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90화 (290/441)

# 290

힐통령 290화

93장 도화선(2)

카이는 조만간 바덴 백작으로부터 두 개의 영지를 양도받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운영하고 있는 영지는 딱 세 개.

바로 리버티아와 아르칸, 하베로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 중에서 카이의 돌봄을 받지 못한 유일한 영지가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하베로스였다.

‘하베로스 영지는 아직 어떤 컨셉으로 개발할지 정하지 못했으니까.’

스스로도 평소에 신경을 못 써주고 있다는 것에 약간의 미안함 정도는 느낄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영지가 공격받고 있다는 알림이 떠오르니, 카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베로스로 이동했다.

하베로스 영지는 마치 개발되기 전의 아르칸 영지를 보는 것처럼 시골 냄새를 풀풀 풍겼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여보, 도망쳐!”

“흐아아앙, 엄마아아아아.”

비명을 내지르며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도망치는 영지민들을 짚단처럼 베어 넘기는 언데드들.

그 모습을 보는 카이의 두 눈으로 쌍심지가 활활 타올랐다.

“흐, 흐아아아악!”

달려가던 아낙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부드러운 천에 휩싸여 있던 갓난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응애애애!”

사람들의 비명 소리.

그리고 자신을 방문하는 사신의 기운을 느낀 것일까.

아이는 태어났을 때보다 더 크게 울며 본인의 서러움을 만천하에 알렸다.

“아, 아가…… 내 아가…….”

아이의 어머니는 한쪽 다리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자식이 다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며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갔다.

“응애애애애애!”

“옳지…… 울지 마렴…… 괜찮다…… 다 괜찮아…….”

아기를 품에 안은 어머니는 두 눈을 꾹 감으며 이 악몽이 끝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드르륵, 드르륵.

하지만 그 기도가 무색하게도, 스켈레톤은 대검을 질질 끌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딱딱딱!

스켈레톤이 턱뼈를 부딪치며 대검을 머리 위로 크게 집어 올리는 순간.

터어어어어엉!

녀석은 마치 덤프트럭에 치인 사람 마냥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나갔다.

“……중력장 해제.”

일반적이라면 위에서 아래로 발생될 중력을, 카이가 옆으로 비틀었기 때문이다.

“다, 당신은…….”

비록 자주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한 번도 안 왔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몇 없는 마을 사람들도 그때 모두 카이의 얼굴을 봤으니, 아낙네는 그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여…… 영주님! 아아아!”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햇살의 따스함, 큐어.”

그녀의 다리를 치료하며 아기의 심신을 안정시킨 카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사달입니까?”

“모, 모르겠어요. 갑자기 허공에서 구멍이 생기더니…… 저런 무서운 몬스터들이…….”

“…….”

그 이야기를 들은 카이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떤 놈이지?’

그의 머릿속으로 스켈레톤을 소환할 수 있는 유저들의 목록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이렇게 마을을 침공할 정도로 크게 척을 진 이의 존재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NPC 쪽인가?’

물론 NPC 쪽으로 타깃을 변경하면 떠오르는 이들은 많다.

‘마왕 추종자들 중에서도 흑마법사는 즐비하고, 뮬딘 교 녀석들도 가능하지.’

카이는 과연 이 짓을 벌인 것이 누구인지는 몰랐으나, 하나만은 확신했다.

‘너희들, 사람 잘못 건드렸어.’

그는 곧장 자신의 펫들을 소환했다.

“강화 소환, 미믹, 블리자드.”

마법진 위로 소환된 미믹과 블리자드는 빠르게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명령을.”

스르릉. 두 자루의 곡도를 빼어든 블리자드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너는 영지민들의 구출과 피신을 최우선적으로 삼아. 미믹도 마찬가지고.”

“끼루루루룩!”

“잠시 실례하지!”

블리자드는 와이번의 모습으로 변한 미믹의 위에 올라타며 영지의 반대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 카이의 눈앞으로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리버티아 영지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영지를 방어하십시오.]

‘하베로스에 이어 리버티아까지?’

확실하다.

이건 우연의 일치 따위가 아니라, 100% 자신을 노리고 벌린 일이었다.

“시비를 거는 거라면 받아줘야지.”

카이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지금 본인들이 감히 누구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듯하네.”

그는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수백 마리의 스켈레톤을 노려보며 가볍게 발을 굴렀다.

우우우웅!

동시에 스켈레톤들이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자탄의 중력 장갑으로 강화된 ‘중력장’ 스킬의 세심한 컨트롤!

그 무리에 섞인 영지민들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카이가 엄청난 집중을 발휘한 탓이었다.

물론 그만한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막대한 정신력이 소모되었다.

‘크윽, 머리가…….’

마치 감기에 걸렸을 때처럼 관자놀이 부근이 조금씩 땡겼다.

심지어 마나의 소모는 더욱 막대했다.

이제 마르지 않는 신성력으로 스킬을 무한정 사용할 수 있나 싶었건만, 부족한 마나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니 속전속결이다.’

다시 한 번 발을 구른 카이의 신형은 하늘을 향해 비룡처럼 솟구쳐 올라갔다.

허공에 떠올라있는 스켈레톤들의 수는 120마리 정도.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아. 아마 노리고 있던 건 처음부터 리버티아였겠지.’

그곳에선 한창 천하제일야장대회가 열리는 중이었으니까.

적의 의도를 알아챈 카이의 손속이 더욱 거칠어졌다.

딱딱딱!

스켈레톤들의 움직임은 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느렸으며.

콰드드득!

그들의 몸은 종잇장처럼 허약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끝내자.”

딱딱!

스켈레톤 한 마리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카이에게 대검을 휘둘렀다.

물론, 중력장의 영향을 받은 녀석의 공격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공격을 가볍게 무시한 카이는 그대로 녀석의 갈비뼈를 밟아 터뜨렸다.

그 반동으로 다른 스켈레톤에게 이동한 카이는 이번에는 두개골을 뜯어내 버렸다.

완벽하게 기능이 정지된 녀석의 몸을 발판 삼아 다시 다른 놈에게로 이동.

상대적으로 중력장의 영향을 적게 받는 카이의 움직임은 마치 번개처럼 보였다.

“마, 맙소사…….”

자리에 주저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던 영지민들은 카이가 선보이는 신위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허공에 떠있던 120마리의 스켈레톤들이 정리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분.

‘자, 이쪽은 끝났고. 맞은편은 블리자드가 해줄 테니…….’

쭈욱, 쭉.

카이는 허공에서 돌연 몸을 쭉쭉 늘리며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고개를 돌린 그는 성벽 너머의 산중턱을 노려보며 그곳을 향해 총알처럼 쏘아졌다.

‘못 찾을 거라 생각했나?’

매의 목격자 칭호를 획득한 이후, 카이의 시력은 인간을 초월한 상태였다.

‘기습을 했다면 경과를 지켜보고 싶겠지. 그게 범인의 행동 패턴이니까.’

때문에 카이는 스켈레톤들을 부수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탐색했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단 하나의 목격자를 찾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내 범인의 위치를 찾아냈다.

“넌 도망 못 쳐.”

나뭇가지 위에 서있던 범인은 카이가 자신에게 날아오자 깜짝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줄어들었고, 결국 카이는 그가 뒤집어쓴 후드를 붙잡고는 그대로 바닥에 찍어버렸다.

콰드드드득!

수박이 깨지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산길에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자, 어디 낯짝이나 볼까?”

놈이 쓰고 있던 후드를 거칠게 벗겨낸 카이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

동시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스켈레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해골의 텅 빈 눈두덩에서는 칠흑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놀랍군.]

녀석의 턱뼈가 달그락거리자, 변조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기존에 계획했던 거리보다 훨씬 먼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것마저 발각될 줄이야…… 보험을 들어놓기를 잘했어.]

생각보다 훨씬 치밀한 녀석이다.

스켈레톤의 눈두덩에서 흘러나오는 연기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그 모습이 카이의 눈에는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링크인가.’

흑마법사의 스킬 중 하나로, 자신의 소환수 중 하나를 직접 조종하는 기술이었다.

당연히 이 해골과 연결되어있는 자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고, 하는 말도 들을 수 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실력이다. 중력을 조작하는 기술은 자탄을 레이드하고 얻었나?]

“유저구나. 너 누구야.”

[큭, 생각보다 성미가 급하군. 오늘은 간단히 인사만 건네러 온 것이다. 게다가 이럴 시간이 없을 텐데?]

그 말을 끝으로 스켈레톤의 눈두덩에서는 더 이상 탁한 연기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뼈마디에 수천 개의 균열이 생기며 안쪽에서 하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콰아아아아아아앙!

흑마법사, 그 중에서 네크로맨서 스킬을 올리는 자들의 주력 기술 중 하나인 뼈 폭발이다.

“……젠장.”

빛의 방어막을 두른 덕분에 피해는 없었으나, 더럽고 찜찜한 기분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생각을 이어갈 상황도 아니었다.

‘리버티아.’

카이는 고민을 잠시 미뤄둔 채, 다시 한 번 신출귀몰을 사용했다.

***

“다들 대피하십시오!”

“출구는 이쪽입니다!”

리버티아의 엘프와 인어들은 패닉에 빠진 관중들을 침착하게 통솔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빠졌다.

“뒤에 또 떨어집니다!”

“젠장, 대체 몇 마리나 떨굴 생각이냐!”

무려 세 번에 걸쳐 떨어지는 스켈레톤 군단!

각각의 스켈레톤은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인어와 엘프들이 힘을 합쳐 형성한 전선에서는 오히려 승전보가 울리는 중이었다.

문제는 숫자였다.

쿠우우웅, 쿠우웅!

하늘에서 생긴 구멍에서 끝도 없이 떨어져 내리는 스켈레톤들.

지금만큼은 리버티아의 울창한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적들을 위한 쿠션이 되어주었다.

바닥에 떨어진 스켈레톤들은 각자 자신의 두개골과 무기를 집고는 그 즉시 전투에 돌입했다.

지금까지 떨어진 것만 무려 4천 마리.

“죽여도 죽여도 끝이 나질 않는구나.”

“영주님은 이럴 때 어딜 가신거지?”

“아까 반응을 보면 다른 영지가 먼저 공격받은 듯합니다.”

“감히 어떤 천인공노할 놈들이!”

인어 족의 국왕, 카리우스는 마법을 사용해 스켈레톤들을 쓸어버리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안색은 어두웠다.

‘우리의 마법은 강력하지만…… 뭍에서는 그리 오래 활동하지 못한다.’

즉, 자신들은 잠시 후면 다시 바다로 돌아가야 하는 전력이었다.

비전투 요원인 드워프들을 제외하면, 싸울 수 있는 이들은 엘프들밖에 없다는 뜻.

“여기도 난장판이네.”

그 상황에서 그들의 영주, 카이가 돌아왔다.

“오오, 돌아왔는가!”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됐나?”

“그쪽은 무사히 잘 해결됐습니다. 오히려 이쪽이 훨씬 심각한 상태 같은데요.”

“그대가 왔으니 큰 걱정은 없을 걸세.”

“물론 저것들을 치우는 건 큰 문제가 아니죠. 다만…….”

카이는 엉망이 된 대회장을 쳐다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인명 피해는?”

“계약할 장인들을 찾기 위해 다른 영지에서 보낸 인물들이 십수 명…….”

“후우우.”

그들 영지에서 이 사안을 문제로 삼아 따질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어떤 놈들인지 한 번 걸리기만 해봐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인을 향한 카이의 분노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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