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80화 (280/441)

# 280

힐통령 280화

91장 메모리 다이브(1)

그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골단 자작이 불법 마약을 유통한 증거입니다.”

“성매매법을 위반하고 유흥가를 운영한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이 녀석, 귀족이면서 불법 대부업체까지 운영했던데요? 이 장부를 보십시오.”

“이렇게까지 구제할 방도가 없는 쓰레기는 처음 봅니다.”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100명의 성혈단원들은 골단 자작의 치부를 가져와 카이에게 바쳤다.

치부가 왜 치부인가?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어두운 부분이기에 치부이다.

하지만 골단 자작은 그 부분이 전부라 해도 좋을 만큼 거대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네.”

질색한 표정을 지은 카이는 자신을 쳐다보는 단원들에게 명령했다.

“우선 사업장들 문부터 닫는다.”

“예!”

단원들의 손에 의해 하란 시의 수많은 사업장들이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란을 방문한 관광객들도,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도 얼떨떨할 정도로 신속한 조치였다.

“크흐흐…… 쓸데없는 짓이다.”

단단하게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던 골단 자작이 돌연 카이를 도발했다.

“무슨 뜻이지?”

“하란 시에서 황궁에 납부하는 한 달 세금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황금으로 산을 쌓아도 될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그런데 과연 황제 폐하께서 나를 내치실까?”

골단 자작의 얼굴 위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떠올랐다.

이에 카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동시에 골단 자작의 안색이 파래졌다.

“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골단 자작의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럴 수밖에.

현재 그의 몸에 걸려 있는 중력은 평소보다 세 배나 높아진 상태였으니까.

“글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어깨를 으쓱거리는 카이에게 단원 하나가 다가와 보고했다.

“곧 온답니다.”

“빠르네.”

카이의 고개가 텔레포트 게이트 쪽으로 돌아갔다.

그는 태양교의 이름으로 골단 자작의 악행을 황궁에 보고했다.

그러자 황제가 회신하길, 이를 판단할 사람을 보낸다고 하였다.

번쩍!

텔레포트 게이트에서 푸른빛이 번쩍이자 칼데란 제국의 고위 귀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단장님.”

칼데란 제국의 출신이던 단원 하나가 황급히 그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제일 앞에 있는 남자는 칼데란 제국의 13황자인 오르페우스 황자입니다.”

“저자가?”

카이가 놀란 티를 내지 않으며 13황자를 살폈다.

적발의 웨이브진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온 그는 시원한 스타일의 미청년으로, 몸의 밸런스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잡혀있었다.

‘과연 기사의 제국, 칼데란의 황자인가.’

더 이상의 관찰은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카이는 시선을 거두며 단원에게 물었다.

“그런데 13황자라면 권력의 중심에서 크게 밀려난 존재 아닌가?”

“그건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는 차기 황제의 자리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되는 남자입니다. 동시에 칼데란이 자랑하는 7인의 기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래?”

카이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뭔가 석연치 않은걸. 아무리 하란에서 황궁에 납부하는 세금이 막대하다해도, 그렇게 대단한 황자가 직접 나올 사안인가?’

오르페우스 황자가 귀족들을 이끌고 가까이 다가오자, 주변의 시민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단, 카이를 비롯한 성혈단원은 고개를 깊이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끝냈다.

그들의 무릎을 굽힐 수 있는 건 성혈단장인 카이와 알버트 교황뿐이었으니까.

“오르페우스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반갑소. 그대가 성혈단장 카이요?”

오르페우스 황자가 마주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무리 제국의 황자라 해도, 태양교의 주요 인사는 함부로 무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이는 현재 태양교에서 하루마다 주가가 높아지는 성혈단의 주인이었다.

“예. 제가 카이입니다.”

이야기는 서로가 상대방을 존중하며 이루어졌다.

“보내주신 문서들은 잘 받았고, 검토를 해보았소. 그러니 우선 사과부터.”

황제의 자리에 가장 가깝다고 칭해지는 황자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화, 황자님!”

“어서 고개를 드십시오!”

그를 따르던 귀족들은 물론, 성혈단원들까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아니다. 본 제국의 귀족 하나가 감히 성혈단장의 소환수를 납치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 정상이지. 이렇게 사과드리오.”

황자의 입에선 정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말뜻을 곱씹어보던 카이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그게 어찌 제국의 잘못이겠습니까. 한 사람의 욕심이 만들어낸 사고이지요.”

카이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오르페우스 황자가 눈을 반짝였다.

그는 처음부터 골단 자작의 잘못을 제국의 잘못으로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때문에 그는 그러한 입장을 ‘제국의 귀족 하나’라는 말을 통해 명시했다.

카이는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고, 곧장 ‘한 사람의 욕심’이라는 말을 건네며 이를 받아들였다.

서로의 이해가 일치하였기에 일 처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본 제국에서 합당한 보상을 전해드리겠소. 그리고…… 허락해준다면 골단 자작은 저희 쪽에서 관리하고 싶소만.”

“음…….”

카이가 입을 쉽게 떼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물론 골단 자작은 칼데란 제국의 귀족이다.

당연히 신병을 그쪽에서 관리하는 것이 옳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한 줌의 미련이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골단 자작의 카이의 소중한 존재인 블리자드를 납치, 감금한 것도 모자라, 전사인 그를 모욕하고 광대놀음까지 시켰다.

‘마음 같아선 죽여 버리고 싶지만…….’

걸림돌이 많다.

그는 태양교의 성혈단장임과 동시에 라시온의 귀족이기도 하니까.

카이의 얼굴에서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자, 오르페우스 황자가 싱긋 웃었다.

“성혈단장께서는 생각이 참 깊으신 것 같습니다.”

오르페우스 황자가 돌연 오른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시종이 고급스러운 검집을 공손하게 건넸다.

단숨에 검을 뽑아든 오르페우스 황자는 골단 자작의 몸을 묶고 있던 줄을 잘라냈다.

서걱!

‘교과서에 실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검격.’

짧은 판단을 내린 카이는 이게 무슨 의미냐는 표정으로 황자를 쳐다봤다.

“화, 황자님……! 역시!”

속박에서 풀려난 골단 자작이 감동에 젖은 눈빛으로 황자에게 달려갔다.

카이가 이미 중력장을 해제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허나, 그를 바라보는 오르페우스의 눈빛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무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가는 웃고 있다는 점이다.

“골단 자작.”

황자가 달콤하게 속삭이며 검을 휘둘렀다.

푹-!

검은 골단의 심장을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커, 커억……?”

골단 자작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명색이 대 칼데란 제국의 자작이었던 이가 꼴 사납게 묶인 채로 죽어서야 쓰나. 본 황자가 베푸는 마지막 자비이니 사양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달콤한 목소리를 뱉어낸 오르페우스 황자는 검을 회수해 검집과 함께 시종에게 건넸다.

골단 자작은 자신이 일궈낸 도시의 광장에 눕더니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자고로 벌레를 없앨 때는 천 번의 생각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중요한 법이지요.”

오르페우스 황자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답지 않게, 만면에 미소를 띠며 카이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황제 폐하께서 영토 확장에만 전념하시다 보니,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집안을 좀먹는 해충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본 황자가 지금부터 집안 관리를 해야겠습니다.”

“……황자님께서 나서신다면, 근시일 안에 좋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황자의 거침없는 행동을 목격한 카이의 말투는 전보다 딱딱했다.

동시에 생각했다.

‘위험한 녀석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점은 똑똑하다는 점이야.’

위험하기만 하면 단순한 경계의 대상이다.

하지만 위험한 존재가 똑똑하기까지 하면, 그 때부터는 경계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곳에 온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카이는 오르페우스 황자가 굳이 이 자리에 온 까닭을 알아챘다.

‘명분을 얻기 위해서였어.’

현재 칼데란 제국은 폭군 같은 황제의 손에 의해 하나부터 열까지 관리되고 있다.

아무리 황제의 자리에 가까운 황자라고 해도, 지닌 권한이 크지는 않을 터.

‘오르페우스 황자는 집안을 관리할 명분을 손에 넣었어. 그것을 위해 이 자리에 온 거다.’

그는 집안 관리가 영 엉망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제국의 황자가 제 얼굴에 침 뱉기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다.

황제가 떡고물처럼 던져주는 권력을 받아먹는 것에 질려, 스스로 힘을 키우려하는 것이다.

‘저 웃는 얼굴에 넘어가는 순간, 물어 뜯긴다.’

호부 밑에 견자가 없듯, 대륙을 진동시키는 사자는 더 위험한 새끼를 키우는 중이었다.

다행인 점은, 첫 만남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이었다.

오르페우스 황자는 이 만남을 통해 제국 내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 터.

자신을 은인으로 생각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실제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매우 부드러웠다.

잠깐의 정적 끝에, 마침내 카이가 입을 열었다.

“오르페우스 황자님의 정의로운 결단을 태양신 헬릭께서 축복하실 겁니다.”

“부디 그래주셨으면 좋겠군요.”

띠링!

[도화지에 사탕으로 만들어진 집을 그리고 있던 헬릭이 귀를 쫑긋 기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관심사가 카이와 간식뿐이라고 투덜대며, 다시 크레파스를 손에 쥡니다.]

“……분명 그러실 겁니다.”

카이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오르페우스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릴 뿐.

별다른 의문을 품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에 대한 보상은 근시일 내에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말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거듭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르페우스가 손을 건넸다.

카이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황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오르페우스의 머리 위로 짤막한 정보가 떠올랐다.

[오르페우스 폰 칼데란 LV.750]

‘역시, 만만한 인물은 아니야.’

언뜻 부하 단원이 건네줬던 말이 떠올랐다.

‘제국이 자랑하는 7인의 기사 중 한 사람이라.’

라시온 왕국의 바체, 파발의 레벨은 600 중반이었다.

그들보다 레벨이 100이나 높으니, 그의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럼 저희는 이만.”

짧게 고개를 숙인 오르페우스 황자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사라졌다.

그들이 떠나자 미네르바가 다가오며 조여 왔던 긴장의 끈을 풀었다.

“후우. 무서운 사람이네요.”

“확실히 위험해 보이긴 합니다.”

“제가 볼 땐 카이 님도 똑같이 위험해 보여요.”

“아니, 제가 뭘 했다고?”

카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이에 미네르바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모르셔서 묻는 건 아니죠? 오르페우스 황자가 잿밥에 관심이 많아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건 전쟁 선포로 받아들여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 일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저지르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음.”

이제는 카이의 부하로 전락했지만, 미네르바는 세계 9대 길드인 프레이를 이끄는 보스.

그녀 또한 오르페우스의 목적을 꿰뚫어봤고, 카이와 그가 나눈 거래를 이해했다.

“확실히 그러네요.”

블리자드가 잡혀있다는 것에 정신이 팔려, 사소한 부분을 신경 쓰지 못한 카이였다.

“하지만…….”

미네르바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의 사람을 위해 그렇게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점은, 제법 멋있다고 생각해요.”

“웬일로 칭찬입니까?”

“저는 없는 소리는 안 한답니다.”

미네르바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이는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쳐다봤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더니, 기분은 좋네요. 날도 맑고.”

띠링!

[밥만 먹고 부정부패를 일삼던 자작이 처치되었습니다.]

[당신은 이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처치된 영주의 작위는 ‘자작’입니다.]

[선행 스탯이 40 증가합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로 선행 스탯이 20만큼 추가로 상승하였습니다.]

이어서 사건의 종지부를 알리는, 기분 좋은 알림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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