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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통령 태양의 사제-295화 (295/441)

# 295

힐통령 295화

94장 뒤끝 있는 놈(4)

최강의 클래스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은, 거의 모든 게임에서 존재했다.

강력한 근접전을 펼칠 수 있는 전사 클래스.

한 방 한 방이 강력한 마법을 멀리서 쏘아내며, 다양한 상태 이상까지 유발하는 마법사.

심지어 엄청난 물량으로 전장을 주무르는 소환사 클래스까지.

모두 장단점과 개성이 각기 다른 직업들이었기에 이 논쟁은 몇십 년 동안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카이는 그러한 논쟁을 볼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뭐 저런 걸 가지고 싸우는지. 그 직업들의 장점만 모두 섞을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최강이지.’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미드 온라인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분배할 수 있는 스탯은 한정되어 있었고, 한 우물만 파도 그 끝을 보기 힘든 게임이었으니까.

만약 미드 온라인에서 그런 잡캐를 시도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제대로 미친놈이거나.

“시작은 가볍게 인사만 해볼까.”

신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는 인간일 것이다.

우우우웅!

카이의 주위에 떠오른 마법진 네 개는 부드러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이런 미친!”

“저 새끼가 왜 여기에?”

그런 그를 올려다보던 리벤지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 중 1순위인 그가 자신들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으니까.

“……당장 후퇴한다.”

오직 파티장인 샌지만이 차갑게 식은 이성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최적의 판단을 내렸다.

언노운이 이 자리에는 왜 있는가? 같은 질문은 이 상황에서는 불필요했다.

‘당장 마스터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도망쳐야 한다.’

아직 리벤지 길드의 두 마스터는 카이를 상대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것이 길드 회의에서 내려진 객관적인 평가였고, 사실이었다.

“모두 산개해서 도망쳐라!”

리벤지 길드원들은 마치 깨진 도자기처럼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적들을 내려다보던 카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못 보내주지.”

우우우우웅!

동시에 스포츠카의 엔진처럼 육중한 소리를 뱉어내던 마법진이 불꽃을 토해냈다.

“헬 파이어.”

순식간에 카이의 곁을 스쳐간 네 개의 검은 불꽃은 그대로 지상을 향해 낙하했다.

그리고 지옥의 불길이 땅에 닿는 순간.

화아아아악!

거세게 일어난 흑색 불길은 거대한 원을 그리며 연결되었다.

“이, 이게 뭐야?”

“미친…… 저 새끼는 이제 마법까지 써?”

“유니크 마법 주문을…… 성기사가 사용한다고?”

리벤지 길드원들 중 절반은 한때 검은 벌 길드에 속해있던 이들.

당연히 마법 스킬에 관한 지식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편이었다.

그들은 꽥 소리를 질렀다.

“이 머저리들! 당장 불길에서 떨어져!”

“2차 전직을 마친 사제라도 없는 이상, 지옥의 불길을 떨쳐낼 방법은 없어.”

멋도 모르고 헬 파이어의 벽을 지나가려고 했던 타이탄 길드 출신의 유저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12명의 리벤지 길드원들이 헬 파이어의 벽에 갇히자, 샌지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망했군.’

이 인원으로 카이와 싸워서 이길 생각을 하는건, 그를 너무 무시하는 처사였다.

‘어차피 죽게될 거, 정보라도 최대한 캐낸다.’

결사의 의지를 드러낸 샌지가 창을 뽑아내며 말했다.

“전투 준비.”

그 단호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리벤지 길드원들도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런 그들의 행동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카이가 피식 웃었다.

“궁지에 몰리니 한번 물어보시겠다?”

과연 쥐새끼들다운 선택.

하지만 아쉽게도 자신은 고양이 따위가 아니었다.

‘같은 고양이과라도, 고양이랑 호랑이는 다른 법이거든.’

미믹을 역소환시킨 카이는 그대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저, 저 미친놈.”

“자살이라도 할 셈인가?”

“그럴 리가…….”

지상과의 거리가 30미터 정도 남았을 때, 카이는 자신의 몸에 중력장 스킬을 걸었다.

후우우웅!

정밀한 컨트롤로 중력을 조작한 카이는 깃털처럼 가볍게 땅에 착지했다.

이어서 주위를 둘러본 그가 말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제법 보이네.”

카이는 가장 가까이 있던 적에게 물었다.

“넌 타이탄 길드 소속이지? 수백 명이 덤볐을 때도 패배했는데, 길드원 25명으로 날 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 그걸 어떻게…….”

“멍청한 자식! 대답해 주지 마라!”

샌지의 호통에 입을 열었던 길드원이 아차 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가 피식 웃었다.

“설마 지금 떠보는 거라고 생각하는건가?”

돌아온 것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고함이었다.

“놈을 죽여!”

샌지의 명령과 함께 길드원들이 산개하며 카이의 사각지대를 자연스럽게 점했다.

‘호오.’

예전보다 위치선정 능력과 움직임이 좋아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누가봐도 숫적 열세를 떠안은 싸움이었지만.

카이는 웃었고, 오히려 그를 상대하는 열두 명의 유저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희들의 마스터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조금 쌓였거든.”

톡톡.

인터페이스를 활성화시킨 카이는 이를 조작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난 그놈들이 나처럼. 아니, 나보다 스트레스가 더 쌓였으면 좋겠어.”

동시에 채팅창에 댓글이 도배되었다.

-뭐냐 이거? 언노운 방송 실화?

-갑자기 뭔 일이래?

-어? 저기 저 앞에 쟤. 옛날 타이탄 길드 샌지 아니냐?

-저 뒤쪽에는 호르발도 있는데? 그 있잖아. 옛날에 검은 벌 길드 소속이었던 마법사 랭커.

-그럼 얘네 또 싸우는 거?

-오늘 생일도 아닌데 이런 선물을 주시네ㅋㅋㅋㅋㅋㅋㅋㅋ.

그 광경을 목격한 리벤지 길드원들이 빠르게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그들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샌지를 쳐다봤다.

“저, 정말로 방송 켜진 것 맞습니다!”

“시청자들도 계속 상승 중입니다. 벌써 4만…… 12만…… 32만……!”

카이의 라이브 방송은 사전에 공지조차 없었지만, 단숨에 실시간 인기 랭킹 1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방송을 하고 있던 다른 게이머들도 방송을 끄고 카이의 방송을 구경하러 올 정도였다.

“방송물 먹는 건 오랜만이지?”

카이의 도발에 샌지가 이빨을 갈며 눈을 질끈 감았다.

‘마스터 분들, 죄송합니다…… 베일에 싸여 있어야 할 리벤지 길드의 전력이…….’

정말 웃기지도 않은 방법으로,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세상에 공개되었다.

샌지는 붉게 충혈이 된 눈으로 카이를 노려보며 명령했다.

“공격해라!”

“아이스 랜스!”

“라이트닝!”

거의 명령이 끝남과 동시에 캐스팅이 완료된 마법들이 카이에게 날아들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기를 꼬나쥔 근접 딜러들까지.

그들은 한 차례 훑어본 카이가 검을 뽑았다.

‘우선은 거슬리는 마법부터.’

가볍게 검을 흔든 카이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마법 스킬들을 쳐냈다.

콰르르릉!

그가 쳐낸 마법들은 뒤쪽으로 날아가며 애꿎은 땅과 나무를 강타했다.

“마, 마법을 피하는게 아니라…….”

“쳐냈다고?”

“이 괴물 같은 놈이!?”

그 말도 안 되는 반사신경과 배짱, 그리고 검술에 리벤지 길드원들이 경악했다.

일반적으로 마법사들의 스킬은 ‘쳐내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이는 이를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마법을 무력화시켰다.

“자, 그 다음은…….”

카이의 시선이 가장 가까이에 위치하던 무도가에게 돌아갔다.

‘청풍. 전 타이탄 길드 소속 유저, 특이 사항은…….’

“자신이 있다면 막아봐라!”

무도가인 청풍이 빛살처럼 달려 나오며 손바닥을 내질렀다.

그 공격은 청풍이 마나 절반이 담겨있는 필살의 일격.

‘발경 스킬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적의 방어 수치를 무시하고 생명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레어 등급의 스킬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발경 스킬은 방어를 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안 맞으면 될 뿐이야.’

카이가 순식간에 왼손을 휘둘러 상대의 손목을 낚아챘다.

“엇…….”

청풍의 눈동자가 커지려는 순간, 카이의 검 손잡이가 그의 턱을 올려쳤다.

콰득.

“크으…… 으…….”

그 한 번의 공격에 스턴 상태에 빠진 청풍의 몸이 스르르 무너졌다.

카이는 자신을 향해 무너지는 청풍을 스쳐 지나가며, 그의 목덜미를 정확히 두 번 그었다.

서걱!

극성으로 펼쳐진 쾌검 덕분에, 살이 베이는 소리는 단 한 번만 울렸다.

털썩. 그 공격으로 체력이 바닥난 청풍의 몸이 폴리곤으로 변하며 전장에서 사라졌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벤지 길드원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뭐, 뭐지?’

‘저런 움직임은 처음 본다.’

그만큼 두 사람의 격돌은 충격적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합을 짜고 펼친 것처럼 자연스러웠으니까.

카이가 이기고, 청풍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대본을 연기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정신 차려라!”

샌지의 호통이 길드원들의 정신을 되돌려놓았다.

“마법사들, 궁수들은 계속해서 견제! 전사들은 절대 혼자서 달려들지 마라!”

“예!”

청풍의 죽음 이후 전투의 양상이 달라졌다.

‘언노운. 당연한 말이지만 녀석은 고만고만한 유저가 아니다.’

‘최고 난이도의 던전 보스. 그런 녀석을 레이드한다고 가정하고 접근해야 해.’

‘장기전으로 들어간다.’

리벤지 길드원들의 움직임이 더욱 신중해졌다.

하지만 신중해졌다는 건, 바꿔말하면 그만큼 생각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결과로 적들의 움직임은 한 템포 느려졌다.

‘기회.’

눈을 번뜩인 카이가 돌연 바닥을 박찼다.

적들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그 찰나의 순간, 카이는 진열을 흐트러트리며 돌진했다.

‘놈들이 만든 무대 위에서 싸워줄 이유는 없지.’

본인이 날 뛸 수 있는 무대를 스스로 세팅하는 것.

그것이 무수히 많은 강자의 자격 중 하나였다.

***

“…….”

부르르.

한 쪽 무릎이 꿇린 샌지의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땅에 박아놓은 창대에 기댄 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에서 반짝이고 있는 새하얀 폴리곤과 장비 아이템들.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괴물 같은 놈.’

샌지를 포함한 11명의 유저들은 카이를 향해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아무리 카이라고 해도, 최상위 랭커 11명이 쏟아내는 공격을 모두 피할 수는 없는 법.

당연히 그도 약간의 피해를 입기는 했다.

“……큭.”

샌지는 고개를 들어 카이를 쳐다봤다.

‘남은 체력이 96%라…….’

최상위 랭커 12명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덤볐지만, 깎은 체력은 고작 4%.

어디가서 피해를 입혔다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치였다.

“대충 이 정도 실력인가.”

혼자 중얼거린 카이는 검을 든 채 방어구가 완파된 샌지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샌지에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골리앗과 스팅에게 가서 전해. 너희들이 먼저 시작한 전쟁이라고.”

서걱!

샌지의 목에서 깔끔한 절삭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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