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93화 (293/441)

# 293

힐통령 293화

94장 뒤끝 있는 놈(2)

오도독, 오도독.

천상의 정원에서 묘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꽃밭에 쭈그려 앉아있던 카이는 한쪽 손으로 제 눈썹을 긁으며 물었다.

“흐으음. 그러니까 마족 놈들은 되도록 피하는게 좋다는 소리죠?”

“웅! 강한 놈들이니라. 게다가 좀 끈질긴 면도 있…… 더 다오.”

“넵.”

카이는 봉지에서 길쭉한 과자 하나를 더 빼들고는 헬릭에게 내밀었다.

오도독, 오도독.

자신의 손에 달라붙어 오도독 소리를 내며 빼빼로를 씹어먹는 헬릭.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오물거렸다.

“일단 알겠습니다. 헬릭 님께서는 추적술을 모른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알아봐야겠네요. 그래도 범인의 정체는 대강 유추해 낸 것 같아 다행입니다.”

카이는 제 손을 붙잡고 있는 헬릭의 작은 두 손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카이의 손가락에 묻은 초콜릿을 먹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헬릭이 고개를 들었다.

“추적술을 원한다면 천공의 신을 한 번 찾아가 보거라.”

“천공의 신이라면…….”

매의 목격자를 선물해줬던 바로 그 신이었다.

‘분명히 상반신이 조류로 되어있던 신이었지?’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붉은색 깃을 지닌 독수리 인간이었다.

“그가 추적술에 능합니까?”

“웅.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대가 연회를 열어준 덕분에 간간히 교류를 하게 되었느니라.”

“그거 다행이네요.”

딸 아이가 어느 날 친구가 생겼다고 고백을 하면 이런 기분이 들까?

조금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헬릭을 흐뭇하게 쳐다보던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혼자 힘으로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안 되면 그를 찾아가 보죠.”

현재 자신은 여러 신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다.

하지만 연회 한 번에 헬릭처럼 친해질 수는 없는 법.

‘부탁을 한 번 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빚은 없다고 생각하겠지.’

될 수 있으면 신들의 도움은 최후의 최후까지 남겨놓고 싶은 것이 카이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떠나는 것이냐?”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헬릭이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헬릭 님…….”

얼마나 외로우면 자신을 이리 애처롭게 바라보며 붙잡을까.

가슴이 먹먹해지려는 순간, 헬릭이 입을 열었다.

“갈 땐 가더라도, 내가 먹던 빼빼로는 주고 가거라…….”

“…….”

카이는 빼빼로를 주지 않고 천상의 정원을 떠났다.

***

띠링!

[태양신 헬릭의 기분이 우울해집니다.]

[대륙을 비추는 햇빛의 세기가 약해집니다.]

“아이고, 우리 여신님 시무룩해지셨네.”

카이의 입가에 떠올라있던 진한 미소는, 복구 공사가 한창인 리버티아를 눈에 담는 순간 사라졌다.

구름처럼 부드러워 보이던 그의 미소는 순식간에 차갑고 무감정한 미소로 탈바꿈했다.

‘나에게 선제 공격을 날려놓고 이대로 끝내시겠다? 그럴 순 없지.’

최근에야 제법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카이는 한 때 독종이라고까지 불리던 인간이었다.

단적인 예만 봐도, 그와 안 좋은 일로 엮인 길드 중 간판을 멀쩡하게 걸고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을 정도였다.

붉은 노을, 붉은 주먹, 검은 벌, 타이탄…….

시골의 잡 길드부터 세계적인 길드까지.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이들이라면 예외없이 주춧돌까지 무너트리던 게 바로 카이였으니까.

“오랜만에 열 좀 받네.”

하지만 온몸에 피가 확 도는 듯한 그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신출귀몰.”

리버티아를 떠난 그가 이동한 곳은 다름 아닌 정보 길드였다.

“아이고, 기별을 주셨으면 마중을 나갔을 텐데요.”

이번에도 지부장은 헐레벌떡 데스크까지 나와 카이를 맞이했다.

카이를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한 그는 자리에 앉으며 우려를 드러냈다.

“혹시 지난번에 제공해 드린 정보에 무슨 문제라도……?”

“아뇨. 교사진들에 대한 정보는 유용하게 잘 사용했습니다.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도 높고요.”

“휴우. 다행입니다. 길드에서는 항상 최고의 정보를 다룬다고 자부하지만, 정보라는게 항상 변화하고 발전하는 유동적인 것이라 절대적 확신은 가지지 못하거든요.”

자신의 걱정이 설레발이었음 알게 된 지부장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 방문하신 목적은 어떻게 되십니까?”

“정보 구매입니다. 특정 모험가들에 대한 정보를 사고 싶습니다.”

“모험가들의 정보라…… 등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모험가의 등급은 어떻게 산정됩니까?”

“기본적으로 해당 모험가가 지닌 명성과 힘에 비례하지요.”

명성과 레벨이라는 뜻.

“구매를 원하시는 모험가들의 이름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조금 많아서 서류로 준비해 왔습니다.”

카이는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전 타이탄과 검은 벌 길드원들의 명단을 지부장에게 넘겼다.

그 명단을 받아든 지부장은 살짝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카이 님. 얼핏 보기에도 숫자가 천 명이 넘습니다만…….”

“금액은 신경쓰지 마시고 진행해주세요. 특히 이 네 명의 인물에 대해서는 정보 길드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원합니다.”

카이가 지목한 이들은 골리앗과 스팅.

그리고 각각 그들의 오른팔이었던 신창 샌지와 빙제 라우스였다.

“음. 알겠습니다. 잠시…….”

선반 쪽을 뒤지던 지부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곳에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네요. 아무래도 본단 쪽에 문의도 해보고, 따로 길드원들을 풀어서 수소문을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기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잠시 고민을 하던 지부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에게 사흘의 시간을 주신다면…….”

“하루 드리겠습니다.”

카이의 단호한 목소리에 지부장이 당황했다.

“그, 그렇게 갑작스런 기간의 단축은 무리…….”

철그렁!

카이는 금화가 듬뿍 담긴 궤짝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며 뚜껑을 톡톡 두드렸다.

“말씀드렸을 텐데요. 금액은 신경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길드의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해 주십시오.”

자신과 영지민들의 생명을 위협한 놈들의 흔적을 찾기 위한 투자다.

당연히 돈이 얼마가 들건 아까울 리가 없었다.

꿀꺽.

카이의 재력이 선사하는 위압감에 지부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대체 이 녀석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사람 좋아보이던 카이의 눈빛이 저렇게 날카롭게 빛날 정도라니.

험험. 목소리를 가다듬은 지부장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로…… 금액은 신경 쓰지 않으십니까?”

“예.”

“알겠습니다.”

카이의 확답에 자신감을 얻은 지부장은 서랍에서 마법 수정구 하나를 꺼냈다.

그곳에 마나를 불어넣은 그는 곧장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예. 지금부터 보내드릴 명단에 적힌 인물들의 위치와 기본적인 정보 좀 파악해 주십시오. 큰 건입니다. 예예. 물론이죠. 카이 님입니다. 예, 투입 가능한 길드원들은 전부 풀어주십시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정구의 불이 꺼지자, 지부장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루 뒤에 뵙겠습니다.”

***

띠리리리링!

미리 설정해놨던 알람이 울리자 카이는 정보 길드의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문은 안쪽에서 열렸다.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지요.”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던 지부장은 당당한 걸음걸이로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우선 특별 요청하신 네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정보입니다.”

띠링!

[모험가 정보 책자를 획득했습니다.]

카이는 지부장이 건네는 두꺼운 책을 바라보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두껍다고? 하긴, 천 명이 넘으니…….’

보통 길드에서 정보를 구매하면, 포츈 쿠키를 부쉈을 때 나오는 조그마한 종이 한 장.

딱 그 정도 크기에 정보들이 담겨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카이는 지난 번 교사진에 대한 정보를 샀을 때 한 장짜리 양피지를 지급 받았다.

하지만 그로서도 이렇게 두꺼운 책자를 받는 것은 처음.

책자를 열자 가나다 순으로 인물들의 정보가 상세하게 실려 있었다.

[가델]

직업 : 마법사

레벨 : 283

소속 세력 : 크로노스 길드

특이 사항 : 최근 경매장에서 [타오르는 잿빛 로브]를 구입.

착용 중인 장비 : 타오르는 잿빛 로브, 수상한 마법사의 지팡이, 녹두의 관…….

최근 목격 장소 : 알데바란 왕국, 보탄 영지의 ‘움직이는 미로’.

[가르비아]

직업 : 창술사

레벨 : 271

소속 세력 : 비스트 길드

특이 사항 : 레어 액티브 스킬인 [7단 찌르기] 입수 확인.

착용 중인 장비 : 개량된 기사의 창, 반짝이는 론의 방어구 세트, 하급 기사의 망토…….

최근 목격 장소 : 라시온 왕국, 아이스버그 영지의 ‘서쪽 사냥터’.

책자에 기입된 정보의 수준을 파악한 카이가 작게 감탄했다.

‘훌륭해.’

이 정도 퀄리티의 정보라면 금액이 얼마가 들던 아깝지 않았다.

빠르게 책자를 훑던 카이의 눈빛이 어느 순간 변했다.

몇몇 유저들이 소속되어 있는 길드의 이름이 같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리벤지 길드라…… 이놈들 봐라?’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길드 이름을 지었을 지가 뻔히 내다보인 카이는 한 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재미있네. 그렇게 복수가 하고 싶었나.’

다 큰 남자들만 아니면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네이밍 센스.

카이는 책자를 덮으며 추가 정보를 요구했다.

“여기 있습니다.”

지부장은 거리낌 없이 특별 정보를 제공했다.

“역시.”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대로 라우스와 샌지, 골리앗과 스팅은 모두 리벤지 길드 소속이었다.

“그런데…… 골리앗과 스팅의 레벨과 직업은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군요.”

“아, 그게…….”

카이의 질문에 지부장이 송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수백의 길드원들이 그들의 흔적을 이 잡듯 뒤져봤지만……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위치도 찾아낼 수 없었단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거기 적혀있는 장소입니다.”

“몽환의 숲이라…… 숨기엔 안성맞춤인 곳이군요.”

리벤지 길드원들 몽환의 숲 인근의 도시에서 물품을 보급한 것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라우스.’

카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스팅의 오른 팔이자, 빙제라고 불릴 정도로 얼음 속성 마법을 잘 사용하는 이였다.

‘이 녀석이 보급 담당인가.’

라우스만이 주기적으로 몽환의 숲 근처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거의 확실하다.

‘그렇다면 뒤를 캐야 할 녀석은 이 녀석으로 정해졌다.’

결론을 내린 카이가 지부장에게 시선을 던졌다.

“금액은요?”

“크흠. 수백 명의 길드원들이 투입된 점, 그리고 기존에 사흘이었던 시간을 하루로 단축시킨 점, 마지막으로 조사한 인물들이 천여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카이 님께서 특별히 신경써달라고 해주신 이들에 대한 조사가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해서, 저희 길드는 14,200골드라는 비용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무려 14억 2천만 원에 해당하는 거금!

하지만 카이는 인벤토리에 그 거금을 선뜻 꺼내 지부장에게 건넸다.

“아, 그리고 비용이 비용인 만큼 A/S를 기대해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추후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게 되면 카이 님에게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좋군요.”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친 카이는 길드를 나와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거대한 분수대가 보이는 카페 테라스에 앉은 그는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적들의 정보를 하나부터 열까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