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294화 (294/441)

# 294

힐통령 294화

94장 뒤끝 있는 놈(3)

탁.

카이가 읽고 있던 두꺼운 책자를 덮었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오케이. 입력 완료.”

제거해야 할 적들의 정보를 머릿속에 모두 저장했다는 뜻이었다.

분명 독서를 시작한 것은 오후였는데, 지금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거의 13시간가량을 독서한 건가.’

복수를 위해 앉은 자리에서 그 두꺼운 책을 모조리 외워버린 카이.

그는 살짝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우선 잠부터 자자.’

자신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리벤지 길드는 평생 잊지 못할 일을 겪게 될 것이다.

***

“어우 아직도 속이 쓰리네.”

오늘도 쓰리 샷짜리 에스프레소로 강렬하고 짜릿한 아침을 맞이한 카이는 곧장 텔레포트 게이트에 몸을 실었다.

“어디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스미어 영지로.”

“스미어 영지, 알겠습니다.”

그가 게임의 접속과 동시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스미어 영지로 향한 이유는 간단했다.

‘몽환의 숲.’

리벤지 길드의 흔적이 끊어진 곳이 바로 몽환의 숲이었고, 그 숲은 스미어 영지에 있었으니까.

“이곳이 스미어인가.”

카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스미어 도시는 그가 여지껏 가봤던 도시들과는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소였다.

‘음울한 기운이 깔려 있는 도시.’

비도 자주 올뿐더러, 주변의 사냥터라고는 몽환의 숲이나 망자의 무덤처럼 귀신 아니면 언데드가 나오는 곳들뿐이었다.

‘자, 이제 여기서 라우스의 흔적을 찾아야 해.’

그의 뒤를 밟아야 리벤지 길드가 숨어 있는 본거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카이는 그 뒤로 며칠 동안 영지에서 대기를 하며 각종 가게들 앞을 차례대로 지켰다.

만약 음식이나 장비 수리 키트를 대량으로 구매하려는 이가 있으면 몰래 따라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이는 라우스를 발견하지 못했다.

‘쯧. 가게가 너무 많아.’

스미어 도시는 프리카처럼 조그마한 마을이 아니다.

아야나가 살고 있는 화이트홀처럼 거대한 도시 중 하나.

당연히 도시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는 가게들만 수십 개에 이르렀다.

결국 카이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혼자서 라우스의 흔적을 찾는건 무리다.’

이어서 옅은 한숨을 내쉰 그가 중얼거렸다.

“스미어 영지의 사탕 집에는 특별한 과자가 있으려나?”

사탕 집에서 밴시 모양의 젤리를 구매한 카이는 곧장 천상의 정원을 방문했다.

“흥!”

헬릭의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두 볼이 그녀의 현재 기분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토라진 상태였는지, 카이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헬릭 님. 화 푸시고 여기 젤리 좀 드셔보세요.”

“……젤리?”

결국 카이의 노력 끝에, 극적(?)으로 화해를 한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저번에 소개시켜 주신다는 천공의 신, 소개시켜 주세요. 혼자 뒤를 쫓는건 아무래도 힘드네요.”

“그러게 내가 뭐랬느냐. 나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그…… 음…….”

“떡이요?”

“웅! 떡이 나오느니라.”

젤리 한 봉지를 순식간에 비운 헬릭이 카이의 소매를 잡았다.

“그럼 바로 천공의 신에게 데려다주도록 하마.”

“부탁드립니다.”

순식간에 시야가 바뀌었다.

두 사람이 이동된 곳은 제법 뾰족한 바위산의 정상.

“음?”

그곳에 양반 다리를 한 채 고고하게 앉아 있던 천공의 신, 이스카가 감고 있던 눈을 반개했다.

그는 하체는 인간, 골반 위로는 조류의 몸을 가지고 있는 독수리 인간이었다.

“손님들이 찾아왔군.”

“이스카여, 잘 지냈느냐.”

“그대와 그대의 사도가 신경을 써준 덕에 제법.”

이스카가 바위 산 아래의 포대 자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안에는 여전히 맛있는 식량들이 제법 남아 있었다.

“아, 빈손으로 오긴 좀 그래서…… 연회 때 이걸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준비해 봤습니다.”

카이는 미리 준비해 온 샌드웜들이 담겨있는 포대 자루를 이스카에게 건넸다.

“호오?”

펄럭!

거대한 날캐를 펼친 이스카는 순식간에 두 사람에게 다가오더니, 포대 자루 안쪽을 확인했다.

안쪽에는 아직까지 살아 있는 신선한 샌드웜들이 꿈틀거렸다.

“신선한 샌드웜이라! 이게 얼마만의 별미인지 모르겠군.”

기분이 제법 좋아보이는 그에게 헬릭이 말했다.

“이스카여. 나의 대리인이 현재 누군가를 찾고 있는데, 추적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흠. 추적술을 배우기 원한다면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군.”

본인의 추적술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이스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나의 추적술은 본래 아무에게나 전수해 주는 것이 아니다.”

“물론 천공신의 기술을 대가없이 배울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뭘 해야겠습니까?”

카이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흐으음…….”

부드러운 깃털로 덮여있는 팔을 들어 제 턱을 어루만진 천공신이 입을 열었다.

“그대 덕분에 연회 때 즐거운 추억을 남기기도 했고, 오늘 이렇게 신선한 샌드웜도 받았으니 무료로 가르쳐주고 싶네.”

‘됐어!’

이야기가 예상대로 흘러가자 카이가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천공신이 돌연 우울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이번 일이 끝나면 나를 한 번 더 찾아와줄 수 있겠나?”

“그거야 큰 문제는 없습니다만…… 무슨 일인가요?”

“그대에게 따로 부탁할 것이 있네. 내가 맺은 열매들과 관련된 부탁일세.”

‘천공신의 열매라면…….’

카이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천공신을 나무라고 가정한다면, 그는 뿌리에 속한다.

그것도 땅속 깊은 곳에 단단하게 박혀 있는 뿌리.

‘그렇다면 그가 맺은 열매는?’

당연히 그와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일 터.

카이가 헬릭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헬릭 님. 혹시 세상에는 독수리 인간 일족도 있나요?”

“음. 그런 일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인족이라면 분명 있었지. 그러고 보니 그들을 못 본 지 꽤나 오래됐구나.”

‘조인족!’

그녀의 대답에 머릿속이 맑아진 카이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조인족에 대한 정보는 커뮤니티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엘프와 인어, 그리고 드워프 족까지.

카이가 알고 있는 아인종은 이렇게 크게 세 가지뿐이었다.

리버티아를 한창 건설 할 때 혹시나 싶어 다른 아인종들도 찾아봤지만, 진척은 없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는 공개되지 않은 종족이라는 뜻.

‘히든 퀘스트다!’

눈을 반짝인 카이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스카 님께서 추적술을 알려주신다면, 일이 끝난 뒤 이곳에 재방문하겠습니다.”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주어 고맙군.”

이스카의 독수리처럼 날카롭던 눈매가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하나 그는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대는 날개가 없으니 하늘을 날지 못하지?”

“예.”

“으으음. 나의 추적술은 가히 으뜸이라고 자부하나…… 기본적으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어야 하거늘.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스카가 고민을 하며 끙끙거리자, 카이가 한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혹시 제가 아닌, 제 소환수가 배울 수도 있나요?”

“그대의 소환수? 한 번 보도록 하지.”

“네. 강화 소환, 미믹.”

뀨우.

마법진 위로 소환된 토끼는 낯선 장소를 둘러보더니, 카이의 발과 무릎, 팔을 밟더니 순식간에 어깨 위로 올라탔다.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이스카가 김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대의 소환수는 토끼. 날개가 없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예. 지금은 그렇지만…… 미믹, 와이번 폼.”

명령이 떨어지자 미믹의 몸이 순식간에 수은으로 뒤덮이더니, 팽창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고고한 와이번의 형상을 갖춘 미믹이 콧김을 뿜어냈다.

그러자 이스카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신기한 생물이로군.”

“따라쟁이 미믹이라고 합니다. 이 녀석이라면 이스카 님의 추적술을 배울 수 있을까요?”

“충분하다.”

호언장담을 한 이스카는 미믹의 머리 위로 제 팔을 올렸다.

그러자 잠시 후, 카이의 귓가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띠링!

[미믹이 유니크 스킬, ‘천공의 주시자’를 습득했습니다.]

[천공의 주시자]

등급 : 유니크

효과 : 하늘을 맴돌며 특정 지역을 수색합니다. 수색한 지역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특정 인물의 냄새를 맡아 대상의 현재 위치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높아지면 던전이나 매장된 광석에 대한 정보들도 알 수 있게 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1시간

“오!”

카이가 감탄했다.

천공의 주시자 스킬은 솔플 활동을 하는 그에게는 그 정도로 유용한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앞으로 미믹을 자주 불러낼 이유가 하나 생긴 것 같은데?’

신규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미믹을 소환해 정찰을 보내면, 웬만한 정보는 얻을 수 있다는 뜻.

다른 게임과 비교하자면, 맵핵을 쓰고 게임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기술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스카 님 덕분에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 그대가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길 바라네.”

“물론입니다. 조만간 다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마친 카이는 헬릭의 손을 잡고 천상의 정원으로 돌아왔다.

“헬릭 님. 이스카 님과의 만남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바빠서 먼저 가볼게요!”

황급히 떠나는 카이를 향해, 헬릭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올 때 젤리이! 많이이!”

***

몽환의 숲에 존재하는 이름 모를 던전은 평균 레벨 350의 몬스터가 나오는 장소였다.

콰아앙, 콰아앙!

현재 그곳의 보스룸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한창이었다.

12명 정도의 유저들과 사투를 벌이는 존재는 거대한 유령인 밴시 여왕.

당연히 최상위권 랭커들만이 공략할 수 있는 고난이도의 던전이었다.

하지만 12명의 유저가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크읏.”

“젠장.”

간간이 새어나오는 것은 짤막한 욕지거리나 신음이 전부.

파티장이 지휘를 한다거나 명령을 내리는 일은 일절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밴시의 장막 생성됐다.’

‘지금 마법 주문 날리면 두 배 반사 데미지야. 한마디로 엿 된다는 소리지.’

‘궁수인 내가 나설 차례로군.’

그 자리에 위치한 모두가 사냥에 있어선 스페셜리스트였으니까.

[캬아아아아악! 미개한 인간들에게 당하다니!]

결국 밴시 여왕은 통곡어린 비명을 뱉어내며 소멸했다.

파티의 리더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다들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생각보다 어렵진 않네요.”

인사를 나누는 유저들 중 자리에 주저앉거나 쓰러지는 이들은 없었다.

그저 호흡을 짧게 쪼개며, 빠르게 기력을 회복할 뿐.

그 모습을 바라보던 파티장, 샌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리벤지 길드는 강하다.’

감히 단언컨대, 25명 정도의 전력임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타이탄 길드보다 강하다.

물론 그 이유는 두 명의 공동 마스터 때문이었지만…….

‘그 두 분을 제외하고도, 우리는 더 강해졌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정진한다고 했던가.

카이를 향한 복수심을 가슴에 품은 이들은 빠르게 성장했다.

‘카이. 그 녀석과 정면 승부를 한다고 해도, 이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신화 등급의 히든 클래스를 지닌 두 명의 마스터들에 더불어 최상위권 랭커 21인.

지금 당장 세계 10대 길드 중 한 곳과 싸워도 밀리지 않을 전력이었다.

“던전 닫는다. 충분히 모두 나가자.”

샌지는 파티원들을 이끌고 던전을 나섰다.

“아, 나오셨습니까?”

“고생 많으셨습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던전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길드원들이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

“예. 개미 새끼 한 마리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다행……?”

부하들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던 샌지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샌지 님? 갑자기 왜 그러시는…….”

“쉿!”

눈을 날카롭게 뜬 샌지가 자신의 검지를 입술에 갖다댔다.

그런 그의 행동에 모든 길드원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숨을 죽였다.

샌지는 그 상태에서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누군가가 우릴 주시하고 있다.’

피부가 따끔따끔할 정도로, 아주 버젓이 자신들을 관찰하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창술사가 경지에 이르면 배우게 되는 패시브 스킬, 오러 센스가 경고 중이었으니 확실했다.

‘하지만…… 대체 어디지?’

전후좌우.

어디에서도 주시자를 발견할 수 없던 샌지가 돌연 고개를 들었다.

‘설마?’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절로 다운되는 보라색 나뭇잎들의 너머.

푸르른 창공에는 한 마리의 와이번이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있던 카이는 녹색 빛으로 물든 눈을 빛내며 웃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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