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89화 (289/441)

# 289

힐통령 289화

93장 도화선(1)

정우는 아침으로 먹을 토스트 한 쪽 면에 버터를 바르며 패드의 화면을 보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게임의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드리는 아리스입니다. 요즘 들어서 가장 핫한 사건이죠? ‘NPC 실종 사건’이 다시 한 번 발생했답니다. 이번에는 알데바란 왕국에 위치한 시골 영지, ‘호란’의 마을 주민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하는데요.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흐음. 요즘 저 소식이 자주 들리네.”

이어서 커피를 홀짝인 정우는 몽롱했던 정신을 일깨우며 토스트를 크게 한 입 베어먹었다.

흔히 말하기를 NPC 실종 사건이라 부르는 현상.

한 두 번이 아니라 몇 번이나 반복된 이 기현상은, 현재는 괴담으로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버그로 생겨난 유령이 마을 주민들을 데려간다니. 말도 안 되는 소문이지.”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는 사람을 생각보다 많았다.

왜냐하면 버그 유령에 대한 그럴 듯한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흔적.

NPC 실종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는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들을 강제로 죽이거나 끌고가려고 했다면, 저항의 흔적이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NPC들은 잠을 자다가 갑자기 외계인에게 납치라도 당한 것처럼,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이 일어난 장소의 근처에서 실제로 유령을 봤다고 주장하는 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옛말에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했던가.

세 사람이 말하면 도심에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했다.

하물며 수십 명의 유저들이 비슷한 특징들을 말하며 유령을 봤다고 말하자, 소문은 점점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오물오물.

토스트를 먹으며 아리스의 개인 방송을 지켜보던 정우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소문이란건 믿을 게 못되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야. 특히 영지를 운영하는 입장이다보니 더더욱.’

결국 천하제일야장대회가 끝나면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기로 결정한 정우는 게임에 접속했다.

“앗, 영주다.”

“앗, 카이다.”

재잘재잘.

리버티아의 영주 저택에서 일을 하고 있는 요정족들이 수다를 떨었다.

카이는 그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베란다로 나가 울창한 나무의 아래를 바라보았다.

“……여기도 전망 하나는 끝내주는데.”

카이의 대저택에서는 리버티아의 정체성 중 중 하나인 거대한 나무와 그 위에 지어진 집들.

그리고 지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건물들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경치를 마음 내킬 때마다 볼 수 있는 카이가 요정족들에게 물었다.

“오늘 스케줄은?”

“대회가 시작되는 날이야.”

“오늘은 매우 시끄러울 거야.”

“망치 소리가 계속 들릴걸.”

“오늘 카이는 바쁠걸.”

“……그래, 오늘 바쁘겠네.”

천하제일야장대회.

리버티아라는 조그마한 땅 덩어리에는 대장간만 108개가 세워져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효율의 극치라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카이는 이 대회를 준비했다.

“우승자가 운영하는 공방 하나만 남겨두고, 싹다 파견보내야지.”

이미 파견을 보내기에 적당한 영지들까지 물색을 해놓은 상태였다.

“일주일 뒤면 영지가 제법 조용해지겠어.”

매일매일 망치 소리로 시끄러운 영지의 소음이 사라질 테니까.

“집 잘 보고 있어.”

“우리는 집 잘 보는데.”

“주인이 안 들어와서 문제인거지.”

“맨날 외박하고 집도 안 들어와.”

재잘거리는 요정들을 뒤로하고 저택을 나선 카이는 거대한 나뭇잎에 몸을 실었다.

우우웅.

그러자 인어족의 마법이 걸려 있는 나뭇잎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판타지 세계의 엘리베이터인 셈.

지상에 도착한 카이는 곧장 대회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108명의 드워프 대장장이들이 저마다 눈빛을 빛내며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오셨습니까.”

미리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인어 족의 왕자, 사이러스가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응. 언제 시작해?”

“20분 정도 남았습니다.”

“시간 딱 맞춰왔네. 생각보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러게요. 첫날이라서 생각보다 한적할 줄 알았습니다만.”

총 일주일에 걸쳐 진행되는 대회가 진행되는 방식은 간단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108명의 장인들이 날마다 주어진 주제를 가지고 무구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첫 날의 경연으로 딱 절반인 54명의 생존자가 남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둘째 날에는 27명, 셋째 날에 13명, 넷째 날에는 6명…….

이런 식으로 마지막 날에는 가장 뛰어난 세 명의 장인들만이 살아남아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결투를 펼치게 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볼거리가 덜하다고 판단되는 첫 날에는 관중들이 적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대체 몇 명이나 온 거야?”

“마련한 좌석이 정확히 만 개였는데 모두 매진됐습니다. 입석에 들어선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못해도 2만 5천 명은 되겠군요.”

“타영지에서 보낸 이들도 있겠지?”

“아마 형편이 되는 영지에서는 못해도 한 사람을 보냈을 겁니다.”

카이는 대회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제법 덩치 있는 영지들에게 사전에 서신을 보냈었다.

경연에서 패배한 대장장이들의 공방은 리버티아에서 철거되며, 파견을 보낼 생각이라고.

‘덕분에 수많은 영지에서 스카우터들이 온 모양이네.’

그들 입장에서는 될 수 있으면 높은 성적을 거머쥔 드워프 장인을 데려가고 싶을 터.

하지만 그들은 대체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르는 경쟁자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아마 머리 좀 아플 거야.’

빨리 탈락한 드워프를 데려가자니 뭔가 조금 아쉽고.

그렇다고 상위권 드워프를 데려가자니 그건 또 경쟁이 치열할까봐 두렵다.

순수하게 대장장이 장인들의 기예를 보고싶어 온 관중들과는 달리.

타영지에서 온 스카우터들은 서로의 눈치를 봐야하는 눈치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겠어.”

카이는 푹신한 좌석에 몸을 기대며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

그곳은 지옥도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끔찍한 공간이었다.

수천 구나 되는 해골들이 모여 만든 뼈의 산.

그 산의 정상에 앉아있던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는 한 여인의 목울대를 잡고 있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

“아무한테도…… 어디가서 아무한테도…… 흐윽, 말하지 않을게요…….”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는 젊은 여인의 흔들리는 눈동자에는 지독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우드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가녀린 목을 쥔 사내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널 죽이면 어디 가서 말도 못할 텐데, 내가 왜 널 살려줘야 하지?”

“커, 커흐윽…… 제, 제발…….”

“너의 부모도, 자매도, 친구들도 모두 내 손에 죽었다. 그들을 따라가라.”

여인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손에 힘을 주었다.

콰득!

결국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인의 목이 축 늘어졌다.

동시에 여인의 목울대를 쥐고 있던 사내의 손등에 굵은 핏줄들이 일어났다.

“크읍…….”

그는 고통 때문인지 짧은 신음을 뱉어냈지만, 핏줄을 빠르게 가라앉았다.

푸쉬이이익.

바뀐 것이 있다면, 그의 손에 잡혀있던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뼈만 남긴 채 사라졌다는 것뿐.

“후우, 이번 마을도 끝났군.”

후두둑.

새로운 뼈가 추가되며 뼈의 산은 그 높이를 약간이나마 더 높였다.

띠링!

[마을 주민의 영혼 74개를 흡수하셨습니다.]

[마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살해하셨습니다.]

[마왕 앙골모아가 당신의 잔인한 손속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마기가 25 상승했습니다.]

“나쁘지 않아.”

남자가 메시지를 읽으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순간, 손님이 찾아왔다.

“힘은 잘 쌓는 중인가? 스팅.”

허공에 생겨난 균열이 뱉어낸 남자가 두개골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으며 물었다.

아마 이 자리에 다른 유저들이 있었다면 분명 경악을 했을 것이다.

스팅!

한때 세계 10대 길드 중 하나였던 검은 벌 길드를 이끌었던 최고의 마법사.

아쉽게도 카이를 적으로 돌려 주춧돌 하나 남기지 못하고 멸망했지만, 그는 여전히 미드 온라인의 유저라면 모를 수 없는 존재감을 지닌 인물이었다.

“잘 쌓는 중이지. 무료할 정도로 잘 쌓이고 있다. 몸이 근질거릴 정도야.”

“아직은 때가 아니다. 놈은 여전히 우리보다 강해.”

“명령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골리앗.”

“너에게 명령한 적 없다. 스팅.”

스팅에 이어 골리앗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그 또한 유저들이 모를 수 없는 이름값을 지닌 인물.

한때는 서로를 견제하던 라이벌 관계였지만 현재 그들의 관계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건 두 사람이 제법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둘 다 세계 10대 길드를 이끄는 마스터였으며, 원수가 카이라는 점.

그리고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신화 등급의 직업 보유자라는 부분마저 같았다.

골리앗이 스팅을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언노운에 대한 소식은 듣고 있나?”

“매일 듣고 있지. 적을 이기기 위해선 적을 알아야 하는 법이니까.”

두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흉포해졌다.

“그래서 날 찾아온 목적은?”

“…….”

스팅의 질문에 골리앗은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지금 얼마나 강하냐.”

“그것이 궁금해서 온 건가.”

“궁금하다.”

골리앗의 직설적인 질문에 스팅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미드 온라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는 된다.”

“그렇군.”

스팅의 대답에 골리앗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널 찾아온 건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위해서다.”

“제안?”

“언노운 녀석. 요즘 들어 계속 승승장구 하는 모습이 눈꼴 시리더군.”

“놈을 방해하고 싶다는 건가?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꼬리가 밟힐 수도 있다.”

“그래서 너의 힘을 빌리고 싶은 거다. 내가 나서면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으니까.”

골리앗의 말에 스팅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예 제대로 깽판을 놓고 싶다?”

“한 번쯤 흔들어 두는 것이 좋을 거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때마침 좋은 기회가 오기도 했고.”

“천하제일야장대회를 말하는군.”

스팅이 골리앗의 의도를 단번에 꿰뚫어봤다.

“맞다. 대회를 지켜보는 관중만 수만 명이지. 기습이 조금이라도 성공하면 녀석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힐 수 있을 터.”

“그거 마음에 드는군. 마침 잘 됐어. 그렇지 않아도 슬슬 이 쓰레기들을 치워버리고 싶었으니까.”

스팅은 자신의 발밑에 쌓인 수천 개의 해골 더미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

“다들 실력이 굉장하네요.”

“그야 모두 장인이니까.”

사이러스는 두 주먹을 꽉 쥐어가면서 경연에 집중했지만, 카이는 생각보다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각보다 신이 안 나네.’

사실 대장장이들이 각자 무기를 만드는 경연이 재미있으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그저 단순히 망치를 두드리고, 무구를 식히고, 다시 달군 뒤 또 두드리고.

이렇게 단순히 반복되는 노가다를 몇 시간 동안이나 구경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졸리는 일이었다.

‘어우, 잠 좀 깨게 세수나 하고 올까.’

카이가 하품을 내뱉으며 게임을 대기 모드로 전환하려는 순간.

띠링!

[하베로스 영지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영지를 방어하십시오.]

잠이 쏙 달아다는 문구가 그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뭐? 공격을 당해? 누구한테서?’

순식간에 얼굴이 딱딱해진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이러스에게 말했다.

“급한 일이 생겨서 어디 좀 가본다.”

“예? 아, 예. 다녀오십시오.”

사이러스가 인사를 건네는 순간, 카이는 이미 신출귀몰을 사용해 리버티아를 벗어난 후였다.

그와 동시에.

우웅, 우우웅.

“응? 하늘에 저거 뭐냐?”

“텔레포트 게이트 같은데…….”

“그게 저기 왜 생기는데?”

리버티아의 하늘 위로 수천 개의 구멍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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