긁적이더니,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와드드득!

주먹은 그대로 블리자드의 가슴에 쳐박혔다.

비늘과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블리자드의 몸은 뒤로 10미터가량 훌쩍 날아갔다.

“아아아아! 날아갔어요! 날아갔습니다!”

사회자의 외침과 동시에 경기장의 환호성이 뚝 끊겼다.

남아 있는 환호라고는, 오우거 전사에게 역배팅을 건 도박자들의 응원 뿐.

‘크르르르…….’

블리자드는 끊어지려는 아득한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시야는 빙빙 돌아가며 어지러운 세상을 보여줬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크워어어.”

오우거 전사는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둔기를 바닥에 질질 끌며 그에게 걸어갔다.

“아아…… 검은 혜성, 몬스터 투기장의 전설이 되어버린 자의 최후입니다.”

사회자가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콜로세움의 입장에서는 검은 혜성만큼 잘 팔리는 전사가 드물었으니까.

“일어나!”

“일어나라 검은 혜성!”

“젠장, 여기서 죽지 말라고!”

관중들이 소리쳤다.

개중에는 돈을 걸지 않았지만, 순수하게 검은 혜성의 팬이 된 자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이 한 마음 한뜻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 그들보다 위쪽. VIP룸에서도 한 남자가 노성을 터트렸다.

“젠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는 곧장 창을 들고 있는 기사를 향해 삿대질했다.

“너 이 자식, 내가 적당히 하라고 했지?”

“죄, 죄송합니다. 다리 하나 정도는 페널티로 내줘도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저 녀석이 죽으면 손해가 대체 얼마인지 알아? 당장 내일부터 전좌석 매진은커녕 좌석의 반도 못 채울 판이다!”

분노를 토해내는 중년의 남자는 이 콜로세움의 주인이자 하란의 영주인 골단 자작이었다.

“끄응,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검은 혜성을 살려! 놈이 죽게 둬선 안 된다!”

“그럼 저희가 지금 당장 개입을……?”

“멍청한 녀석! 당연히 관중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지! 마법사나 신관을 데려와!”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을 받은 기사들이 헐레벌떡 자리를 비웠고, 골단 자작은 초조하게 이빨을 물어뜯으며 경기장을 쳐다봤다.

***

“크워.”

오우거 전사는 마치 잘 가라는 듯한 인사를 건넨 후, 블리자드를 내려다봤다.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일어서려고 노력을 하는 하찮은 상대.

“크워어어!”

자신의 승리다.

한 바탕 표효를 터트린 그는 자신의 둔기를 머리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길다란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워지자, 블리자드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둔기.

그것을 올려다보던 블리자드는 스르르 두 눈을 감았다.

이미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마스터께서 나에게 큰 실망을 하시겠군.’

블리자드는 무사 수행을 다짐하고 설산에서 카이와 헤어질 때, 스스로와 약속을 하나 했다.

‘절대 죽지 않겠다.’

절대로 죽지 않고 강해져서, 제 발로 떳떳하게 마스터에게 돌아가겠다.

그래서 그분을 보필하겠다.

그것이 블리자드가 굳게 다짐한 약속이었다.

아오사와 전투를 치르면서, 그는 자신이 카이를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무엇보다 그에게 손톱만큼의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일족 최강의 전사였던 그는 큰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무사 수행을 결심했고, 카이의 곁을 떠났다.

설산을 내려온 그는 대륙을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웬만한 플레이어조차 강행군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의 여정을, 그는 해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족 최강의 전사로서 생활할 때의 본능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배가 고플 때는 멧돼지 따위를 사냥했고, 잠을 잘 때면 땅을 파서 굴을 만들어냈다.

그런 강행군 속에서도 그는 마스터의 명령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마……스……터…… 돌……아……왔……습……니……다?”

카이가 챙겨준 국어책을 열심히 정독하면서 인간의 언어를 배운 것이다.

전멸 위기에 빠진 플레이어 파티를 구해주고 장비를 수리받은 적도 있었고.

숲 속에서 미아가 되어버린 아이를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준 일도 있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블리자드는 강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인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수련하면 어떠한 경지에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인간들에게 사로잡혀 이런 곳에서 명예도 없는 싸움을 하다가 죽다니.

‘불명예스러운 죽음은 전사의 수치다.’

부끄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크르르, 끝내라.”

다시금 눈을 뜬 블리자드가 오우거 전사의 눈을 노려다보며 말했다.

움찔.

한순간 그 눈빛에 압도당한 오우거 전사였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둔기를 내려쳤다.

그 순간이었다.

휘이익!

익숙한 감각이 블리자드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건……?’

블리자드의 두 눈이 크게 뜨여졌다.

자신의 착각일까? 아니다.

실제로 그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는 중이었다.

부러졌던 뼈는 멀쩡하게 붙었고, 찢어진 피부는 순식간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자신의 몸을 휘감은 이 신성한 힘.

이것은 분명…….

‘마스터의 힘이다!’

이 자리에 그가 와있다.

자신이 힘든 것을 알고, 자신을 구출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블리자드의 두 눈동자는 형형한 안광을 터트렸다.

“크워어어어어어!”

콰아아아아앙!

압도적인 파괴력을 담은 둔기가 바닥을 후려쳤고, 비산한 돌덩이와 흙먼지가 경기장을 뒤덮었다.

“어우, 먼지.”

“해, 해치웠나?”

“젠장. 검은 혜성…… 난 네 팬이였다고.”

“이렇게 죽기엔 아까운 몬스터…… 아니, 전사였어.”

관중들이 큰 슬픔을 내비췄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자욱하게 퍼진 흙먼지의 안개가 내려앉았고, 경기장의 모습이 보였다.

“……어?”

관중 하나가 소리쳤다.

“살아 있다! 검은 혜성이 살아 있다고!”

“너 이 새끼,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어? 정말 살아 있잖아?”

올곧은 자세로 서있는 블리자드는 단단한 눈빛으로 관람석을 한 바퀴 쭉 돌아보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관중들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저 녀석, 우리의 응원으로 가까스로 힘을 얻었기에…… 저렇게 아이 컨택을 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거구나!”

“녀석, 제법 감동 먹일 줄 아는 녀석인가?”

“이런 감정을 몬스터 투기장에서 느끼게 될 줄이야.”

코 밑을 쓱 훑으며 엄지를 척 들어올리는 관중들!

그 모습을 쳐다보던 골단 자작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거야! 이거라고! 몬스터와 감정적 교류를 나누는 관중들! 크흐흐…… 이거 또 내일부터 매출이 기대되는구만.”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 신관과 함께 돌아오는 기사를 크게 치하했다.

“흐흐흐. 아주 잘했다. 그래도 가까스로 시간을 맞추기는 했구나.”

“……예?”

자작의 명령을 듣고 신관을 초빙하러 갔던 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지금 도착한 겁니다만.”

“응? 그게 무슨 소리냐.”

골단 자작이 멀뚱멀뚱한 눈으로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저 녀석을 누가 회복시켰단 말이냐?”

“예? 231번이 회복되었습니까? 어떻게요?”

두 사람의 시선이 신관을 향해 돌아갔다.

뻘쭘함을 느낀 신관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VIP석에 있던 모두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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