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86화 (286/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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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통령 286화

92장 아르칸 아카데미 (2)

카이는 돈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살 수 없다는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전부는 못 사지만, 대부분은 살 수 있지.”

돈의 힘은 위대했다.

미드 온라인에서 날고 긴다하는 교수, 학자, 현자, 기사 등 다방면의 인물들이 모였으니까.

물론 그들은 대륙의 학계에 이름을 진동시키는 사람들.

당연히 높은 이름값만큼이나 자존심도 강했다.

“아카데미라. 이미 숱한 제안을 받아봤지만 글쎄요…….”

“고작해야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관에 묶이기에는 조금…….”

“크흠. 지식이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거늘.”

처음에는 부정적인 기색을 내비추던 이들이었지만, 아르칸 영지를 방문하자 태도를 바꿨다.

“여, 영지 전체가 아카데미 시설로 사용된다고?”

“오오오! 이, 이 건물이 음악실이라고요? 예술의 전당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군요!”

“맙소사…… 제국 황실의 연무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니…….”

그들은 아르칸 영지가 자랑하는 드워프들의 건물이 지닌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지금까지 제안을 해왔던 어떤 아카데미와도 다르다.’

‘죽기전에 후학을 양성하는 훌륭한 일 정도는 해야 되지 않을까?’

아르칸 아카데미에 매료된 그들을 계약서에 도장 찍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흠. 돈이 좀 깨졌네.”

돈은 정보 길드에서 파악한 것보다 비싼 12만 6천 골드가 깨졌다.

한화로 126억이나 하는 거액.

하지만 카이는 자신이 있었다.

‘굳이 돈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투자를 한 이상 무조건 성공시켜야지.’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일 자신이.

‘아르칸 아카데미는 1, 2년 운영할 생각으로 만든 곳이 아니야.’

미드 온라인이라는 게임이 망하지 않는 이상, 대대손손.

아들의 아들에게까지 물려줄 생각이었다.

게다가 카이가 아르칸 아카데미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곳을 통해 나는 어떤 유저보다도 많고 다양한 인맥을 쌓을 수 있지.’

물론 그러한 바람이 실현되려면 학생들을 잘 유치해야 할 터.

‘이미 대륙의 황족과 왕족들은 대부분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어.’

결국 그들을 데려오려면, 그들을 안달하게 만들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

다른 유저들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

하지만 자신이라면 가능했다.

‘나에게는 태양교라는 패가 있으니까.’

대륙에서 가장 커다란 성세를 자랑하는 태양교의 행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묵직하다.

심지어 카이는 그런 곳의 유일신에게 격한 사랑을 받는 존재.

“신출귀몰.”

태양교 본단으로 이동한 카이는 곧장 알버트 교황과 독대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 교황님도 잘 지내셨나요?”

알버트 교황은 카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성혈단의 활약으로 태양교의 명예가 나날이 높아지니 이전보다 더욱 반겨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제가 성혈단 문제로 한 번 방문했을 때 교황님이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요즘 심심하시다고.”

“아아, 그랬지요. 본단의 개편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로 제가 할 일은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허허. 덕분에 차를 마시고, 기도를 하며 정원을 산책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입니다.”

“적적하시겠군요.”

“이렇게 가끔씩 카이님이 방문해주셔서 다행입니다.”

차를 마시며 알버트와 담소를 나누던 카이가 용건을 꺼내들었다.

“사실 오늘 이렇게 교황님을 찾아뵌 건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입니다.”

“오오, 사도께서 부탁을 하시다니. 제 힘이 닿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제 영지에 태양교의 신전을 하나 지은 것 아시지요?”

“아, 물론입니다. 저번에 그 문제로 방문하셨었지요. 잘 지어지는 중인가요?”

“사실 이미 완공되었습니다. 드워프들이 작업을 해서 그런지 건설 속도가 빠르더군요.”

“그사이에……!”

알버트 교황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너무 빨리 지어져서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부탁하실 일이라는 게 뭔가요.”

“아아, 그게 말입니다.”

카이의 입가로 미소가 물감처럼 번져갔다.

***

오곤 제국의 황궁은 온갖 신비로운 주문으로 채워진 마법(魔法)의 본산이었다.

그런 곳의 옥좌에 앉아있는 황제에게 손님이 방문했다.

“오곤 제국의 주인이신 루미테르 황제님을 뵙습니다.”

“……태양교의 주교가 여긴 어쩐 일이오.”

사실 오곤 제국과 태양교의 사이는 그렇게 친밀하지는 못했다.

마도를 추구하는 마법사들은 논리를 벗어난 힘을 사용하는 교단을 꺼려했으니까.

하지만 현재 대륙의 정세를 볼 때, 태양교를 멀리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

당연히 오곤 황제도 태양교와 어느 정도는 교류를 하는 편이었다.

“황제님에게 전해드릴 기쁜 소식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기쁜 소식이라……? 교단에서 말인가?”

루미테르 황제가 궁금증을 드러내자, 주교는 미리 준비해온 수정구를 그에게 내밀었다.

“잠시 확인을 하겠습니다.”

수정구는 황실 마법사들이 꼼꼼하게 살핀 뒤에야 황제의 손으로 건너갔다.

“크흠. 이게 뭔가?”

“제가 전해드릴 기쁜 소식이 담겨있으니 한 번 보시지요.”

주교의 공손한 목소리에 황제는 수정구에 저장된 영상을 재생시켰다.

“음……?”

영상은 입체적인 홀로그램으로 떠오르며 한 장소를 보여주었다.

그 장소는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었다.

백색과 금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도시.

성의 상공에서 촬영되던 영상은 이제 건물들 내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흠. 흐음…….”

자신이 기거하는 황궁과 비교해도 돋보이는 예술성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대체 어디지?’

황제가 머리를 굴려봤지만, 이 장소가 어디인지는 짐작이 가질 않았다.

“깔끔하군. 고급스럽고.”

건물들의 내부에는 복도마다 고급스러운 융단이 깔려있었고, 벽에는 유명한 예술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미술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제국의 연무장과 비등한 연무장.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할 거대한 음악회관.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거대한 식당들은 도저히 미술관과 매치가 되질 않았다.

“…….”

영상이 끝나자 루미테르 황제는 주교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곳이 대체 어디란 말인가.”

마치 구매를 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구매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에 미소를 지어 보인 주교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새롭게 설립되는 아카데미 도시의 모습이옵니다.”

“아카데미…… 도시?”

“예. 라시온 왕국의 카이 남작이 보유한 영지로, 보신 것처럼 하나의 영지를 통째로 교육을 위해서만 설계했습니다.”

“으음……!”

저 아름다운 장소가 아카데미였을 줄이야.

주교는 살짝 충격을 받은 루미테르 황제에게 연타를 먹였다.

“도시의 모든 건물들은 드워프들이 설계했으며, 마법 연구실과 음악실 같은 경우는 마법의 대가인 인어와 드워프의 합작으로 탄생하였습니다.”

“허어. 아카데미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수준이군.”

짧게 혀를 찬 루미테르 황제가 말을 이었다.

“나에게 이 장소를 보여주는 것은 황자를 이곳의 학생으로 받고 싶어서겠지?”

“정확한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본국 수도에 위치한 권위 높은 아카데미에 잘 다니고 있는 녀석을 굳이 저곳으로 보낼 필요성이 느껴지지는 않는군.”

“그것이라면 이것을 봐주시겠습니까.”

주교가 건넨 팜플렛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황제가 물었다.

“이게 뭔가?”

“뒷장에는 아르칸 아카데미의 교사진을 맡은 인물들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흐음.”

아무런 기대 없이 페이지를 넘긴 루미테르 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은의 현자 레우스, 마나 가속 법칙을 발견한 오란 박사에 이어서……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는 음유시인 제로스? 아니, 심지어 은퇴한 늙은이마저 있지 않은가.’

참고로 은퇴한 늙은이란, 오곤 제국에서 재상의 위(位)를 지냈던 자신의 스승을 의미했다.

“게다가…… 음!”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발견한 루미테르 황제의 눈동자가 떨렸다.

“이게 사실인가?”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신학 과목의 교수가 알버트 교황이라는 것이 사실이냐 물었네.”

그렇다.

아르칸 아카데미의 과목 중 하나인 신학의 교수직에는 현 태양교의 교황인 알버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주교가 빙그레 웃었다.

“예, 교황님께서는 이로운 말씀을 전하고자 친히 교단에 서시기로 마음 먹으셨습니다.”

“카이 남작이 대체 누구길래 이 정도의 특혜를 준단 말인가?”

“카이 님은 라시온 왕국의 귀족이기 전에, 성혈단을 이끄는 성혈 단장님입니다.”

“음. 성혈단장이란 말이지…….”

“허.”

완벽한 시설에 이어 완벽한 교수진까지.

심지어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카이 남작이라, 머리 하나는 비상하군.’

그가 고작 아카데미 하나에 이런 무시무시한 투자를 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 아카데미를 조그마한 국제 사회로 만들 셈이군.’

아르칸 아카데미는 조만간 대륙을 우겨넣은 듯한 재미있는 모습을 띄게 될 것이다.

두 개 제국과 세 개 왕국의 황족, 왕족들은 물론이고.

명망 높은 가문의 귀족 자제들과 거대 상단의 후계자들까지 아카데미에 등록할 터.

당연히 서로의 신경전이 오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카이 남작은 태양교, 그것도 교황이라는 이름으로 정도 이상의 다툼을 억제시켰다.

‘판을 깔아줄 테니, 자신이 있다면 후계자들의 능력을 시험해 보라는 건가?’

루미테르 황제가 낮게 웃었다.

“재미있군.”

그는 주교를 내려다보며 짤막하게 말했다.

“3황자와 9황녀를 보내도록 하지.”

“……폐하의 과감한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3황자는 오곤 제국의 차기 황제로 거론되는 인물이었고, 9황녀도 똑똑하기로 소문이 난 인물.

그 두 사람을 보낸다는 건, 오곤 제국이 후계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선포한 것과 다름없었다.

“따로 준비할 것은 있는가?”

“팜플렛에 아카데미 등록금과 교복비,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지침서가 붙어있습니다.”

“……교복비를 제외한 1년 등록비만 1,000골드라? 생각보다 가격이 쎄군.”

“값어치를 할 겁니다.”

주교의 말에 루미레트 황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정도 시설에 교수진이라면…… 그리 비싼 값은 아니군.”

오곤 제국의 황실에서 일어난 일은, 다른 나라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

“뭐? 벌써?”

“예. 시안은 벌써 나왔잖아요?”

“음, 나오긴 했다만…….”

정우의 부모님은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아들을 쳐다봤다.

“이 사업, 정말 가능성이 있는 거니?”

“어머니, 제가 꽃길만 걷게 해드리겠습니다.”

“여보. 큰돈도 아니니 아들 한 번 믿어봅시다.”

부모님은 각각 20억씩의 돈을 투자해 미드 온라인에서의 사업을 시작했다.

웃기게도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다름 아닌 누나인 한지혜였다.

“지혜 녀석, 그동안 사회에서 구르면서 얼마나 배웠는지 실력 좀 보자.”

“훗. 2팀의 에이스라고 불리던 최연소 미녀 대리의 실력을 보여드리죠.”

그녀는 부모님의 요청에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미드 온라인에 취직을 했다.

당연히 하는 일은 부모님이 운영하게 될 교복, 체육복 사업의 운영 및 관리.

“발주는 각각 몇 벌 정도 넣으면 돼?”

지혜가 의욕을 드러내는 묻자, 정우는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150.”

“……응?”

“우선은 150벌로 시작하자.”

“학생이 150명이나 있어?”

“응.”

150명의 학생이 등록금으로 지불한 액수는 무려 15만 골드.

정우는 아카데미를 건설하기 위해 쏟아 부었던 돈과 교수진을 구하느라 썼던 투자금을 하루 만에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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