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78화 (278/441)

# 278

힐통령 278화

90장 몬스터 투기장(5)

“크워어…….”

오우거 전사는 자신의 둔기를 내려다봤다.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내려친 둔기는 강력했다.

경기장 전체에 균열을 일으킬 정도였으니 그 파괴력은 가히 압도적.

하지만 그 어떤 강력한 공격이라도, 상대방에게 닿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이다.

오우거 전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시야로 한 존재가 들어왔다.

척추를 올곧게 편 채, 관중석을 둘러보는 날렵한 몸매의 리자드맨.

“크워어어어어어!”

자신은 숲의 폭군으로 군림했던 오우거였다.

당연히 보다 강한 이는 없었으며, 자신의 발소리만 들어도 모두 벌벌 떨며 도망을 쳤다.

그런 자신의 공격을 몇 번이나 피하고 멀쩡하게 살아 있는 존재는 저 녀석이 처음이었다.

“크워어.”

강렬한 살의가 들끓었다.

오우거 전사는 둔기를 내던지고는 자신의 주먹을 부딪쳤다.

꽈앙, 꽈아앙!

그때마다 공성병기가 성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굉음이 터져나왔다.

그가 블리자드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균열져있던 경기장 바닥은 비명을 내질렀다.

“…….”

바닥이 부서지는 소리에 블리자드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오우거 전사를 한 번 쳐다보고는, 바닥을 한 번 쳐다봤다.

‘나를 보고 계신다.’

마스터는 자신의 고장 난 육신을 치료해주었고, 강렬한 힘의 축복까지 선물해 줬다.

‘그러니 패배는 없다.’

그것은 바람 따위가 아닌 확신이었다.

크르르.

낮게 으르렁거린 블리자드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오우거 전사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블리자드의 발걸음은 산들바람처럼 가벼웠다.

“크워어어어어!”

오우거 전사의 두꺼운 주먹이 공기를 터트리며 대포알처럼 쏘아졌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가볍게 점프하더니, 녀석의 팔뚝 위로 올라타서 몸을 한 바퀴 회전했다.

그의 두꺼운 꼬리는 회전력을 머금으며 오우거 전사의 얼굴을 강타했다.

쫘아악!

“크어어!”

콰드드득!

오우거 전사가 몸의 균형을 잃고 뒤로 살짝 기우는 순간, 그를 지탱하던 바닥이 부서졌다.

‘지금.’

눈을 번뜩인 블리자드는 녀석의 팔을 박차고나가며 녀석의 얼굴에 팔꿈치를 꽂아넣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쿠우우웅!

결국 오우거 전사의 어마어마한 덩치가 그대로 넘어가며 바닥을 산산조각냈다.

지형의 상태와 상대방의 무게 중심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이를 이용한 지능적인 싸움!

“크워어…….”

겨우 정신을 차린 오우거 전사가 상체를 일으키며 머리를 뒤흔드는 순간.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크워어?”

고개를 들어올린 녀석이 볼 수 있는건 하늘이 아닌,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거대한 둔기였다.

“크…… 크워어어어!”

콰드드득!

자신의 무기에 머리를 얻어맞은 오우거 전사는 그대로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결국 체급 차이를 무시하고 승리를 일궈낸 블리자드에게 환호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아아!”

“역시! 그럼 그렇지!”

“검은 헤성! 검은 혜성!”

대중은 영웅을 좋아하고, 반전도 좋아한다.

하물며 그 두 가지가 절묘하게 섞인 경기라면?

피부가 저릿저릿해질 정도로 거대한 함성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훗.”

잔뜩 흥분한 관중들을 내려다보던 골단 자작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누가 치료를 했던 어떠한가. 결과가 좋았으면 된거겠지. 푸흐흐.”

“하지만 관중이 경기에 개입을 하는 상황이 계속 일어나면 안 됩니다.”

그를 보필하는 기사 하나가 충언했다.

“그야 물론이지. 관중들이 콜로세움을 빠져나가기 전에 신분 확인을 철저하게 해라.”

“예!”

명령을 받은 기사들이 방을 나가기 직전, 새로운 기사들이 헐레벌떡 VIP룸으로 들어섰다.

“여, 영주님.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태양교에서 나온 감찰관들이 도시의 사업장을 쥐 잡듯이 뒤지는 중입니다!”

“뭐, 뭐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골단 자작이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하란은 칼데란 최고의 유흥 도시인만큼, 불법적인 일에 연류가 되어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교단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마약이나, 불법 도박, 성매매 등이 이에 해당했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골단 자작이 보고를 한 기사를 다그쳤다.

“그들이 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성의 표시를 제대로 했을 텐데?”

“아무래도 교단이 개편되었다는 소식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영주님의 돈을 받아먹던 교주들에게 황급히 연락을 돌려봤지만, 연락되는 이는 없습니다!”

“치잇…….”

골단 자작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신을 믿는다는 녀석들이 돈에 환장을 해서는…… 아마 교단 내부의 주도 세력이 바뀌었으니, 자신들에게도 성의 표시를 하라는 압박일 것이다. 앞장서라, 내가 직접 상대를 할 테니.”

“예!”

자각과 기사들이 VIP룸을 빠져나왔을 때, 콜로세움은 큰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아니, 신분 확인은 또 왜 하는 겁니까?”

“이런 일은 처음인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모두 여러분의 안전을 위함이니 협조 좀 해주십시오.”

어느새 콜로세움 내부로 들어온 병사들이 관중들을 하나씩 수색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죠?”

조금씩 그들에게 다가오는 병사들을 바라보던 부하 직원이 물었다.

하지만 상단주는 아무 말 없이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이, 231번! 경기가 끝났으면 무릎을 꿇고 손을 머리 뒤에 붙여.”

“저 녀석, 경기 중에 귀라도 다쳤나? 말이 말 같지 않아?”

기절한 오우거 전사에게 구속구를 단단히 채운 병사들은 블리자드에게 다가오며 명령했다.

허나 블리자드는 관중석만을 쳐다보며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어디에 계신 겁니까. 마스터.’

관중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 그가 찾는 건 단 한 사람 뿐이었다.

자신을 처음으로 무릎 꿇린 자.

하지만 약육강식의 법칙을 거스르고, 자비를 베풀어 자신을 살려준 은인!

“이 녀석이. 결국 실력 행사하게 만드네.”

가까이 다가온 병사들이 뒤돌아 있는 블리자드의 목을 향해 빠르게 구속구를 채우려했다.

콰드드득!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사전에 예견하고 있었던 블리자드는 빠르게 몸을 돌려, 구속구를 빼앗고 오히려 그것을 병사의 몸에 채웠다.

“이걸 차고 있으면 동물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아주 더럽다. 그러니 너나 해라.”

“이, 이 새끼…… 커억!”

병사를 기절시킨 블리자드는 발 끝으로 검집을 툭 쳤다.

그러자 매끄럽게 뽑혀져나오는 검.

허공에서 이를 낚아챈 블리자드는 남아 있는 병사의 가슴을 X자로 베었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펼쳐진 검격.

“크아아악!”

“치료하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유창한 라시온 언어를 뱉어낸 블리자드는 그의 검집에서도 검을 빼냈다.

‘곡도가 아닌 것이 아쉽지만 가릴 처지는 아니다.’

블리자드의 갑작스런 행동에 관중들이 깜짝 놀랐다.

“뭐, 뭐야.”

“검은 혜성이 탈출 시도를 한다!”

“오오오…… 이것도 보는 구경거리인걸?”

“어디보자…… 검은 혜성의 탈출 시도가 이번으로 다섯 번째인가?”

“자자, 다들 배팅하십시오! 과연 검은 혜성이 이번에는 탈출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못한다에 2골드!”

“난 한다에 5골드 걸겠어! 이번에는 좀 해봐라!”

“팝콘 팝니다!”

관중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시장바닥처럼 변했다.

이에 사색이 된 병사들이 소리쳤다.

“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위험합니다!”

“이것은 저희가 의도한 상황이 아닙니다! 다들 진정하시고, 줄을 맞춰서 수색을 받은 뒤 탈출을…….”

“위험은 개뿔, 경기장과 관람석의 높이 차이가 얼만데 이 사람아!”

“이런 꿀같은 구경거리를 놓치란 말인가?”

병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관람을 계속해 갔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골단 자작이 얼굴을 붉히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이…… 너, 너, 너 그리고 너! 지금 당장 내려가서 저놈 제압해!”

“예!”

자작의 명령을 받은 기사들은 그대로 관중석에서 경기장으로 뛰어내렸다.

족히 15미터가 넘는 높이였지만, 그들을 어떤 충격도 받지 않은듯 멀쩡하게 걸음을 내딛었다.

“후우, 231번. 이쯤되면 포기하지 그래. 넌 여기서 못 빠져나간다고.”

“이 녀석은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한숨을 쉬며 다가온 기사들은 블리자드를 상대로 긴장을 하지않았다.

“몬스터 주제에 자꾸 귀찮은 일만 벌이고.”

왜냐하면 블리자드가 몬스터였으니까.

그는 용맹한 전사의 혼을 품고 있었지만, 기사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빠르게 제압하고 끝내자고.”

검과 창을 뽑아낸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평소의 블리자드는 네 명의 기사로 이루어진 합격진에 뼈도 못 추리고 쓰러졌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휘익, 휘익!

축복을 머금은 블리자드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랐고.

콰드드득!

“커억……?”

그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갈비뼈가 박살난 기사가 쓰러지자, 남아 있는 기사들의 눈빛이 변했다.

‘말도 안 돼.’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렇게 강해진거지?’

그 중 위화감을 가장 크게 느낀건, 몇십 분 전 블리자드의 다리를 창으로 꿰뚫은 기사였다.

‘이상하군. 구속구를 풀었다고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나?’

놀랍게도 현재의 블리자드는 정식 기사인 그들의 속도를 가볍게 상회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어떻게 몬스터 따위가…….”

블리자드는 칼데란 제국의 말은 몰랐지만, 몬스터라는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몬스터란 본능에 사로잡혀 인간을 공격하는 생물을 일컫는 언어.”

두 자루의 검을 길게 늘어트린 블리자드가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오연하게 말했다.

“나는 마스터의 뜻대로 이성적인 행동을 추구하며, 마스터의 명령이 없으면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몬스터가 아니라…….”

“저 녀석,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거야.”

“전사다.”

다음 순간 블리자드의 손에 쥐어진 두 자루의 검이 태양빛을 반사시키며 춤을 췄다.

쉴 틈 없이 상대를 몰아치는 이 춤사위가 길어질 수록 기사들의 몸에는 생채기가 늘어갔다.

“이런 멍청한 녀석들!”

결국 보다못한 골단 자작이 주변 기사와 병사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명령했다.

“지금 당장 전부 내려가! 저놈을 반 병신으로 만들어서 정신 교육부터 다시 시켜!”

“예, 예!”

관중들이 이에 반발했다.

“우우우우!”

“치사하다!”

“평소에는 명예로운 기사라고 으스대는 것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부끄러운줄 알아라!”

“이이이…… 감히 평민 새끼들이…….”

분을 참지 못해 관람석의 난간을 꾸욱 움켜쥔 자작이 명령했다.

“지금부터 나의 행사를 방해하는 녀석들은 231번의 탈출에 도움을 주는 녀석들이라 판단하겠다! 병사들은 그런 녀석들의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려라!”

“예!”

명령과 동시에 관중석 곳곳에서 무분별한 폭력이 가해졌다.

“자, 잠깐! 나는 떳떳하게 돈을 내고 입장한…….”

“시끄럽다! 감히 평민 주제에 자작님 앞에서 큰소리를 치다니!”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때 상단주의 곁으로 직원 하나가 다가와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렇단 말이지?”

상단주가 씨익 웃자, 곁에 있던 다른 부하 직원이 입을 열었다.

“상단주님. 검은 혜성이 많이 불리해보입니다. 이대로 보고 계실 겁니까?”

그의 말처럼, 블리자드가 열 명 넘는 기사와 수십의 병사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에 상단주가 말했다.

“아니. 드디어 기다리던 정보가 들어왔다. 이제 역할 놀이는 끝났어.”

터번을 벗은 상단주, 아니 카이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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